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받고 싶어요. 그게 마치 사랑 같거든요.

스스로 너무 잘한다고 생각한 나채국은 자랑질하고픈 마음에 입이 근질거렸다. 은비칼에게 말해봤자 알아듣지 못하니 말을 못 하겠고.. 그나마 할 수 있는 사람은 오강심뿐이다. 

나채국이 곁눈질로 오강심을 바라보았다. 오강심은 신들린 손놀림으로 주파수 대조와 분리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매가 매섭고 날카로워 보였다. 그래서 나채국은 그녀에게 섣불리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지금 말을 붙이면 성질을 낼 것 같다. 그런데 정말 말을 하고 싶다-

나채국은 산만하고 방정맞은 사람. 언제나 말이 많고 모르는 것도 꼭 아는 척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부류이기도 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오강심은 상당히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 그래서 그랬던 걸까? 오강심은 늘 말이 없었다. 말도 오직 할 말만 하는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오강심은 쉴 때도 말없이 생각에 잠기거나, 스마트 폰으로 아이돌 덕질을 할 때 중요 장면이 나와도 말없이 미소로 끝내는 여자였다. 한 마디로 말이 별로 없는 여자.

그에 반해 나채국은 한시도 입을 가만두지 않았다. 코딩을 할 때도 마치 컴퓨터와 대화하는 듯 입으로 중얼대며 하는 스타일이었다. 

아이쿠, 이런, 저런, 역시, 됐어, 어쩌지. 

뭐 이런 단어는 입에 항상 달고 다녔다. 

그가 유일하게 말을 안 할 때는 아주 배가 고팠을 때 먹거리를 눈앞에 둘 때였다. 이렇듯 나채국은 매사 말이 상당히 많은 남자였고 또 아는것도 많았다. 

자신이 지닌 지식의 양을 말로 뱉어 낸다는 조건으로 말을 한다면 몇 날 며칠 잠을 안 자고도 말 할 수 있는 나채국. 그러니 입이 근질거릴 수밖에 없던 그는 다시 오강심을 곁눈으로 슬쩍 쳐다보았다. 

-농담 먼저 건네고 자랑할까? 하지만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녀의 표정을 보니 좋은 소리가 되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그냥 관두자.-

생각이 바뀐 나채국은 아쉬운 듯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자신이 짠 프로그램을 다시 보며 스스로 감탄했다.

“역시. 나채국. 최고. 채구기 최고. ”

혼잣말로 자화자찬을 주저리 늘어놓은 그가 급 우울해졌다. 

-이 정도면 누군가 추임새를 넣어줘야 하는데..도대체가 아무도 관심조차 없다.-

나채국이 대놓고 오강심을 바라보았다. 오강심은 정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차라리 싫어하는 척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오강심에게 관심 받고 싶은 나채국은 책상에 턱을 괴고는 오강심을 빤히 노골적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녀는 무반응이었다. 

-뭐 저런 석녀 같은 여자가 다 있나? 이 정도면 곁눈으로 보일 법도 한데..-

반응 없는 오강심에 나채국은 모든 걸 포기한 체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를 주눅들 게 한 오강심. 그녀의 인간관계는 항상 직진하는 스타일. 일반 남자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여자의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애교, 새침, 우아, 발랄.

이런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괴팍하고 어떻게 보면 솔직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을 가졌다. 농담이나 아첨은 그녀에게 기대하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이런 그녀였기에 나채국은 항상 예상과 다른 결과를 얻었다. 

나채국은 유머러스하며 항상 모든 대화나 매사가 전부 가볍고 상투적이었다. 그는 일종의 지적 나르시시스트에 가까운 남자였다. 언제나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고 뽐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남자. 

이렇듯 정 반대의 성격을 지닌 나채국과 오강심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일에 있어서는 상당이 호흡이 잘 맞았다. 

하지만 보통 사회생활이라 부르는 인간관계에서는 뭔가 삐걱거리고 어긋나는 게 많았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서로 같은 지향점을 확인하게 되면 이심동체처럼 죽이 잘 맞기도 했지만, 서로의 결핍된 욕망은 절대 채워주지 못했다.

나채국의 욕망. 그것은 그가 뽐내면 오강심이 박수를 쳐주며 그를 추켜 세우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물론 오강심은 솔직하고 정직했기에 잘하면 잘한다고 하는 스타일이지만, 그가 진짜 원하는 ‘어머, 팀장님. 최고예요. 너무 멋있어요. 어쩜 그렇게 똑똑하세요?’라는 심장이 녹아내리는 발언은 절대하지 않았다. 

이랬기에 나채국의 잘난 체나 똑똑한 척은 항상 오강심의 철벽 수비에 블락이 됐었다. 그랬기에 나채국은 지금처럼 그녀의 눈치를 보며 편히 말하지 못하고 꺼려하고 있었던 것. 그래도 그놈의 성격이 뭔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바로 눈앞에 똥이 있어도 발을 떼지 않아야 그 똥을 밟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마치 그 발을 떼듯 나채국이 오강심에게 입을 열었다.

“아, 이런. 역시. 이야. 강심아.”

“왜요? 왜 부르시죠?”

오강심은 대답은 했지만 나채국을 돌아보지는 않았다. 단지 왜 말을 걸어 귀찮게 하냐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잘 못 건드렸나 싶은 나채국은 잠시 머뭇거리다 마음을 잡고 다시 입을 열었다.

“강심아. 이것 좀 볼래?”

“뭘요?”

그제야 오강심이 고개를 돌려 나채국을 보았다. 그러자 나채국이 부푼 어깨를 으쓱대며 손으로 자신의 모니터를 가리켰다. 

