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 출현한 조진우. 왜?

갑자기 들어온 신영준의 칭찬에 이희수는 어색했던지 입을 삐죽 내밀기부터 했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치켜뜨며 어깨를 들썩였다. 명백히 신영준의 말은 위로의 차원에서 건넸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나온 제스처였다.

그러니까 굳이 그런 말 하지 않아도 괜찮아 뭐, 그런 뜻. 그러던 그녀가 이번에는 만세를 하듯 두 손을 위로 번쩍 들고 허심탄회하게 말을 뱉었다.

“선배 말대로 할 게. 어차피 이 사건 아무도 모르게 혼자 수사하던 거였으니까. 기브 업.”

“뭔 소리야?”

신영준이 주먹으로 이희수의 어깨를 가볍게 툭 툭 치며 이어 말했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해야지. 기브 업이 뭐냐? 기브 업이.. 존심이 있지. 새로운 사건을 맡으면 그때 네 실력을 보여줘. 파이팅이다. 이희수.”

이희수가 기분이 풀렸는지 헤벌쭉 웃었다. 신영준도 그녀의 웃음에 따라 웃고는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우뚝 멈추어 서며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참. 그 이영모란 사람 말이야. 1년만 더 살다 죽었으면 좋았을 거야.”

“왜?”

“그 사람 청주 운석 최초 발견자거든.”

“그게 왜?”

“그 운석이 이영모에 의해 오래전에 발견 했는데.. 아마.. 1970년대 라지? 아무튼 이영모 씨가 죽은 다음 해에 운석으로 판명됐다고 그러더라.”

신영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희수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그대로 신영준에게 돌진하듯 다가와 그의 멱살부터 잡았다.

“선배. 진짜야? 지금 한 말이 진짜냐고?”

신영준은 갑작스러운 멱살 잡힘에 짜증을 냈다.

“어우. 씨.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진짜라니까.”

신영준은 지금 살짝 겁이 났다.

그가 바라본 이희수의 얼굴은 정말 심각하다는 듯 상당히 일그러져 있었고, 머리를 회전하는 듯 눈동자가 이리저리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땐 가만히 있는 게 현명한 거다.

이희수는 화가 나면 미친 범처럼 날뛰는 게 특징이기 때문이다. 잔뜩 긴장한 신영준은 숨소리조차 죽였다.

그러나 그의 예상 밖으로 그녀는 생각이 끝나자마자 그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제 책상으로 돌아갔다. 놀란 토끼처럼 뜨고 있던 그의 눈에 그녀가 스마트 폰을 집어 드는 게 들어왔다.

그녀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한편 조진우에게 연락한 이희수는 당황했다. 전화 발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진우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다시 연결을 시도했지만 역시 매한가지였다.

순간 이상함을 느낀 이희수는 가방을 들어 책상에 널브러지게 놓아둔 소지품을 사정없이 집어넣었다. 그녀의 행동에 신영준이 의아한 듯 물었다.

“갑자기 짐을 왜 싸는데?”

“나 잠시 양평에 좀 가 봐야 할 거 같아.”

“양평엔 왜?”

“왜긴? 일이 있으니까 그렇지.”

“중요한 일인가 보네?”

“응”

“설마. 김정구 경장 일이야?”

“아니.”

“거짓말하지 마라. 네가 양평에 연고가 있기는 하냐? 지인이 살고 있냐? 포기 안 한 거지?”

이희수는 신영준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고 가방을 들고 그대로 수사과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신영준이 소리쳤다.

“가서 제발 오래 있다가 와라! 부탁이다! 희수야.”

이희수는 등을 돌린 체 가운데 손가락을 핀 욕을 하곤 문을 나섰다.

신영준은 이희수가 나가고 사라진 수사과 출입문을 보며 빙긋이 웃고는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희수 지.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늑대 같은 여자. 아니 자칭 남자.”

반면, 영동 경찰서를 나서는 이희수의 표정은 연락이 되지 않는 조진우 때문에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가벼워 보였다.

그녀는 뛰다시피 하는 재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그녀의 차에 다가갔다. 차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는 바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인 양평 밤새워 피씨방을 입력했다.

시동을 걸고 운전대에 손을 올린 그녀가 후진 기어를 넣고 차를 뒤로 뺐다. 다시 전진 기어를 넣고 운전대 핸들을 돌린 후 악셀을 밝으며 중얼거렸다.

“운석이 두 사건의 연결 고리였어. 끝난 거야. 이 사건. 조진우는 분명 무언가 알고 있어.”

이희수의 차는 영동 경찰서를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

“자. 여러분. 여기 이것이 무언인지 아시나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유치원 원생들에게 질문하자 여기저기서 카랑카랑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운석이요.”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별이요.”

“우주에서 떨어진 돌이에요.”

저마다 으쓱대며 대답한 아이들을 향해 선생님은 빙긋이 웃고 난 후 다시 말을 했다.

“네. 맞았어요. 모두들 잘 알고 있네요. 이것은 바로 하늘에서 떨어진 돌, 운석이라고 해요.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가평에 있는 산에서 발견되었어요. 신기하죠?”

“네! 네! 선생님!”

