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들은 똑똑해서 위험하다.

닭들의 공격에 약이 바짝 오른 마영식은 무슨 대책을 세워 처세를 했다 생각하겠지만, 그는 그저 대책 없이 성질만 내며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마영식과 닭들은, 그러니까 인간과 조류의 대결이었다. 닭의 달리기 속도인 시속 14Km와 사람의 평균 달리기 속도인 시속 13Km. 

속도 면에서 보자면 비슷한 대결이었지만 민첩에서 나오는 순간 속도가 너무 빨랐기에 대결의 차이는 처참했다. 누가 봐도 마영식의 패다.

더구나 다친 발 때문에 굼뜰 수밖에 없는 영식은 달리는 상태에서 방향 전환을 맘대로 하는 닭들과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물론 다리를 다친 영식의 핸디캡은 있었지만, 설령 없다 해도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렇게 닭들에게 계속 지는 것 같아 성질이 잔뜩 난 마영식. 그가 이제는 허공에 대고 헛 발길질을 마구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저리 꺼져! 닭 새끼들아! 깃털을 다 뽑아버리기 전에!”

물론 닭들은 영식의 말을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닭들의 공격은 멈추지를 않았다. 

하지만 마영식은 의사소통 체계가 다른 닭들이 인간의 말을 이해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닭들에게 소리쳤다.

“저리 꺼지라고! 이 씨. 개 닭 새끼들아!”

절대 영식의 말대로 꺼져 주지 않는 닭들. 진짜 마영식을 가지고 노는 듯 주변을 배회하다 공격하고는 도망 갔다.

정말 누가 마법을 부린 것처럼 아니면 누가가 빙의를 시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정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마영식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영장류답게 도구를 찾고 있는 중.

나름 지구 상에 존재하는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 마영식이 치맥의 구성 중 하나인 치킨에게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중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의 눈은 지금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렇게 마당을 구석구석 서치하던 중 그의 눈에 들어 온 도구 하나. 바로 마당을 쓰는 빗자루. 담장에 고이 세워져 있는 목이 긴 빗자루를 발견한 그의 눈이 교활하게 번뜩였다. 

-저거라면 1타 3피다. 아니 잘 만 휘두르면 다섯 마리도 상대할 수 있다-

마영식은 거침없이 빗자루 쪽으로 절뚝거리며 돌진했다. 결국 마당비를 득템한 마영식은 첫 사냥감으로 조금 얌전한 암탉을 골랐다. 

암탉 세 마리가 모여 땅을 쪼고 있는 모습을 본 마영식의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마음은 지금 자신의 손에 든 빗자루면, 저 세 마리 전부 아니더라도 두 마리는 확실히 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용사처럼 기백이 솟은 마영식. 그대로 빗자루를 하늘높이 치켜들고는 그 닭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물론 절뚝거리며.

첨언을 더 하자면 그는 한때 부엉이 덫에 걸려 다친 다리가 아직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그런 마영식의 모습이 박토의 눈에 포착이 됐다. 

분명 빗자루를 들고 그가 키우는 닭들에게 가는 게 확실해 보였던 박토는 깜짝 놀라 그대로 자리에 쭈그려 앉아 소리를 쳤다. 

“스테고오오오오옹!!!!”

그런데 박토의 소리에 마당에서 놀던 닭 한 마리가 박토를 돌아보곤 곧바로 박토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상당히 빠르고 집요했다. 그걸 본 박토가 곧바로 다른 닭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티라노오오오오오!!!”

또 닭 한 마리가 자신의 이름을 들은 것처럼 박토를 쳐다보더니 그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시 박토가 다른 닭들이 노는 곳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브라키오! 람베오!”

이번에는 닭 두 마리가 동시에 박토를 향해 달려왔다. 그 놀랄만한 광경을 옆에서 보고 있던 탄이 신기한 듯 물었다.

“지금 닭을 부른 거야?”

