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화 그림 출처-장세현 작가
은지화 그림 출처-장세현 작가

하얀 물거품

하도리는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약 40km 지점에 있는 마을로 별방(別防)이라고도 불렸다. 바다 빛이 마치 수묵담채화를 그리려고 풀어놓은 연녹색 물감처럼 짙푸르렀다. 하얀 백사장 또한 은물결이 쳤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규사가 많이 섞여 있어서 그런지, 은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 같은 시기에 갔었는데도 산굼부리는 가을 정취가 물씬 났고, 하도리는 여름 냄새가 났다.

멀리 하도리로 가는 해안도로가 보였다. 바닷가 바위마다 하얀 포말(泡沫)이 일고 있었다. 요셉은 피곤한지 눈을 감고 있었다. 살포시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얼마 동안 해안도로를 타고 달렸다. 비릿한 바닷바람이 창을 통해 들어왔다.

마을이 보였다. 아버지가 살던 곳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이주했거나, 나이 많은 일가친척들마저 세상을 뜨고 없다고 들었다. 그래도 가고 싶었다. 아버지가 어떤 곳에서 태어났을까 몹시 궁금했다. 바람결에 묻어날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체취를 느끼고 싶었다.

작은 마을에 도착하자, 요셉이 눈을 떴다.

“아버지 고향이 이곳인가요?”

“응. 그래 이곳이야. 지금은 비아의 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 마을이나 한 바퀴 돌고 와.”

“알겠어요.”

마을은 긴 해안을 끼고 있었다. 해변 주변의 넓은 농지를 중심으로 마을이 발달하여 있었다. 한라산으로부터 가장 먼 거리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 지형이 완만했다.

지미봉, 월산봉, 은월봉, 월랑봉, 둔지봉 등이 마치 부챗살 형태로 늘어서 있었다. 육지부의 산은 서로 의지하고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지만, 오름은 너무도 개인적이었으며, 각각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속살을 훤히 드러낼 수밖에 없는 처절한 몸부림, 어쩌면 그 자체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오름 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싸하게 가슴이 아파왔다.

이곳에서 아버지와 엄마가 나고 자랐다. 하지만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병은 점점 깊어서, 끝내 꿈마저 삼켜대기 시작했던 이곳을 떠나야 했던 아버지의 오열이 곳곳에서 묻어날 것만 같았다. 아버지와 엄마가 그곳을 떠나 결국 전재미 마을에 도착한 것은 만신창이가 되었을 무렵이었고. 아버지와 미래를 약속한 사이였던 엄마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듯 길을 따라나섰던 것.

두 사람의 슬픈 사랑이 묻어 있는 하도리는 너무도 평화스러워 보였다. 관광지 개발 붐이 일어나 다소 어수선한 공사 현장은 보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옛날 형태의 집들이 남아 있었다. 구멍 뚫린 돌담, 개량은 했다지만 집의 구조가 옛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냥 마을을 돌아볼 수가 없었다.

요셉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요셉은 차 안에서 손짓해 보였다. 뿌옇게 보였지만,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파져 온다. 그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마치 거울 앞에선 내 모습처럼 아파하고 있었다. 똑같은 사물을 보면, 그 가치를 평가하는 수준도 같았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분과 나이를 초월할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냄새가 코끝에 감긴다. 이젠 눈을 감아도 그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다. 정말 그와 헤어진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요셉, 힘들죠?”

“견딜 수 있어. 바람이 차지?”

“괜찮아요. 마을이 무척 조용하네요. 해변을 한 바퀴 더 돌아볼까요. 잘못하면 바퀴가 모래 무덤에 빠질 것 같아서 가까이 가지는 못해요.”

하도리 해변에 차를 바짝 갖다 댔다. 10연 전 그대로의 은빛처럼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요셉과 함께 해변을 걸었다. 모래 속에 발이 푹푹 빠졌다.

모래톱 중간쯤에서 요셉에게 쉬었다 가자고 했다.

