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장난만 하려는 부하직원들 때문에 내 속이 타들어간다

미캐는 정말 행복했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나마 그녀의 인생 중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만한 일을 기억하려 애썼다. 어릴 적 엄마 품에 안겨 재잘거리던 때가 기억났다. 그때도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게 행복한 건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지금시점에서 봐도 그리 행복한 건 아니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불행을 또 고난을 겪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미캐는 세상에 태어난 걸 원망했다.

-나는 그냥 태어난 것 밖에 없어. 그게 잘못이라면 그게 잘못 된 거야. 만약 내가 태어난 게 잘못이라면 그냥 죽는 게 맞아. 잘못 태어난 거니까. 어쩌면 정말로 잘못 태어난 게 맞을지도.-

스스로에 대한 존재의 부정. 미캐는 모든 것을 포기한 체 검은 어둠에 쌓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게 신이든 악마든 상관 없어요.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잘 못 태어났으니까요. 만약 누군가 내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날 좀 죽여 주세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제겐 끔찍한 일입니다.-

미캐의 바람.

모든 희망과 기대가 사라진 그녀의 마지막 절규 같은 신에게 올리는 기도. 그마저도 신은 외면했다. 미캐는 화가 났다. 신은 왜 그녀가 원하는 건 주지 않고, 원하지 않는것을 주는 것인지....

“제발. 신이 있다면 날 좀 죽여달라고! X팔!”

<죽여달라고! X팔!>

미캐의 목소리가 다시 공간에 메아리졌다.

지독한 외로움. 그걸 더하는 메아리였다. 이제 겨우 17살.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어린 소녀. 단지,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렇게 큰 꿈도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해지는 것. 그리고 돈을 모아 엄마를 찾으러 가는 것. 그 꿈조차 신은 허락하지 않았다. 꿈을 꿀 수조차 없는 그녀의 마지막 삶은 이렇게 처참하게 부서져 버렸다.

“엄마.. 보고.. 싶어.”

나직이 내뱉은 그녀의 목소리가 차가운 공기에 흩어져 버렸다. 모든 걸 놓아버린 듯 그녀의 머리가 다시 아래로 떨구어졌다.

**************

“이번에 잡은 괴물. 외계인인 거죠?”

갑자기 들린 나채국의 목소리에 한쪽 구석에서 스마트 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던 은비칼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나채국의 뒤통수만 보였다. 늦은 밤까지 운석 연구실에서 고군분투하는 나채국과 오강심의 뒤에서 아무 할 일이 없던 은비칼은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기에 지레 질겁 눈치를 봤지만 다행히 그들은 일하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은비칼은 완전범죄를 위해 슬며시 스마트 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나채국에게 답을 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같이 생겼지만 또 사람같이 생기지 않은 건 확실합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나채국이 은비칼에 또 물어봤다.

“그래요? 사람같이 생긴 외계인의 본모습은 어떨까요? 나중에 정말 괴물 같이 변하겠죠?”

은비칼은 딱히 해줄 말이 없었기에 대충 둘러댔다.

“제가 봤던 모습으로는 괴물 같았지만 사람의 형체였습니다. 영화에서처럼 그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살갗이 뭉개진 거 말고는 사람과 똑같았어요. 그래도 외계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단정 지을 수도 없고요.”

나채국은 은비칼의 말에 수긍했는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다시 운석 연구실엔 고요와 함께 타이핑과 마우스 클릭 소리만 맴돌았다.

나채국과 오강심이 일하는 뒷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은비칼이 슬며시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냈다.

잠금 화면을 풀고 게임 앱을 실행시키자 순간 나채국이 몸을 홱 돌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바람에 당황한 은비칼이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 폰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빠작. 액정이 나가자 은비칼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와 동시에 나채국이 소리쳤다.

“외계인이 맞아요!”

‘굳이 저 소리를 하려고 나채국이 몸소 움직이기까지 해야 했을까’라고 생각한 은비칼은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 폰을 주우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외계인처럼 대머리에 손가락도 이상하게 생기지 않았는데요?”

“척 보면 딱이에요.”

은비칼이 나채국의 말에 깨진 액정을 손으로 만지며 퉁명스럽게 다시 물었다.

“뭐가요?”

“저 스톤만 봐도 이번에 잡은 괴물이 외계인이라는 거요.”

“아니 그게 그렇게 연관이 되나요?”

비칼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묻자 나채국이 팔짱을 꼈다. 그의 늘어진 젖가슴이 팔짱을 낀 팔 사이로 불룩하게 도드라졌다.

나채국이 언제나 아는 척하고 잘난체 할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또 잘난 척 하려고 그러는 가 보다. 그냥 한 번 들어주고 말자.-

은비칼은 체념한 표정으로 깨진 스마트폰 액정에서 시선을 떼고 나채국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채국이 특유의 거만한 표정으로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스톤과 괴물이 연관이 되어 있어요. 서로 신호로 통신을 주고받고요. 그렇다면 그 괴물들의 바이얼러지컬 시그널이 스톤의 암호키인 거잖아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나채국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은비칼은 늘 그렇듯 질문으로 대꾸했다.

