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두들 내가 히어로라는 걸 믿지 않지?

빡!!!!

순정이 말을 마치자마자 어디서 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을 보자 지하실에서 나온 아이신이 벽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걸 본 박토가 불 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지금 우리 집 벽에 구멍을 낸 거야? 미쳤어? 아이신.”

명백히 아이신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남의 집 벽에 구멍을 냈는데도 그는 참으로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 박토. 나는 도저히 저 소리를 듣고 참을 수가 없었어. 진찌 히어로인 바탈을 비웃고 있잖아?”

아이신이 말을 마치고는 벽에 들어 가 있는 주먹을 빼자 부서진 석고보드의 잔해들도 따라 나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그걸 보고 있던 박토의 뒤통수에 동맥경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팍 터진 느낌이 드는데.. 참을 수 없음에 그도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아이신에게 버럭 소리를 쳤다.

“너한테 한 소리도 아닌데 왜 네가 성질을 부리는 건데? 애꿎은 남의 집 벽이나 부수고 말이야!”

박토의 핀잔에 아이신은 얌전히 앉아 바닥에 떨어진 석고보드 잔해들을 치우며 구차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박토.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그만.. 바탈을 무시하는 소리를 들으니까 화가 멈추지를 않았어. 마치 우리까지 조롱하는 거 같아서 너무 힘들었거든.”

박토는 아이신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남의 집 벽을 부순 건 용서가 안 된다.

“빨리 깨끗이 치우기나 해!”

불 같은 박토의 성화에 아이신은 서둘러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해! 모두!”

모두가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분노의 오라를 내뿜는 아수하가 서 있었다.

옥상에서 언제 내려왔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기세를 아끼기 위한 서치 라이트를 끄고 온 게 분명해 보였다.

아무튼 거실에 있던 모두가 그녀가 왜 갑자기 소리 지르고 또 왜 분노의 오라를 내뿜는지 알 수가 없어 의아해 할 때 그녀가 냉큼 고순정과 마영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다면 아수하도 그녀의 오빠 아이신처럼 마영식과 고순정에게 분노한 게 맞다.

정말 그런 듯 마영식과 고순정 앞에 다가와 선 아수하가 그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무섭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진짜야! 바탈은 진짜라고! 김탄은 히어로야! 아직 각성하지 못했지만! 진짜 히어로가 될 사람이라고! 모두 비웃는 거 그만 해야 될 거야!”

자꾸 바탈이니 히어로니 이상한 소리만 하며 윽박지르는 걸로는 절대 고순정과 마영식을 이해시킬 수 없었다.

각성은 또 뭐고?

마영식과 고순정은 어이가 없어 두 눈만 끔벅거리다 서로 당황한 체 아주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건넌 방에 있는 그들의 형제, KKJ 회원들을 쳐다보았다

마치 ‘우리만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냐?’라는 눈빛으로..

역시 KKJ 회원들 또한 마영식과 고순정과 다르지 않다는 듯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표정과 행태에 아수하가 더욱더 화가 났는지 또 소리를 쳤다.

“우리는 예언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그리고는 갑자기 박토의 팔을 잡아끌어 앞에 세워 놓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시 소리쳤다.

“얘도 예언을 지키는 자고!”

모두가 그녀의 말에 얼빵한 표정만 짓자 이번엔 어느새 아수하 옆으로 다가 온 아이신이 소리쳤다.

“우리는 만년에 걸쳐 파눔의 예언을 지켜왔어! 그 고통을 너희들이 알기나 해!”

“맞아. 그건 우리의 시조이신 파눔의 좌청룡 오운님을 모욕하는 거야!”

대체 뭔 소리래? 이상한 이들의 말에 거실 일대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그 침묵은 조금 전의 황당함이 아닌 무언가 싸한 공포?

이들보다 더 당황한 건 김탄이었다.

정말 바탈이니 파눔이니 이 모든 사실은 아주 진실되게 진정성 있는 말투로 말해도 믿을까 말까한 얘기들을 그저 맞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오운족 때문이었다.

이건 뭐, 수습불가 상태 같다는 생각에 김탄이 절망에 빠진 채 고개를 숙이자 마영식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오운족과 바룬족을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뭐야? 니들 돌았어? 전부?”

고순정 또한 무서웠는지 옹알댔다.

“왜.. 왜 이래? 정말 무섭게..”

일단 마영식은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분명 아이신과 아수하가 뱉은 말은 한국말인데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예언이라니.. 파눔 신화의 파눔은 또 뭐고?

마영식이 오운족을 다시 훑어보았다. 정말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입만 열면 이상한 소리만 한다.

순간 그의 뇌리에 꽂힌 단어. 정신이 돈 집단. 사이비 종교 숭배자들! 마영식이 슬그머니 고순정의 손을 꽉 잡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김탄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김탄. 일어 나. 여기 이상해.”

한편 김탄은 난처하기만 했다. 마영식과 고순정은 그가 바룬족을 처음 봤을 때 반응과 똑같았다. 마영식의 오해에 마음이 다급해진 김탄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진짜야. 영식이 형. 파눔 신화 알지? 형. 그 파눔 신화에 나오는 삼신 중 하나인 갈날의 힘을 내가 가지고 있어. 내가 그 갈날의 현신이거든. 진짜야. 내가 히어로라고.”

김탄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영식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게 하다 하다 채무 독촉 때문에 돌았나?-

뭐 이런 표정으로 김탄을 바라만 보다 드디어 뭔가 생각났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탄아. 너 혹시.. 그때 머리를 다친 거야? 회사에서 기절한 것 때문이야?”

