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히어로야?

박토의 입에서 부엉이의 살계(殺鷄)에 대한 끔찍한 증언이 쏟아졌지만 아수하는 믿기 싫었다. 이렇게 귀여운 부엉이가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아수하가 울먹이자 박토가 다시 말을 뱉었다.

“너희들. 내가 시키는 대로 한다고 했지?”

배달석을 사수해야만 하는 오우족인 아수하와 아이신은 지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정말 마지못해 억지로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그 꼴을 보고 또 배앓이 꼴린 박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신. 너는 당장 부엉이를 도로 갔다 놔. 그리고 아수하는 옥상에 올라가서 서치 라이트 좀 꺼 줘. 지금 당장. 전기세를 아껴야 하니까..”

바룬족 임시 노비 아수하와 아이신은 정말 꼭두각시처럼 그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혼 없는 로봇 같은 동작이었고 또 속도도 상당히 느렸다.

정말 1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무려 5분에 걸쳐 부엌에 난 쪽문으로 간 아수하.

또 부엉이를 안고 지하실로 통하는 문을 여는데 1분도 안 걸리는 일을 무려 5분에 걸쳐 여는 아이신.

그 와중에 부엉이는 아이신의 품에 안겨 샛노란 눈으로 박토를 노려보고만 있었다.그 모습이 섬뜩했던 박토였지만, 부엉이에게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 같이 노려봤다.

마치 ‘너는 내가 죽이겠다’는 듯한 부엉이의 집요한 시선을 5분이나 받아 낸 박토는 부엉이가 지하실로 사라지자 탈진할 것만 같았다.

“닭 도둑놈 새끼.”

기진맥진 그가 소파에 주저앉아 한숨을 돌렸다.

이런 오운족과 바룬족의 별일 아닌 티격태격을 지켜보았던 마영식이 갑자기 김탄 옆에 찰싹 붙고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런데 탄아. 저기 저 사람들은 누구길래 너를 납치한 거지? 회사가 폭파됐을 때 다 봤어. 누구야? 저 사람들. 평범해 보이지가 않아.”

“아이. 참. 아까 얘기했었잖아. 날 구해준 사람들이라고.”

“진짜야?”

영식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묻자 김탄은 이제 짜증이 났다. 대체 왜! 몇 번을 아니라고 얘기해도 의심을 하는지..

“그래. 진짜 날 구해준 거니까 그렇게 의심할 필요 없어. 토 형이 겉은 무뚝뚝해 보이고 좀 괴팍해도 진짜 좋은 형이야.”

“나보다 더?”

이건 질투다. 영식의 토라진 말에 김탄은 살짝 당황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가 박토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영식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니. 그건 아니야. 형이 더 좋아.”

김탄의 대답에 곧바로 잇몸이 다 보일 정도로 소리 없이 웃는 마영식.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거리던 그가 순간 박토와 눈이 마주치자 웃음기를 가셨다.

지금 그는 아직도 박토를 의심 하는 중.

큰 키에 날카로운 눈매. 아주 위압적인 포스를 풍기는 박토는 마영식을 때리고 지하실에 감금시킨 사람이었다.

지하실에 갇혀 있던 생각에 다시금 눈물샘이 발동하는 마영식은 김탄의 말을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김탄은 지금 속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를 보면 열은 안다. 즉! 박토는 덫에 걸린 사람을 줘 팼던 정신 이상한 사람이 맞다.-

질투인지 기우인지 아무튼 이 생각이 든 마영식이 또다시 김탄의 귀에 속삭였다.

“야. 원래 저 사람 사채업자 아니었어? 너 그때 저 박토 때문에 울고 그랬었잖아. 그런데 이제는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내가 믿을 거 같아? 혹시 너 세뇌 당했거나 혹은 무서워서 내게 그렇게 말한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해. 형이 구해줄 게.”

