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이면 복잡해져요. 시끄럽고요.

한편 마영식의 달콤한 키스에 혼이 털린 고순정은 지금 무아의 상태인 듯 자신을 잃어버린 듯 보였다.

마치 시공간을 초월해 저 세계로 떨어진 듯 현실 감각 무뎌진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포시 옆으로 떨어뜨리고는 지가 무슨 팜므파탈인 것처럼 마영식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수줍게 옹알거렸다.

“아이. 참. 부끄럽게..”

이건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거다. 그녀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부끄럽다 하는 것인지.. 아마도 체면치레? 혹은 한 번 더 하고 싶어서?

그러나 마영식은 고순정의 속도 모르고 그녀를 달래기 바빴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서로 사랑하는데 어때? 오빠는 널 사랑하는 데 있어서 남의 시선 따윈 중요하지 않아.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너니까. 때마침 날 구하려 와줘서 고마워. 우리 애기. 순정이.”

한 번 더 키스하는 것보다 달콤한 말이 그의 입에서 떨어지자 고순정의 영혼은 감동을 받은 듯 떨려왔다.

그 영혼이 시키는 듯 눈시울을 붉어진 고순정. 그대로 환희에 찬 표정으로 마영식을 바라보기만 했다.

한편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거의 모태 솔로 세 명의 남자들은 지금 온몸에 소름이 돋고 있었다.

이들이 이러는지도 모르는 고순정과 마영식은 그저 둘만의 대화를 이어나갈 뿐이다.

갑자기 혼가르즘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 고순정이 얼굴이 갑자기 돌변했다.

조금 전까지의 팜므파탈은 온데 간데 없고 왠 여장부가 있는 것인지. 지금 그녀의 표정을 보면 천하를 다 쓸어버릴 기세였다.

그녀가 갑자기 손을 들어 깡똥하게 묶은 포니테일 머리를 한 손으로 멋 있는 척 털고는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스피드는 생명이다. 생과 사를 함께 한다. 킹왕짱은 영원하다.”

고순정의 말에 아주 아주 깜짝 놀라 입이 쩍 벌어진 마영식.

그가 그 상태로 넋 나간 표정으로 고순정을 바라보다 갑자기 자기 가슴에 손을 얹었다. 마치 신성한 묵념을 하기 전 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결기를 다지는 듯 한 모습 같았다.

그런 그가 아주 멋있는 척 누가 봐도 일부러 낮게 까는 음성이라는 걸 알아차릴 목소리로 읊조렸다.

“우리 KKJ의 모토구나.”

마영식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퍼지자 고순정이 추임새를 넣었다.

“응. 우리 KKJ의 신념.”

이렇게 말을 마친 고순정은 마영식을 보며 싱그럽게 미소를 지었다.

마영식도 그녀를 따라 미소를 짓다 손으로 순정의 앞머리를 쓸어 옆으로 넘기고는 그대로 광대를 지나 볼을 훑고선 그녀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그윽한 시선으로 순정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내 여친이지만 역시 넌 우리 KKJ의 넘버 2로서의 자격이 충분해. 인정.”

그의 말에 감동 받은 고순정. 그녀의 입술에 대고 있던 마영식의 손을 잡고는 갑자기 깍지를 끼며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영식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KKJ의 넘버 1인 마영식. 난 공과 사는 확실 해. 나 고순정은 오빠가 내 남친이기 때문에 구하러 온 것보다 우리 KKJ의 신념을 걸고 온 걸 알아 둬. 난 KKJ의 넘버 2 이니까.”

이렇게 말하자 순간 마영식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러자 그 불꽃이 전염이라도 된 듯 고순정 눈에서도 불꽃이 일었다.

마영식이 고순정의 다른 손마저 깍지를 끼었다. 그 손도 어깨 높이로 들어올렸다.

“너무 멋져! 내 여자 고순정. 그게 내가 널 사랑하는 이유야.”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유도 같아. 멋진 내 남자. 마 영 식. 사랑해. 여보야.”

