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또 여기는 어디야?

마당 가득 킹왕짱 바이크 회원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영식은 이내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지금 그는 심히 감동 중. 그만 감동 받은 게 아니라는 듯 회원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시작했다. 

친구들의 아름다운 의리의 모습에 마영식의 눈물을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렸다. 

보다 못해 애가 닳았다는 듯 고순정이 후다닥 그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나직이 말을 뱉었다. 

“우리는 영원한 KKJ야. 영식이 오빠.”

여자들은 남자들이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 싫어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낚시나 게임 같은 취미에 빠지면 혐오한다. 그러나 내 여자친구 고순정은 다르다. 역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팜므파탈. 내 여자친구 고순정. 마영식이 그런 고순정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응. 그래. 순정아. 우리는 영원한 KKJ야.”

순간 고순정의 눈에서도 눈물이 솟구쳤다. 같은 취미를 지향하며 또 같은 꿈을 꾸는 두 연인 관계 속에서 사랑을 키워간 마영식과 고순정.

초록은 동색이요. 동병상련이니 뭐, 그런 말이 있듯 고순정의 눈물은 마영식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마영식 또한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부드럽게 훔쳤다. 

지금 이 순간!

박토의 집 앞마당엔 이렇게 킹왕짱 바이크 동호회 회원들의 우정과 의리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있던, 그러니까 어느새 부엉이를 도로 지하실에 가둬 두고 온 아이신이 아수하에게 속삭였다. 

“딸배들의 의리가 상당하네. 그치? 아수하?”

아수하도 공감한단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였다.

“진짜 죽는 상황이 오면 같이 죽을 수도 있을 거 같아. 뭐 무협지에서나 보던 그런 의리의 모습을 이렇게 현실에서 마주하다니.. 적응하기 힘드네..”

“그런데.. 저런 게 진짜 의리이지 않을까?”

“응. 하지만 저건 너무 무모한 거야. 다 같이 죽으면 그건 그냥 개죽음일 뿐이잖아. 살 수 있는 사람은 살고 죽는 사람은 죽는 게 합리적이지 않아? 저건 어리석은 거야.”

“그건 그렇지.”

아수하의 말에 바로 수긍한 아이신은 박토를 슬쩍 쳐다보았다. 

박토의 시선은 마당 한 편에 서서 서로 의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KKJ회원들에게 꽂혀 있었다.

그만의 특유의 자세인 팔짱을 낀 채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무언가 분노의 오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솔직히 박토에겐 아이신과 아수하는 말 그대로 배신의 아이콘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도 깊었던 박토.

아이신과 아수하는 괜한 의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KKJ 회원들 때문에 혹시나 괜히 불똥이 튈까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그저 숨죽이며 조용히 구석에 선 체 눈치만 보고 있던 중, 갑자기 박토가 소리를 쳤다. 

“됐고! 재회의 시간은 충분히 했어! 다들 안으로 들어 가! 할 얘기가 많으니까!”

하지만 박토의 말에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가 함정으로 유인하는 게 아닐까라는 듯 서로를 쳐다보며 웅성이자 김탄이 소리쳤다. 

“그래. 토 형 말대로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자 언제까지 이 밤에 마당에 있을 수는 없잖아!”

그제야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당에 있던 마영식과 고순정 그리고 KKJ 회원들은 하나둘씩 박토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남겨진 아이신과 아수하가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박토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잠깐! 기다려. 오운족.”

-설마 이대로 쫓아내는 건 아니겠지?-

두려운 마음에 그들이 뒤를 돌아보자 박토가 대뜸 물었다. 

“알았어?”

아이신이 되물었다.

“뭘?”

박토가 현관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을 뱉었다.

“친구라는 건 저런 거야. 서로 믿는 것. 그리고 배신하지 않는 것.”

역시 박토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오운족은 이 상황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의 배신의 아이콘인 아수하와 아이신은 그저 말없이 똥 씹은 얼굴로 고개를 툭 떨구었다. 

그들의 귀로 박토가 집안으로 들어가며 현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씁쓸함에 마음이 아팠지만 이 집에 절대 나갈 수 없다. 배달석을 무조건 사수해야 하는 오운족인 아수하와 아이신도 슬그머니 박토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

-아이. ㅈ같이 춥네.-

서늘한 한기에 잠에서 깬 미캐가 눈을 떴다. 사방은 캄캄했고 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추운 걸까? 추워서 뒤지겠다.-

정신을 차린 미캐는 지금 그녀가 누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역시 그녀는 아직도 갇혀 있었다. 추위에 몸을 웅크리려 움직여 봤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역시 그녀는 여전히 결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과 조금 다른 점은 그녀가 의자나 침대가 아닌 그냥 바닥에 놓여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체였다.

미캐가 상체를 일으켜 세워 앉았다. 순간 머리가 핑 돈 그녀가 어지러워 몸을 휘청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어지러움이 사라지자 그녀는 몸을 기댈 만한 곳을 찾기 위해 엉덩이와 발을 써가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플라스틱 통 같은 게 걸리자 투덜거리고는 그 통을 돌아서 갔다. 한참을 그렇게 움직이던 미캐의 발에 벽이 걸리자 그녀는 몸을 돌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조금 덥혀진 몸 때문에 그녀가 느끼던 한기는 가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이내 한기는 다시 찾아 들었다. 지금은 초여름이다. 왜 이렇게 추운지 그 원인을 알고 싶었던 미캐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캄캄한 어둠 속에 저 멀리 아주 작은 붉은색 불빛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숫자 같았다. 

