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우리는 킹왕짱!

이제는 마음의 짐이 귀신의 목소리까지 듣게 한 건가? 죽은 자의 목소리가 들리다니..

자꾸만 신비한 현상에 김탄은 이대로 가다간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됐다.

그런데..

또..

“탄아!” 라고 코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탄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후벼 파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또 환청을 들은 게 아닌지 그랬는데, 그러다 순간 고순정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겁이 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탄아, 너도 들었니? 이 목소리 코.. 코피 오빠 목소리 같은데?”

순간 김탄이 깜짝 놀라 되받아 쳤다.

“누.. 누나도 들었어?”

고순정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청이 아닌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코피 형이 확실하다.

김탄이 어둠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코피 형! 어디 있어! 코피 형! 진짜 형이야!”

하지만 더 이상 코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환청인가? 누나?”

김탄의 물음에 고순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환청이 아니야. 기다려 봐.”

고순정이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김탄도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갑자기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초능력을 얻어 귀가 예민해진 김탄만 듣는 소리였다. 

그가 그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자, KKJ회원들이 세워 놓은 바이크 뒤 편에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였다. 

“저쪽이야. 느티나무 쪽. 저쪽에서 소리가 들려.”

김탄의 말에 마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느티나무를 쳐다보았다. 

“저기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린다는 거야?”

박토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무를 가리키며 묻자 김탄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박토가 나무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무언가 인기척을 느낀 박토. 어렸을 때부터 훈련 받아 생긴 그의 매의 눈에 코피의 모습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람 같기도 하고 곰 같기도 한 게.. 뭐지? 저건?-

박토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대며 중얼거렸다.

“시커먼 게 내려오고 있는데.. 저건 대체 뭐지? 곰 인가?”

김탄은 화들짝 놀랐다. 깊은 산골이라 곰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분명 코피 형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왜 곰이 나타나는 걸까?

그가 잔뜩 긴장한 체 나무를 자세히 쳐다보자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정말 박토가 말한 시커먼 곰 같은 게 움직이는 게 살짝 보였다. 

그 순간 김탄은 그 곰이 코피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코피의 피부색 때문에 빛이 비쳐도 어둡게 보인 탓에 박토가 코피를 보고 곰이라고 생각했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곰이 아니고 사람이야. 토 형.”

“그런데 왜.. 얼굴이 보이지 않지?”

“코피 형은 세네갈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거든. 어두워서 잘 안 보여.”

순간 당황한 박토는 말없이 김탄을 바라보다 다시 느티나무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 곰 다리가 아닌 진짜 사람의 다리가 나무 기둥으로 내려왔다. 세네갈 출신 외국인 노동자 코피였다. 

그를 한 눈에 알아본 김탄이 소리쳤다.

“코피 형!”

김탄의 목소리에 코피는 무언가 감정이 폭발한 듯 눈물을 훔치며 김탄에게로 뛰어왔다. 

“흐어어엉. 탄아!”

김탄에게 다가온 코피는 그를 와락 껴안고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김탄이 물었다. 

“살아 있었던 거야? 난 형도 죽은 줄 알았어.”

“흑흑.. 죽을 뻔했지. 조금만 늦었더라면.. 반장님이.. 날 살린 거야.”

“뭐? 반장님이 형을 살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김탄의 물음에 코피가 진정을 하려는 듯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는 자세히 자초지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가 폭발한 날 영식이가 음료수를 사오고, 화장실을 간다며 내게 전해주라고 했던 거 기억해? 탄아?”

탄이 고개를 끄덕이자 코피가 계속 말을 이었다.

“사실은 화장실에 간 게 아니라 로또를 사러 갔었대. 로또를 사다 신우 프로텍이 화재가 난 걸 알고 부리나케 오다 네가 납치를 당하는 걸 목격한 거야. 그래서 여기로 오게 된 거지.”

“아. 그랬구나. 그럼 코피 형은?”

“난 반장님 때문에 섭섭해서 울다가 집으로 갔어.”

“그럼 그때 회사에 없었던 거야?”

“응.”

“다행이다. 난 형도 사고로 죽은 줄 알았거든. 그런데 어떻게 영식이 형을 만나 거야?”

“집에 가다가 순간 내가 회사에 가방을 놓고 온 걸 알아챘지. 너무 화가 나서 그만 가방을 놓고 집으로 갔던 거야. 그런데 지하철 입구에서 나오니까 회사가 불타고 있더라고. 오 지저스 크라이스트! 너무 놀라 미친 듯이 회사로 달려갔지. 그런데.. 그런데..”

코피는 무언가 말하기 힘들다는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코피에게 탄이 재촉했다.

“그런데?”

잠시 머뭇거린 코피가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김탄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니야. 지금 얘기하긴 그러네. 나중에 얘기하자. 너무 긴 얘기라.. 아무튼 네가 납치당하고 영식이가 나타났어. 영식이가 너를 납치한 사람들을 뒤따르던 걸 내가 막아 세웠지. 하지만 영식은 죽는 한이 있어도 너를 구하러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어. 그리고 나와 함께 너를 구출하러 가자며 나를 바이크에 태우고 여기로 오게 된 거야.”

“그랬구나. 그럼 지금까지 여기 숨어 있었던 거야?”

김탄의 질문에 코피는 무언가 두려운 듯 몸을 떨었다. 그런 그가 박토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그를 등지고 돌아 섰다. 

박토는 그런 그의 태도에 기분이 나빠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외국인이 자신을 벌레 보듯 외면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에.. 

