범어문도 법응

[불교공뉴스-불교] 성주사 주지임명을 둘러싼 갈등이 수개월 동안 지속되고 있습니다. 성주사 문제로 주지 스님을 2회에 걸쳐 만났습니다. 통화를 시도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드린 것도 여러 차례입니다만, 늘 절벽 앞에 마주 선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여러 번 시도했어도 상대방과 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메아리 없는 독백에 불과합니다. 안타까움에 공개편지라는 명목으로 이렇게 한 번 더 의견을 드립니다.

불교는 자주적인 사상의 종교이기에 승단 내에서 발생한 쟁론도 그 해결을 국법이나 속인에 의탁하지 말고 소위 멸쟁법에 의해 자주적으로 해결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당사자가 앞에 있는데서 잘못을 다스리라(현전비니)’고 하였으니, 성주사를 30년간 운영한 문중이나 특정 스님에게 잘못이 있다면 총림답게 임회나 적어도 그에 준하는 자리를 마련해서 당사자들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또한 대중공의를 통해 일을 처결해 가는 것이 법에 맞는 종무집행이 될 것입니다.

총무원에서 성주사 주지 임명장이 나왔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합법 내지 합리화 되었다 하기에는 금정총림의 위상과 운영적 측면에서 우려되는 바가 큽니다. 즉, 총림과 임회의 존재 이유와 기능이 무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원효 스님의 ‘화쟁사상’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주지 스님의 생각에 성주사가 안고 있는 문제가 있어서 이를 일소하고 혁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서로 만나서 대화하고 문제를 지적하며, 대안을 창출하는 것이 화쟁일 것입니다.

승려 개인 간의 다툼이나 문제도 아니고 종단이나 종도들의 의지로는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의 일도 아닙니다. 임회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양측이 서로 다투어 사회법에 제소를 했습니다. 이는 말사의 주지 문제 하나조차 여법하게 풀지 못하는 무능력과 비자주성을 총림 스스로 세상천지에 공표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범어사와 서해문도 측은 사회법에 기댄 비종교적인 제소를 즉시 취하하고 승가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여 대화로써 해결해야 합니다. 본사나 서해문도가 특정 고소 건에서 승소했다한들 그것이 과연 승리한 것이겠으며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다만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끄럽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범어사는 부산광역시라는 대도시를 품고 있는 유일한 본사입니다. 이러한 범어사가 내홍으로 인해 총림으로서의 위상이 현저히 추락된다면 어려움 속에서도 종단 발전을 위해 다각도로 애쓰는 종도들과 사회정의와 자비구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많은 시민사회에 불신과 조롱을 자초하게 됩니다. 범어사와 금정총림의 오늘을 있게 한 역대 조사님들께 이보다 더 죄스러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불과 일 년 전의 범어사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체제를 위한 국제적 담론의 자리를 마련하고 국민적 의지의 결집을 호소하던 대규모 종단행사의 추진체였습니다. 조계종단은 물론 한국사회에 긍정적인 뉴스를 생산했던 본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말사주지 문제로 고소고발을 통해 시비를 가리는 신세로 전락했으니 참으로 애석합니다.

양측은 각자 자신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며 그야말로 올인을 하며 목숨을 담보한다고 할 지경이어서 진실과 미추가 혼동되는 지경입니다. 각자가 주장하는 바의 목적이 정녕 성주사와 지역의 불교발전에 있다면 그 청사진을 함께 설계하고 주지직과 주요 소임을 서로 나누어 운영하는 방법도 고려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결코 누구의 편을 들지 않습니다. 단지 임회와 문도의 논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운용되기를 바랄뿐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지도자의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총림을 운영하는 집행부가 임회의 기능과 대중공의의 의무와 기회를 무시하거나 외면한다면, 그것은 개인이나 본사는 물론 종단과 불교계 전체에 매우 불행한 일일 것이며, 자칫 최악의 상황에서 스님께서는 집행부의 최고책임자로서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게 되지 않을는지요.

당사자들은 이제라도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서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논의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임회’라는 공식기구의 결정을 통해 그 여법성을 증명 받아야 할 것입니다.

교계 안팎에서 수불 스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금정산의 자색광명이 바다와 대륙으로 힘차게 이어나가기를 기원합니다.

불기2558(2014)년 9월 1일

범어문도 법응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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