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들의 특화 무기.

은비칼은 어이가 없었다.

무기라니.. 말도 안 돼..

“하하하하하. 저렇게 작은 데 무기라뇨? 어디 저걸로 때리면 머리통에 구멍이나 나겠습니까? 말이 안 됩니다.”

은비칼이 어이없다는 듯 크게 웃으며 말하자 나채국이 진지하게 들이댔다.

“그건 실장님이 모르는 소리예요.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검은 손잡이만 있어요. 헐크는 물약이 변신 아이템이고요. 스파이더맨은 거미줄만 가지고 보잉 737을 들어 올리죠.”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나채국의 황당한 말에 은비칼은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신빙성이 있고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도 안 돼. 저 주먹만 한 스톤에 무기가 들어 있다고? 상상도 지나치다.-

은비칼은 나채국의 허무맹랑한 상상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갑자기 여태까지 얌전히 있던 오강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소리쳤다.

“맞아요! 원더우먼은 팔찌로 총알을 막습니다! 그리고 슈퍼맨은 쫄쫄이가 있죠.”

오강심의 주장에 나채국이 흥분하며 덧대었다.

“쫄쫄이를 뭉치면 저 스톤만 하겠지? 강심아.”

나채국의 물음에 오강심이 강력하게 수긍한다며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이런 그들을 보고 은비칼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깜짝 놀란 얼굴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 그래서 우리한테 시킨 것 같습니다. 괴물 손에 들어가기 전에 저 스톤을 빨리 열어야겠죠? 여러분! 자자. 빨리 일합시다! 오강심 씨. 나채국 씨.”

더 이상 노닥거리지 말라는 은비칼의 말에 나채국과 오강심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뭇 진지하고 엄숙한 은비칼의 표정에 나채국은 그가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담으로 받아들인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 일을 해야지. 상사의 명령이니.. 나채국이 이제 그만 노닥거리고 일을 하려 몸을 책상 쪽으로 돌렸다.

그런 와중에 작은 목소리로 오강심에게 중얼거렸다.

“진짜 믿는 건가?”

나채국의 중얼거림을 들은 오강심도 일을 하기 위해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런 것 같습니다. 팀장님.”

나채국이 단말마를 내뱉었다.

“설마?”

나채국이 ‘설마 실장님이 진짜 바보가 아닐까’란 표정으로 오강심을 쳐다보자 오강심이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들의 뒤에서 은비칼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안 믿어요! 초등학생도 아니고 누가 그런 소릴 믿습니까?”

상사를 놀려먹는 건 여기까지 라는 듯 오강심과 나채국 둘은 말없이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편 말도 징그럽게 안 듣는 나채국과 오강심 때문에 흰머리가 날 것 같은 은비칼이 무언가 가슴이 답답했는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혼자 중얼거렸다.

“이게 다 저 스톤 때문이야.”

그는 나채국과 오강심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바탈 스톤 앞으로 갔다.

삼재 같은 세 가지 재앙을 안겨준 원인을 쳐다보자 다시 가슴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신비한 돌 바탈 스톤은 그의 마음과는 달리 무중력 상태로 공중에 뜬 체 오묘하고 아름다운 색의 빛을 내고 있었다.

-신비롭고 아름답지만 위험한 물건이야. 우주에도 지구처럼 같은 진리가 통하는 건가? 아름다울수록 그리고 매력적일수록 치명적이고 위험하다는 진리. 복어는 맛있지만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고, 장미는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지. 저 스톤도 겉 보기엔 신비하고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끔찍한 무기가 들어 있을 수도 있어. 진짜 나채국 씨가 말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이 생각에 일어나지도 않은 우려가 현실로 일어난 것처럼 은비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갑자기 머릿속으로 며칠 전 마주친 뮤턴트 A-0가 떠올랐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떠올린 은비칼은 마치 지금 눈앞에 그 괴물이 있는 듯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이내 상념이 지나쳤다는 걸 스스로 깨달은 은비칼은 다시 눈을 뜨고 바탈 스톤을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속에서 갑자기 뜨거운 감정이 일었다. 마치 무언가 다짐을 하듯 두 주먹을 불끈 쥔 은비칼이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였다.

-괴물은 진짜 위험했어. 까딱 잘못했으면 난 죽을 뻔했지. 그때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은 죽었을 거야. 생명은 존귀한 거야. 그 누구도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어. 그게 우주 최강 괴물이라고 하더라도. 난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일이 벌어지게 하지 않을 거야. 이 신비한 돌을 보니 괴물은 형이 말한 것보다 더 큰 힘을 지닌 것 같아.-

은비칼은 그대로 몸을 돌려 나채국과 오강심을 바라보았다.

은비칼의 친구이자 동료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 중 일부인 사람들. 그들을 보며 은비칼이 나직이 읊조렸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켜야 해. 나는 무조건 막아야 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

박토의 시골집 거실엔 KKJ동호회 8명, 오운족인 아이신, 아수하, 김탄과 김탄의 친구 마영식, 마영식의 여자 친구 고순정 그리고 김탄의 회사 동료 코피 총 15명이 꽉 들어차 발 디딜 곳이 없었다.

말 그대로 북새통인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처럼 각자의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시끄럽고 부산했다.

도떼기시장 저리 가라 급으로 시끄럽고 정리가 되지 않는 상황에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온 박토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쳤다.

“다들 조용히 해 봐!”

일순간 거실이 조용해졌다.

