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종 목사

다섯, 행복여행의 차림새

어렸을 때 수학여행을 갔던 일이 떠오릅니다.
서울에 가서 전차도 타 보고,
동물원과 덕수궁, 창덕궁, 경복궁, 국회의사당, 시청,
남산의 케이블카를 탔던 40여 년 전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그 기억의 틈새에 또한
아직도 까끌거리는 느낌으로 남아있는
쓰라림과 불편함이 남아있습니다.

그 때 내 어머니는 면바지에
빳빳하게 풀을 먹여 입혀주셨는데,
풀 먹은 솔기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샅을 스쳐
허벅지 안쪽이 벌겋게 충혈되었고,
움직일 때마다 견디기 힘들게 쓰라리던 그 통증.
가랑이가 쓰려 어기적거리던 불쾌한 수학여행길은
창덕궁이고 덕수궁, 국회의사당이고 나발이고 다 귀찮으니
얼른 돌아가 그놈의 바지만 벗어놓았으면 하는 생각만 가득했던,
그런 수학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일 것입니다만,
그 때 내 수학여행에 지금도 붙어있는 제목은
부자유였습니다.
걸음을 옮기기 어려운 불편,
여행에서의 차림새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더군다나 일상으로부터만 벗어나는 게 아니라,
여행에는 여행에 걸맞는 차림새가 있습니다.
굳이 그 차림새에 이름을 붙여본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자유'라고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자유를 말하려면 얼른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패트릭 헨리라는 사람의 연설문 끝에 있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어린 시절
내 머릿속에 각인된 자유라는 말은
다분히 선언적이고 정치적인 색채가 짙은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내 어린시절은
일제 식민지로부터 독립된지 얼마 안 지난 시기였으므로
민족적인 의미도 거기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좀 더 자라면서 자유의 의미를 새롭게 얻게 된 것은
성서에 나오는 말로
'진리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거기서 비로소 나는 선언적이거나 정치적인,
그리고 독립이나 해방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던
집단적 자유개념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도덕경을 공부하면서
거기 나오는 樸이라는 말이
무슨 뜻으로 쓰였는지를 이해하면서 자유의 의미는
보다 구체적인 것으로 새겨졌습니다.

'박'이라고 읽는 이 글자의 일반적인 뜻은
'통나무'입니다.
그러나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 글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았으며,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다듬어지지도 않은,
그래서 자신의 본성 그대로를 발현시켜 살아가는
자유무애(自由無碍)의 존재'를 일컫는 말로 썼습니다.

도덕경의 한 곳에는
樸이 비록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누구도 길들여 부릴 수 없는데,
이것이 제 본성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천하를 움직이는 큰 힘을 지닌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행은 천하를 움직이러 떠나는 길은 아닙니다.
천하를 움직이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을 때
이미 부자유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생각 가운데 하나,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대로 하나의 강박관념이 되어
우리의 의식 안에서 힘을 지니고
이런 저런 식으로 삶을 통제하기도 하고 조종하기도 합니다.
때로 그것은 혼자서 힘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그런 힘의 작용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이
그 힘을 자극하여 또한 사람을 얽어매기도 합니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일이 있습니다만,
우리 모두는 무엇인가가 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그냥 존재 그 자체입니다.
그 존재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
존재 자체에 손상을 입거나
아니면 존재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이 그 일은 성공일지 모르지만
존재 자체는 실패이고 비극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란 다른 것이 아니라
존재가 그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조롱에 갇힌 새는 결코 새가 아닙니다.
자유롭게 창공을 날면서 먹이도 찾고 노래를 부르는 새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입니다.
그 자유를 작은 먹이와 교묘한 방법에 길들여져 잃어버리는 것,
그리하여 끝내 조롱 밖의 세계를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은
새의 성공이 아니라
길들인 사람의 성공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자유로운 영혼을 길들이려 하는 힘은
적응과 성공을 혼동하게 합니다.

이따금씩 우리 사회의 상위계층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벌인
파렴치한 짓들이 언론에 의해 밝혀지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걸 보고는
'도대체 그만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무엇이 아쉬워서 그런 짓을 하느냐'며 혀를 차곤 합니다.
예를 들면 법관들이 폭탄주를 마시며 벌인 추태라든가,
의사가 마약에 빠져서 일으킨 사회문제와 같은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일은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답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고귀하지 않은 일과 아름답지 않은 일이란
별로 없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서민들의 부러움을 받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수입까지 충분하게 보장되어 있다는 것,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남는 시간을
보다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여
뭇 사람의 귀감이 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치부를 드러내며
인간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니,
그래서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회복불능의 폐인이 되는 경우까지 있다니
그저 의아해 할 수밖에 없을 듯도 합니다.

내가 보기에 그들에게는
그런 일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아니면 집을 짓거나,
또는 시를 쓰거나 하며 살다 가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본바탕에 있는 싹수를 키우는 것과는 상관없이
학교 성적이 뛰어났고,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이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
또는 '법관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부추겨
그 길을 가게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것은 그가 간 것이 아니라 내몰린 것인데,
마침내 주변의 사람들이 원하던 것이 되었지만
내면은 비틀릴 대로 비틀리고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으며,
그것의 표출이 그런 식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이 참으로 자기 자신으로 살게 되면
지위나 수입 같은 것에 상관없이 삶이 즐겁고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사는 인생은 그 자체로 이미 행복여행입니다.
행복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자신에게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보다 앞서는
아름다운 말로 '무엇이 하고 싶으냐'는 말입니다.

물론 그 때
대답이 쉽게 제대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 안 됩니다.
대답을 하는 것은 대부분
자신보다는 자신 안에 있는 길들여진 의식이 먼저인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대답을 원하기에 앞서
어떻게 길들여지고 무엇에 적응되었는지를
하나씩 살펴보는 일입니다.
그렇게 살펴서 풀먹여 솔기 빳빳한 바지와 같은 것을
하나씩 찾아서 벗어버리는 일입니다.

더구나 생각해야 할 것은,
이미 그것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그렇게 솔기 빳빳한 바지의 거슬림을
모르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그렇게 스치고 시달리다가
마침내 굳은살이 생겨서 무감각해졌을 터이기 때문인데,
그래도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굳은살도 풀어야 합니다.
살이 굳는 과정에서 몸에 밴 변형된 걸음걸이도 고쳐야 합니다.

여기까지 내가 이야기했으면 나머지는 읽는 이의 몫입니다.
하나씩 찾아서 걷어낼 것들을 걷어낸다면,
삶은 반드시 행복여행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그러나 자신은 아닌 것들이 이미 버리기에는
너무 깊숙하게 삶의 복판에 자리를 잡아서
그것을 내려놓는 순간 더는 살아갈 수 없게 된 경우가 흔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번에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글에서 눈을 떼는 순간 잠시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숨이 느껴지면 계속해서 숨을 느끼면서 하나의 상(像)을 떠올립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광경 가운데서
가장 앞이 탁 트이고 시원한 느낌을 받았던 때의
그 광경을 말입니다.
그게 떠오르면 마음은 이미 그리로 내닫게 될 것인데,
그 때 그리로 달려가는 마음을 가만히 당겨
저 있어야 할 자리에 모신 다음,
그 광경을 내 앞으로 천천히 끌어오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 한 복판에 있음을 느끼면서 숨을 쉽니다.

열 두 번 정도 숨을 쉰 다음 이제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됩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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