사람은 한 번 믿으면 그 속성을 끝까지 가져가려고 하는 속성이 있다. 마영식은 박토를 아주 나쁜 사람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깨부숴야 되나? 김탄은 일단 이렇게 말해 본다.

“아이고. 참. 비슷한데 지금은 아니야.”

“그런데. 탄아. 왜 너를 못 움직이게 붙잡고 있었지? 저기 아이신과 아수하가 널 붙잡고 있던 거 창문으로 몰래 다 봤거든. 너는 막 소리를 지르고 그러더라? 그런데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아이고. 그거는/”

김탄은 말문을 닫았다. 정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초능력을 가져 폭주하려던 걸 막기 위해 그랬다는 걸 설명하기가 참 곤란했고 난처했다.

그런데 마영식은 김탄이 우물쭈물 말 못 하고 있는 모습에 불길함을 느꼈다.

-저건 분명 난처하다는 뜻. 아마도 살려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이러니까 내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지. 너 사실대로 말해. 대체 저 인간에게 어디까지 장악당한 거야? 보통 사이비 종교에 빠지면 너처럼 변하더라.”

“아우. 참. 아니라니까.”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러데 왜 말을 못하지? 어째서 널 붙잡아 둔 거냐고?”

영식의 다그침에 김탄 대신 보다 못한 박토가 답을 했다.

“그건 김탄이 폭주를 할까 봐 그랬던 거야.”

“뭐? 폭주? 술? 주사였던 거야? 그럼?”

영식이 깜짝 놀라 되묻자 김탄이 ‘왜 쓸데없는 걸 말하냐’라는 듯 박토를 눈으로 한 번 흘기더니 영식에게 둘러댔다.

“아니야. 영식이 형. 나중에 얘기해 줄 게.”

-이건 분명 무언가 숨기는 거다. 친구끼리 이러기냐?-

화가 난 마영식이 성질을 내며 폭발했다.

“야이 새꺄! 우리 사이에 이러기냐? 우리 절친 아냐? 말해! 폭주할까 봐가 대체 뭐냐?”

마영식의 폭발로 거실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또 그런 그의 모습을 보자니 그냥 둘러댈 수도 없고 또 아무것도 아니라며 무마할 수도 없어 보였다.

모든 걸 해결해야 마영식의 화가 사라질 것 같다 생각한 김탄이 애절한 표정으로 박토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비밀을 사실대로 얘기해도 되냐는 무언의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박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하지만 김탄은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가 만년 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한민족 창세 신화 속의 파눔에게서 자신이 바탈로 선택 받아 초능력을 얻게 됐는지,

또 이런 얘기를 함으로써 이걸 들은 다른 사람들의 충격을 어떻게 최소화 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한 김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 지금부터 이야기는 진짜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랄 이야기야.”

불 같이 화가 났던 마영식은 이실직고를 하려는 김탄 때문에 조금 진정이 되었다.

“형한테 다 말해. 무엇을 숨기고 또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내가 네 절친으로 또 네 형으로서 알아야겠다. 너와 나는 그냥 보통 사이가 아니야. 피로 맺은 형제보다 더 끈끈한 사이라고.”

“그럼 정말 놀라면 안 돼?”

마영식이 알았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탄이 말했다.

“나는 바탈이야. 폭주는 내가 바탈이라서 그랬던 거야.”

김탄의 말을 들은 마영식은 표정부터 변했는데, 마치 레몬을 먹었는데 신맛이 안 나서 ‘이거 레몬 맞아’라는 듯한 생뚱맞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탈이 대체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바탈? 네가 바탈이라고? 그게 뭔데?”

김탄은 일단 여기까지 얘기했는데 그 뒤 얘기는 설명하기가 참 어려웠다.

솔직히 자신도 믿을 수 없어 박토와 박월을 정신병자로 생각하기도 했던 그 얘기를 그가 직접 꺼내려니 정말 선뜻 말이 나오질 않고 힘들기만 했다.