21:51 10℃

숫자를 본 미캐는 순간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챘다. 

“냉장고 안이잖아?”

순간 그녀는 여기로 오기 전 잠깐 정신을 차렸을 때 생체 폐기물 실로 이동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이곳은 생체 폐기물 실이 맞다. 

그때 그녀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데 오늘은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추위에 대해 저항을 하려 했다. 그 사실에 미캐는 자조적인 미소도 나와버렸다. 

-웃기네. 죽고 싶다면서 추워서 뒤지겠대. 미친. 병신 같다. 이미캐.- 

칠흑 같은 어둠과 차가운 냉기. 이 두 개가 미캐의 마음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든 걸 포기한 상태. 그녀 뜻대로 다 내려 놓고 그냥 얼어 죽자. 그런 마음인 듯 그대로 고개를 툭 떨구었다. 

시간이 지나자 한기는 미캐의 살갗을 파고들어 아리게 했다. 참을 수 없었던 그녀가 열을 내기 위해 몸과 머리를 흔들었다. 순간 그녀는 그런 자신이 바보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살기 위한 마음이 컸기에 열을 내기 위해 몸과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순간 미캐는 목에 어떤 이물감을 느꼈다. 그 이질감은 마취 주사 장치였다.

처음부터 꽂혀 있었던 장치도 여전히 꽂혀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항상 그녀가 잠에서 깨어날 때 선행되는 음성을 듣지 못한 것이었다.

“마취 용액이 떨어진 건가? 그래서 깨어난 건가? 뭐, 아무렴 어때. 어차피 죽을 건데..”

혼자 중얼거린 미캐는 걸리적거리는 주사 장치가 싫었다. 그것을 빼려고 목을 이리저리 비틀며 움직여 봤다. 

하나, 대체 어떻게 고정이 되어 있길래 빠지지 않는 건지. 이내 포기했다. 다시 머리를 벽에 붙인 미캐는 그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몸속의 더운 입김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게걸스럽게 집어삼켰다. 부족했는지 미캐의 찬 공기가 입 안까지 치고 들어오자 미캐가 입을 닫았다.

-차라리 지금 당장 누가 날 좀 빨리 죽여줬으며 좋겠네. X팔. 이 지긋지긋한 거지 같은 인생을 끝낼 수 있게..-

이 생각에 갑자기 서러웠는지 목이 메인 미캐가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끅 소리를 내며 참았다. 그로 인해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신 가슴이 시려오고 아팠다. 

-진짜 내 생각대로 정말 난 저주받은 게 맞을지도 몰라. 정말 처음부터 아무도 날 사랑해 주지 않았으니까. 언제나 버려지고 또 버려지고 또 버려졌어. 난 X 같은 거야. 진짜.-

마음의 소리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빌어먹을 눈물.- 

미캐는 울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눈물이 흘러 짜증이 났다. 

“개 X발! X같은!”

눈물을 멈추라 성을 냈지만 멈추지를 않았다. 이를 꽉 악물어 참아 봤다. 그래도 소용 없었다.

이 놈의 눈물은 생각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왜 울고 싶지 않은데 저절로 눈물이 나오는 걸까?

흘러내린 눈물은 이내 차가운 공기와 만나 더욱더 차디차게 변해 미캐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얼굴도 시려오자 짜증이 난 그녀가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개차반. ㅈ 같고 엿 같은 내 인생. 이럴 거면 난 왜 태어난 거지? 난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하면 안 되는 거야? 

어째서? 내가 괴물이라서? 괴물로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X 같이 산 거냐고?”

순간 미캐의 가슴에서 화가 확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태어난 게 죄, 그 자체인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최악이야! 개 X팔!”

< 최악이야! 개 X팔!>

미캐의 소리가 텅 빈 창고의 벽에 가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그 되울림이 미캐의 마음을 더욱더 공허하게 만들었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또 그녀를 찾는 사람도 없는, 이 세상에 혼자인 외톨이 이미캐는 가슴에 먹먹함만 맴돌 뿐이었다. 

미캐는 정말 외톨이었다. 친구도 부모도 없는 말 그대로 혼자인 외톨이. 미캐의 엄마는 미캐가 6살 때 집을 나갔다. 

그 후로 아버지와 살다 미캐가 17살 가출을 하고 난 후, 아버지의 생사는 알 길이 없게 돼버렸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를 찾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또 찾지도 않았었다. 그런 그녀에게 가족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최근까지 그나마 같이 지냈던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늑대 카페 여사장이 전부였다. 

미캐의 일과는 오전 11시까지 늘어지게 잠을 자다 카페가 문을 열면 숙식을 제공하는 대가로 카페 일을 도와주었다. 

해가 지면 진짜 미캐의 본업이었던 인형 탈을 쓰고 돌아다니는 게 전부였었다. 인형 탈 아르바이트는 기초 시급에 한참 못 미치는 시급 5000원짜리 일이었다. 하루 6시간을 돌아다니고 받는 돈은 하루 30,000원이었다.

돈은 주급으로 받았고 돈을 쓸 일이 없는 미캐는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 카페 한 편에 있는 창고에 미캐만 아는 비밀 공간에 넣어 두었다. 미래를 위해 나름 미캐가 저축한 돈이지만 지금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미캐는 곧 죽을 것이고 또 살아난다 해도 여기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는 여기서 죽어야만 나갈 수 있었다. 

-이게 겨우 내 생의 마지막이라니.. 겨우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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