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살인과 과거의 살인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은 사람들을 집중시켰다. 계속되는 비명에 남자 한 명이 여자에게로 다가왔다. 

남자가 여자의 어깨를 잡으며 뭐라고 말하자, 그녀가 손가락으로 첫 번째 비치 의자에 누워 있는 남자를 가리고는 다시 자신의 목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을 했다. 

남자의 표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첫 번째 비치 의자에 누워 있는 남자에게로 다가가 목을 옆으로 돌렸다. 누워 있는 남자의 목 뒷골 부분에 피가 흘러 선지처럼 굳어 있었다.

이미 많은 피가 흘렀다는 듯 죽은 남자의 빨간 꽃무늬 셔츠 뒤 깃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빨간 꽃무늬와는 다른 색이었다.

죽음을 확인한 남자는 놀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침착했다. 당황하기보다는 사태를 정리하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인지 그가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갑자기 처음 죽음을 목격한 소년이 그의 손을 막았다. 오히려 지금 남자는 처음 죽음을 확인한 것보다 당황하고 있었다. 

남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소년에게 뭐라고 말하자 소년이 손가락을 들어 일렬로 늘어선 비치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가리키며 뭐라고 말을 했다.

깜짝 놀란 남자가 늘어서 있는 비치 의자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모두 죽어 있었다. 남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사람들이 죽었어! 모두 다 죽었어! 빨리 경찰에 신고해!”

남자의 말에 비치파라솔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이기 시작하며 소란스러워졌다.  모두가 전화기를 꺼내 들고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심지어 셀피까지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자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자 소년이 그 남자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저씨가 신고해요. 빨리.”

남자가 신고를 하자 소년은 그제야 안심을 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멀리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유난히 침착해 보이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다른 사람처럼 놀란 모습도 아니었고 또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단지 파라솔 아래 비치 의자에 죽어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었다. 

마치 무엇을 확인하는 것 같은 그 모습이 의아한 소년은 호기심이 발동해 그 남자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한눈에 봐도 한국인이었다.

곱슬머리를 한 그 남자는 세련된 바캉스 복장이었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에는 빨대가 꽂힌 음료컵을 들고 있었다. 그가 시체를 살피며 간간히 음료를 빨아먹었다. 

소년은 그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간 순간 남자와 소년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소년이 남자를 향해 멋쩍은 듯 씩 웃었다. 

남자가 선글라스를 손으로 살짝 내리며 소년에게 윙크를 보내고는 자신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을 했다. 

소년이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남자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그의 등 뒤에서 소년의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후안!”

소년은 깜짝 놀라 그대로 몸을 홱 돌렸다. 멀리서 엄마가 빨리 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 있었다. 다시 뒤를 돌아 남자를 한 번 쳐다본 소년은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그대로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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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던 소년이 무언가 생각난 듯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발 밑에 모래만 바라보던 소년을 이상하게 생각한 엄마가 소년에게로 다가왔다. 

엄마의 발이 보이자 소년이 모래에게서 시선을 떼고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소년의 두 눈에서 눈물이 글썽이자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엄마가 물었다.

“왜 그래? 후안.”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였다.

“엄마. 나 여기 이 사람들을 죽인 사람을 봤어요. 하지만 몰랐어요. 그 사람 셔츠 끝자락에 피가 묻어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피인 줄 몰랐어요.”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후안.”

후안은 엄마의 물음에 뒤로 돌아 손으로 가리켰다. 순간 깜짝 놀란 후안.

“저기.. 어? 사라졌다.”

남자가 원래 있던 장소에서 없어진 걸 확인 한 후안은 그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남자가 보이지 않자 후안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분명. 피였어요. 주스를 흘린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피가 맞았어요. 그 남자는 혼자서만 기분이 좋아 보였어요. 정말 이상했어요.”

후안의 엄마는 후안이 가리킨 곳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이 웅성이며 시체들을 보고 있는 곳이었다. 

말없이 그곳을 보며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가 후안에게 눈높이를 맞추고는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가 혼낼 때 후안에게 하는 행동이었다. 당황한 후안이 물었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후안의 물음에 엄마는 그대로 품에 안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잘못한 것 없어. 하지만 후안, 넌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야. 조금 있다가 경찰이 오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면 안 돼. 넌 그 사람을 보지 못한 거야.”

후안이 엄마의 품에서 억지로 빠져나와 물었다.

“왜요?”

“그냥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 엄마 말대로 할 거지?”

후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이 없었다. 그는 그저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는 엄마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기만 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하느님이 싫어한다고.”

후안의 입에서 반항이 흘러나오자 엄마가 화를 냈다.

