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출발하다.

분명 김탄은 뒤통수 뒤로 박토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코피는 지금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함에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만.... 어색함이 흐르자 아수하가 분위기 전환시키려 말을 뱉었다.

“시간 안에 도착하려면 출발해야지. 박토.”

아수하의 말에 시계를 본 박토가 코피에게 부탁했다.

“월을 잘 부탁하고 오운족 아이신과 아수하를 잘 감시하길 부탁드립니다.”

코피는 다시 기분이 좋아진 듯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해맑게 미소 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성심 성의껏 정성을 다해 월을 돌보겠습니다. 그리고 지구 최고의 스파이처럼 오운족을 철저히 감시할게요.”

박토가 코피의 말에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자. 안전벨트 해. 이제 출발할 거니까.”

박토의 말에 김탄은 안전벨트를 맸다. 갑자기 운전석 창문으로 아수하가 고개를 빼꼼이 들이밀며 박토에게 입을 열었다.

“토야. 배달석 잘 부탁해. 정말 우리 오운족에게는 소중한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얼굴 좀 치워줘. 출발해야 하니까.”

곧바로 머리를 치운 아수하.

-자 이제 거추장스러운 것도 없고 걸릴 것도 없다.-

박토는 기다렸다는 듯 기어를 변속하고 액셀을 밟았다. 룸 미러로 아수하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자상한 행동에 순간 박토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박토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밝고 기어를 파킹에 놓고 안전벨트를 풀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김탄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토 형. 갑자기 왜 멈춰?”

“아이신이 보이지 않아.”

“뭐?”

박토는 김탄의 되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다급하게 차에게 내렸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손을 흔들고 있던 아수하의 손짓이 느려졌다. 또한 낯빛도 창백하게 변해갔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다. 박토가 그녀에게 소리쳤다. 

“아이신은 어디 갔어?”

아수하가 손으로 집을 가리켰다.

“잠깐 화장실 간다고 집에 들어갔어.”

“정말이야?”

“그래. 불러올까?”

“아니. 됐어.”

박토는 아수하의 말을 듣고 일단 차에 탔다. 그가 다시 안전 벨트를 매려고 벨트를 잡아당기다 순간 탁 놓았다. 박토는 지금 엄청난 두뇌를 쓰는 듯 눈알이 사정이 돌아갔다. 

그러다 순간 눈동자의 움직임이 한 곳에 고정이 됐고 무언가 알아챈 듯 다시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린 박토는 멀찌감치 떨어져 뭔가 어색하고 불편한 듯 서 있는 아수하를 흘낏 째려보곤 그대로 차 트렁크로 향하며 소리쳤다.

“김탄! 트렁크 버튼 눌러!”

트렁크가 풀리자 박토가 즉시 열었다. 그러나 박토의 예측과 달리 아이신은 없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박토가 트렁크에 실린 짐을 마구 들춰봤다. 그 어디에도 아이신은 없었다. 

그가 다시 트렁크를 닫고 의심이 가시지 않은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수하를 돌아봤다. 그러자 아수하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진짜 속고만 살았니? 화장실 갔다고 했잖아.”

박토는 아수하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팔짱을 끼고 한 손을 턱에 괸 체 생각에 잠겼다. 그러던 그가 그 자세 그대로 주구려 앉더니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차 아래를 살폈다. 

혹시나 차 하부에 아이신이 붙어 숨어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없었다. 

박토는 자신의 생각이 틀린 걸 아수하가 눈치챌까 헛기침을 하며 기침을 하는 척했다. 그리곤 천연덕스럽게 차에 다시 올라탔다. 물론 그때까지 박토는 아수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마도 섣부른 오해에 뻘쭘해서 그랬던 것.

박토가 차에 타자 김탄이 물었다.

“형 왜 그런 거야?”

“아이신이 사라졌어. 혹시 알앤디 센터로 진드기처럼 따라올 까 봐 확인했던 거야.”

“아이신 형은 찾았어?”

“아니. 차에는 없어. 하지만 조심해야 해.”

“어떻게 따라오겠다는 거야? 차도 없고 바이크도 없고 심지어 자전거도 없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 따라오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니까.”

박토가 탄의 말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는 않았는지 계속 룸미러를 보며 아이신을 찾았다. 

“빨리 가자. 이러다 늦겠어.”

김탄이 재촉하자 박토는 마지 못한다는 듯 핸들을 잡고 중얼거렸다.

“아니겠지..”

그러고 나서 기어를 변속하고 출발했다. 박토의 차가 박토의 집을 벗어나 구불구불한 신작로로 들어섰다. 멀리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아수하 옆으로 코피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아이신 씨가 박토 씨의 차가 멈췄을 때 담장을 넘는 걸 봤습니다. 그리고 박토 씨가 차 하부를 살피고는 차에 올라탔을 때 다시 담장을 넘어 그 차 하부로 들어가는 것도 봤죠. 어째서 거짓말을 한 거죠? 아수하 씨.”

코피의 말에 아수하의 표정이 곧바로 굳어졌다. 그녀가 갑자기 두 손을 들어올려 주먹을 쥐더니 힘을 주었다. 그러자 손목에서 그녀의 무기 호랑이 발톱이 나왔다. 

