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본심

김동진의 물음에 강석민은 굳게 다문 입술로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당황한 김동진이 재차 물었다. 

“아, 그럼.. 제보자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을 함묵하라는 얘깁니까?”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국정원장 김동진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내리 깔았다. 

그러자 강석민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김동진은 흠칫 놀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에게 비서실장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은 알맞은 시기가 아니기에 나서지 말라는 뜻입니다. 정확한 제보자를 찾으면 그리고 그 제보자를 확보한 다음 VIP께 말씀을 드리는 게 현명하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 제보자가 또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는 만일의 가정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니 제 의견에 따르시는 게 좋을 듯싶은데..”

단호한 말투에 깃든 종용이었다. 김동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석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강석민은 자신이 원하는 답을 받았다는 듯 그대로 몸을 돌려 대통령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한편 문이 열리고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이 들어오는 것을 본 대통령은 반가운 손임을 기다렸다는 듯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이거 원. 조급증이 나서..”

정말 그가 마음이 급했다는 걸 증명하듯 그가 앉아 있던 소파 테이블 위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 꽁초가 이미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진중함을 읽은 그의 모습에 강석민이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입을 열었다. 

“일단 앉으세요. 대통령 님.”

순간 자신의 경박함이 드러남에 임현은 부끄러웠는지 아이처럼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너무 자발스러웠나요? 이해하십시오. 제가 성격이 좀 급하지 않습니까? 자 다들 자리에 앉아 보세요.”

모두들 자리에 앉자 임현은 탁자에 놓인 국산 브랜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손에 쥐었다. 하지만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 일회용 라이터를 들어 만지작거리며 강석민이 들고 온 태블릿을 쳐다보기만 했다. 

강석민이 태블릿을 켜면 불을 붙일 심산인 듯 보였다. 강석민이 태블릿을 켜자 임현이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비흡연자인 강석민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는 동영상 파일을 하나 재생시켜 임현 대통령에게 보여주었다. 

임현이 내뿜는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그의 진지한 표정 속 눈이 순간 커졌다. 그러자 강석민이 말했다.

“운석 속에 들어 있던 물체라고 합니다. 왕회장 측에선 바탈 스톤이라고 하더군요.”

동영상이 끝나자 임현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그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생각 속에서 빠져나온 건, 들고 있던 담배 재가 너무 길어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테이블에 떨어지고 나서였다.

임현은 현실로 다시 돌아온 듯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강석민 손에 들린 태블릿을 뺏다시피 넘겨받고는 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그리고는 바탈 스톤이 공중에 떠 있는 장면에서 일시 정지를 하고 난 후, 화면을 확대했다. 

확대된 바탈 스톤을 임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만 끔벅이며 쳐다보다, 궁금하게 생겼는지 강석민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 이게.. 그 예언에서 말한 ‘파괴의 신’ 이란 것이군요.”

강석민은 임현의 말에 대답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임현은 말없이 재차 동영상을 돌려보았다. 

오묘한 빛을 내며 중력을 거슬러 공중에 떠 있는 신비한 물체에 매료된 듯...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그 미지의 물체에 빠져들었던 임현이 갑자기 동영상 보기를 멈추고는 태블릿을 다시 강석민 앞으로 쓱 내밀었다.

“이 안에.. 일전에 왕회장이 말한 세상을 멸망시킬 무기가 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말이 끝내고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강석민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임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런 그가 투덜거렸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왕회장의 말대로 현실이 됐지만 그 이후에 벌어질 일도 현실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죠.”

난데 없이 국정원장이 김동진이 첨언했다.

“무기라고 보기엔 신빙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직선거리 5CM의 정육면체로 보고 되었습니다. 그 정도면 어른 주먹보다 작은 크기입니다. 제 생각에는 무기보다는 열쇠가 아닐까..”

국정원장의 새로운 상상에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모두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분위기가 머쓱해지자 김동진은 괜스레 너털웃음을 지고는 에둘러댔다.

“하하하하. 발칙한 상상일지 모르지만 아주 오래전 지구 어딘가에 외계 생명체가 놓고 간 우주선이라던지 뭐, 그렇게 있는데 그걸 열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 한 번 생각해봤는데.. 아이고. 그냥 무시하십시오.”

“우리 원장님께서는 아이처럼 상상이 풍부하십니다그려.”

임현 대통령은 국정원장에게 농을 한 번 던지고는 다시 강석민의 태블릿을 빼앗아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그가 영상을 다 볼 때까지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국정원장의 말에 잠시 가벼운 분위기가 흘렀지만, 그때뿐이었다. 

왕종철이 말한 바탈 스톤은 지구를 멸망시킬 무기였기에 대한민국 땅에 떨어진 이상 대통령의 책임이었다. 그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설령 그 예언이 사실이 아니어도 그냥 묵과하거나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위험에 또, 어떤 역경에서도 그는 대한민국을 수호할 막중한 책임을 지닌 대통령이라는 그의 신분은 더욱더 어깨를 무겁게 짖눌렀다.

브라질에 사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 이론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어떤 조건이 나중에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하고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까 걱정이 가득한 임현은 연신 쓴 입맛을 다셨다.

