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철학자 유승도 시인의 산문집 『세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도 서러워하지 마 화내지도 마』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산문집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과 일체가 된 삶의 진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유승도 시인은 강원도 영월 망경대산에서 자급자족의 농사를 지으며 산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삶을 살면서 친자연적인 시와 산문을 써왔다. 이번 산문집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기후 변화를 겪는 자연과 시인의 삶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지렁이가 빼빼 말라 죽어 있는 것쯤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매미나방 애벌레나 사슴벌레가 사람의 발이나 자동차 바퀴에 깔려 뭉개져 있는 모습도 드물지 않다.

그들에 비하면 커다란 동물인 쥐, 토끼, 고양이나 그보다 큰 너구리, 고라니가 죽어 있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멧돼지가 차에 치이기도 하지만 그땐 자동차 주인이 가져가서 길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유승도 시인
유승도 시인

■ 약력 유승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 『차가운 웃음』, 『일방적 사랑』, 『천만년이 내린다』, 『딱따구리가 아침을 열다』, 『수컷의 속성』, 『사람도 흐른다』, 『하늘에서 멧돼지가 떨어졌다』와 산문집으로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고향은 있다』, 『수염 기르기』, 『산에 사는 사람은 산이 되고』, 『달밤이 풍성한 이유』 등이 있으며 동화 『진달래꽃 아래』도 펴냈다. 현재 영월 망경대산 중턱에서 농사를 조금 지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작가의 말

 2024년, 겨울밤의 달빛이 유난히 밝다. 세상이 전쟁과 기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 길을 잃고 비틀거리는 모양새다. 내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모습도 심상치 않은 모양새다.

 오늘도 창밖을 보니 뿌옇다. 미세 먼지가 산과 산 사이의 공간에 안개처럼 깔렸다. 안개와 비슷하면서도 살짝 느낌이 다른 미세 먼지의 세상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던가?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해서 처음 보았던 세상이 그랬다. 봉천동 산동네에서 아침에 일어나 앞을 바라보니 뿌연 안개가 깔려 있었다. 그땐 그게 미세 먼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의 안개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정도였다. 그때는 한겨울이라 해도 시골의 산골짜기에까지 미세 먼지가 깔리는 일은 없었다.

 멀리 뻗어나간 소백산맥이 미세 먼지에 가려 흐릿하게만 보인다. 이익을 위해 패거리를 짓고 싸우는 일은 국가 안의 작은 집단에서나 국외의 커다란 집단에서나 다름이 없다. 기후 변화를 나열하며 인류의 멸종을 운운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눈앞에 어른거리는 이익을 멀리할 생각이 없다.

 요즘 따라 달빛이 유난히 밝은 게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세상이 흐릴수록 밤의 달빛은 더욱 빛을 발한다.

 2024년 1월, 망경대산 중턱에서

유승도

[작품 미리보기]

―「흔한 일」 중에서

 사실 산속에 사는 게 낭만일 수만은 없다.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해 친화를 넘어 더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고된 삶이라 할 수 있다. “집 앞길을 걷자니 온통 매미나방 애벌레의 사체”(「매미나방 애벌레를 받아들이다」)가 있거나 “올해도 어김없이 멧돼지에게 바쳐진 고구마” 농사처럼 “매년 손해를 입으면서도”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살려고 하는 짓”(「미워하진 않는다」)이라는 걸 잘 알기에 “멧돼지야, 우리 될 수 있으면 마주치지 말고 살자”(「멧돼지에게 줄 연민의 정은 없다」)고 혼잣말을 할 뿐이다.

 아내가 준 우유를 받아먹으며 기운이 오른 새끼는 다른 놈들과 섞여 뛰기 시작했다. 흑염소 우리 안은 진정 봄다운 봄이 되었다. 얼음 바람이 본격적으로 밀려오고 있는 중에도 새끼 흑염소들은 자신들이 일으켜 세운 봄의 세상 안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새끼들에게 겨울은 이미 없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저놈들이 다 큰다면.

―「까만 봄」 중에서

 “새끼들이 크면 장사꾼에게 팔거나 원하는 사람에게 탕을 끓여주거나 건강원에 넘겨야” 하는데 “우유를 주면서 키우며, 떨궈야 할 정을 오히려 더하고 있는” 새끼 염소를 보며 시인은 가슴이 아리다.

 앞산의 등성이에 올라 마을을 본다 산의 가슴에 안긴 마을과 그 귀퉁이를 차지한 내 집은, 볼수록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알을 품고 있는 새의 마음이 이럴까/나보다 중요하거나 멋진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사는 오막보다 따스한 집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암을 일으킨다는 슬레이트가 얹힌 낡은 거처여서, 어서 헐고 새로 지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아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 아내와 내가 웃고 울고 다투며 지내온 저 집이 좋다/나의 집을 품고 있으니 마을도 나의 집이 아니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마을을 안고 있으니 산도 그렇다

 위의 시에서 얘기하는 “나의 집”은 영서 지역에 있는 망경대산 중턱에 있다. 1,000m를 살짝 넘는 산이어서 낮지도 높지도 않은 높이와 작지도 크지도 않은 덩치를 갖고 있다. “웃고 울고 다투며”라는 문구가 얘기하듯이 산속 삶도 도시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탄광 합리화 정책으로 폐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마을에, 3년 정도 비어 있던 집을 대충 손보고 들어와 매년 조금씩 고치면서 살아왔다. 1998년에 갓 100일이 넘은 아이를 안은 아내를 내려주고 돌아가면서 처남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은 지 70년이 넘었다는 살짝 기울은 산속 오두막이 오죽 시원찮았을까? 그나마 집 옆 도랑에 물이 흐르고 있어 굶어 죽진 않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단다.

●펴낸곳_시와에세이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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