박토는 그렇다는 듯 김탄을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다시 닭들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코리토! 안킬로! 켄트로! 코리아노! 알베르토오오!!!”

박토가 한 번에 5개의 이름을 연속해서 불렀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알아들은 닭들은 모두 박토를 쳐다보고는 그대로 그를 향해 전력질주를 했다. 

그렇게 마당에서 마영식에게 빗자루 휘두름을 당할 뻔한 닭들은 모두 박토 앞으로 모이게 됐다. 

닭들은 상당히 흥분해 있었고, 굉장히 화가 났다는 듯 가슴을 내밀며 양 날개를 핀 상태로 아주 기분 나쁘다며 날갯짓을 해댔다. 

박토가 그 닭들을 향해 애틋한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꼬꼬 꼬꼬 꼬꼬 꼬꼬.”

김탄은 박토의 모습을 얼빵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순간 웃음이 터지려는 걸 혀를 지그시 깨물며 참았다. 그래도 입이 실룩거리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박토의 꼬꼬라는 말에 신기하게도 닭들이 흥분해 퍼덕이던 날갯짓을 멈추었다. 여기까지 신기하다 생각한 김탄의 눈에 곧이어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닭들이. 세상에 닭들이. 군인처럼 2열 횡대로 줄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걸 본 김탄은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박토가 그 닭들을 마치 사열을 하듯 쭉 훑어보며 점검을 했다. 아마도 다친 닭은 없는지 혹은 사라진 닭은 없는지 살피는 듯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박토가 입을 여는데..

“꼬꼬 꼬꼬꼬 꼬꼬고 꼬꼬.”

-아까와는 다른 말이다. 분명 닭들이 반응을 할 것이다. 대체 이번엔 어떤 행동을 할까?-

김탄은 굳은 얼굴로 기대를 하듯 닭들에게 집중을 했다. 김탄의 기대에 걸맞게 2열 횡대의 맨 앞 줄에 있던 닭들이 줄을 지어 행군하듯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열이 끝날 때쯤 남아 있던 열이 곧바로 앞 열을 뒤 따랐다. 

순간 김탄은 놀라움에 그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런데 지금 닭들이 보여준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열을 맞추어 걷던 닭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또 몰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열린 닭장 문을 통해 질서정연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보다 나아 보이는 모습에 김탄이 입을 떡 벌린 체 박수를 쳤다.  

“대박!”

그렇게 물개 박수를 치던 김탄이 박토에게 물었다. 

“닭의 말을 할 줄 알아?”

“아니.”

“그런데 어떻게 형 말을 듣는 것 같지?”

쭈그려 앉아 있던 박토가 일어섰다. 

“반복학습.”

“아아. 훈련시킨 거였어?”

“응.”

“아까 부른 건 이름 같은데 그것도 훈련으로 한 거야?”

“아니. 이름은 훈련이 아니야. 알아듣더라고.”

김탄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라 닭장 속에 들어 있는 닭들을 다시 쳐다보았다. 지금 그는 그들의 지능에 탄복하고 있었다. 새로운 닭의 모습에 경외감을 느끼기까지 한 김탄.

-대박. 

-굉장히 똑똑해. 

-닭 대가리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겠어. 

-닭은 분명 똑똑한 동물이야.

이렇게 닭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한 김탄은 다시 세밀하게 닭들을 살펴보았다. 지금 김탄에겐 닭들의 행태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들은 모두 고개는 앞을 보고 있었지만 눈은 옆을 보고 있었다. 

경망스러운 눈동자 굴림.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다리를 숨기고 앉아 있는 고요한 자태지만 마치 세상을 경멸하는 듯 눈알을 굴리고 있어. 이건 너무 어색해. 전혀 어울리지 않아-

순간 김탄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처럼 머릿속이 선명해졌다. 