우선 그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확정된 결과일 수도 있기에, 임현은 지금 막을 수 있는 건 무조건 막고 싶었다. 

생각에 머리가 아팠는지 관자놀이를 양 손바닥으로 비비던 그가 탁자 위에 놓인 물잔을 들어 입을 축인 후 강석민에 입을 열었다.

“혹시 왕회장 측에서 이 바탈 스톤이라는 것을 열어 본 것은 아니겠지요? 아니면 열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아직은 열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섣불리 열었다간 큰 재앙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미확인 바이러스나 외계에서 만들어진 폭탄일 수도 있습니다. 왕회장 측도 그러한 면 때문에 면밀히 분석만 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안심을 했는지 임현 대통령의 미간에 파인 주름이 옅어졌다. 그래도 기분이 가시지 않는 듯 심각하게 말이 없었다. 갑자기 국정원장이 태블릿을 들고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재잘댔다.

“정말 신기합니다. 외계에서 온 물체라니.. 세상에 제가 이런 물체를 볼 거라곤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런 일은 SF영화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않습니까? 영화에서는 이런 물체 때문에 사람들이 초능력을 얻곤 하죠. 폭탄이 아니라 그런 거였으면 좋겠습니다.”

국정원장의 말에 대통령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이없는 웃음이었다.

“허허허허. 뭐라고요? 초능력이요? 하늘을 날거나 손에서 번개를 쏘는 그런 초능력 말씀하시는 겁니까? 원, 참. 원장님도.. 아이 같으십니다.”

국정원장은 대통령의 반응에 자신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수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 바람에 심각했던 대통령 집무실에 웃음기가 돌았다. 

대통령이 웃음을 억지로 참으려는 듯 끅끅거리며 웃자 국정원장도 슬며시 미소 지었다.

재미없고 말없는 강석민까지 입을 실룩거릴 정도로 웃게 만든 국정원장의 말에 잠시 시름을 놓고 있던 임현이 구시렁거렸다.

“그런데 말입니다. 원장님 말대로 차라리 그런 허무맹랑한 일이 사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아닐까 정말 두렵거든요.”

대통령의 말에 강석민과 김동진은 다시 굳은 얼굴로 돌아와 그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자, 임현은 근심이 가슴에 한 가득 들어 있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보세요. 코로나, 에볼라, 메르스, 사스, 지카. 멀 게는 에이즈와 흑사병까지.. 어떤 알지 못하는 새로운 전염병이 출현해 확산되게 되면 공중들은 패닉에 빠지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미지의 바이러스가 불러오는 죽음의 공포로 인한 사회 혼란과 경제적 손실이 그동안 세계적으로 막대했었죠. 또한 무지에서 오는 공포가 불러 올 사람들의 무한한 상상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끔찍하지 않습니까? 혼란과 무질서로 사회가 무너질 수도 있어요.”

대통령이 상상한 가정에 집무실 공간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바탈 스톤이 몰고 오게 될 종말에 대한 각자의 상상을 펼치는 듯 심각하고 우울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한동한 흐르던 적막을 첫 번째로 깬 건 비서실장 강석민이었다.

“외계에서 온 미지의 무기. 파괴의 신. 왕회장이 말하는 바탈 스톤.”

그가 말을 끊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신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왕회장에게 운석 연구를 맡기신 거군요. 대통령 님.”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알아야 해결하지 않겠습니까? 바탈 스톤에 만약 바이러스가 들어 있다면 백신을 만들기 위한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중대한 사항에 오성 알앤디에서 전담 연구를 한다는 게 왠지 꺼림칙합니다. 정말 선의로 하는 일인지 그 저의도 의심스럽고요. 그는 자본가일 뿐입니다. 공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래도 사회적 기업으로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까?”

“겉치레일 뿐인걸요. 그림자 대통령입니다. 막후에서 우리나라를 다스리는 실권자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 말입니다.”

비서실장의 말은 대통령의 목을 조여왔다. 이상향이 다른, 비선이 돼 버린 왕종철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임현은 속이 거북해졌다. 

정치와 행정은 달랐다. 그렇다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가 정권을 잡고 내내 그를 괴롭혀온 문제였다. 하지만 임현은 자신의 뜻을 굽힐 수 없었다. 바탈 스톤에 대해서 현시점 가장 잘 아는 건 왕회장 측이었다. 

그로 인해 시작 된 위험한 동행이자 아슬아슬한 동맹. 칼날 위에 선 듯 아찔했지만, 관계는 계속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는 그의 작은 변절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바탈 스톤은 가치가 높았다. 

만약 바탈 스톤에 들어 있는 무기가 바이러스 같은 거라면 절대 열면 안 되는 것이지만, 만약 새로운 신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들어 있는 외계 무기라면, 그건 말이 달라지는 거였다. 

더군다나 왕회장이 말한 대로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의 무기라면 전 세계의 군사 패권에 대한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신무기를 만들 수 있는 미지의 외계 기술, 바로 그 이유가 왕회장이 몸소 직접 움직인 것이라고 생각한 임현이었다.

임현은 대통령으로서 그 달콤한 힘을 선뜻 거절할 수 없기에 변절을 통한 왕종철과의 동행을 선택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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