“거짓말하라는 게 아니야 단지 말을, 말을 하지 말라는 거지. 난 후안이 안전하길 원해. 만약 네가 그 사람을 봤다는 걸 경찰에 말하면 그 사람이 너도 찾아서 죽일 수 있어. 엄마는 그걸 원하지 않기에 말을 하지 말라는 거야. 엄마 말 이해했지?”

엄마의 말에 후안은 덜컥 겁이 났다. 그가 다시 남자가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혹시라도 그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까 무서웠던 후안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남자를 찾았다. 

어디에도 남자가 보이지 않자 안심을 했는지 후안이 엄마에게 약속을 했다.

“알았어요. 절대 말하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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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조금 흐른 후 필리핀 현지 경찰이 해변으로 도착했다. 그들은 살인 사건 최초 목격자인 후안과 엄마에게 간략한 경위를 듣고는 비치 의자에 죽어 있는 시신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 경찰이 첫 번째 남자의 주머니를 뒤지자 지갑이 나왔다. 지갑을 열자 신분증은 없었고 현금 또한 없었다. 단 크레디트 카드 여러 장과 회사 출입 카드로 보이는 카드가 보였다. 

경찰이 출입카드를 꺼내 들었다. 오성 알앤디 센터 출입카드였다. 글로벌 기업 오성 마크를 단 번에 알아본 경찰은 카드를 다시 지갑에 넣고 옆에 있는 부하 직원으로 보이는 경찰에게 말했다. 

“한국인 살인 사건이야. 인터폴에 연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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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강북 경찰서 형사 이성모는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나간 상태에서 영동 낚시터에서 시체로 발견됐어. 2019년 김정구 경장도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나간 상태로 같은 낚시터에서 시체로 발견됐지. 둘은 같은 경찰 공무원이고 또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나갔다. 그리고 자살로 급하게 내사 종결이라.. 그 누군가는 8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도 모른다. 선배 어떻게 생각해?”

이희수가 묻자 신영준은 책상에 앉아 서류 작업을 하는 듯 키보드를 두드리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비슷한 구석이 있긴 하네.”

“거 봐. 두 사건 분명 연결 고리가 있어.”

신영준은 이희수의 말에 그녀를 곁눈으로 흘깃 한번 쳐다 보고는 대꾸하기 싫다는 듯 계속 자판을 두드렸다.

-지긋지긋하네. 저 찰거머리.-

신영준이 지금 마음으로 되뇌는 말이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타이핑을 하던 신영준이 갑자기 손을 멈추며 가볍게 한 손의 주먹을 쥐곤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이희수를 불렀다.

“이봐. 이형사.”

“왜요? 선배.”

“그런 공통점으론 연결이 되지 않아. 어디 그런 비슷한 사건들이 한 두 개냐? 단순한 추측만으로 괜한 고생하지 말라고. 너 형사 맞아? 객관적 증거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추리해야지. 자꾸 심증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단 말이야.”

“하지만.. 두 피해자의 신발이 하나씩 벗겨졌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만약 그게 살인범의 사인이라면? 연쇄 살인범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갑자기 신영준이 이희수의 말에 짧게 자른 스포츠 머리를 두 손으로 비벼댔다. 짜증이 잔뜩 났다는 듯 신경질 적이었다. 

그러던 그가 이희수 쪽으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의 시선에 이희수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잡혔다. 

“에휴~”

낮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희수의 책상은 신영준의 책상 옆 책상 건너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 책상에 두 다리를 올려놓고 상체를 의자가 넘어갈 정도로 기댄 후 한 손에 서류를 들고 있었다. 

거만을 넘어 되바라진 자세였다. 저 자세로 대략 1시간을 신영준을 들들 볶아 댄 거였다. 

한편 신영준이 고까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희수는 계속 서류를 보다 이제는 손가락으로 코까지 팠다. 그걸 본 신영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다 둘이 눈이 순간 마주쳤는데 이희수가 깜짝 놀랐다. 그래도 선배는 선배인지라 예의는 갖추려는지 책상 위에 올린 두 다리를 잽싸게 책상 밑으로 내렸다.

그와 동시에 아니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신영준은 무언가 한심하다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이희수 때문에 저러는 것. 누구라도 눈치챌 상황. 이희수 또한 그걸 알고 약간 긴장을 했다. 신영준이 이희수를 다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 글쎄. 자살이라니까. 신발이야 술에 취해 벗겨질 수도 있는 거고. 두 시신에서 모두 혈중 알코올이 0.35가 넘게 검출됐잖아. 그럼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상태야. 그리고 연쇄 살인이기엔 두 사건의 공백이 무려 8년이야. 그 사이의 간극을 매울 사건도 없었고 말이야. 이제 그만 하지. 희수야. 나만 보면 계속 김정구 경장 사건을 주저리 늘어놓는데 나도 들어주기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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