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 김탄!

“뭐? 걸 그룹 또라또라 멤버? 걸 그룹? 케이 팝 아이돌 말하는 건가?”

김탄이 수줍게 대답했다.

“응. 맞아.”

“왜?”

“그야. 좋아하니까.”

“하지만.. 네 여자 친구는 될 수 없잖아.”

박토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김탄이 주눅이 든 듯 웅얼거렸다.

“그.. 그렇지.”

“네 여자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길 바래. 그 사람이 소중한 거니까. 환상을 좋아하지 말라는 얘기야.”

“그래도 예뻐서 좋아할 수밖에 없더라고..”

“김탄.”

박토가 심각하게 부르자 김탄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또다시 주눅이 들어 사과했다.

“응. 미안해.”

“미안할 거 없어. 좋아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거지.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환상을 쫓다 보면 마지막엔 허무함 밖에 없다는 걸 알길 바래. 판타지는 영혼을 좀먹는 것이거든. 네가 걸 그룹 또라또라 멤버 지숙이를 어떤 용도로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는뎁/”

갑자기 김탄이 손으로 급하게 박토의 입을 틀어막았다. 

“형, 그건 아니야. 난 순수해. 그리고 더 이상 지숙이 얘기는 하지 말자. 배경 화면에서 지울 거야.”

김탄의 말에 박토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탄이 박토의 입에서 손을 떼며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

“그래도 죽기 전엔 그렇게 예쁜 여자랑 사귀어 보고 싶어.”

“그건 불가능 해. 네가 잘 생겼거나 키가 크거나 돈이 많거나 똑똑하거나 거기가 크거납/”

김탄이 또 손으로 박토의 입을 급하게 틀어막으며 소리쳤다.

“아. 형! 진짜..”

이번엔 박토의 입을 막은 손을 박토가 떼며 말을 했다.

“걸 그룹 또라또라 멤버인 지숙이를 사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까?”

김탄은 말없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고갯짓을 강하게 느낀 박토가 김탄이 눈치 못하게 픽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히어로가 돼. 그럼 천하의 미인은 다 네 손에 들어오게 될 거야.”

“돈 많은 사람이 아니고?”

“아니. 돈 많은 사람은 돈으로 미인을 사는 거지. 하지만 히어로는 돈 없어도 미인들이 사랑해 주거든. 어떤 게 진실한 걸까? 돈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 돈 많은 사람은 돈이 없어지면 미인들이 떠나지. 하지만 히어로는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기에 영원히 사랑해 주는 거야.”

“대박. 영식이 형이랑 똑같은 소리 하잖아? 그런데 형이 더 깊이가 있다.”

말을 마친 김탄은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금까지의 모태 솔로로 살 게 한 게 어쩌면 미래에 히어로가 되어 아주 많은 미인들의 사랑을 받게 하기 위한 신의 뜻은 아닐까’란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민이 치고 들어왔다. 히어로가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먼 미래의 고민이 생긴 김탄이 박토에게 물었다.

“그러다 죽으면? 일종의 극한 직업인데 아무리 히어로지만 언젠가는 죽잖아. 만약 빨리 죽으면? 히어로가 되어도 빨리 죽어버리면 아무리 예쁜 여자들이 좋아해 줘도 아무 의미가 없잖아? 죽으면 끝이잖아.”

“아니. 네가 뭘 모르는 거야. 한 번 히어로는 영원히 사랑받아. 전설로, 노래로, 이야기로 전해지면서.. 아주 오랫동안 이름을 남기는 거지. 이순신,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칭기스 칸, 알렉산더. 이름만 들어도 설레지 않아?”

“우와, 완전히 역사 속에 인물들이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게 남자라면 한 번쯤 가져야 하는 야망이지 않나?”

“멋지다. 어쩌면 미인들을 얻는 것보다 이게 더 멋진 일 같아. 영원히 사랑 받는 것. 굉장한데?”

김탄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반짝였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지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생기자마자 잃어버린 김탄에게 영원한 사랑의 의미는 새롭게 다가왔다.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이 뭔지 모르는 김탄은 사랑받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며 살았다. 이리저리 휩쓸리기도 했고 손해도 많이 봤으며 그로 인해 마음이 많이 아프기도 했다.

이런 김탄에게 사랑을 영원히, 많은 사람들에게 받을 수 있다는 말은 그의 가슴에 불꽃을 지폈고 이내 가슴 전체에 활활 타올랐다. 그의 눈이 반짝이자 그의 마음을 읽은 박토가 그 불을 더욱 지폈다.

“멋지면 버텨. 그리고 악을 쓰고 부딪히고 또 부딪쳐. 포기하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네가 결정한 바탈의 길을 걸어 가. 고되고 험난해도 그냥 가. 그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야. 크게 잃어야 크게 얻는 법이고 더 낮게 움츠려야 더 높이 뛸 수 있는 거니까.”

김탄은 박토의 말에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굳은 다짐을 하듯 굳게 다문 입술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생각이 바뀐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만약 잘 못 되면? 그래서 반장님처럼 영식이 형이나 순정이 누나나 혹은 형처럼 좋은 친구들이 희생되면? 히어로가 되어도 슬프지 않을까? 후회될지도 몰라.”

“그럼 포기하던가.”

“뭐?”