-분명 이상한 종교에 빠져 헛소리를 한다고 할 텐데..-

그런데 김탄이 말 한다고 해놓고 하지 않고 계속 어물쩍거리자 마영식은 더욱더 의심이 솟구쳤는지 표정이 다시 험악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싸움마저 날 것 같은 분위기. 보다 못한 박토가 김탄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손으로 잡으며 격려하기 시작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말해. 원래 충격은 당연한 거야.”

“하지만.. 토 형.”

김탄은 박토가 어려운 얘기를 자기 대신 말해주길 바랐지만 김탄의 속마음을 모르는지 박토는 김탄에게서 시선을 때고 마영식을 쳐다보았다.

박토는 지금 마영식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구를 위해 이 산골 오지까지 온 의리를 가진 남자. 또 김탄이 잘못 된 길을 갈까 지금 분개하고 있는 남자. 마영식은 어쩌면 진짜 김탄의 친구인지도 모른다.-

마영식에 대한 판단을 마친 박토가 다시 김탄에게 입을 열었다.

“비밀을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아. 네 친구가 배신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대신 말해달라니까..-

절대 대신 말해주지 않을 것 같은 박토의 태도에 김탄은 입을 한 번 삐죽거리고는 긴장을 풀기 위해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잡은 후 마영식에게 입을 열었다.

“영식이 형. 잘 들어?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웃으면 안 돼? 일았지?”

“야이. 개새꺄. 형을 뭘로 보고. X팔. 내가 널 믿는데 그런 소리 하면 실망이다. 이 새꺄!”

됐다. 이 정도면 말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김탄이 말했다.

“난 히어로가 될 사람이야. 바탈이라고 하지. 영웅의 운명을 받아서 곧 영웅이 될 거야.”

김탄의 말을 뱉자 신기하게도 김탄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웃을 거라 생각했지만 웃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심 그 반응에 반가웠지만 이내 불편해졌다. 모두에게 상당히 어색한 침묵이 흘렀기 때문이다.

이 침묵은 마치 눈앞에 정신이상자를 마주하는 무언가 이질적인 것을 마주한 것 같은 침묵이었다. 분명 이들은 김탄을 이상하게 변한 걸로 보고 있었다. 그걸 느끼고 있던 김탄이었지만 달리 어쩔 도리는 없었다.

그저 웃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듯 영식을 향해 배시시 웃어 볼 뿐.. 그런데 갑자기 마영식이 두 손으로 배를 잡으며 웃기 시작했다.

“풉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자 누가 부창부수 아니랄까 봐 그의 여친 고순정도 미친 듯이 따라 웃기 시작했다. 웃음은 전염이 되듯 건넌 방에 몰아넣은 KKJ 회원들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아예 방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 자도 있었다.

“뭐래냐? 히어로래.. 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탄아. 웃기지 좀 마. 배 아파 디지겠다. 크크크크크.”

마영식은 너무 웃느라 배가 아팠는지 가끔 인상을 쓰고, 배를 문질르며 계속 웃어댔다.

그 옆에 있던 고순정은 혈압이 올랐는지 손으로 뒷목을 잡으며 너무 웃어서 흘린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치고는 또 웃었다.

건너 방에 있던 KKJ 회원들은 웃다가 지쳤는지 방바닥에 대자로 들어 누워 쉬면서 웃고 있었다.

박토의 거실엔 비웃음과 또 황당한 웃음 그리고 정말 웃겨서 웃는 웃음으로 가득찼다.

이렇게 모두가 1년 동안 웃을 웃음을 한 번에 웃는 것처럼 웃고 있을 때 웃지 못하는 세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탄과 모든 원인의 제공자인 박토,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코피도 웃지 않았다. 그들은 상당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아, 진짜 오랜만에 실컷 웃어 보네.”

마영식이 중얼거리자 고순정이 맞받아쳤다.

“아 웃겨. 히어로면 아이언맨이나 슈퍼맨 또 뭐가 있더라? 스파이더맨 뭐 그런 거야? 탄이 네가? 너 돌았어?”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