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원래 질문이 많아요.

그래도 내가 관리자인데.. 너무 하는 게 아닌가?

부하직원들이 상사에 대한 되바라진 예우에 마음이 삐딱해진 은비칼은 그들에게 관리자로서 복수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럼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나채국, 오강심 씨!”

은비칼이 살짝 화가 난 듯 우렁차게 물어봤지만 오강심은 대꾸조차 없고 나채국이 늘 그렇듯, 뒤는 돌아보지 않고 아주 바쁘다며 자판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실장님이 이해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암호키가 되는 주파수 신호를 찾아야 해요. 암호키가 저 스톤의 통신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일종의 통신 시스템이죠. 즉, 그 통신 시스템을 위한 주파수의 대역폭을 알아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나채국의 장황한 설명에 오강심이 추임새를 넣었다.

“그래서 무~지 바쁜 겁니다. 아~ 정말 미치겠어요.”

일단 은비칼은 그들의 무시보다 전문가적인 말에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게 이해는 할 것 같았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저 스톤하고 괴물들과 통신을 하게 된다는 얘기 같은데..”

은비칼의 말에 갑자기 나채국이 일을 멈추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은비칼을 쳐다보았다. 굳어져 있는 그의 얼굴을 본 은비칼은 당황한 나머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이고. 그냥 해 본 말이에요.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일 하십시오. 시간이 없잖아요?”

“아니요. 대박이예요. 실장님. 정말 정확히 알고 계신 거예요.”

“네?”

은비칼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 되묻자 나채국이 열변을 토하듯 말했다.

“실장님이 말씀하신 건 일종의 BCI(brain-computer interface)라고 볼 수 있어요. 사람과 사물 간 혹은 사람과 컴퓨터 간의 연결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와. 그렇습니까?”

나채국의 말에 감탄한 은비칼이 그의 눈치를 보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혹시. 엉뚱한 질문 일 수 있겠지만.. 그 암호키들이 괴물과 스톤 간의 연결을 위한 접속과 통신수단이란 소리며 일종의 BCI 같은 인터페이스를 활성화하게 된다는 소리 같은데..”

은비칼이 말 할수록 나채국의 표정은 굳어져 갔다. 괜히 엉뚱한 소리로 그를 기분이 언짢게 했다는 생각에 은비칼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채국의 얼굴은 이상하게 창백하게 변해갔다.

-뭘 잘못 말한 건가? 그의 심경을 저리 만든 이유가 대체 뭐지? 설마 쓸데없는 말로 일을 방해해서?-

은비칼은 나채국에게 사과를 했다. 일을 시켜야 하는데 쓸데 없는 말 때문에 부하직원의 심기를 상하게 했다 판단한 은비칼이 서둘러 에둘러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쓸데없이 신경 쓰게 만들어서.. 제가 한 말은 그냥 무시하십시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지껄인 거니까요.”

“아니에요. 그게..”

은비칼의 말에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린 나채국은 침울한 얼굴로 입을 닫았다. 시간이 정지된 듯 멍 때리던 나채국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중얼거렸다.

“인터페이스 활성화? 메인 시스템? 활성화 유저 승인 암호키?”

그런 그가 갑자기 몸을 돌려 자판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소리쳤다.

“강심아! 지금 당장 뇌파 채널 주파수를 디코딩(복호화) 해! 빨리!”

오강심은 나채국이 무리한 걸 시킨다는 듯 얼굴이 차갑게 굳히며 투덜거렸다.

“한 시그널당 채널이 64개나 되고 합이 128개나 됩니다만!”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야.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

“혹시?”

오강심의 말에 나채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내가 프로그램을 짜 놓을 동안 두 개의 신호에서 공통점을 뺀 나머지만 해 놔! 무슨 말인지 알았지.”

“옛 썰!”

지들끼리만 알아듣는 말을 마친 나채국과 오강심은 다시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려 댔다.

저들이 왜 저러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은비칼은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냥 참았다.어차피 알아 들을 수 없는 분야이자 또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그들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던 은비칼을 향해 갑자기 나채국이 고개를 홱 돌리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뱉었다.

“실장님. 생각보다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로 인류의 평화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온 거죠.”

은비칼은 고무적인 성과에 그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개 박수를 쳤다.

“아아. 그렇습니까? 정말 훌륭하십니다. 나채국 씨!”

은비칼의 칭찬에 나채국의 어깨가 뽕이 들어간 듯 부풀어 올랐다.

사실 은비칼의 힌트 때문에 성과가 빨리 나오게 된 것이지만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로 결정했다.

“제가 좀 해요. 아시면서..”

“잠깐만!”

갑자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며 오강심이 소리쳤다.

나채국은 은비칼의 힌트를 제 공으로 돌린 걸 오강심이 폭로할까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는 그가 생각한 그런 내용이 아닌 다른 내용이 흘러나왔다.

“마지막 하나 남은 암호키인데 말입니다. 그건 김탄만 잡으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야. 지금 우리가 분석하는 게 김탄의 생체 신호 아니었어?”

나채국이 깜짝 놀라 되묻자 오강심이 답했다.

“김탄을 잡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생체 신호를 측정하죠?”

“그럼 세 개의 생체 암호키가 저 스톤을 열 수 있는 열쇠인데 두 개는 이미 있고 나머지 하나를 우리보고 재구성하라는 거잖아?”

