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과 월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별궁이 자리했던 궁궐터가 바로 동궁이다. 동궁은 월지와 같은 곳에 있다. 그 면적이 17만 7,172㎡ 신라의 태자가 머물렀을 동궁의 크기는 사뭇 넓었다.

봄바람이 불어 꽃눈을 틔운 매화의 꽃봉오리는 꽁꽁 얼어붙어 버렸으나, 꽃향기가 날렸다. 연회나 회의를 하거나 귀빈을 접대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 동궁을 들어가자, 야간 조명이 가득해 월지 속에도 건물이 가득 떠올랐다.

궁궐 안에는 중국 사천성 동쪽에 있는 명산인 무산(巫山)의 12개 봉우리를 생각해서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안에 연못을 파고 전설 속의 해중선산(海中仙山)인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를 상징하는 3개의 섬을 만들고 꽃을 심고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결국, 연못은 바다를 상징했던 것, 그런 탓인지 중심 건물을 임해전이라고 불렸으니, 인위적인 월지에 예술이 한가득 피고 있었다.

동궁 및 월지 유적은 1980년에 정화공사를 거쳐 신라 궁궐의 원지(苑池)로 복원되었고, 3채의 누각도 발굴조사 때 출토된 목조 건물 부재와 신라시대의 다른 유적들을 복원했다고 한다.

황남동 고분군

달항아리를 잘라 엎어 놓은 듯 부드러운 능의 곡선 사이로 해가 지기 시작했다. 붉은 노을을 지고 천년의 역사는 밤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황남동 고분군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차고 시린 꽃샘추위를 몰고 오는 밤바람이었다.

첨성대

삼국유사에 7세기 중엽 신라의 선덕여왕 2년에 건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높이 9.17 m, 밑지름 4.93 m, 윗지름 2.85 m로 중간에 남쪽 방향으로 정사각형의 문이 있으며 상방하원(上方下圓)의 형상을 갖춘 돌탑 형식이다

위쪽 방형의 각 면은 동서남북을 가리키는데, 어떤 주술적 또는 학술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첨성대를 불교계에서 불교 우주론 속 수미산의 형상을 반영했다고 주장한다.

불경에 따르면 수미산의 정상 도리천은 사각형이기 때문이다. 첨성대의 문이 탑의 중간에 위치한 것은 석가모니가 어머니 마야부인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난 것을 상징했다.

첨성대에 사용된 364개의 화강암 벽돌은 각각 1년의 하루를 의미하며, 거기에 선덕여왕의 1이 추가되어 1년은 365일이 되었다. 참으로 절묘한 해석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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