길이가 25cm가 넘어 보이는 칼날은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아수하가 호랑이 발톱이 나온 손을 코피를 향해 쭉 뻗자 코피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그냥 흘러내렸다. 아수하가 섬뜩한 살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코피에게 말했다.

“난 거짓말하지 않았어. 단지 다 얘기하지 않았을 뿐이지. 아이신은 화장실에 간 게 맞거든. 처음에는..”

코피는 아수하의 손에 들린 호랑이 발톱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오금까지 저려오는 살벌한 형태. 한 번 휘두르면 목이 댕강 잘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무기...절대 장난감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챘다.

시간이 흐르자 코피의 초콜릿 색 얼굴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공포에 절게 되었다. 

“살고 싶어?”

아수하의 물음에 코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에게 아수하가 한 번 픽 웃어 주고는 호랑이 발톱을 다시 손목 안으로 집어넣었다.

“살고 싶으면 당분간 입만 다물면 다 끝나. 배달석이 아이신 손에 들어갈 때까지 만이야.”

코피는 이국 땅에서 죽을 수 없었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자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모든 생계를 책임지는 그가 사라진다면 가족은 고통에 처할 건 뻔한 일.

그는 무조건 살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정직함을 버리기로 결정했다. 

“저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 

역시 생존 앞에선 고결함도 고상함도 사라지는 게 당연한 진리. 그걸 잘 알고 있는 아수하가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호호호호. 그럼 같이 월을 돌보러 가실까요? 코피 씨.”

그녀가 안내를 하듯 손을 쭉 펴 집을 가리켰다. 코피는 말없이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수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박토의 차가 사라진 길을 다시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됐어. 완벽해. 이제 배달석은 우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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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완벽해. 이제 결혼하면 되는 거야.”

한서리가 PCR(polimerase chain reaction:중합효소 연쇄 반응-DNA의 원하는 부분을 복제 증폭시키는 분자생물학적인 기술) 기기 앞에서 용액이 들어 있는 튜브를 기기에 다 꽂아 넣은 후 혼자 중얼거리자 갑자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 하는데?”

“아이. 깜짝이야.”

화들짝 놀란 한서리가 돌아보자 그의 절친 권동우가 서 있었다. 그는 그녀보다 더 놀란 얼굴이었다. 

사실 그는 한서리를 놀래 키려고 그녀 뒤에 바짝 붙어 있었던 것이지만 서리의 반응이 그를 더 놀라 게 한 것.

“뭘 그렇게 놀래? 무슨 반 인륜적인 실험이라도 하고 있었나?”

“으이그 진짜. 아니거든.”

한서리는 신경질 적으로 대답하고는 PCR 기기 뚜껑을 닫고 시작 버튼을 누른 후 뒤돌아 섰다. 

서리의 어깨너머로 PCR 기기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던 동우를 본 한서리가 핀잔을 늘어놨다. 

“왜 자꾸 나타나. 나한테 관심 있어? 그럼 꺼져. 난 주인 있는 몸이니까.”

“아니, 그냥 얼굴 보러 오는 것도 안되나?”

“안돼.”

“거 참. 치사하네. 친구끼리..”

한서리의 철벽 수비에 무안해진 권동우는 멋쩍은 듯 팔짱을 끼고 입을 쭉 내밀고는 섭섭하단 표현을 표정으로 한서리에게 보냈다. 

서리는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 없는 듯 다시 PCR 기기로 몸을 돌리려는 찰나 주머니에서 들어 있던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음이 들렸다. 

그녀가 전화기를 꺼내 확인하자마자 입이 귀에 걸리 듯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권동우가 물었다.

“입이 찢어지는 걸 보니 남친인가 봐?”

서리는 권동우의 물음에 답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문자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배앓이 꼴린 권동우가 손으로 한서리의 어깨를 툭 쳤다.

“야. 물어보잖아.”

“아, 잠깐만. 기다려.”

한서리는 권동우의 질문에 답하는 것보단 문자를 날리는 게 더 중요해 보였다.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전화기 자판을 치던 그녀가 순간 시간이 멈춘 듯 움직이지 않더니 갑자기 “우우우우우! 아아아아아!”라며 환성을 질렀다. 게다가 마치 천상을 거니는 듯 나풀거리며 춤까지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권동우는 그녀의 남자 친구와 만나자는 약속을 받아냈다는 걸 즉각 알아버렸다. 

“만나 제? 은비사가?”

권동우의 물음에 조금 진정이 된 한서리는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세워 빗으며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웬일이냐? 은비사가..”

권동우의 물음에 한서리는 기분이 좋은 듯 재잘거렸다.

“무슨 소리야? 요즘 계속 집으로 오라고 해서 내가 미칠 정도로 좋은 건데.. 어제도 만났다고. 그런데 오늘도 보자고 하는 거야. 대박이지?”

“그래서 그렇게 좋아서 난리부르스도 아니었던 거냐?”

“응. 10시까지 가야 해. 비사 오빠는 시간 약속 어기는 거 싫어하거든. 한 시간 전에 말해줄래? 선배.”

한서리가 다시 PCR 기기로 몸을 돌리자 권동우가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한서리가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냈다.

“성희롱하지 마. 어깨 잡는 것도 성희롱이야. 선배. 쇠고랑 차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라.. 9시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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