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캐의 과거.

그렇게 미캐가 아침에 눈을 뜨면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녀는 유치원에 가기 위해 분주했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으면 엄마는 그때 미캐의 뒤로 다가와 머리를 빗었다. 그녀는 그것이 시간을 쪼개 쓰는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여느 때와 다르게 양 갈래로 묶은 머리를 땋아 주자 미캐는 기분이 좋아 밥 먹다 말고 방방 뛰어다니다 화장대 앞으로 갔다. 어느새 따라온 미캐 엄마가 말했다.

“좋아? 미캐.”

“응. 좋아.”

“예뻐. 미캐.”

엄마의 말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요리조리 보던 미캐가 엄마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엄마가 더 예뻐. 난 아빠 닮아서 못 생겼어.”

“아니. 예뻐. 세상에서 제일 예뻐.”

순간 어린 미캐가 화가 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이것이 미캐와 엄마의 마지막 대화였다.

못 생겼는데 예쁘다고 거짓말을 한 엄마에게 화가 난 미캐는 유치원 차가 올 때까지 그녀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차에 타고 나서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입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거짓말 싫어.”

이날 이후로 미캐는 지금까지 뒤돌아 엄마를 보지 않은 걸 가장 후회하며 살았다.

그날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미캐는 엄마가 마중을 나오지 않은 것을 보고 엄마가 화가 나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집 안으로 들어온 미캐는 엄마부터 찾았다. 하지만 엄마는 없었다.

여기저기 방문을 열고 엄마를 찾은 미캐는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보고 나서야 엄마가 사라지고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허탈하고 무서웠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누군가가 오길 기다렸다. 저녁이 되면 오는 아빠도 오지 않았다.

넓은 거실에 혼자 있기 무서웠던 미캐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 놀이를 하다 잠이 들었다.

한 밤중이 돼서야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오셨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결에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온 미캐는 아빠를 보자마자 다시 방으로 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그때 등 뒤에서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지는 소리로 아빠가 말했다.

“네 엄마. 너 버리고 도망갔다. 이제는 못 봐. 영원히..”

미캐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거짓말이야.”

미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빠가 소리를 질러도 아빠가 물건을 부숴도 엄마가 슬프게 울어도 울지 않던 미캐는 그날 밤새 울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미캐는 뭘 해야 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을 때 아빠가 세수부터 하라고 말했다.

미캐가 화장실로 가 세면대 거울로 얼굴을 쳐다보다 욕실 문을 열고 가위를 찾아 앞머리를 잘랐다.

삐뚤빼뚤하게 잘린 앞머리는 엉망이었다. 그리고는 세수와 양치를 하고 나오자 아빠가 물었다.

“앞머리 네가 잘랐니?”

미캐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아빠는 미캐를 데리고 다시 욕실로 갔다.

아빠는 머리를 엉망으로 자른 미캐에게 화를 내진 않았지만 엄마 생각이 난다며 미캐의 긴 머리를 검은색 염색약으로 염색을 해버렸다.

밝은 갈색머리였던 미캐는 그날 이후로 계속 까만 머리가 됐다.

밝은 갈색 머리가 보일 때마다 아빠가 염색을 했고 또 미캐가 자라서 혼자 염색할 나이가 됐을 때는 그녀가 염색을 해왔다.

초등학교 때 미캐는 존재감 없는 왕따였다. 친구도 없었고 또 선생님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소위 찐따였던 미캐는 인싸들의 놀림감과 먹잇감이 되었다.

미캐의 수중에 돈이 있으면 그들에게 다 빼앗겼다. 때로는 혼혈아라고도 놀렸다. 대놓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뒤에서 욕했다.

가난하고 공부 못한다며 벌레 취급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고등학교도 그랬다. 학교는 늘 미캐에게 고통을 주는 곳이었다. 그래서 미캐는 학교가 싫었다.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아빠는 미캐보고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나왔다. 물론 아빠가 화가 나서 한 빈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냥 집을 나왔다.

미캐는 집이 정말 싫었다. 그녀는 집을 벗어나는 걸 새로운 신세계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미캐라는 자신의 허물을 벗을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집을 나와 거리로 나온 미캐는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돈을 벌고 힘이 생기면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고 또 엄마도 빨리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곧바로 일자리부터 구하기 시작했다.

사회 구성원 중 최약체 중 하나인 성인도 아이도 아닌 청소년 미캐에게 손을 뻗은 건 30대 유부남 아저씨였다.

처음에 그 남자는 밥과 옷을 사주고 잠자리를 제공하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인 척 행동했다. 미캐는 그 아저씨가 좋았다. 그 아저씨한테 미안했지만 아빠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원하는 건 다른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캐에게 찾아온 아저씨는 이번엔 색다르게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미캐는 아저씨를 믿고 따랐기에 선뜻 따라나섰고 결국 동해 바다로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날 밤 모텔 객실을 잡은 두 사람은 한 방에서 지냈다. 처음엔 잠만 자는 건 줄 알았지만 시간이 깊어지자 아저씨의 손이 미캐를 더듬기 시작했다.

