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시작하자. 고 고!

한편 마영식의 스포츠 바이크를 구경하고 있던 오운족은 그 색다름에 호기심을 보였다. 날렵하게 잘 빠진 마영식의 바이크는 상당히 고가로 보였다. 

푸른 색의 도장으로 바디 상단에 NO.1 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바디 중앙을 시작으로 하단까지 화려한 불꽃 스티커가 이어져 있었다. 

그 불꽃 스티커 시작 부분엔 마치 손에서 불꽃을 일으키는 착시를 주는 것 같은 안중근 의사의 손 스티커도 붙어 있었다. 이런 걸 보자면 마영식은 애국자다. 

그러나 오운족은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댔다. 바이크가 메이드 인 재팬(일본)이었기 때문이다.

마영식은 그것도 모르고 갑자기 쏟아진 오운족의 관심에 어깨가 으쓱했다. 

-저들은 분명 부러워하고 있다. 저 바이크의 주인인 나 또한 멋있다고 생각할 게 확실하다.-

또다시 속 된 말로 자뻑에 빠진 마영식. 그가 갑자기 마치 날렵한 새 한 마리처럼 점프를 하며 제 바이크에 아주 멋있게 올라탔다. 

그와 동시에 지 딴에는 아주 멋있다는 동작으로 받침대로 올렸다. 보고만 있어도 쥐가 날 듯한 또 누가 봐서 허세 가득한 마영식의 몸짓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신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됐다. 분명 나에게 빠진 게 분명하다.-

이렇게 생각한 마영식이 아이신을 아주 뻐기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이신이 입을 열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분명 바이크 쌔삥에 근사하다. 네가 이 바이크에 올라 타 있으니 멋진 것 같다. 뭐, 이런 류의 말들이 아이신의 입에서 쏟아지길 기다렸던 마영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나오자 순간 얼이 빠져 버렸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이건.. 설마 내가 해병대 출신인 걸 응원하기 위해서 한 말? 나보고 힘을 내라고 이런 말을 한 건가? 하지만 그건 부끄러운 말이다.-

마영식은 아이신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무언가 가르치는 말투로 그에게 입을 열었다. 

“형. 그건 나쁜 뜻이야. 해병대는 밤에 맞으면서 교육 받는다는 뜻이거든.”

“알아. 웃자고 한 소리야.”

-이게 웃을 일이라고?- 

순간 마영식은 잘못 들었다 생각했지만 아이신의 표정을 보자니 사뭇 진지했다. 게다가 진짜 웃고 있었는데, 그 웃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박토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오운족이 배신을 했었다.>

이 말에 지금 오운족에게 가졌던 약간의 호감이 사라지려 할 때, 또 아이신이 입을 열었다. 

“벗에게 믿음으로 대하라. 멋지다. 역시 해병대 출신. 마영식.”

갑자기 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인지. 마영식은 아이신의 한 마디에 가슴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같았다. 그런 그가 다시 먼 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건가? 역시 난 멋있게 산 거 같아. 잠시 다른 세계에 있어 인정 받지 못했을 뿐..’

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갑자기 손 하나가 따뜻해졌다. 

-아이신 형이 이제는 손을 잡고 그 인정까지 표현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마영식이 손을 내려보았다. 남자 손치고는 너무 곱고 예뻐 화들짝 놀란 마영식이 그 손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아수하였다. 

-이건 명백한 성희롱~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마영식이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아. 누나. 이 손은 순정이 거야. 아무나 만지면 안돼. 알면 누나 죽어.”

“아유. 참. 그런 거 아니야. 따뜻하게 손 한 번 못 잡니?”

그때 옆에서 아이신이 깐족거렸다.

“입장 바꾸면 성희롱으로 고소감이야.”

화들짝 놀란 아수하가 마영식의 손을 뗐다.

“미안. 생각해 보질 못했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영식 군. 네가 잘 해내리라 믿어. 또 KKJ도.”

마영식은 지금 박토가 말한 오운족이 배신을 했다는 말을 믿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따뜻한 말로 격려를 하고 응원해주는 이들이 배신을 했을리까.. 오히려 박토 같은 자가 배신자이지 않을까? 그는 항상 투덜대고 딱딱했으며 독선적이었다. 지금 마영식은 마음이 바뀌었다. 

“정말 좋은 아이신 형과 아수하 누나가 탄이 옆에 있어 든든해. 탄을 잘 부탁해.”

말을 할 때 옆에서 따가운 박토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영식은 무시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헬멧을 쓰고 쉴드를 내렸다. 

시동을 걸고 악셀 그립을 잡아당기자 마당 가득 바이크 엔진음이 울려퍼졌다. 그렇게 엔진음을 요란하게 내던 마영식은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마당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그렇게 순간적인 속도로 치고 나갔던 마영식이 길이 꺾이는 코너를 코너를 돌고 난 후 갑자기 멈추더니 손을 흔들었다. 작별 인사였다. 

작별 인사마저 허세가 가득한 마영식을 향해 마당에 서서 그를 배웅했던 바룬족, 오운족 그리고 김탄도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시 출발을 한 마영식. 멀리 한 점이 되고 난 후 바이크 소리마저 사라지자 마당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이제 제 할 일을 한다는 듯 몸을 돌렸다. 

순간 모두 깜짝 놀란 사람들. 마당 한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서 있는 코피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김탄이 소리쳤다.