그러자 박토는 일단 KKJ 동호회 회원들을 강제로 추려 건너 방 문을 열고 그곳으로 몰아넣었다.

그 와중에 마영식이 ‘자신은 김탄의 절친이라 건너 방에 갈 수 없다’며 버텼고 김탄도 보내지 말라고 애원하는 바람에 마영식은 다행히 건넌 방으로 추방되는 걸 면했다.

마영식에게 유예가 주어지자 이번엔 고순정이 ‘자신은 남편이랑 떨어지느니 목을 매고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협박하는 통에 고순정도 건너 방으로 추방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KKJ 회원 중 8명을 건너 방으로 몰아넣자 거실에 남은 인원은 박토를 포함 총 7명이었다.

그래도 많았지만 조금 여유가 생겨 한 숨 돌리고 있는 박토의 뒤로 건너 방으로 추방된 KKJ 회원들의 ‘차별하는 거 아니냐’, ‘우리도 넘버 2(고순정)처럼 지랄하면 추방되지 않았겠지’라며 불만 가득한 투덜거림을 쏟아냈다.

그러자 박토가 ‘너희들끼리 안에서 실컷 떠들라’며 건너 방 문을 콱 닫아 버렸다.

이렇게 나름 정리가 되자 거실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일단 박토는 정신 사납고 심란한 마음이 정리가 됐다.

그가 그 상태로 거실에 남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아이신과 아수하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소파에 마영식과 고순정이 서로 껴안은 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김탄과 코피가 로맨스 드라마를 시청하듯 그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순정아, 보고 싶었어.”

“자기야. 괜찮아. 어디 다친 덴 없고?”

“괜찮아. 오빠가 특수부대 출신이잖아.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군대에서 고문에 대체하는 법도 배웠거든.”

“뭐? 고문도 했어?”

순간 고순정이 깜짝 놀라 소리치고 난 후 박토를 째려보며 중얼댔다.

“이런 개새끼들이/”

그때 마영식이 고순정의 입을 손으로 갑자기 틀어막았다.

그러자 고순정은 몸을 들썩이며 마치 박토에게 달려들 것처럼 굴자 마영식이 다급하게 김탄에게 소리쳤다.

“탄아. 도와줘!”

“아이. 참. 누나.”

김탄은 순정을 달래며 흥분하지 못하도록 두 팔로 몸을 끌어안았다.

상체가 묶인 고순정은 이제는 영식이 손으로 막은 입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마영식의 손 때문에 말이 막히자 성질이 난 고순정은 마치 박토에게 하는 듯 허공에 발길질을 사정없이 해댔다.

박토는 고순정이 저러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이유 없는 박해다. 그리고 오해다.

그는 마영식을 때렸지만 그리고 기절시켰지만 고문은 하지 않았다.

지금 고순정이 마치 박토가 제 남친을 고문했다는 걸 사실로 받아들이는 듯 광분하고 있는 것에 박토는 씁쓸한 마음만 들었다.

그래서 평소 말없고 무뚝뚝한 박토의 표정이 더욱더 업그레이드된 듯 무뚝뚝함 넘어서 염라대왕도 울고 갈 무서운 표정으로 변하자, 그걸 눈치 챈 영식은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이 모두 내가 잘못 놀린 입 때문이다. 대체 고문 얘기를 왜 툭 튀어나온 건지.. 일단 박토가 폭발을 하면 덫에 걸렸을 때처럼 무서운 발길질과 주먹질이 올 것이다.-

생각을 마친 마영식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러자 그때 맞은 상처가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상처의 아픔이 되살아난 마영식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수습을 하기 위해 고순정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니야. 순정아. 아직 고문까진 안 갔어. 갈 뻔했지.”

즉시 효과를 보인 영식의 귓속말.

불과 1초 전까지 보이던 우리에 처음 갇혀 본 야생동물 같은 포악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평소 야리야리하고 순정틱한 고순정으로 돌아왔다.

-이렇다면 안전하고 또 안심이다.-

한시름 놓은 마영식이 김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김탄은 조심스레 순정을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여기까지 왔는데도 고순정은 얌전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광분은 확실이 없다.

마영식이 그녀의 입을 막았던 손을 조심스레 뗐다. 바로 고개를 돌려 박토를 째려보는 고순정.

-이것 참 큰일이다. -

고순정이 박토에게 지랄을 할까 겁이 덜컥 난 마영식은 손으로 그녀의 고개를 잡아 돌려 기습 키스를 했다.

그와 동시에 여자 친구 없는 세 명의 남자.

즉 코피와 김탄 그리고 박토의 얼굴은 본능적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쩝 쪽 쩝 쩝 쯉 쭈웁

거리는 소리가 거실에 끊이지 않았다.

-뭔 놈의 키스를 이렇게 오래 하는지. 입술이 닳아 불어터지겠다!-

여자 친구 없는 세 명의 남자들은 이유 모를 분노에 주먹을 꽉 움켜 쥐고 있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부럽지 않으려고 주먹을 꽉 움켜 쥐고 있는 것.

계속 된 마영식과 고순정의 애정행각에 이들 중 가장 속이 좁은 박토가 갑자기 심술이 났다.

-제발 그만 빨아대라. 그러려면 모텔에나 가던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려고 그가 입을 여는 찰나! 아주 큰 쪽! 소리와 함께 마영식과 고순정의 길고 긴 키스는 끝이 났다.

이로써 박토도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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