-혹시 내가 정상이 아니라서? 처음 보는 사람에겐 그렇게 보이는가? 왜?-

박토가 이렇게 머릿속으로 상념에 젖어들 때, 코피가 김탄에게만 들리도록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영식이가 잡힌 날 영식이가 네 동향을 보고 오겠다며 이 집으로 왔지. 난 저기 산기슭에 숨어 있었고. 그런데 영식이 이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비명을 지르지 뭐야? 그래서 난 영식이에게 미친 듯이 달려갔어. 하지만 내가 이 집에 도착했을 땐 영식이는 기절한 상태로 내 뒤에 있는 남자에게 끌려가고 있더라고. 그때 난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했어.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돌아갈 수도 없었지. 난 바이크도 몰 줄 모르고 또 여기서 나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았거든. 그래서 지금까지 숨어 있었던 거야.”

김탄은 지금 코피의 말에 가슴 깊이 수긍했다. 그도 처음 여기 왔을 때 딱 코피와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김탄이 격하게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코피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난 기회를 봐서 영식이를 구하고 너를 구한 다음 탈출하려고 했지. 하지만 이렇게 되어 버렸네.”

“아니. 잘했어. 잘 왔어. 여긴 안전해. 그리고 난 그날 납치를 당한 게 아니라 저 형이 구해준 거야.” 김탄이 손으로 박토를 가리켰다.

코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끔벅거리다 박토를 한 번 쓱 쳐다보곤 화들짝 놀란 후 김탄의 귀에 다시 속삭였다.

“정말이야? 난 못 믿겠어.”

코피의 물음에 김탄은 대답대신 빙긋이 웃었다. 그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납치하고 영식을 기절시켜 지하실에 가둔 사람을 어떻게 좋다고 말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던 김탄. 그냥 이렇게 말해 본다. 

“믿어도 돼. 표정은 무뚝뚝해도 진짜 좋은 사람이야.”

그의 말에도 코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박토의 표정은 더욱더 일그러졌다. 김탄은 그런 그의 표정이 마음이 쓰였다. 

사실 박토는 깊이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겐 정상이 아닌 듯 보이지만.....뭐, 좋은 사람이긴 하다.

아무튼 김탄은 그저 박토를 보고 씨익 한 번 웃어줬다. 마치 코피가 저러는 걸 그냥 이해하라는 듯. 그런데 고개를 가로젖는 박토. 기분이 나쁘다는 듯 한쪽 눈썹은 추켜 올라가 있었다. 

“정말 처음 봤을 때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나?”

박토의 물음에 김탄은 대답대신 손으로 입을 가리켜 큭큭 웃어댔다. 그렇다면 맞다는 뜻. 박토의 얼굴이 조금 더 침울해졌다. 

덜컹!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모두가 그곳을 돌아봤다. 아수하가 마영식을 데리고 마당으로 나오고 있었다. 

오랏줄에 묶인 영식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걸 본 김탄이 깜짝 소리쳤다.

“당장 안 풀어? 수하 누나! 그런 모습으로 데리고 오면 어떡해!”

“아! 미안. 생각을 못했어.”

당황한 아수하는 서둘러 영식의 몸에 묶인 줄을 풀었다. 그러자 다시 

덜컹!

소리가 나며 현관문이 열리고 아이신이 나왔다. 박토가 그를 보자마자 화가 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부엉이는 왜 데리고 왔어! 도로 안 갔다 놔!”

부엉이를 품에 안고 있던 아이신은 박토의 불호령에 화들짝 놀라 다시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아낙네의 구슬피 오열하는 소리가 들렸다. 

“으허허허어엉! 영식 오빵!”

이 소리는 고순정이 영식에게 울며 달려가는 소리. 순간 고순정의 목소리에 마치 각인 된 것이 반응하듯 마영식은 재갈이 물린 체 그녀를 향해 뛰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 서로 부둥켜 얼싸 안고는 눈물을 흘리며 재회를 시작했다. 

“흐어어엉. 오빵.”

“우엉아. 오아 우아러 온 어야?”

“누가 우리 오빠한테 재갈 물렸어?!”

고순정은 박토를 돌아보며 소리를 빽 지르고는 영식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었다. 

이제 말을 재대로 할 수 있게 된 마영식.

“순정아. 오빠 구하러 온 거야?”

순정은 흘러내린 눈물을 훔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KKJ 회원들을 보며 나직이 말을 뱉었다. 

“우리는 KKJ잖아.”

순정의 말에 영식은 깜짝 놀란 듯 입을 벌렸다. 그가 마당 한 편에 모여 있는 KKJ 회원들을 쳐다보다 중얼거렸다.

“짜직들.. 남자를 울리네.. 개 같은 새끼들..” 

영식의 눈시울은 다시 붉어졌다.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는 것만큼 영식의 가슴도 뜨거워져 있었다.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마영식. 지금 그는 참 잘 산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감동한 그가 가볍게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안고 있던 순정의 몸을 풀었다. 그리고는 순정을 옆으로 비켜서게 하고는 KKJ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얼굴에 비장함이 흘러 넘쳤다. 

마영식이 갑자기 주먹을 쥔 한 팔을 하늘 높이 추겨 올리며 소리쳤다.

“KKJ! 스피드는 생명이다!”

“스피드는 생명이다!”

KKJ의 회원들이 일제히 영식을 따라 복창하자 다시 마영식이 소리쳤다.

"생과 사를 함께 한다!”

“생과 사를 함께 한다!”

“킹왕짱은 영원하다!”

“킹왕짱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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