김탄은 일단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아니며 멀쩡하다는 뜻. 그런 그가 무언가 무거운 한숨을 가볍게 내뱉고는 영식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웃거나 놀라거나 하지 말라고 했던 거야. 믿기 힘든 사실이고 또 놀랄 게 뻔했으니까.”

이 정도 말하면 믿을 법 한데.. 도무지 믿을 수 없었는지 마영식과 고순정은 아무 대꾸조차 없었다. 그들은 지금 초 극도로 겁을 집어 먹은 모습.

마치 정신 병원에서 집단 탈출한 자들을 보듯 김탄과 바룬족 그리고 오운족을 벌벌 떨며 둘러보았다. 심각하고 또 영혼이 털린 얼굴이었다.

이런 고순정과 마영식에게 너무나도 답답했던 오운족 아수하가 그들을 이해시키려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파눔의 왼팔 오운의 후손들이고, 박토는 파눔의 오른팔 바룬의 후손이야. 미래에 일어날 예언을 지키는 자들이고 또 김탄은 그 예언 속의 나오는 바탈이야. 앞으로 다가올 악마를 물리칠 주인공이지.”

그럴싸한 아수하의 말에 반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파눔의 오른팔이니 왼팔이니, 이런 허무맹랑한 망상 같은 이야기를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걸 증명하듯 아수하의 말은 마영식과 고순정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한편 간만에 지적으로 말한 아수하를 뿌듯하게 생각한 그의 오빠 아이신.

대단한 그녀의 지적 능력에 감탄한 듯 그녀의 손을 하늘로 추켜 올리자 그녀가 아이신을 돌아보았다.

‘이제 내가 아는 척 좀 할 게.오빠도 좀 멋있고 싶다.’

이런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아수하는 마치 자리를 깔아주듯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럼 판이 깔렸으니 말을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아이신은 말을 하지 않고 고순정과 마영식을 그냥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기만 했다. 아마도 그가 진정성을 가진 사람임을 나타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목을 좌우로 꺾으며 뚜둑 소리가 나게 두 번 움직였다. 도대체 이 제스처는 왜 하는 것일까? 힘의 과시인가? 아님 반기를 아예 들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협박용인가?

그의 그런 행동에 얼이 빠질 대로 빠져 버린 마영식과 고순정은 여전히 벌벌 떨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아이신은 그 이상한 행동을 하고 난 후 그들에게 마치 강제로라도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겠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힘을 잔뜩 주고는 말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믿기 힘들겠지만 파눔 신화는 사실이야. 그리고 여기 김탄도 그 신화 속에 나오는 삼신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우리는 배달석 지킴이라고 해. 이번에 운석이 떨어진 건 다들 알고 있지? 바로 그 운석 속에 무기가 들어 있다.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의 힘을 가진 무기야. 그걸 찾아서 김탄에게 주는 게 우리의 사명이고 할 일이다. 왜냐하면 우린 오운족이니까.”

정말 그럴싸하게 설명을 했지만 이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고순정과 마영식은 겁을 더 집어 먹은 듯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한편 박토는 오운족 때문에 머리가 아파왔다.

차분하게 차근차근 알아듣도록 설명해도 모자랄 판에 기승전결 축약식으로 자기 잘난 소개를 한 아이신과 아수하 때문이다.

그가 진짜 머리가 아팠는지 제 손을 머리에 가져다 대자, 그때 고순정이 마영식의 귀에 속삭였다.

“여기 이상해. 자기야. 다 미친 것 같아.”

-순정이의 말이 옳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허무맹랑한 소리를 할 수 있는가?-

마영식은 순간 화가 났다.

“뭐야? 너희들 단체로 약 빨았어? 왜 이상한 소리만 하는 거지? 순정아! 여기 더 있으면 우리도 미칠 것 같아. 김탄! KKJ. 여기서 나가자!”

마영식는 고순정을 잡아끌며 밖으로 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박토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 기다려!”

마영식이 박토를 향해 몸을 돌리자 그가 갑자기 어디서 났는지 모를 어른 머리통만 한 돌을 영식에게 던졌다.

집안에 장식용으로 쓰는 수석이었다. 순간 깜짝 놀란 마영식이 본능적으로 순정을 끌어안고 몸을 움츠렸다.

“으아아아아악!”

겁에 질린 마영식의 고함소리가 집을 다 부술 듯 휘몰아쳤다.

그렇게 상당한 고함소리가 지속되고..

분명 계산상 돌에 맞았어야 할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는 걸 알아챈 마영식이 슬며시 눈을 떴다.

살아 있음에 안도한 마영식은 돌이 어디로 떨어졌는지부터 살폈다. 수석은 김탄의 손에 들려 있었다. 마영식이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어휴. X팔. 깜짝 놀랐네. 난 또 나한테 던지는 줄 알았잖아.”

그런 마영식에게 김탄이 갑자기 소리쳤다.

“내가 이 돌을 가루로 만들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마영식과 고순정은 그저 미친 사람 쳐다보듯 김탄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정말 미쳤는지 김탄은 허허실실 웃고 있었다. 정말로 돌을 가루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마영식은 그가 정말 걱정이 됐다.

“탄아.. 너.. 정말 괜찮은 거야?”

“응. 난 멀쩡해. 자 모두들 내가 바탈이라는 걸 증명할 테니까 잘 봐.”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