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낼사람 02] 색소포니스트 조태신

 

옥천에는 줄곧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아온 색소포니스트 조태신 씨가 있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세션 연주를 도맡으며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을 뒤로하고 옥천으로 귀촌해 후진 양성이라는 또 다른 도전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옥천의 귀재 조태신 색소포니스트를 만났다.

태신!

태어날 때부터 이미 신이라는 의미인지, 큰 신이라는 의미인지 이름만 들어도 뭔가 한가닥 할 듯한 강한 인상을 주는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그의 연습실로 찾아갔다.

색소폰만 들었다 하면 주위 사람들로 부터 환호성을 자아내게 하는 조태신 씨는 사실 처음에는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클래식 연주자였다. 중학생 시절에 만난 클라리넷으로 서울예고 입학을 하면서 조태신 씨의 1등 인생은 시작되었다.

서울예고 2학년 때 한양대학교 콩쿨대회에서 1등을 해서 자연스럽게 한양대학교 4년 장학생으로 진학을 하게 된다. 군대에서도 숨길 수 없는 1등 기량으로 참모총장 상을 받은 것은 물론 남들은 제대 앞두고서야 겨우 갈까 말까 한 외국 대회에 겨우 일병 쫄병이 군악대장의 추천으로 참여해 거기서 또 다시 1등을 거머쥐는 그야말로 상위 1%의 길을 달렸다. 갓 들어온 쫄병의 승승장구에 고참의 세심한 터치(?)가 좀 힘들었지만 군대에서 조차도 실력을 점점 올리고 인정을 받은 조태신 씨는 본격적인 색소폰 연주의 길을 갔다.

당시대를 풍미하던 기라성 같은 가수들의 세션을 도맡으며 최고의 자질을 마음껏 뽐내었다.

신효범의 난 널 사랑해, 변진섭의 너무 늦었잖아요 등 우리가 다 아는 그 노래의 뒤에는 옥천의 조태신 씨가 있었다. 열린음악회를 비롯한 방송국, 녹음실 등 색소폰 솔리스트로 조태신 씨를 찾는 곳이 많았고 잠 잘 시간을 줄여가며 뛰어 다녀야 했다.

여권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연주 활동을 국내 뿐 아니라 세계로도 발을 넓혔지만 조태신 씨의 연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평양에서 북한 동포들에게 연주를 들려주었던 때라고 한다.

전설이었던 30-40대를 그렇게 잘 즐기고 이제 조태신 씨는 옥천으로 왔다. 조용한 삶을 원했을 수도 있지만 가만히 숨겨 둘 수 없었던 최고의 능력이 금방 탄로나고 말았다. 그의 1등 연주를 찾는 사람들이 옥천에서도 생겨났고, 이제는 조용한 시골 동네에 진정한 색소포니스트로서 본을 보여 주고 있다.

요즘도 색소폰 연주를 위해 토요일마다 서울로 달려가 색소폰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1등을 인정해 주는 옥천의 후배들과의 음악 활동을 즐기고 있다.

최고라는 수식어가 결코 아깝지 않은 실력을 갖고도 겸손히 후배들과 어울려 주며 후배들이 더 돋보이도록 무대를 빛내주는 색소포니스트 조태신!!

옥천의 귀재이자

옥천의 자랑이 된 조태신 씨의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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