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악바리.

신영준의 말투는 정말 한심하다는 말투였다. 이희수는 그의 말에 삐쳤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고는 투덜댔다.

“이럴 거야? 선배. 정말?”

“뭘? 아니 근데 내가 이걸 왜 듣고 있어야 하냐? 나도 할 일이 산더미라고. 으이그. 이 지긋지긋한 서류 작업.”

신영준은 “나 정말 골이 났다”라는 듯 책상 한편에 가득 쌓여 있는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들었다 놨다. 거친 소리가 공간을 맴돌자 마음이 불편해진 이희수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소리쳤다.

“선배. 도와준다고 약속했잖아요. 그리고 8년 전 강북 경찰서 이성모 형사 자살 사건 전담했잖아요.”

“으이그, 진짜.”

신영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잔뜩 성을 내고는 더 이상 이희수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듯 몸을 돌려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완전한 무시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이희수는 상심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도와 준다고 했으면서.. 쳇.

이번엔 이희수가 골이 잔뜩 났다. 그녀는 지금 신영준의 도움 없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했다. 

분명 두 사건의 연결고리 키는 신영준이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정말 비협조적이었다. 

그렇게 골머리를 앓는 그녀의 눈에 순간 그녀의 전화기가 눈에 들어오고 강력한 스파크가 뇌 속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이 교활함으로 물들어 비열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능글맞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언니 전화번호가~~ 어딨.. 더라? 비~~상금의 출처를 알면 고마워하겠지?”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왔는지 이희수 책상 옆으로 온 신영준이 갑자기 이희수의 전화기를 빼앗으며 소리쳤다.

“야! 희수야!”

도와달라고 할 때는 굼벵이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느릿한 자가 마누라에게 비상금을 빼앗길 생각에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플래시 맨에 버금갈 정도의 속도로 다가왔다는 사실에 머리가 어질해진 이희수가 그를 올려다 보았다.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험악한 표정의 신영준의 얼굴이 들어왔다. 이희수가 그런 그에게 잔뜩 성질을 내며 다그쳤다. 

“왜 이러셔? 이건 절도야. 선배 손에 들린 전화기는 명백히 내 사유재산이라고.”

“네가 비상금 대해 협박을 하는 건 괜찮고?”

“말도 안 돼. 협박은 무슨. 정보 공유를 협박으로 몰면 안되지. 선배 비상금은 명백히 공금횡령인 거 몰라?”

말을 마친 이희수는 전화기를 도로 돌려 달라며 신영준에게 손을 쭉 내밀었다. 그런 그녀에게 매섭게 도끼눈을 뜨고 있던 신영준은 말없이 전화기를 돌려주며 웅얼거렸다. 

“잘못했어. 비상금 그거 집사람이 알면 나 쫓겨 나. 그러니까 하던 얘기 계속해 봐. 네가 원할 때까지 들어줄게.”

이희수는 씩 웃었다. 역시 사람은 상대의 약점을 하나 가지고 있는 게 유리하다. 그녀가 손으로 신영준에게 앉으라는 듯 옆 책상에 딸린 의자를 가리켰다. 

다람쥐가 도토리 숨겨놓듯 모아 놓은 비상금을 와이프에게 빼앗기기 싫었던 신영준. 마지못해 고분고분하게 그녀의 지시를 따르는 듯 했지만 속도는 빨랐다. 

그렇게 의자를 이희수 앞으로 끌고 와 재빠르게 앉은 신영준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참 나, 하이고. 나도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이희수의 손이 슬며시 전화기로 향했다. 신영준이 갑자기 그 손을 절박하게 잡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뭐. 밤을 새우면 되지 뭐. 말해.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이희수는 말을 마치고 자신의 전화기를 신영준이 잘 보이는 곳에 놓았다. 부러 그러는 게 확실했다.