“코피 형. 왜 그러고 있어?”

“영식이 벌써 떠난 거야?”

“응. 아까 떠났어.”

코피는 아쉬운 듯 영식이 떠나간 마당 밖을 쳐다보다 울먹였다.

“저녁에 출발한다 그랬잖아.”

“응. 지금이 저녁이니까.”

김탄의 말에 코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중천에서 조금 기운 걸 본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계를 보았다. 

“3시가 조금 넘었는데 저녁이라고?”

“응. 저녁이야.”

코피가 지금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지금 이 시각이 저녁이라고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코피는 자신이 지금 놀림을 당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시계를 볼 줄 안다. 또 어떤 것이 아침 점심 저녁인지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이 저녁이라고?-

“설마. 내가 외국인이라고 아침 점심 저녁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리나라에도 아침 점심 저녁이 있어. 해가 질 때를 저녁이라고 하는 거야. 탄아. 세네갈도 지구의 한 부분이야. 거기도 해가 떠오르고 해가 지는 곳인데 왜 내게 그렇게 말하는 거지?”

김탄이 그의 말에 대꾸를 했다.

“여기서는 그렇다는데?”

말을 마친 김탄이 자신을 도와달라는 듯 박토를 쳐다보았다. 정확히 그의 뜻을 캐치한 박토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는 지금이 저녁이야. 첩첩산중 산골이니까.”

박토의 말에 코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높은 산들이 겹겹이 둘러쳐진 걸 본 그가 해를 한 번 보더니 왜 지금이 저녁인지 정확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못내 아쉬운 듯 마당 밖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바이크 소리가 점점 멀어지길래 혹시나 하고 나와봤었는데.. 영식이가 출발 한 거였네. 지금이 저녁이니까. 산골에서는..”

“형 생각을 못 해서 미안. 나도 갑작스럽게 헤어지는 거여서 정신이 없었어.”

김탄의 말에 코피가 수심에 잠겼다. 그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꼼지락거리다 입을 열었다.

“헤어지기 전에 줄 게 있었는데..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걱정하지 마. 영식이 형 진짜 잘할 거니까.”

박토가 덧붙였다.

“끝내주게 의리가 좋은 녀석이야. 마영식 군은.. 정말 좋은 친구를 뒀어. 김탄.”

김탄이 배시시 웃었다.

“응. 우리는 베프 거든. 영식이 형이 위험에 처하면 내가 구해줄 거고 또 내가 위험에 처하면 영식이 형은 날 구하러 올 거야. 난 믿어. 영식이 형을..”

박토가 아이신과 아수하를 쳐다보았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오운족 놈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쳐다보며 박토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친구를 믿으면 안 돼. 나도 한 때 너처럼 생각하고 믿다 뒤통수와 배신을 당했거든.”

아수하와 아이신은 지금 마음이 상당히 불편하다. 

툭하면 마영식과 김탄의 우정의 크기에 대해 찬사를 하고 또 툭하면 배신이란 소리를 밥 먹 듯 입 밖으로 꺼내는 박토 때문에 이제는 노이로제까지 걸릴 것만 같았다. 

바룬족 임시 노비로 이 집에 붙어 있을 수 있게 된 오운족이지만 어쨌든 같은 한 배를 탄 입장이다. 

하지만 박토가 저렇게 깊은 원한을 떨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갈 길은 순탄하지 못할 것이다. 이 생각에 아이신과 아수하는 앞날이 캄캄한 듯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이런 속담을 박토가 빨리 깨달았으면.-

그저 서글픈 표정으로 처량하게 박토를 쳐다보기만 하는 오운족. 박토는 그런 그들을 무뚝뚝한 표정으로 보고만 있었다. 오운족이 바라는 마음은 없어 보였다. 

박토는 꿔다 논 보릿자루 보듯 오운족을 쳐다보다 그냥 무시하며 고개를 돌리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김탄과 코피가 따라 들어갔다. 

마당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게 된 아이신과 아수하. 깍두기 같고 은따 같은 자신들의 처지에 서로 마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본다. 

그러다 그들도 박토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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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10분 오성 알앤디 센터 운석 연구실.

자판을 두드리던 나채국이 어깨가 뻐근했는지 제 손으로 어깨를 주무르며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지금 그는 스트레스로 괴롭다. 코르티솔이 다량 분비 된 상태. 

그 원인은 그가 찾을 수 없는 버그 때문에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반드시 찾아 주겠어!’라는 듯 나채국이 다시 오만상을 찌푸리며 모니터를 노려 보았다. 

그는 지금 눈을 뜬 장님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정말 완벽한 코드인데 도무지 어디서 버그나 난 건지.. 

정말 알 수 없었던 나채국은 혹시나 나쁜 눈 때문에 못 보는 건 아닐까 안경을 내리고 손으로 두 눈을 비볐다. 얼마나 비벼댔는지 다시 눈을 뜬 그의 눈은 쌍꺼풀이 져버렸다. 그렇게 임시 쌍수를 한 나채국이 다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쌍수의 효과로 눈이 커져서인지 무언가를 찾은 듯 나채국의 얼굴이 밝아졌다. 버그를 찾아낸 나채국은 즉시 수정을 했다. 실행을 시키자 프로그램이 돌아갔다.

그러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다 얻은 듯 중얼거렸다.

“됐어. 완벽해. 여기까지는. 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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