서로의 매력에 탐닉하듯 마주 보고 있던 둘은 또다시 강렬한 사랑의 감정이 일었는지 무언가에 홀린 듯 서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둘은 또 키스를 할 것이다.

“지랄을 하고 있네.”

갑자기 들린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마영식과 고순정은 순간 화들짝 놀랐다. 지금까지 이 세상엔 둘 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다른 존재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고순정과 마영식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커먼 오라를 내뿜으며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세 남자가 보였다.

김탄. 박토. 코피.

그런데 왜 두 손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던 마영식과 고순정은 그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머쓱해진 마영식이 그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하필 돌린 곳이 건넌 방 쪽.그런데 닫혀 있어야 하는 그 방문은 열려 있었다.

또한 그의 브로들이 모두 문 앞에 모여 마영식과 고순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걸 깨달은 마영식은 고순정의 잡은 손을 슬며시 풀었다.

“아차! 여기가 어디란 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 난 우리 자취방인 줄 알았어.”

“나도야. 오빠. 시공간을 초월한 느낌이었어.”

순정에 말에 마영식은 깊은 공감을 한다는 듯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자책하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이게 다 너 때문이다. 바로 순정이 네가 팜므파탈이기 때문이지. 한 번 빠지면 절대 빠져나올 수가 없어. 나도 정말 미치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디 있는지도 잊어버릴 정도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옴므파탈. 마영식. 오빤 정말 날 미치게 만들어.”

삼류 로맨스도 이것 보단 낫겠다. 정말 꼴사나워 못 봐주겠다. 그렇게 하려면 자취방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모텔에 가서 마저 하던지..”

누가 또 중얼거린 소리에 마영식이 돌아봤다. 박토였다.

그렇다면 아까 ‘지랄하고 있네’라고 말한 범인이 박토일 확률이 높다.

KKJ회원들과 마영식의 직장 동료인 코피와 김탄은 이미 이런 둘의 행태들을 많이 봐왔기에 면역이 조금은 되어 있었다.

-아무리 처음 겪는다고 이렇게 과민반응 할 필요까지야.-

마영식은 그러는 박토가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를 쳐다보며 연신 고개만 갸웃댈 뿐이다.

반면에 박토는 마영식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남에 집에서 애정행각을 서슴지 않고 하는 예의도 없는 인간들.

애인 없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들. 배앓이 상당히 꼴려있는 상태였던 그는, 올 해 29살.

그 나이를 지내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했었다. 아니 못 한 것보다는 아예 틈이 없었다.

9살 이후로 쫓기는 신세에 군대에 다녀오고 나니 애가 생겨버렸다.

자기 애도 아닌 사촌 형이 떠넘기고 간 박월을 젖먹이 때부터 키우느라 연애할 틈이 없었던 것.

뭐, 19금으로 따지자 보면 그러니까 9년 째 금욕의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지금 눈앞에 애정행각에 관대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자의가 아닌 오로지 타의에 의한 금욕 생활로 인해 그의 성격이 더 포악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갑자기 박토가 버럭 소리를 쳤다.

“미치겠네! 진짜. 아우!”

남의 달콤함에 배가 아픈 박토의 속 좁은 분노에 거실은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모두가 박토에게 핀잔을 주는 듯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게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이유인가?-

마치 그렇게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실 박토는 평상시 남들의 연애사이건 또는 애정행각이건 박토와는 거리가 있는 남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생각일 뿐.

바로 눈앞에서의 달콤한 애정 행각은 그의 솔로로 산 비참한 인생을 비교하게 되어 불길을 치솟게 했다.

그도 그가 왜 그러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눈치를 보던 김탄이 마치 진정하라는 듯 두 팔로 그의 팔을 잡으며 나무랐다.

“원래 저래. 둘이. 이해 해. 형. 나는 맨날 봐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은데 형은 화가 났나 봐?”

“그게 아니야!”

또다시 소리를 버럭 지른 박토. 그 바람에 깜짝 놀란 탄이 되물었다.