신영준은 이희수의 모습에 마치 잘못하면 다시 매를 들겠다는 듯 아이의 눈앞에 회초리를 전시하던 그의 어렸을 적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가 굳은 얼굴로 이희수의 전화기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쓴맛을 다실 때 이희수는 책상에 놓인 서류를 다시 들고는 뒤척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언가 찾은 듯 눈이 동그래졌다.

“선배. 들어 봐. 이건 8년 전 강북 경찰서 이성모 사건이야. 이성모 형사가 죽기 전 사촌인 이영모 씨와 자주 연락을 했었어. 이영모가 이성모에게 받을 돈이 있어서 연락을 했다고 해. 그런데 이성모 형사가 죽기 일주일 전 이영모 씨에게 채무변제를 다 했던 모양이야. 그 뒤로 이영모 씨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럼 이영모 씨가 범인일까?”

이희수의 말에 신영준은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듯 눈을 하늘로 치켜떴다. 그리고는 시간이 멈춘 듯 생각에 잠기다 과거의 시간에서 빠져나온 듯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그러던 그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야. 그때 이영모 씨는 알리바이가 확실했어. 그걸 입증해 줄 증인들도 여럿 있었고 말이야.”

이희수의 입에서 아쉬운 말이 흘러나왔다.

“아. 그래? 그럼 진짜 선배 말대로 살인 사건이 아니라 단순 주취 자살 사건이었나 보네.”

“그렇다니까. 조금 미심쩍지만 전부 다 알리바이가 확실했어. 그러니까 내사종결됐지. 내 생각에 그 사건은 이번 양평 김정구 경장 사건과는 연관이 없는 것 같다.”

이희수는 바로 실망한 듯 풀이 죽어 버렸다. 침묵이 흘렀고 말없는 이희수의 눈치를 보던 신영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럼 난 이만 내 자리로 돌아가도 될까?”

이희수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중얼댔다.

“응. 지금은 필요가 없네. 꽉 막혔으니까..”

자리로 돌아온 신영준은 원래 하던 일을 하기 위해 다시 타이핑을 시작했고, 이희수는 풀리지 않는 사건에 골머리가 앓는 듯 한숨을 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던 그녀가 순간 눈을 번뜩이며 신영준에게 말을 했다. 

“그래도 한 번 만나 봐야겠어. 선배. 이영모 씨 신원조회 좀 부탁할 게.”

이희수의 집요함에 성질이 난 듯 신영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럴 필요 없다니까! 진짜. 이제 그만 해!”

갑자기 소리친 신영준에 화가 난 이희수. 그녀도 질세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이래? 도와주기로 약속 했잖아!”

“으이그 진짜. 이영모 씨는 죽었다고. 이미 8년 전에..”

“뭐?”

깜짝 놀라 말문이 막혀버린 이희수였다. 말없이 놀란 표정으로 신영준을 보고 있던 그녀에게 그가 핀잔을 쏟아냈다.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죽었어. 돌연사야. 자다가 죽었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애먼 짓 하지 마라. 이 형사야. 왜 내가 자꾸 그만 하라고 했는지 이제 알겠지?”          

이희수가 입을 앙 다물었다. 그녀는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 그런 이희수가 신영준에게 감정을 폭발하듯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분명 두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고 있던 거 알고 있으면서 왜 말하지 않았지? 지금까지 날 엿 먹인 거야? 선배.”

“아니. 네가 고집이 너무 세서. 똥고집을 부리는데 말을 듣겠냐? 사건을 파다가 막힐 때까지 기다린 거야. 그래야 말을 들을 테니까. 너 네가 한 번 맞다고 생각하면 곧 죽어도 맞다고 하는 성격이잖아. 그런 집요함은 형사 자질로서 좋은데 너무 지나치면 똥고집이 되는 거야. 이번처럼..”

실패였다. 이희수는 신영준의 말을 듣자마자 그녀가 처음 맡은 이 사건이 완전히 실패라는 걸 알아버렸다. 