아이들이 입을 모아 큰 소리로 대답하자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네오디움 자석을 꺼냈다. 그녀가 자석을 가평 운석에 가까이 가져가자 자석이 운석에 척 달라붙었다. 그 모양에 아이들이 놀랐다는 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렸다.

“우와!”

“대박. 붙었어. 떨어지지 않아.”

“딱풀로 붙였어요? 선생님?”

“아니야. 딱풀은 무거우면 떨어져.”

“마법으로 붙인 거야.”

아이들이 저마다 돌에 자석이 붙는 원인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왜 이게 돌에 붙는지 궁금하죠?”

“네. 네. 선생님.”

아이들이 다시 입을 모아 소리치자 선생님이 주머니에서 작은 쇠로 된 판을 꺼냈다.그리고는 운석에 붙어 있던 네오디움 자석을 뗀 후 쇠로 된 판에 아래서 위로 향하게 던지자 자석이 쇠 판에 탁 달라붙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신기한 걸 구경한 듯 박수를 쳤다.

“여러분. 보셨죠?”

“네. 네. 선생님.”

“자석은 쇠에 붙어요. 알고 있죠?”

“네. 네. 선생님.”

“그런데 쇠에 붙는 자석이 왜 돌에 붙는지 궁금하죠?”

아이들이 그 이유를 정말 알고 싶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선생님은 손으로 운석을 가리켰다.

“이 운석이 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자석이 붙는 거예요. 그냥 돌에는 자석이 붙지 않아요. 그래서 이 운석을 어려운 말로 철운석이라고 부르죠.”

어려운 단어가 나오자 아이들이 따라 했다.

“처른석?”

“초룬석.”

“차른석.”

찰칵. 찰칵.

갑자기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이 모두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우아. 아저씨다.”

한 아이가 말하자 선생님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 앞에 놓인 운석의 맞은편으로 한 남자가 운석을 찍고 있었다.

조진우였다.

현장 강의에 방해꾼이 등장하자 선생님은 방해하지 말라는 듯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운석에 정신이 팔려 있던 조진우는 그제야 선생을 쳐다보게 되었다.

조진우는 선생님 뒤의 아이들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자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체험 학습 오셨나 보네.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세요. 몇 장만 더 찍으면 되니까.”

조진우는 유치원 선생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석 사진을 더 찍어댔다. 그런 그에게 유치원 선생님은 골이 났는지 인상을 찌푸리고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자! 이곳은 여기까지만 보죠. 더 재미있는 다음 장소로 갈까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네! 네! 선생님!”

“자. 짝꿍이랑 손 잡고 줄 서기!”

“네! 네! 선생님!”

아이들이 짝을 찾아 손을 잡고 일렬로 늘어섰다.

그리고는 다른 부스로 향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할 때 맨 끝에 있는 한 아이가 조진우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왜 여기는 거칠지가 않아요? 다른 곳은 울퉁불퉁한데..”

아이가 가평 운석의 잘린 단면을 가리키며 말하자 조진우가 답을 했다.

“잘려서 그래. 원래는 이것보다 엄청 컸어. 근데 다섯 조각으로 잘라 버렸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편편한 거야.”

“아~ “

아이는 큰 깨달음을 얻은 듯 감탄사를 내뱉고는 원하는 걸 다 얻은 듯 그대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아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조진우의 곁눈으로는 이탈한 아이를 지켜보던 선생님의 따가운 시선이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선생을 쳐다보니 그녀는 화가 난 듯 조진우를 향해 눈을 흘기고 있었다.

조진우는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힐난 섞인 시선을 보내는 유치원 선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뜸가서 따지기도 뭐해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선생을 향해 흔들며 씩 웃었다.

‘그래도 그 선생의 입장에선 잘못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철저히 자신의 중심을 벗어난 조진우의 일종의 화해 제스처였다.

여선생은 눈 흘기기를 멈추더니 그대로 고개를 홱 돌린 후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부스로 향했다. 조진우는 그녀의 그런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새침하네.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 주지. 내 방식이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군..”

그렇게 체험 학습을 온 병아리 같은 유치원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다른 부스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조진우는 자신이 서 있는 자연사관을 자세히 둘러보게 되었다.

가평 운석에 온갖 정신이 팔려 있던 그에게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조진우가 와 있는 곳은 우리나라 과학의 메카, 과학의 중심 도시 대전에 있는 국립중앙과학관에 마련된 자연사관이었다.

이곳은 한반도 자연사를 주제로 한반도 땅 덩어리와 그 위에 출현한 생물들의 진화에 관한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었다.

유구한 시간을 간직한 10억이 된 화석, 25억 년 된 암석, 아폴로 17호가 가져온 월석, 중생대 살았던 시조새의 화석, 그리고 우주에서 떨어진 암석인 운석까지 한반도에서 출현하게 된 모든 시간의 총망라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관람객들은 대부분 교육 차원에서 온 단체 관람객과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부모가 데리고 온 아이들로 구성된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대부분이었다.

“이거 씹덕이라 생각하면 곤란한데..”

조진우가 이렇게 중얼거린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한눈에 봐도 이 자연사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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