모니터의 뜬 코드를 대충 훑어본 오강심이 고개를 끄덕이곤 시큰둥하게 말을 뱉었다. 

“인정. 잘하셨네요. 저도 주파수 분리작업이 곧 끝나갑니다. 두 개 남았거든요.”

드디어 대화의 장을 연 오강심이다. 그럼 이어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채국은 들뜬 마음이 앞섰다. 그가 자발스럽게 재잘거렸다. 

“오 그래? 너도 내가 끝나는 시점에 끝나겠구나. 이야~. 이런 걸 환상의 콤비라고 하는 거겠지?”

순간 오강심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변했다. 화가 났다는 뜻.

“저는 그런 말이 싫습니다.”

“농담이야. 그냥 하는 말이라고..”

“농담으로라도 싫습니다.”

“아니. 뭐..”

나채국은 할 말을 잃은 체 입을 닫았다. 그렇게 시무룩해진 나채국에게 오강심이 대못을 박았다.

“그럼 가청 주파수를 차단하기 위해 잠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겠습니다. 팀장님.”

말을 마친 오강심은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더 이상 나채국에게 말을 걸지 말라는 뜻. 미래의 대화까지 블락 당했다.

-그럼 어쩔 수 없다. 꿩 대신 닭이라고.-

나채국은 오강심을 대신할 대화 상대를 찾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분명 있어야 할 실장 은비칼이 보이지 않았다.

-항상 저기 저리에 앉아 스마트 폰 게임을 하던 실장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화장실에 갔나?-

실장의 부재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채국이 몸을 돌리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순간 그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런. 씨. 점심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났네! 어쩐지 힘이 없더라니..”

때를 놓친 점심 때문에 성질이 난 나채국이 오강심을 향해 투덜거렸다.

“야. 강심아. 우리 점심 안 먹었잖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아차.”

오강심이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있다는 걸 잠시 잊은 나채국은 그대로 입을 닫았다. 

나채국은 제 때보다 30분이나 지난 점심시간에 대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에 빠져 있는 오강심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오강심 너는 배 고프지 않아서 좋겠다. 난 지금 허기가 져서 짜증이 나는데..”

아무리 그녀에게 말해도 소용없다. 절대 돌아오지 않는 혼잣말일 뿐이다. 순간 나채국은 이세계로 떨어진 기분마저 느꼈다. 

-낯설고 이질적이다. 이렇게 배고픈 나와 배고프지 않은 너는 분명 다른 세계에 사는 이족일수도..-

“♩♪♩이슬만 먹어도 배가 부르겠지? 너란 여자는.. ♩♪♩ ♩♪♩고양이처럼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지? 너란 여자는.. ♩♪♩♩♪♩네가 돼지의 배고픔을 알기나 할까? ♩♪♩♩♪♩너란 여자. ♩♪♩♩♪♩관심 없는 야박한 여자. ♩♪♩♩♪♩나는 배가 고파 울고파. 예~ ♩♪♩”

랩을 하듯 춤까지 추며 말을 읊은 나채국. 혼자 지랄을 한 것 같아 뻘쭘해진 그가 오강심을 다시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그녀는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듯 일에 빠져 있었다. 마치 나채국이 그녀의 세계로 들어 온 투명인간 같은 느낌.

분명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나채국의 노랫소리는 못 들었을 거다. 하지만 그녀의 시야각에는 분명 나채국이 보였음이 틀림없다. 

“이제는 무시까지 하는구나. 네 귀의 가청주파수는 차단할 수 있어도 네 눈의 시야각은 차단할 수 없을 텐데 말이야. 나를 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을 거야. 앞을 보고 있어도 네 눈의 시야각은 바깥쪽으로 90도까지 볼 수 있거든. 즉 네가 보고 싶지 않아도 다 보고 있다는 얘기지.”

여전히 망부석 같은 오강심. 나채국은 지금 그런 그녀를 보고 그녀 옆에서 당장 옷을 다 벗어도 쳐다보지 않을 여자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정도면 포기하는 게 맞다. 

나채국은 오강심에 더 이상 집적대고 깐족거리기를 그만 두었다. 그녀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자 갑자기 속이 쓰리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유. 배 고파 죽겠네. 그나저나 실장님은 화장실 간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혹시.. 큰 건가?”

나채국이 다시 키보드를 잡았지만 도저히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배고픔은 그의 뇌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뱝 셔틀 은비칼은 보이지 않고 떨어진 혈당 때문에 짜증 난 나채국이 주위를 둘러보다 은비칼이 마시다 만 커피를 발견했다. 

“아, 맞다. 실장님 거.. 달콤한 마끼였지?”

그는 벌떡 일어나 은비칼의 고정석인 구석진 곳에 마련된 그의 자리로 냉큼 달려갔다. 의자 옆에 있는 작은 협탁 위에 은비칼이 마셨던 카라멜 마끼아또 커피 컵이 있었다. 나채국이 그 컵을 들어 흔들었다. 

“아. 이런.. 고마워요. 실장님.”

컵에 꼽혀 있던 빨대를 빼고 뚜껑을 열었다. 컵의 3분의 1이나 되는 양이 들어 있었다. 그가 기쁜 표정으로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어 봤다. 혹시나 상했을까 확인하려 했던 것. 달콤한 맛이 입에 감돌자 나채국의 눈이 번쩍 떠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커피 속에 들어 있는 카페인과 당이 식도를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머리가 맑아지며 쭈글해져 있던 온몸이 펴지듯 기운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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