솔직히 김정구 경장 사건은 내사종결된 자살 사건이었지만 이희수는 무언가 더 있을 거라는 감을 믿었다. 하지만 그 감은 완전히 틀린 게 되어 버렸다. 

인정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이희수는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철저히 당한 것도 같았다. 

원망 가득한 시선으로 신영준을 흘낏 째려 본 이희수는 천근의 쇠가 땅에 떨어지 듯 고개를 아래로 툭 떨구었다. 

의욕 넘치는 신참 새내기 형사의 무리한 수사는 이렇게 막을 되어 버린 것. 당연히 이희수는 풀이 죽었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혈기 왕성한 신참 새내기의 처음 보는 좌절에 선배 형사 신영준의 마음도 무거워졌다. 그는 신경 쓰지 않으려 계속 타이핑을 했지만 집중이 되지 않는 듯 오타가 반복됐다. 

“쯧.”

마음이 불편했던 그는 혀를 한 번 끌 차고 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이희수에게 다가왔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희수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는 게 엿보였다. 그가 안쓰러운 마음에 그녀를 달래듯 어깨를 두드리며 다독였다.

“희수야. 처음부터 못하게 말리기엔 네가 너무 의욕이 넘쳐서 말을 못 했어. 첫 사건인 데 욕심이 많았을 거야. 나도 한 때 겪었던 거니까. 이번 사건은 이대로 물러나고 다음 사건은 꼭 해결하면 돼. 너무 속상해하지 마. 너답지 않아서 어색하다.”

이희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다부지게 떡 벌어진 이희수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하자 당황한 신영준이 물었다.

“우는 거니? 지금 너?”

이희수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고는 말을 했다.

“아니. 웃고 있었어.”

“뭐? 아니 그럼 눈가에 어려있던 눈물은 뭐지? 난 봤다고. 정말.”

“울 뻔했지. 하지만 난 울지 않아. 알잖아. 내가 제일 후회하는 게 고추 달고 태어나지 못한 거. 몸은 여자지만 내 영혼은 남자라고 생각해. 사나이는 울지 않아. 선배. 그렇지?”

이희수의 농담 섞인 말에 신영준이 피식 웃는 걸로 대답했다. 

그녀 아니 이희수는 정말 씩씩했다. 생물학적 몸은 여자였지만 남자 못지않은 체력과 담력을 가졌고 화끈했고 저돌적이었다. 게다가 얼굴도 남자 같이 잘생겼다. 

머리를 길러 묶고 있었지만 그녀를 보면 예쁘다는 말보다는 잘생겼다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한 번은 신영준이 이희수에게 그냥 머리를 자르지 왜 기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툭하면 신영준을 보고 앞으로 자신은 남자니까 남자로 대해달라고 말하는 터에 물어본 말이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외였다.

“진짜 남자가 될 까 봐요. 안전장치입니다.”

“그래. 맞아. 네가 아무리 남자 같이 굴어도 넌 여자야.”

그때 신영준의 말에 지금처럼 독기 어린 얼굴로 쳐다보던 이희수였다. 건장한 남자들이 있기에도 험한 수사과였다. 거칠고 위험했으며 폐쇄적이었다. 남자들만 바글거리는 생태계에서 여자 혼자 버티기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희수는 그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내세운 선택적 성 정체성에 대해 알아 달라고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 깊숙이 들어 있는 본심은 여성의 성을 간직하고 싶었기에 머리를 길게 길렀는지도 모른다. 신영준은 그런 이희수가 좋았다. 그녀는 누구보다 적극적이었으며 열심히 했다. 

처음엔 그도 그녀 나름의 성 정체성에 대한 생각에 동조하기란 쉽지 않았다. 저거 또라이 아냐? 라고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직업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희수는 선배 형사로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후배 형사가 되어 있었다.

“왜? 뭐 문제 있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생각에 잠긴 신영준에게 이희수가 묻자 신영준이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아니. 문제없어. 넌 정말 잘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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