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인간인 줄 알았는데 쓸모가 있었네.

바탈의 증명.

히어로가 될 자 김탄.

마영식과 고순정 시선이 의구심으로 가득 차자 김탄은 한 손에 들고 있던 수석을 두 손으로 맞잡았다.

그러자 건넌 방에 모여 있는 KKJ 회원들이 김탄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슬금슬금 하나둘씩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김탄에게 향하자 김탄은 자신감에 넘치는 표정으로 그들을 둘러보다 박토와 눈이 마주쳤다. 박토는 김탄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네 능력을 한 번 보여주고 모든 의심을 잠재우라는 듯.

그는 지금 제가 초능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김탄은 그런 박토에게 ‘내 힘을 보여줄 게 걱정하지 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손에 들린 수석을 바라보며 집중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거실에 모인 사람들이 뻥이라고 생각했는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리 깔아주면 잘 못하는 부끄럼 많은 김탄은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증명할 거다. 비웃은 걸 부끄럽게 만들어 줄 게. 나는 세상을 구할 히어로 김탄이야!-

김탄은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돌에 집중을 했다. 순간 단전에서부터 어떤 강력한 에너지가 솟구쳤다.

에너지는 이내 팔과 손으로 옮겨졌고 그는 지금 바로 이때 돌을 깰 수 있다는 걸 알아챘다.

빠짝!

소리가 나며 김탄의 손에 들려 있던 어른 머리통만 한 수석이 가루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걸 본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힘이 있다는 걸 증명한 것에 오운족과 바룬족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믿을 수 없는 사실. 마치 마법 같은 일. 고순정이 마영식에게 떨리는 음성으로 더듬거렸다.

“도.. 도.. 돌.. 덩이가.. 바스러졌어.”

마영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눈을 비벼댔다. 그러다 그가 바닥에 떨어진 돌조각 중 가장 큰 돌조각을 하나 주워 들었다. 그러더니 그 돌 조각을 바라보다 갑자기 김탄이 한 것처럼 손으로 팍 쳤다.

“아야!”

마영식의 비명소리에 박토가 비웃었다.

“훗~ 돌이 손으로 친다고 부서질 것 같아? 마 영식 군.”

마영식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 그는 지금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정신마저 몽롱해져 왔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손으로만 돌을 가루로 낼 수 있는지. 난감한 듯 말 못 하고 황당한 얼굴로 서 있기만 하던 마영식이 김탄에게 물었다.

“이럴 수가.. 탄아. 그.. 그게.. 지금 그게 뭐야?”

그런데 갑자기 코피가 답을 했다.

“슈퍼 파워.”

“뭐?”

무슨 말인지 못 들은 듯 마영식이 되묻자 이번에는 김탄이 답했다.

“코피 형 말이 맞아. 슈퍼 파워. 바로 초 능 력.”

초능력이라는 말에 박토의 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침묵했다. 놀라지도 부러워하지도 또 부정하지도 않았다.

영화나 만화에서나 보던 초능력이 실재한다는 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그들의 침묵은.. 어색함과 낯섦음 때문이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세계에서 살던 사람들에게는 초자연적 힘을 마주했을 때 신기함보다는 두려움부터 느낄 것이다.

다르다는 것.

구분이 되는 것.

그로 인한 거부의 감정들.

어쩌면 이들은 별 볼일 없어진 것에 대한 확인에 침묵으로 응한 것일지도 모른다. 새로움과 다름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이해와 관용도 마찬가지..

어색한 침묵이 불러온 불편함.

오운족과 바룬족은 익히 들어 왔었고 또 바라던 일이지만 그 이외에 사람들에게는 그저 불편할 뿐인 이 상황에 박토는 김탄부터 살폈다.

역시 그는 의기소침해 있었다. 일단 박토는 거실로 나와 있는 KKJ 회원들을 다시 건넌 방으로 보내 버렸다.

그리고 넋이 나간 듯 말없이 서 있기만 하는 고순정과 마영식을 다시 소파에 앉혔다.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파눔의 예언과 바탈의 유래, 그리고 예언을 지키는 자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

.

.

오랜 시간 이야기를 들은 고순정과 마영식은 시간이 지나며 모두 이해한다는 듯 표정이 편안해졌다. 즉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박토가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김탄에게 있었던 일들과 신우 프로텍이 폭파된 원인을 설명하고 나자 마영식은 분노를 넘어 격분했다.

마영식은 마치 테이블이 파이온인 것처럼 주먹으로 쾅 내리치며 소리를 쳤다.

“이런, 나쁜 놈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알을 부라리던 그가 순간 건넌 방에 모여 있는 KKJ 회원들을 보며 소리쳤다.

“야! 니들도 다 들었지?”

KKJ 회원들은 그렇다는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하게 얼굴이 일그러진 마영식은 정말로 대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가 그의 분노의 마음을 표출하듯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허공에 대고 다시 소리를 쳤다.

“다 죽여 버릴 거야! 나쁜 새끼들!”

“너희들은 못 죽여. 영식 군이 아무리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해도 그 놈들과는 상대가 안 돼.”

갑자기 자신의 각오에 초를 치듯 박토가 말하자 영식이 박토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지?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으라는 거야? 대체 어떻게 해야 그놈들을 조져버릴 수 있는 거냐고?”

