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캐의 다짐

미캐는 그녀에게로 다가가서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카페 주인은 자신이 잠들었던 것도 모르고 잠에서 깨자마자 풀린 눈으로 소리쳤다.

“어서 오세요!”

카페 주인이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투로 말하자, 미캐는 주머니에서 구인 광고지를 꺼내 펼쳐 들고는 주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가 난색을 표했다.

“어머. 이런. 어떡하지. 홀은 다 찾는데..”

카페 주인의 아쉬워하는 말은 진심 같았다. 미캐는 순간 카페 주인이 맘에 들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녀는 용기는 없었지만 절박했기에 카페 주인에게 매달렸다.

“개 똥 치우는 것도 괜찮아요. 써 주세요.”

미캐의 굴욕을 넘어선 적극적인 태도가 맘에 들었는지 한 참 고민하던 카페 주인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봐. 학생. 할 일이 생긴 거 같아.”

말을 마친 카페 주인은 바 뒤에 있는 문을 열고 사라졌고 미캐는 그녀의 말대로 얌전히 기다렸다. 

개 한 마리가 다가와 그녀의 엉덩 냄새를 맡자 미캐가 뒤를 돌아보곤 중얼거렸다.

“저리. 안 꺼져. 똥개 새꺄.”

하지만 개는 가지 않고 계속 킁킁거리며 미캐의 엉덩이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기분이 나빠진 미캐가 테이블 딸린 의자에 앉았다. 

미캐가 엉덩이를 감추자 개는 흥미를 잃었는지 다른 개에게 가버렸다. 개가 떠나고 조금 있다가 카페 주인이 나왔다. 

그녀의 손에 커다란 검은색 쓰레기 봉지가 두 개 들려 있었고 미캐가 앉아 있는 자리로 성큼 다가와 테이블 위에 봉투를 올려놓았다.

“찾느라 한참 걸렸네.”

카페 주인은 자리에 앉지 않고 테이블에 올려 놓은 검은색 비닐봉지 하나를 열었다. 회색 털옷을 꺼내고는 비닐봉지는 치웠다. 또 다른 비닐 봉지를 열자 그 안에는 커다란 늑대 인형 머리가 들어 있었다. 머리 옆으로 늑대의 발 같은 것도 보였다.

카페 주인이 늑대 머리를 꺼내 미캐에게 내밀었다. 미캐가 눈을 크게 치켜뜨고 카페 주인을 보자 그녀가 호들갑스럽게 웃으며 말을 뱉었다.

“호호호호. 우리 카페 트레이드 마크야. 귀엽지?”

미캐는 카페 주인의 맘에 들기 위해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정말 귀여운지 자세히 보기 위해 인형 머리를 쳐다보았다.

늑대 인형 머리는 귀엽기보다는 조금 괴팍해 보였다. 화가 난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찢어진 눈에 기다란 주둥이 옆으로 기다란 새빨간 혀가 덜렁거렸다. 

인형 머리를 찬찬히 살펴본 미캐는 카페 주인의 취향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이거 쓰고 돌아다니기만 하면 되는 일이야. 할 수 있겠어?”

카페 주인이 말하자 미캐는 무조건 할 수 있다며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주인은 그런 미캐에게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짓더니 잠시 머뭇거리다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학생.. 시급은 많이 못 줘. 생각보다 편한 일이잖아.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요. 시켜만 주세요.”

“좋아. 오늘부터 우리 식구가 되는 거야? 알겠니?”

미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 주인 말과는 다르게 인형 탈 알바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페 주인은 그 일을 해보지 않았기에 막연히 일의 노고를 상상만 할 뿐이었고 상상한 대로 쉬운 일이라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미캐가 받은 임금은 최저임금 시급에서 30%가 못 미치는 시급이었다. 주휴 수당도 없었고 고용 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또 일을 해야만 했기에 가출 소녀라는 신분도 이용당할 수밖에 없었다. 철저하게 불합리한 계약이었다. 하지만 미캐는 적은 돈을 받아도 좋았다. 더 이상 길이나 건물 화장실에서 잠을 자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었다. 

카페 주인은 잠자리가 없는 가출 소녀에게 카페에서 잠을 자는 걸 허용했다. 어쩌면 그마저도 주인의 돈벌이를 위해 이용했는지도 모른다. 

카페 주인이 퇴근한 후 또 출근하기 전의 개들 돌봄은 오로지 미캐의 몫이었다. 그래도 미캐는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랬기에 미캐는 계속 이용당했다. 

미캐 나름대로 공생관계라 생각해 사실상 받은 것보다 해준 게 더 많았지만 그래도 그냥 참았다. 조금 더 힘이 생기면 제대로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노라마처럼 스친 미캐의 일생. 그것은 미캐를 더욱더 우울의 늪으로 빠지게 했다. 

-쳇. 사람? 사람이 대체 뭔데? 서로 이용하고 괴롭히고 빼앗고 때리는 게? 그러는 게 사람인 거야? 미친. 니들은 대체 뭐가 그렇게 잘나서 사람인 건데? 좋겠네. 그렇게 나쁘게 살고 나쁘게 하는데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하지만.. 그래. 난 괴물이야. 그래도 내가 진짜 괴물이어도 나는 사람이야. 조까. 사람새끼들. 나머지 반이 다르다고 나한테 이렇게 할 이유는 없어.아니. 나는 사람이야. 나는 단 한 번도 남을 이용하거나 괴롭힌 적 없어. 나는 진짜 사람이야. 니들이 괴물이야. 내가 괴물이 아니라 니들이 괴물이라고. 이 괴물 새끼들아.-

미캐는 마음으로 다짐했다. 이곳에서 나갈 수 없지만 만약 나가게 된다면 절대로 그녀의 깊은 내면에 자리 잡은 괴물을 꺼내지 않겠다고..