“그럼 왜 소리를 질렀는데? 영식이 형하고 순정이 형이 뽀뽀를 해서 화난 거 아니었어?”

“옥상에 켜 놓은 서치라이트를 끄지 않은 게 생각나서 그랬어.”

솔직히 그 둘의 애정행각에 화를 낸 게 맞지만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상할 것 같은 박토가 거짓말로 둘러댔다.

김탄은 그의 말에 표정이 어벙하게 변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듯 물었다.

“그게.. 소리 지를 일이야?”

“전기세가 많이 나가니까.”

잠시 거실에 침묵이 흘렀다. 누가 봐도 박토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납득이 힘든 박토의 핑계는 모두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분위기에 머쓱해진 박토는 김탄에게 옥상에 켜 놓은 써치라이트를 끄러 가겠다고 말하고는 부엌으로 냉큼 향했다.

마치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모양새였다. 그렇게 옥상으로 가던 중 갑자기 이상한 인기척을 느낀 박토.

그대로 몸을 돌려 현관 쪽을 바라보자 그 동안 사라졌었던 아이신과 아수하가 현관 옆 지하실로 통하는 문 앞에 서 있었다.

“너희들은 대체 어디 갔다가 오는 거야?”

박토가 소리치며 묻자 아이신이 답했다.

“잠깐 지하실에 다녀오느라고..”

“왜?”

하지만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아이신. 그저 불안한 듯 제 여동생과 식은땀을 흘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무언가 수상하다. 무언가 숨기고 있다.-

박토가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순간 걸음을 멈춘 박토.

갑자기 아수하 뒤에서 커다란 부엉이 한 마리가 쩔뚝거리며 앞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걸 본 아수하는 아주 다급하게 다리를 이용해 부엉이를 그녀 몸 뒤로 밀었다.

그러자 부엉이는 가기 싫다는 듯 몸은 딸려 움직였지만 목으로 거부하는 듯 천천히 고개를 회전시켰다.

그러자 목을 270도까지 회전시킬 수 있는 부엉이는 정말 영화 링에 나오는 귀신같은 괴기한 자세가 되었다.

마치 등 뒤에 얼굴이 뒤집혀서 달리 것 같은 괴랄한 모양.

순간 그 부엉이와 눈이 마주친 박토가 불같이 화가나 다시 오운족에게 소리쳤다.

“부엉이는 왜 데리고 왔어! 대체 왜 데리고 온 거야? 도로 안 갖다 놔!”

그런데 갑자기 아수하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더니 부엉이를 꽉 끌어않았다. 누가 봐도 반항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박토가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싫어! 너무 귀여워서 지하실에 두기 싫다고.”

그녀의 말에 그녀 옆에 서 있던 아이신이 부엉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제는 우리가 돌봐줄 게. 무서워하지 마. 부엉이를 말로만 듣고 티브이에서만 봤지 이렇게 실제로 보니까 너무 귀엽다. 그렇지? 아수하.”

“당근. 부엉이가 이렇게 클지 몰랐어. 큰데 너무 귀여워.”

그런데 부엉이가 마치 그 둘의 말을 알아 듣는다는듯 눈 위에 난 큰 검은색 귀깃을 팔랑팔랑 움직였다.

그리고는 박토를 다시 쳐다보며 째려보았다.

째려보는 걸 어떻게 아느냐면 동공의 모양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 눈을 본 박토는 정말 화가 나 다시 소리쳤다.

“니들이 귀엽다고 하는 그 부엉이 새끼는 우리 스테고(박월이 애완용으로 키웠던 가금류 아얌 쯔마니-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유래한 닭)를 잡아서 내장을 파헤치고 먹은 살육을 저지른 놈이야. 그것 때문에 우리 월이 얼마나 침통해했는지 너희들이 알아? 스테고가 죽고 며칠을 울어댔어. 너희들이 귀엽다고 하는 그 부엉이가 우리에겐 그저 닭 도둑일 뿐이야. 도로 지하실에 가져다 놔라. 아이신. 아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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