“아. 그렇습니까?”

“네.”

그 이후로 은비칼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은 체 고개만 끄덕거렸다. 더 이상 대화에 진척이 없자 무색해진 나채국은 팔짱을 풀었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의자에 기댄 몸을 돌리려고 할 때, 이번에는 오강심이 무슨 말을 싶은 듯 몸을 돌렸다.

그녀가 나채국의 대화에 관심 있다고 생각했던 나채국은 반가운 나머지 다시 팔짱을 끼며 오강심에게 물었다.

“뭐? 강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혹시 네 생각은 다른 거야?”

“아닙니다.”

“어? 그럼 나랑 같은 생각인 거야?”

“아닙니다.”

“대화에 참여하고 싶어서 몸을 돌린 게 아니야?”

“아닙니다.”

예상과 빗나간 오강심의 대답에 나채국이 당황했다.

“그럼 왜 몸을 돌렸지?”

“궁금한 게 있어서요.”

“뭔데?”

순간 오강심이 신경질적으로 나채국을 보며 쏘아붙였다.

“실장님한테 질문을 하고 싶은 겁니다. 팀장님.”

당황한 나채국. 그가 얼빠진 표정으로 변해가자 오강심은 그런 그를 뒤로하고 은비칼에게 물었다.

“실장님. 그럼 이제 곧 우리 회사도 IBM 같은 회사가 되는 겁니까?”

은비칼이 대꾸했다.

“거기하고 우리는 좀 달라요. 우리는 하드웨어 중심이고 거기는 소프트웨어 중심이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오강심이 답을 하지 않고 나채국이 오지랖을 부렸다.

“그게 아니라. 실장님. 강심이가 물어본 건 다른 뜻이에요.”

은비칼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뜨자 나채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IBM이라는 회사가 외계인 고문해서 얻은 기술로 특허 출원한 게 세계 1위라고 하더라고요. 그렇지 강심아?? 네가 물어보고 싶은 게 이거였지?”

나채국의 말에 오강심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은비칼의 눈가가 떨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눈가가 떨린 곳을 만졌다.

-진짜 마그네슘 부족인가 봐. 운석이 떨어진 이후로 자꾸 눈가가 떨려서 미치겠어.-

은비칼은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했지만, 사실 그의 눈가가 떨린 건 상황상 얼토당토 않는 나채국과 오강심의 말 장난 같은 대화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채국과 오강심은 정말 진지하게 은비칼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던 은비칼은 고심에 빠졌다.

오성 그룹이 IBM 같은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될 수 있긴 한가? 아무튼 은비칼은 많은 생각 끝에 이렇게 답을 했다.

“아!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IBM이라는 회사가 그런 회사였군요. 뭐 우리 오성도 그럴 확률이 높겠지요?

외계인은 아니지만 지금 외계에서 온 물체인 바탈 스톤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니까요. 조만간 IBM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은비칼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강심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채국에게 속삭였다.

“팀장님. 설마. 실장님이 제 말을 정말로 믿는 건 아니겠죠? 너무 진지해 보여요.”

나채국이 갑자기 손으로 오강심의 어깨를 툭 치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무라며 입을 열었다.

“야! 너 실장님을 뭘로 보고. IBM이 '외계인 고문으로 큰 회사다'라고 농담한 걸 믿는다는 건 실장님이 바보라는 소리잖아.”

“아, 그렇군요. 농담 삼아 한 얘기를 실장님께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서 잠시 오해를 했습니다. 그럼 저는 다시 일을 하겠습니다.”

오강심은 제 할만하고 다시 몸을 돌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채국은 은비칼을 보며 물었다.

“제 말이 맞죠? 정말 농담인 거 알고 계셨죠?”

나채국의 질문에 은비칼은 그렇다며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식의 미소. 은비칼은 진짜로 오강심의 농담을 진지하게 믿었고 또 진지하게 답을 했던 것.

IT 분야를 잘 모르는 가짜 전문가 은비칼은 늘 이런 식으로 공격이 들어오면 회피를 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 즉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 그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은비칼이 임기응변식으로 위기기를 넘기자 나채국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허공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다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몸을 돌려 일을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일에 매진하는 둘을 바라보는 은비칼의 입가에는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 그는 관리자로서 흡족한 상태였다. 또한, 나채국과 오강심의 지금 행동 패턴으로 봐선 당분간 자신을 찾지 않겠다는 판단도 섰다.

모든 게 해결 됐으니 은비칼은 다시 스마트 폰을 꺼내 들고 게임 앱을 실행시켰다.

그는 깨진 액정화면이 눈에 거슬렸지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참을만했는지 다시 게임 삼매경에 빠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조용한 알앤디 센터 연구실에 이상하게 검은 오라가 나오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은비칼이 앉아 있는 곳. 그의 얼굴은 그가 내뿜는 오라에 맞게 검은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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