또 반드시 그녀를 괴물로 치부하며 괴롭힌 자들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특히 은비사는 그냥 죽이지 않을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널 죽여버릴 거야. 나는 네게 이런 고통을 받을 이유가 없어. 내가 태어난 것에 네가 심판을 할 자격이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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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에서 샤워를 마친 은비사가 샤워기 레버를 잠그자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물줄기가 그쳤다. 

손으로 가볍게 얼굴과 머리의 물기를 털어 낸 그가 뿌옇게 김이 서린 거울을 손으로 닦자 물기 먹은 그의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눈이 퀭하니 들어가 있었지만 눈빛은 강렬하게 살아 있었다.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은비사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요리조리 바라보다 한쪽 입을 올리며 씩 웃었다.

그가 샤워 부스 문을 열고 나와 미리 준비해 둔 수건을 집어 들어 머리와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은비사는 전면이 거울로 된 파우더 룸으로 걸어 나와 섰다. 

그리고는 한동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건장한 체구에 다부진 근육이 알맞게 형성된 조각 같은 몸이었다. 은비사 스스로도 멋지고 완벽한 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 가슴에 난 흉터만 빼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은비사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가슴에는 아이의 머리통만 한 화상 흉터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흉터 치료를 했기 때문에 그리 흉측하진 않았지만 눈으로 보기에도 그렇게 매끄럽지는 않았다. 은비사는 흉터를 보다 아쉬운 듯 손으로 한 번 쓱 어루만졌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초인종 소리에 당황한 은비사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오전 1시 30분. 

은비사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빨리 왔네.”

-2시까지 집으로 오라고 한 서리가 30분이나 일찍 온 모양이다. 이러면 조금 불편한데..-

은비사가 서둘러 샤워 가운을 입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조급하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거북했던 그가 다시 중얼거렸다.

“성격 엄청 급하네. 언제 고쳐질지..”

서둘러 그가 욕실 문을 열고 나오자 다행히 초인종 소리는 그쳤다. 대신 거실 한 편에 둔 비사의 전화기에서 메시지 알람이 계속 울려댔다. 

-메시지는 분명 서리가 보낸 거다. 하아~-

짧은 한숨을 내쉰 은비사가 냉큼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역시나 전화기를 들고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 서리가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 상기된 얼굴. 한눈에 봐도 엄청 서두른 듯 달려온 모양새였다. 그녀의 모습에 은비사는 불편한 듯 표정이 차가워졌다. 

“빨리 왔네. 두 시까지 오라고 했잖아.”

은비사의 반응에 한서리는 당황했다. 분명 자신이 빨리 온 걸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입고 있는 샤워 가운을 보고 한서리는 알았다. 

왜 그가 2시까지 오라고 한 건지. 그걸 안 한서리는 살짝 의기소침해졌다. 매사 일 분 일 초 정확하게 움직이는 은비사였다. 만나는 시간도 헤어지는 시간도 언제나 은비사의 일정에 맞춰왔다. 

오늘도 그랬던 것이기에 30분이나 일찍 온 서리에게 보자마자 반가워하기보단 빨리 왔다며 이렇게 작은 핀잔부터 뱉어냈다. 그래도 한서리는 좋았다. 30분이라더 더 볼 수 있었으니까.

또한 그녀 앞에 서 있는 멋진 남자친구의 샤워 가운 입은 모습이 너무 좋다. 은비사의 핀잔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급하게 여민건지 가운 사이로 그의 젖꼭지 하나가 빠져 나온 걸 모르는 것 같은 그의 모습에 한서리는 그저 빙구처럼 웃어본다. 

“헤에~ 그래서 전화를 안 받고 문부터 연 거야?”

“빨리 들어와.”

“어?”

“안 들어오고 뭐해? 빨리 들어오라고 했잖아.”

은비사의 채근에 그녀가 쭈뼛쭈뼛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은비사는 곧바로 현관문을 닫으며 투덜거렸다.

“초인종을 한 번만 누르면 돼지 왜 이렇게 계속 눌러대. 샤워하고 있어서 못 나갔어.”

그런데 이 바보 같은 한서리. 그가 샤워를 마치고 샤워 가운을 입고 있는 걸 정확히 보았음에도 또 그가 샤워를 했다고 말했는데도 물었다.

“어? 샤워를 했다고?”

“2시까지 오라고 했잖아. 그래서 시간 맞춰 씻었지.”

서리가 시계를 보며 멋쩍은 듯 헤벌쭉 웃었다.

“헤헤. 어머, 내가 너무 빨리 왔구나. 미안. 미안.”

“이번만 봐줄 게. 다음엔 시간 약속 잘 지켜야 해. 알았지? 서리야.”

투덜대기만 하다 갑자기 쏟아진 자상한 그의 말에 순간 한서리의 입에서 침이 주룩 흘러내렸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한서리가 침을 닦으려 하자 갑자기 은비사가 손으로 닦아줬다. 

“피곤한가 봐. 침이 다 흐르네. 저번에도 그러더니. 몸이 안 좋아진 건가?”

“어. 호호호호. 요즘 계속 밤을 새우느라 잠을 통 못 잤거든. 외분비 계통에 교란이 온 건가? 호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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