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토의 집 앞 마당

게다가 초유의 굴지 기업 오성이 또 한 번 도약해 그걸 기점으로 국가와 민족이 함께 상생할 수만 있다면, 그건 국익을 위해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좌파 대통령이 자본가와 결탁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도 그가 하려는 일이었다. 

하지만 임현은 이 생각을 함께 있는 이들과 공유하지는 않았다. 꼭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의 바람일지도 몰랐다. 

업적을 남기고픈 일말의 마음도 담겨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바람보다 더 중요한 건 미래에 닥칠 재앙을 피하는 거였다. 

현재 바탈 스톤은 아직 확인은 되지 않은 미래의 재앙이다. 알 수 없기에 더 공포스럽고 또 두려운 미지의 물체. 

바탈 스톤. 

그것은 일종의 신종 바이러스와 같았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바이러스는 극복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바탈 스톤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분석하고 연구하면 분명 인간의 이기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이유가 임현이 오성에 연구를 맡긴 이유였다. 즉 알면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임현에게 왕종철은 믿을 수 없는 자였다. 

권력은 교활하고 이중적이며 잔인한 것이었다. 권력의 최 정점 왕종철과 임현. 

이 두 사람의 동맹도 교활하고 잔인하며 이중적인 행태 속에서 화려하지만 위험한 칼춤이 될 수밖에 없었다.

“원장님. 왕회장 측의 특별한 동향이나 정보가 파악된 게 있습니까?’

임현의 물음에 국정원장 김동진이 대답했다. 

“은비사의 동생 은비칼이라는 자가 그 휘하 부하 직원인 나채국과 오강심이란 사람을 데리고 알앤디 센터로 들어간 이후로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은비칼이 외출을 해 먹을거리와 마실거리를 사 가지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흥미를 느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물었다.

“은비사라면 왕회장이 아들 같이 생각하는 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의 동생이 알앤디센터로 간 연유가 무엇일까요? 그 은비칼이라는 자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죠?”

“오성 통신 센터 서버룸 시스템 관리실 실장입니다. 아무래도 알앤디 센터로 파견근무를 나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가족을 쓰는 걸 보니 은밀한 작업인 것 같습니다.”

“워낙 폐쇄적인 회사라 그렇겠지요?”

대통령은 국정원장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다시 질문을 했다.

“그래요. 왕회장은 그동안 어땠습니까?”

“왕회장은 그간 알앤디 센터와 회사, 집 이외에 다른 곳은 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7시경 일본으로 출국 한 걸로 조사가 됐습니다. 자세한 출국 목적은 현재 파악 중에 있습니다.”

임현이 낮게 중얼거렸다.

“일본으로 출국이라..”

운석이 떨어진 이래로 일체의 외유는 없던 왕종철이었다. 사업상 출타의 성격은 아닌 듯 보였다. 

바탈 스톤이 드러난 이 시점에 왕종철의 외국 방문은 임현의 신경을 자극시켰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던 임현은 짜증스러운 듯 다기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후 국정원장에게 말했다.

“됐습니다. 그럼 자리 좀 잠시 비켜 주십시오. 수고 많으셨어요. 원장님.”

국정원장 김동진은 가벼운 목례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가자 강석민이 경직된 자세를 풀고 대통령을 마주 보았다. 

그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있던 강석민이 갑자기 잔소리를 해댔다.

“언제 끊으실 겁니까? 요즘 세상에 담배를 태우는 건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합니다.”

비흡연자 강석민의 말에 임현은 그에게 눈을 흘겼다. 따가운 시선을 느낀 강석민이었지만 자신의 소신은 확고하다는 듯 오히려 더 강한 눈빛으로 대통령 임현을 노려보다시피 쳐다보았다. 

그러자 임현이 그의 눈치를 보다 ‘에이. 꺼버려야지’라고 중얼대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임현의 모습을 말없이 빙긋이 바라보기만 하는 강석민이었다.

그런 그에게 임현이 개구진 아이처럼 갑자기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담배는 제가 피우는 게 아니라 제 마음이 피우는 겁니다.”

그의 농담에 강석민은 그저 빙긋이 웃기만 했다. 

정말 아이처럼 바라보는 그 모습에 또 나름 자기만의 조크가 통하지 않자, 임현은 세상 만사 귀찮다는 듯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는 고개를 젖혀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임현이 답이 나오지 않을 때 하는 버릇이었다. 

“힘드시죠?”

비서실장이 넌지시 말을 건네자 임현은 그 자세로 피식 웃고는 한숨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예. 힘듭니다. 비서실장.”

“하지만 정말 힘들어도 힘들다고 하면 안 되는 자리입니다.”

비서실장의 말이 끝나자 임현이 소파에 기댄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병 주고 약 주는 그의 말에 골이 났는지 그가 살짝 화가 났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강석민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강석민은 자신의 소신은 확고하다는 듯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크게 부라리며 임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임현은 ‘내가 졌소’라는 표정으로 다문 입 꼬리를 아래로 쭉 내린 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압니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는 제가 더 잘 알죠. 그래도 힘들다고 하면 좀 받아주시면 어디 덧납니까? 제가 비서실장이나 되니 투정을 부리지 누구한테 부립니까? 우리 집사람한테도 힘든 내색 안 하는 사람입니다.”

임현의 푸념에 강석민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은근한 미소가 시원시원한 그의 이목구비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말이 없는 그는 임현과 같은 길을 가는 동안 한 번도 힘들다고 하지 않았다. 아니 힘든 내색조차 없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그저 지금처럼 미소로만 대응했다. 