녹색의 파도가 떠밀려왔다. 긴 녹색의 띠가 파도 속에 묻혀 그와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왔다가 사라졌다. 말하지 않아도 요셉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은 하도리 해변의 아름다움에 푹 잠겨 있었다.

“제주는 참 아름다워. 그리고 몹시 슬픈 곳이야. 슬프다 못해 울음소리가 핏빛으로 배어 있는 곳이야. 한국의 역사를 모를 때까지만 해도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었어. 하지만 이별과 설움에 의해 역사가 만들어진 섬이라는 걸 알았어. 늘 누군가를 기다리는 섬이야. 연인일 수도 있고, 아들일 수도 있고, 때로는 세상의 권력일 수도 있었지. 하지만, 끝내 기다림에 지쳐 죽어간 사람들도 많아. 지금껏 내가 기다렸던 사람은 바였어. 그 기다림은 내 생활의 전부였어. 캐나다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제주를 떠난다면 다시는 비아를 만날 수 없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어. 이제야 솔직해질 수 있으니 말이야. 잠시 여행하러 온 사람들은 겉모습만 훑고 지나가는 거라서 제주를 잘 알지 못할 거야. 그 깊이를 알면 도저히 제주를 떠날 수 없을 테지. 나처럼 말이야. 전재미 마을에서 마리아를 잃고, 비아를 떠나보내고 나는 곧장 제주로 왔는데, 그러길 잘했어. 정말 이곳이 좋아.”

요셉이 팔을 감아 나를 꼭 껴안았다. 햇빛에 반사되어 끼고 있던 반지가 반짝였다. 요셉과 나는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보고 앉아 있었다.

요셉이 호흡 곤란을 일으킨 것은 그날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그는 몹시 힘들어했다. 바닷바람을 오랫동안 쐰 것이 잘못되었는지 감기 기운까지 있었다. 열이 오르고, 식은땀을 흘렸다. 열은 그에게 적신호였다. 마치 깜박이는 신호등처럼 말이다. 주치의가 와서 요셉을 진찰했다. 하지만 진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신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비아…….”

그가 나를 찾았다. 그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도 애타게 나를 불렀다.

“여기 있어요. 비아, 여기 있단 말이에요.”

요셉은 급기야 혼수상태에 빠졌다.

“요셉, 힘들어하지 말아요. 저 괜찮아요. 편안하게 가세요. 절대로 슬퍼하지 않을게요.”

요셉의 귀에다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자, 그가 긴 한숨을 내 쉬더니 이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천상으로 가는 길

별 하나 찾을 수 없는 깊은 회색으로 뒤덮인 밤이었다. 요셉은 천상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작은 물방울처럼 영혼이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영혼은 마치 유리구슬처럼 맑고 깨끗했다.

그와 보낸 지난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밀려들었다. 그는 프리즘 통과하듯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셉의 죽음을 기다리는 건 정말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파에 앉아 계속 기도하던 보좌신부와 2명의 수녀가 안으로 들어섰다.

요셉의 몸은 서서히 식어갔다. 잡고 있던 그의 손이 무척 차가웠다. 이제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평온한 얼굴로 깊은 잠 속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의 곁에 서 있으면, 추웠던 내 영혼마저 따뜻해졌다. 그랬기에 그를 놓아주지 않으려고 손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를 놓아주어야 할 것 같다.

손을 풀었다. 모든 게 정지된 순간이었다. 영혼이 떠나버린 그의 육체는 마치 텅 빈 동굴 같았다. 고함이라도 외치면 되돌아 나올 듯했다. 보좌신부의 기도 소리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버렸다. 한꺼번에 슬픔이 밀려왔다.

이제 그가 내 곁을 떠난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 했던 요셉이 너무도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나는 나비였다. 꽃이 시들면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찢긴 날개를 흔들던 나비였던 거지.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그런 여자였지. 그는 가고 없지만, 그의 영혼을 오롯하게 품었어.’