놀란 마음에 소리를 질렀지만 아저씨의 투박한 손이 입을 틀어막았다. 무서워서 눈물이 흐르기보단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미캐가 몸부림 치며 입을 틀어막은 아저씨의 손을 물어뜯었다. 약간의 틈이 보이자 그녀는 그 남자의 사타구니를 발로 걷어차고 모텔을 빠져나왔다. 그제야 미캐의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날 미캐는 다행히 그 남자의 마수에 걸리지 않았지만 대신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가슴에 붕대를 감은 체 남자 아이처럼 하고 다니는 걸로 그 첫 경험을 마무리했다.

미캐는 얼핏 보면 남자아이 같았다. 조금 왜소한 남자아이. 그렇게 남자아이로 다시 태어난 미캐는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을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볼품없는 외모에 남자로서는 작고 왜소한 체구로는 거칠고 힘든 일을 구할 수도 없었고 학력도 중졸에 특별한 기술도 없었던 그녀였기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구직을 하기 위해 구인 광고를 검색하며 찾아간 곳은 한 커피 전문점이었다.

커피 전문점에 도착한 그녀는 겁이 나고 떨렸지만 살아야 했기에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행히 커피숍은 오픈 시간 전이라 손님은 없었다.

대신 오픈을 준비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몇몇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모두 미캐와 비슷한 또래 이거나 나이가 조금 더 많아 보였다.

미캐는 그들을 보고 자신도 일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들떴다. 그녀는 한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여기 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가 커피 전문점 점장에게 미캐를 데려갔다. 점장은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키가 멀대 같은 아저씨는 조금 깐깐해 보였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미캐가 공손하게 인사를 한 후 점장에게 입을 열었다.

“아까 전화드렸는데 면접을 보러 왔어요.”

점장은 그녀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모든 평가가 끝났다는 듯 성의 없게 대꾸했다.

“이미 알바 구했어. 미안한데 다른 데로 가보렴.”

“네.”

짧게 대답을 한 미캐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커피 전문점을 나왔다. 나와서 뒤를 돌아보자 점장이 미캐를 점장에게 데려간 아르바이트생에게 뭐라고 화를 내고 있었다.

아마 그 알바생 선에서 커트를 시키지 않고 데려온 것에 대한 질책이었던 것 같았다.외모 때문인 게 분명했다. 미캐는 늘상 있는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가 발길을 돌리려 할 때 유리문에 붙어 있는 구인 광고지가 눈에 들어왔다.

<알바 구함. 용모 단정. 가족같이 성실하게 일하실 분 언제든 환영합니다.>

그녀가 구인 광고지를 노려보다 훅 뜯어 손으로 구기며 중얼거렸다.

“칫. 거짓말.”

유리문 너머로 점장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미캐는 구긴 종이를 점장을 노려보며 유리문에 툭 던졌다.

그리고는 바로 발길을 돌려 걸었다. 조금 쌀쌀해진 날씨에 바람이 불어 추웠다. 미캐가 옷깃을 여미고는 팔짱을 꼈다.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걸어가다 어디선가 바람에 떠밀려 온 전단지 한 장이 미캐의 발에 걸렸다.

미캐가 성가시다는 듯 발로 툭 차자 전단지가 뒤집혀 날아가다 다시 바람에 되돌아와 이번에는 다리에 붙었다.

신경질이 나 전단지를 구길 심산에 집어 올리자 전단지에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알바 구함. 늑대 카페. 가족 같이 일하실 분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미캐가 전단지를 구기며 중얼거렸다.

“맨날 가족 같이 일할 사람을 찾는데. 거짓말이면서 대체 이런 건 뭐 하러 써. C팔.”

미캐는 구긴 종이를 집어던지려다 순간 멈칫했다. 다시 종이를 펴 든 미캐는 나머지 문구를 읽었다.

<외모 나이 학력 안 봅니다. 그냥 성실하시면 돼요.>

미캐는 그 문구 아래로 그려져 있는 약도를 살폈다. 약도를 본 미캐는 전단지를 반듯하게 세 번 접어 주머니에 넣고는 약도 그려진 늑대 카페를 찾아갔다.

늑대 카페는 대학로 번화가 안 쪽으로 있는 건물 2층에 있었다. 계단으로 오르는 동안 미캐는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자리를 구하고 말거라고 다짐을 했다.

늑대 카페 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일단 주변을 살폈다.

입구에 커다란 개 모형 두 개가 문 옆에 놓여 있었고 문에는 개 캐릭터 스티커가 도배되다시피 붙어 있었다.

미캐가 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카페 안을 돌아다니는 개들이 보였다.

순간 겁을 먹었지만 이렇게 개들을 풀어놓는다는 건 유순하게 길들여진 개들이라는 생각에 곧바로 안심을 했다.

늑대 카페는 샤를로스 울프독, 체코슬로바키안 울프독, 루포 이탈리아노, 타마스칸 독 등 사실상 늑대의 피가 섞인 늑대 닮은 개들을 풀어놓은 일종의 이색 커피숍이었다.

견종에 대해 자세히 알리없는 미캐의 눈엔 그저 개로만 보였기에 ‘신기하게 생겼네’라며 그 개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한쪽 테이블에서 졸고 있는 화려하게 치장한 40대 중년의 아줌마가 눈에 들어왔다.

미캐는 그녀가 한 눈에도 이 카페의 주인임을 바로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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