당황한 김탄이 되묻자 박토는 아예 몸을 옆으로 돌아 누운 체 김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하고 후회하는 게 나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면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해. 넌 다시 태어난거야. 김탄. 네게 예전에 말했던 평범하고 또 안정적인 삶을 살 수는 없어. 이미 판은 짜여 버렸고 또 네가 운명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야. 하지 않겠다고 도망가면 넌 죽을 때까지 도망 다니거나 숨어야 해. 이왕 바탈이 될 거면 훌륭한 히어로가 돼. 그래서 네가 구할 수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살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들도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너와 같은 아픔을 사람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

“응.”

“이름을 남기거나 미인을 얻는 것보다 또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한 거야. 너와 같은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넌 예언대로 반드시 해낼 거야. 넌 바탈이니까.”

“정말 내가 그리고 또 다른 바탈이 미래에 올 악을 물리친다는 예언이 이루어질까?”

박토는 대답을 하지 않고 김탄을 향해 돌렸던 몸을 똑바로 누었다. 천장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깊어졌다.

예언은 모르는 일이었다. 단지 일어났던 일을 예언과 맞춰보며 그 예언이 사실임을 확인할 뿐이었다. 하지만 분명 예언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꼭 그 예언대로 되리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 

박토는 단지 김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파눔의 예언대로 마지막 배달석이 나타나고 또 네가 나타났어. 하지만 미래는 아무도 몰라. 끝을 가 봐야 아는 것이니까.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해. 나였어도 너처럼 불안해하고 부정했을 테니까. 하지만 분명 예언은 일어났어. 그리고 예언이 계속 일어날 거라는 건 사실이야.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말고 네 자신을 믿고 앞으로 가는 거야.”

“하지만 왜 하필 나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내가 특별하게 태어난 것도 아니고 또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그리고 잘난 것도 없는데 왜 내가 바탈이어야 하는지 말이야.”

“탄아.”

박토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김탄이 깜짝 놀랐다. 지금껏 항상 성을 붙여 김탄을 부르던 그가 이름만 불러준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상하고 따뜻하기까지 했다. 영식이 형과는 조금 다른 느낌. 마치 기대도 좋을 듯 또는 어린양 까지 부려도 좋을 듯 진짜 친한 것 같은 그런 느낌.

순간 김탄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그는 마음이 열리는 순간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서로 주고받는 어떤 보이지 않는 길이 서로의 마음에 연결되는 그런 상당히 미묘한 느낌을 받은 김탄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손을 살포시 가슴에 가져다 댔다. 손에까지 미세한 심장 박동이 전해졌다. 긴장할 때 뛰는 심장과는 다른 기분이 좋은 느낌이었다. 

박토가 그런 그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운명이라 그랬지? 바탈 스톤은 너와 공명했어. 그건 우연일 뿐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었겠지. 그 이전에도 바탈 스톤이 떨어진 적은 많아. 그때도 어김없이 바탈이 태어났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어. 이번에 떨어진 배달석이 마지막 배달석이어서 마지막 기회이지만 무조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못해. 다시 말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이야. 또 그와는 반대로 예언대로 네가 그 마지막을 장식할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운명은 네가 만드는 거야. 평범한 너였지만 몸을 받게 되었고 또 우리와 인연이 되어 새로운 운명을 만든 것도 너야. 여기서 네가 주저해 포기해도 그것도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이 모든 걸 다 젖혀 두고서라도 단 한 가지 네가 알아야 할 것은 그 길을 가는 네 곁에는 내가 함께 할 거라는 거야.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 너에겐 능력이 있고 또 나와 월이 있으니까. 날 믿어. 약속할 게. 언제나 함께 할 거라는 거.”

“함께? 언제나?”

김탄이 깜짝 놀라 되묻자 박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탄이 고개를 돌려 어두컴컴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달빛에 천장에 달린 전등의 형태가 어슴푸레 보였다. 언제나 함께 하고픈 사람이었던 반장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순간 울컥 울음이 맺혔지만 이내 스스로 삭혔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자고 있는 마영식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절친 마영식을 보자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박토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친구 박토의 얼굴을 보자 마음에 무언가 차오르듯 포근해졌다. 잃어버렸기에 지키고 싶었다. 무언가를 잃어서 아프다는 건 건 그것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것이었다. 

김탄의 친구들 또 새로운 친구들이 그랬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김탄에게 든든한 지원군이었고 또 혼자 가는 길에 외롭지 않은 동반자였다. 김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난. 지킬 거야. 포기하지 않아. 내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듯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사람들도 지켜줄 거야. 내가 깨지고 산산조각 나더라도 부딪혀 볼 게. 그래야 운명의 끝에서 후회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을 것 같아. 해 볼 거야. 그리고 할 거야.-

다짐을 한 김탄은 다시 박토를 바라보았다. 자고 있는지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렸다. 

김탄은 새로운 여정으로 향하는 동반자인 박토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빙긋이 웃었다. 그의 가슴엔 새로운 사랑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사랑으로.

다시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게 하는 사람들이 없게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 그가 세상에 베풀고 싶은 사랑이었다. 

다시 새로 시작하자. 

아자! 김탄!

*바탈스톤- 영웅의 돌 1부. 2막 끝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곧이어 1부의 끝인 3막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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