그때였다. 밖에서 있던 신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는개가 자욱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나는 성모상 앞으로 다가갔다. 늘 요셉이 찾던 그 자리에 가서 앉았다. 눈을 감았다. 그와 함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화장해 작은 나무상자에 담겼다. 수단은 수십 년은 넘게 입어서 천이 낡아 있었다. 그가 쓰던 일기와 묵주, 성경책 그리고 작은 가방 하나가 유품 전부였다. 천주교의 의식을 따라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신도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제주의 장례풍습은 밭에 시신을 묻고 돌담을 쌓아 화재와 바람의 피해를 막는다고 했다. 요셉은 수도자 의식으로 행해졌다. 요셉의 유해를 담은 상자를 안고 배에 올라섰다. 장례를 집전한 보좌신부와 윤 소피아가 곁에 있다고는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 표류하고 있는 난파선을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요셉의 유해를 그저 바닷물에 뿌리고 말아야 하다니…….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웠다.

바닷물이 뱃머리를 쳤다. 하얀 물거품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물거품 속으로 요셉을 흘려보냈다. 하얀 가루가 바닷물 위에 잠시 둥둥 떠다녔다. 이내 가라앉아 버리는 요셉은 멍울멍울 거품을 품다가 사라졌다. 선장이 뱃머리를 돌렸다. 요셉은 아직도 바닷물을 잔뜩 들이키고 있었다.

‘비아!

지상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너를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단다. 난 천상에서도 그럴 거야! 백색의 미사포를 쓴 열 살의 어린 비아의 모습은 언제나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그림 공부를 시작해라. 완숙한 비아의 그림을 보고 싶어. 성당 지하에는 비아 아버지의 유품인 그림이 있다. 참으로 오랜 세월 그는 한 여인을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렸더구나. 그는 평생 그림만 그리며 살았어.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림을 그렸어.

비아!.

소록도……. 작은 사슴을 닮은 섬……. 그곳은 네 아버지의 절망이 가득했고, 마리아의 기도가 넘나드는 곳이다. 그곳 성당을 찾아가면, 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을 거야.

비아! 자신을 학대하지 마라. 그리고 고평오를 용서해라. 너를 위해서.’

눈을 감자, 요셉의 음성이 들려왔다. 검은 수단 끝자락이 펄럭 일 때마다 날리는 요셉 신부의 그 체취가 날렸다.

요셉이 말한 대로 성당 지하에는 아버지의 그림이 있었다. 아버지의 그림들은 먼지 속에서도 커다란 사자처럼 갈기를 바짝 세운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전등을 켜서 그림을 비춰보았다. 섬뜩한 떨림이 일었다. 명화를 복사하면서도 이런 감정을 일으켰던 기억은 전혀 없었다.

“아버지!”

나직이 불러보았다. 그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 나왔다. 사실 그 그림들을 정리하려 해도 어둠 속의 지하실은 눅눅했다. 30여 점이 넘는 그림들 대부분이 소록도 풍경이 담고 있었다. 작은 사슴을 닮아 소록도라고 하는 그 섬에 언젠가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섬 전체는 그림 배경이었고, 아버지의 삶이었던 것 같았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파도와 기암절벽을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색 계열의 열정적인 색채를 드리운 건, 초기의 작품인 듯했고, 노란색 바탕의 차분한 느낌의 그림들은 말년에 그린 그림 같았다.

나는 새로 부임 된 신부의 허락을 받아 당분간 성당에서 지낼 수 있었다. 캔버스를 모아 앞뒤 맞물려 포장을 시작했다. 곧 나도 붓을 들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복제 그림이나 그려 팔았던 손이 갑자기 붓을 들 생각을 한다니 말이다. 요셉이 떠난 뒤에도 그가 주고 간 반지를 내려다보며 때때로 가슴이 저며 왔다. 그런데도 나는 외롭지 않았다. 한 남자의 깊은 사랑을 받아본 여자는 절대 고독하지 않은 탓인가 보다.

이경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달루에 걸린 직지』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메일 imk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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