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고 그리움의 홍수도 온다.’

우수를 하루 앞둔 날에,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속담처럼 봄 햇살이 가득 내려앉는 경주 남산에 드디어 도착했다. 대전에서 출발해 칠곡휴게소에 들러 겨우 낮달을 올려다본 게 전부, 쉼 없이 달렸어도 두 시간 반이나 걸렸다.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남산자락에 엎드려 계신 마애불을 매스컴에서 봤던 기억이 떠올라 며칠 전부터 이곳저곳 인터넷을 검색했다. 어찌 보면 물어물어 찾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새갓골 탐방로 이정표가 없다면, 천년을 넘게 이마를 땅에 대고 계신 열암곡 마애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오솔길을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오솔길로 들어서자, 열암곡 골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부처님의 온화한 기운 때문인지, 삼독 번뇌 탐진치(貪瞋痴)가 일시에 마음에서 녹아내렸다. 탐은 욕심, 진은 분노와 불만, 치는 어리석은 무지에서 오는 괴로움이란 것을 되새김질하며 산길로 접어들었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백 미터를 더 오르면 천년을 엎드려 계신 마애불을 만날 수 있다는 마음에 내딛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야자 매트가 깔린 평탄한 길 끝에 드디어 가파른 길이 나오고 보석처럼 듬성듬성 박힌 바위가 나타났다. 이백 미터쯤 오르자,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차, 천 년 전 절에 가기 위해 공양미를 지게에 지고 오른 길이였다는 것을 무지하게도 모르고 올랐던 게다. 길은 점점 급경사였다.

남정네는 지게에 쌀을 짊어지고, 아낙은 떡을 머리에 얹고 올랐을 그 길에서 천 년 전의 세상 속을 잠시 들어갔다 나왔다. 쌀과 떡을 준비조차 못 한 채, 세상의 온갖 때가 묻은 무거운 옷을 걸쳐 입고 오르다 보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몹시 부끄러웠다.

4백 미터 중간 지점이 도착했다. 편편한 바윗돌이 잠시 쉬었다가 가라는 듯 길 가장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며칠 전에 내린 빗물을 가득 담고 있는 작은 구멍으로 동전 몇 잎을 떨어트렸다. 푸르르 작은 물방울을 일으키며 아래로 깊이 가라앉았다.

열암곡 마애불을 보고 내려온 길손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그들은 이미 관음보살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아직도 멀었나요? 조금만 가면 됩니다.’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이마에서 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소나무 뿌리가 만든 가파른 계단 길을 지나자, 나무 사이로 열암곡 석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이 보였다.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은 2007년 5월 22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열암곡 석불좌상을 보수하기 위해 발굴조사를 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됐다. 거대한 마애불상은 조선 명종 12년 1557년 규모 6.4의 지진으로 넘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나 남산에 남아 있는 불상 중 가장 완벽한 상태로 발견됐으니, '5cm의 기적'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5cm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르몽드지 등 외신에서 소개되면서 언론과 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두게 됐는데, 부처님 코와 바위 바닥과의 거리가 5cm였다. 조금만 더 넘어졌다면 마애불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애불의 불두에서 발끝까지 4m 60cm, 연화대좌가 1m로 전체 높이가 5m 60cm에 이를 만큼 거대했다. 무게는 70~80톤에 달해 바로 세우기에는 기술적 어려움과 막대한 예산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천일기도’

프랜카드가 걸린 곳에 마애불은 오체투지를 하듯 천년을 넘게 엎드려 계셨다.

빛의 속도로 오는 사랑처럼 마애불의 천년 기도가 세상을 밝히고 있는 듯하여, 그 영험함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간절함으로 삼배를 올리고 속죄하는 마음을 가졌다.

마애불의 5cm의 기적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열암곡 마애불

*위치: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남산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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