조금만 맘에 안 들면 성질을 포로록 내는 임현과는 정반대였다. 어쩌면 그런 그가 있었기에 임현은 대통령이 됐는지도 몰랐다. 

조력자 강석민. 그는 임현의 전부였다. 임현은 그가 있어 든든했다. 때로는 마음의 위안까지 받는 강석민에게 고마웠던 임현이 빙긋이 웃었다.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역시나 강석민은 말이 없었다. 그저 눈가에 주름 가득한 체 웃으며 그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잠시 시름을 놓았던 임현은 침묵이 시작되자 또다시 걱정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아이고, 그나저나 큰일입니다. 아무쪼록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대통령의 넋두리에 이번에는 비서실장이 생각에 잠겼다. 그가 생각에 잠기게 만든 것은 바로 예언이었다. 

“하늘에서 파괴의 신이 내려와 셋이 하나가 되면 흑룡이 나타나 해를 삼키어 세상에 어둠만이 드리워질 것이다.”

비서실장이 읊은 예언에 임현이 덧붙였다.

“예. 왕회장이 운석이 떨어지던 날 밤 찾아와 한 예언이지요. 정말 예언대로 되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이셨군요. 정말 예언대로 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파괴의 신이 내려온다는 예언은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 거였습니다. 운석 속에 외계의 물체가 들어 있었고요. 그것이 바로 파괴의 신을 뜻하는 것이고요”

대통령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가 소파에 파묻은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한쪽 다리를 꼬았다. 눈빛이 날카로워졌고 미간의 주름은 더욱더 깊어졌다. 

“그렇다면 나머지 예언구도 그렇다는 얘기인데.. 정말 그 예언대로 이 세상에 종말이 오게 될까요? 대통령님?”

강석민의 질문에 임현은 마주 잡은 두 손을 불안한 듯 비볐다.

“그거야 저도 모르지요. 때가 되어야 알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너무 고요해서 이상할 지경입니다. 마치 해일이 일기 전 바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단지 기우가 아니 길 빌 뿐이죠.”

“만약 예언이 사실이라면 대체 셋이 하나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그것만 막을 수만 있다면 무슨 대비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단지 세상에 어둠만이 드리워질 것이다 라는 예언구가 공룡 대 멸종 같은 인류의 멸종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임현의 말을 끝으로 집무실엔 침묵이 맴돌았다. 모두, 인류의 멸종을 상상하는 듯 무거운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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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토의 집 앞 마당 한가운데에는, 박토가 닭장 문을 열여 놨는지 알록달록한 여러 색의 깃털을 가진 닭들이 노닐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레펠 로프 한 뭉치가 마당에 툭 떨어지자, 놀고 있던 닭들이 놀란듯 푸드덕 날아올랐다. 

그중 한 마리가 마당에 서 있던 마영식의 얼굴 쪽으로 날아오자 영식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소리쳤다.

“아악! 이 닭 새끼가!”

닭은 마영식이 예상한대로 푸드덕거리는 날갯짓으로 영식의 얼굴을 때리고는 뒤로 날아갔다. 닭의 공격이 사라지자 얼굴을 가린 두 손을 살포시 내린 마영식. 

그런데 그 순간 또 다른 닭 한 마리가 영식의 얼굴 쪽으로 날아왔다. 영식은 다시 본능적으로 얼굴을 두 손으로 황급히 가리며 소리쳤다.

“아악! 왜 이래? 닭 새끼들이!”

보이는 것처럼 이상하게도 놀란 닭들은 화풀이를 영식에게 해댔다. 아마 마당 한 가운데 마영식만 서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닭들을 놀라게 만든 레펠 로프 뭉치를 마당에 던진 건 박토였다. 하지만 박토는 닭들의 주인. 

닭들은 정말 주인을 알아보는지, 박토에겐 화풀이를 하지 않고 오직 마영식에게만 해댔다. 정말 그렇다는 듯 화가 난 모든 닭들이 마영식에게 끊임없이 덤벼들었다.

그럴 때마다 영식은 자신의 핸섬한 얼굴이 상할까 팔과 손 전체를 써 머리와 얼굴을 필사적으로 보호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한편, 마당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김탄에게로 간 박토가 영식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씁쓸한 듯 입을 열었다.

“사람이나 닭이나 위험한 상황에선 머리부터 감추는 것 같아.”

박토의 말에 영식을 바라보고 있던 김탄은 그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그런 거 같다. 그나저나 닭도 날아다니네? 저렇게 멀리 날 수 있는지 몰랐어.”

그때 박토가 김탄을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왜 내가 무슨 잘못 말했나?’라는 표정으로 김탄이 눈을 부라리자, 박토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뗐다.

“몰랐어? 새잖아.”

순간 김탄은 자신이 기초상식에 몰상식한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부끄러웠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그가 시치미를 떼며 다시 마영식을 보자, 그는 이제는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닭들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마영식은 간간히 멈추어 서서 화풀이를 하듯 발길질을 해댔지만, 역시나 닭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그의 발길질을 피했다. 

어떤 닭들은 -주로 수탉이었다- 이제는 영식을 가지고 노는 듯 그의 주변을 얼쩡거리며 약을 올리기까지 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그 대범한 닭들이 영식 다리의 사정권에 들어오면 영식은 어김없이 발길질을 해댔지만 절대 성공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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