-아! 그거다! 물 위에 떠 있는 백조의 우아한 자태! 그 수면 아래로 방정맞게 퍼덕이는 발. 더러운 똥물에 더럽혀지지 않고 우뚝 솟아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 같은 모습. 어쩌면 세상의 모든 우아함 이면엔 더러움과 고통 그리고 추함이 공존하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깨달음을 준 닭들은 김탄에게 새로움 그 자체였다. 닭들은 정말 매력이 철철 흘러넘쳤다. 모두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달랐다. 즉 개성이 살아 있다는 소리. 지능도 높았으면 사람과 친근하기까지 했다. 

“완전 반려동물이잖아?”

김탄이 닭들에게 탄복해 그도 모르게 뱉은 말에 박토가 자기가 키우는 닭들을 자랑했다. 

“맞아. 어떻게 보면 개보다 났지. 수명이 30년이니까. 개들은 그 절반밖에 되지 않아.”

말을 마친 박토가 팔짱을 끼고는 마당 한 가운데서 빗자루를 치켜들고 서 있는 마영식을 확 째려보았다. 그리고는 그를 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저 닭들은 월의 유일한 친구야. 병아리 때부터 월이 돌보고 이름도 지어줬어. 아프면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간호를 했고 또 월이랑 같이 산에 가서 산림욕도 즐겼지. 월이 어렸을 때 모래 장난을 하면 저 닭들은 월의 주변에서 모래 목욕을 했어. 월에겐 친구가 없는 이 산골 생활의 외로움을 달랜 준 소중한 친구들이야.”

한편 마당 한가운데 빗자루를 들고 있던 마영식은 독감에 걸린 것도 아닌데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나고 오한까지 있었다. 그의 귀로 박토와 김탄이 속닥이는 소리가 다 들렸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얘기를 하면 소머즈 귀가 되는 게 사실인가 보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선명하게 들리다니. 그나저나 큰일이다. 박월의 친구인 닭들을 빗자루로 때리려고 했던 걸 박토가 봤으니. 난 죽었다.-

마영식은 손에 들고 있는 빗자루를 아래로 내리고는 슬그머니 몸 뒤로 감추었다. 그때 박토가 자신에게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하지만 마영식은 이상하게도 발이 떼지질 않았다. 대신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가 한 손으로 박토에게 맞아서 생긴 아직도 멍이 가시지 않은 오른쪽 눈을 만지며 그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맞은 데 또 맞으면 아픈데 왼쪽을 내밀까?”

“빨리 안 오고 뭐해?”

박토가 화가 난 듯 소리치자 간담이 서늘해진 마영식은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를 툭 떨어뜨리고는 어기적 거리며 박토에게 향했다. 표정은 울상이었고 걸음은 어정쩡 어색하며 느렸다. 

그렇게 결국 박토 앞에 선 마영식이 박토의 눈치를 슬쩍 보며 주눅 든 체 물었다. 

“왜 불렀어? 혀.. 엉.”

영식의 물음에 박토가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일단 나무 그늘로 가자. 여름이 시작되는지 햇빛이 따갑네. 조금 쉬었다가 시작하자.”

“뭘?”

영식이 겁에 질린 듯 물어보자 박토는 대꾸하기 싫다는 듯 그에게 인상을 한 번 확 썼다. 그 바람에 마영식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박토는 말없이 몸을 돌려 그대로 마당 한 편에 마련되어 있는 평상으로 향했다. 마영식과 김탄도 그의 뒤를 따랐다. 뒤 따르던 마영식이 김탄에게 속삭였다.

“토 형이 때리겠지? 닭들한테 빗자루를 던지려고 해서 화가 난 거 같아.”

“월의 소중한 친구였으니까..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

김탄의 진심 어린 조언에 마영식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맙다며 김탄의 어깨를 장난 삼아 툭 쳤다. 김탄도 똑같이 맞받아쳤다. 

그렇게 토닥대며 평상에 도착한 김탄은 그 옆으로 서 있는 느티나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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