나채국의 물음에 오강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채국의 얼굴엔 의문으로 가득찼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코 끝에 걸쳐진 흘러내린 안경 너머로 보이는 보일 듯 말 듯 작게 찢어진 나채국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그가 무언가를 알아 챈 듯 눈을 치켜뜨며 오강심에게 물었다.

“그럼 늑대 말고 다른 신호는 누구 거지?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괴물이 있다는 거야?”

‘그걸 왜 나한테 묻냐?’는 듯 오강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채국은 다시 미궁에 삐진 듯 눈알을 굴리며 이 믿지 못할 사실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다.

이들은 마치 박제된 동물처럼 움직임 없었다. 그런 그들을 본 은비칼은 가슴이 타 들어 갔다.

-문제가 해결되야 다시 키보드를 잡겠지?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저러고 있을 텐데.. 생체 신호 주인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야. 그냥 시키는 대로 남은 하나만 풀면 끝인데 말이야. 다시 일을 하라고 해도 문제가 해결 돼야 일을 할 사람들.-

정말 나채국과 오강심은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그걸 끝까지 풀어야 하는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절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 중.

시간은 흘러가는데 저러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한 답을 하면 된다.

은비칼은 그들을 움직이기 위해 거짓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기, 여러분?”

은비칼이 조심스레 그들을 부르자 그들은 심각한 문제 해결 중인데 왜 건드리냐는 표정으로 잔뜩 인상을 쓰며 은비칼을 쳐다보았다.

은비칼은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꾸역꾸역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고민하는 신호는 또 다른 괴물의 신호입니다. 이 사실은 극비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겁니다.”

나채국이 물었다.

“우리가 추적 못하는 괴물을 어떻게 잡은 거죠? 분명 시스템에선 두 개의 신호만 잡혔는데요?”

집요하게 파고드는 나채국의 질문은 은비칼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냥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려던 은비칼의 술책이 먹혀들지 않자, 난감해진 은비칼의 머릿속에 며칠 전 시스템 오류로 판정 지어진 또 하나의 신호가 잡혔단 사실이 기억났다.

하지만 그 사실을 지금 은비칼이 지어낸 거짓말에 이용한다면 또 다른 문제점이 생길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

그래도 은비칼은 지금의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후환이 두려웠지만 그 사실을 거짓말에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번에 제가 알앤디 센터로 갔을 때 잡힌 신호. 그게 또 다른 괴물이었습니다. 단지 상부에서 모두 극비에 부치라는 명령을 받았기에 여러분께 말하지 못했던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채국 씨.”

은비칼의 예상과 달리 나채국은 그가 설계한 시스템이 오류로 모함을 받은 사실에 화를 내지 않고 상심한 듯 중얼거렸다.

“어쩐지 디버깅해도 오류가 잡히지 않더라니.. 괜히 리빌드 했네.”

나채국의 반응에 한 숨 놓은 은비칼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 같아 기뻤다.

이제 나채국과 오강심은 다시 원래대로 은비칼이 게임을 하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일을 하는 것만 남은 것.

“그럼. 여러분. 이제 모든 고민이 해결됐으니/”

나채국이 갑자기 은비칼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그런데 왜 저희더러 이걸 풀라고 하는 걸까요? 김탄만 잡으면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어차피 독 안에 든 쥐잖아요?”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김탄을 잡는 것보단 암호를 해석하는 게 빠르다는 거니까요.”

나채국이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팔짱을 낀 한 손을 턱으로 옮겼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우리가 없었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걸요?”

“여러분의 실력을 아니까 맡긴 극비 임무지 않겠습니까?”

은비칼의 말에 나채국과 오강심이 격하게 공감한 듯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그런데 왜 그렇게 빨리 저 스톤을 열려고 하는 걸까요? 아마겟돈이 펼쳐질지도 모르잖아요. 어차피 연구야 천천히 하는 것이면 되는데.. 이렇게 서둘려 열려고 하는 게 뭔가 미심쩍어요.”

나채국의 궁금증은 끝이 없어 보였다.

문제 해결을 해주자 또 다른 문제를 들고 오는 나채국에게 짜증이 난 은비칼이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거니까 그냥 하십시오. 저도 상부의 명령을 받은 것뿐입니다. 나채국 씨.”

“정말 안에 무언가 들어 있는 건가요?”

나채국은 정말 호기심 많은 6살짜리 아이 같았다. 질문이 끝이 없이 나왔다. 그런 그를 대하는 은비칼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씨/”

그 울화가 목구멍을 넘어 입 밖으로 튀어 나오기 직전 비칼이 손으로 입을 급하게 틀어막으며 참았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채국은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은비칼을 말없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답을 주지 않으면 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 나채국을 보고 있는 은비칼의 마음엔 폭풍이 일고 있었다.

-이런 걸 시련이라고 하는 것 같아. 삼재도 아닌데 삼재에 시달리는 기분이야. 세 가지 재난! 병! 재물! 인간!으로 인한 재앙! 운석이 떨어진 이후로 난 지금 화병이 나 있고 재물 손실이 컸으며 인간들에게 시달리고 있어. 대체 왜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인가? 시브레에에에에에-

은비칼은 마음 속으로 통탄을 하고 나서 깊은 숨을 들이시고 내뱉은 후 나채국이 기다리는 질문에 답을 말했다.

“만약 저 스톤 안에 무언가 들어 있다면 괴물 손에 들어가는 것보단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괴물이 쓰는 물건일 테니까요. 그래서 아마도 빨리 열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갑자기 나채국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렁이는 뱃살이 중력에 의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때쯤 나채국이 소리쳤다.

“설마!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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