흥분한 수소처럼 발광하고 있는 마영식에게 박토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오기로 치기로 혹은 감으로 그들을 대적하면 안 돼. 그들은 무자비하고 능력 있고 또 똑똑해. 그리고 실력도 뛰어나지. 너희들의 방법인 다구리, 혹은 무모함 그리고 분노와 열성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그 새끼들을 없앨 수 있는 건데?”

“김탄 같은 초능력을 가져야 해. 아무나 못 가지는 능력. 오직 바탈만 가질 수 있는 능력 말이야.”

박토의 말에 영식이 실망한 듯 중얼거렸다.

“그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네? 초능력이 없으니까.”

“아니. 할 게 있어. 싸우는 것 대신..”

마영식이 호기심을 보이며 되물었다.

“싸우는 것 대신? 뭐지?”

“도와주는 것.”

마영식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러자 박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싸우진 못해도 대신 도와줄 수는 있어. 영식 군.”

“뭘 하면 되지? 뭘 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게 되는 거야? 난 탄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그리고 반장님의 복수도 하고 싶고. 또 우리 회사를 폭파시킨 놈들에게 똑같이 되갚아 주고 싶어. 내 터전을 없앤 거니까.. 그리고 우리 탄이를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 거야.”

박토에게 마영식의 진심이 전해지는 이 순간. 그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저런 게 의리지. 또 진정한 친구이고. 그렇게 힘이 센 세력이 있다는 걸 아는데도 불나방처럼 친구 편에 선다는 것. 같이 죽어도 같이 죽자 또 같이 살아도 같이 살자. 부럽네.. -

박토는 불현듯 과거의 일이 떠올랐고 또 그의 절친이었던 오운족 아수하와 아이신의 배신의 아픔이 다시 생각났다.

박토가 옛 친구였던 아이신과 아수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괜히 쳐다봤다.

이 상황에 또 이런 마영식을 본다면 저들은 당연히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하지만 오운족은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멀뚱히 박토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순간 화가 치민 박토가 그들을 향해 모든 감정을 배설하듯 소리쳤다.

“친구라는 건 이런 거야! 서로 돕는 것! 그리고 배신하지 않는 것!”

그제야 꿔다 논 보릿자루 같이 어색하게 있던 오운족이 얼굴을 붉혔다. 이들이 얼굴을 붉힌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김탄과 마영식의 끈끈한 우정을 볼 때마다 배신자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고, 둘째로 자꾸 20년 일을 들먹이는 박토의 집요한 집착 같은 원망이 듣기 싫어서였다.

싫은 소리를 계속 들으면 정말 잘못을 한 당사자로도 화가 나는 법. 하지만 오운족은 그대로 화를 삭였다. 우선 그들은 이 집에서 쫓겨나면 안 된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배달석 사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라도 박토의 화가 풀린다면 그러니까 그의 상처가 아문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조금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박토.”

아수하가 우물거리며 사과를 하자 박토는 들었어도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그로 인해 아수하는 지금 아프다. 하지만 그저 참는다.

박토는 마영식에게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돕고 싶다고 했지”

마영식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토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도와줄 수 있는 건 바로 바이크를 타는 거야.”

순간 짱구 눈이 된 마영식. 이거라면 식은 죽 먹기다. 정말 쉽고도 쉬운 일. 또 그가 가장 잘하는 일.

“뭐야? 그거라면 껌이지. 난 또 어려운 걸 부탁할 까 걱정했었는데.”

“좋아. 그거면 됐어. 나중에 바이크를 타라고 할 때, 그때 너는 바이크를 타면 돼.”

“알았어. 말만 해. 언제든지 바이크를 타 줄 테니까.”

알앤디 센터에서 바탈을 구해 탈출을 할 계략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박토는 지금 날개를 다는 기분이었다. 우연히 굴러들어 온 돌인 마영식이 천군만마 그 자체였다.

박토가 다시 마영식에게 입을 열었다.

“혹시 너희들 중에 승합차를 구할 수 있나?”

마영식에게 질문했는데 갑자기 고순정이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승합차라면 여러 명이 타는 것?”

박토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순정이 다시 물었다.

“어떤 걸 원해?”

“스타렉스나 카니발 혹은 봉고차도 괜찮아.”

“걱정하지 마. 24시간 풀 대기할 수 있는 차가 있으니까.”

박토의 눈에 고순정이 렌터카 사장님의 딸 같이 보이는 이 순간.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생각한 박토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모든 게 일사천리다. 가자!-

이 집에 발을 들인 이래로 박토가 저렇게 해맑은 표정을 처음 보는 고순정과 마영식.그의 기쁨에 그들 또한 미소가 어렸다.

하나, 지금 이순간 가장 기분이 좋은 사람은 김탄이었다. 그가 박토에게 갑자기 자랑을 했다.

“내 친구들 좋지?”

박토가 말없이 부럽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탄이 다시 한 번 더 자랑을 했다.

“우리는 진짜 친구야.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언제나 함께 하는 진짜 친구. 헤헤.”

말을 마친 김탄은 기분이 좋았는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싱글벙글 웃어댔다. 그런 그에게 박토가 심각하게 물었다.

“하지만 또 부탁할 게 있는데.. 네 친구인 마영식이 들어줄까?”

“말해 봐. 영식이 형은 들어줄 거야. 내 절친이니까.”

말을 마친 김탄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마영식을 쳐다보았다.

역시 마영식은 ‘모든 걸 다 들어줄 테니 말만 하라’는 듯 박토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토가 건너 방에 있는 KKJ 회원들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쟤네들도 필요한데..”

김탄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KKJ 회원들 모두를 데리고 알앤디 센터로 가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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