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여자

벤치에 앉아 능선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거세게 불자 억새꽃이 파도타기를 시작한다. 짙은 구름 속에 가려있던 해가 잠시 제 모습을 드러났다. 빛이 억새꽃 무리 내려꽂히자, 신비롭게도 빛들이 바람 끝에 매달려 억새꽃을 무리를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신의 음성이 들릴 것만 같은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마음이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성당을 뛰쳐 나왔을 때보다 마음이 한결 가라앉아 있었다.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요셉 신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신호가 떨어졌다. 그런데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성당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오랫동안 신호가 갔다. 하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요셉 신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불길한 생각이 스치고 지났다. 내가 제주도에 내려온 이후로 요셉 신부의 건강이 잠시 좋아졌다. 그래서 잠시 방심했다. 마치 그가 건강한 사람인 양 거친 말로 공격했다.

윤 소피아에게 전화를 하며 산굼부리를 정신없이 내려왔다. 요셉신부가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주차장으로 들어오던 택시를 붙잡았다. 요셉 신부의 축 늘어진 어깨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내가 성당에 도착했을 땐, 이미 요셉 신부는 병원으로 실려 간 다음이었다. 윤 소피아가 성당을 지키고 있었다.

“어디를 갔다 왔어요. 신부님이 지금 위독해요.”

“의식은 있어요?”

“우선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도착하면 보좌신부님이 알려주시기로 했어요.”

정신이 아찔했다. 몸을 겨우 벽에 기대고 섰다. 윤 소피아는 병원에 가지고 갈 짐을 챙기며 요셉 신부가 쓰러졌을 때의 상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제가 늦게 오는 바람에 아침 식사가 늦었어요. 그런데 식사를 하시려다 말고 가만히 앉아 계시는 거예요. 어떻게 놀랐는지. 마치 식물인간처럼 말없이 한동안 앉아 있다가 그대로 넘어지더라고요. 그 상황인데도 어찌나 비아를 찾았는지 몰라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계속 찾았어요. 요 며칠 동안은 요셉 신부님이 잘 견디고 계신 거예요. 병원에서는 기적이라고도 해요.”

윤 소피아가 주는 가방을 들고 곧장 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요셉 신부는 응급실에 누워있었다. 산소 호흡기를 부착하고 있었고, 위급한 상태였다 핏기 하나 없는 그의 얼굴은 시트보다 더 하얀빛이었다. 앙상하게 드러난 광대뼈는 화석처럼 허물어질 듯 푸석해 보였다.

보좌신부 안절부절못하고 의료진을 불러 조치를 빨리해달라고 재촉했다. 전문의가 오고 있다는 말뿐이었다. 나는 요셉 신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조금은 부어 있었다.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신부님! 어서 깨어나세요. 비아가 왔어요. 이젠 철없는 소리를 하지 않을게요. 이대로 보낼 수는 없어요. 어서 일어나세요. 비아가 잘못했어요.’

나는 허리를 굽히고 바짝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순간 그의 눈이 움찔해 보였다. 그건 단순한 생리현상이 듯싶었다. 요셉 신부는 깊은 잠 속에 빠져 있었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고, 요셉신부는 집중관리실을 거쳐 일인용 입원실로 옮겼다. 그는 한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않다가 30분 전에 잠시 눈을 떴다. 그리고는 의사가 묻는 말에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에너지가 바닥이라서 의식이 돌아오더라도 다시 잠에 빠져들 수도 있으니 잘 지켜보라고 의료진의 설명이 있었다. 밤은 깊어졌고, 그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머리를 흔들며 헛소리했다. 나로 인해 그가 혼수상태에 빠져든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아려왔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갔다. 점점 하늘이 엷어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요셉 신부의 의식이 돌아왔다. 온전하지는 않아도 물음에 반응을 보였다.

햇살이 깊게 퍼지자. 요셉신부가 겨우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 봤다.

“비아가 나보다 더 환자 같네.”

“그런 걱정은 하지 말아요. 이젠 신부님 힘들게 하지 않을 거예요. 오직 천주의 계율에 따라 살아온 분을 어쩌라고 그런 몹쓸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저, 끔찍한 벌을 받을 테지요? 하느님의 아들을 유혹했다는 죄목으로 말이에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어리석은 자는 바로 나야. 긴 꿈을 꾸었어. 아름다운 풍경과 꽃이 만발한 곳에 도착했어. 붕 떠다니는 기분이 들더군. 곳곳에 행보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어. 내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마리아도 보이더군. 나는 생각했지. 바로 이곳이 천국이구나,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지. 고운 빛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게야. 그런데 비아가 어디에도 없다는 걸 깨달았지. 나는 그곳을 빠져 나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 비아가 없는 곳은 지옥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그래서 깨어나신 거군요.”

요셉 신부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너무도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요함과 따뜻함이 맞잡은 손안에 가득했다.

요셉 신부는 병원 처방을 잘 따라주었고, 미음도 조금씩 삼켰다. 잠든 시간을 제외하고는 다정하게 이야기하면서 보냈다. 요셉 신부와 한 공간에서 같이 생활할 수 있다는 건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가슴 벅찬 일이었다.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그의 죽음도 인지하면서 호흡이 거칠고 빨라질 때마다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진통제를 맞는 횟수도 점점 많아졌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병원에서 2주가 넘는 치료를 받고 별 차도를 보이지 않자, 일단 퇴원을 하기로 했다. 요셉신부의 바램이기도 했다. 성당에서 마지막 봉헌기도를 올리고 싶다는 뜻을 받아들였다.

주치의의 승낙을 겨우 받아내서 그의 마지막 선택을 돕기로 했다.

퇴원 후에도 요셉 신부는 사제관에서 링거를 맞고 지냈다. 진통이 있을 때마다 진통제를 먹는 게 전부였지만, 요셉 신부의 혈색이 차츰 밝아졌다. 초인간적인 힘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요셉 신부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주위의 모든 시선은 개의치 않아 했다. 요셉 신부도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기를 바라는 애처로운 눈빛이었다.

신의 음성

“비아! 비아…!”

신의 음성처럼 들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요셉 신부가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신부님! 왜 그러세요?”

“비아와 잠시 이야기하고 싶어서 깨웠어. 힘들지?”

“저는 힘들지 않아요. 벌써 새벽 4시네요. 새벽 기도에 참석하려면 일어날 때가 됐어요.”

“전재미 마을에 관한 꿈을 꾸었어. 너무도 생생하게 보였어. 어린 비아도 보이고 마리아도 보이고. 마치 그때의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간 느낌이었어. 비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아직도 비아가 원한다면…….원한다면 말이야.”

그는 말 잇기를 멈추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비아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신부의 옷을 벗고 비아와 혼배 성사를 보고 싶어.”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저음이면서도 간헐적으로 떨림이 섞인 목소리였기에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왜 말이 없니?”

“신부님은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 있어요. 비아는 이제 그런 욕심 부리지 않아요.”

“아주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그동안 제 욕심이 너무 컸어요. 평생 신부의 계율에 따라 살아온 분인데, 마지막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책임 의식은 전혀 느끼지 마세요. 길들인 것에 책임을 지란 말은 지워버리세요. 저는 신부님이 길들인 양이 절대로 아니거든요.”

요셉 신부는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어깨가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새 내 두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단 며칠, 아니 몇 시간이라도 그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혼이란 제도에 반기를 들었던 때도 있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의 결합을 제도 안에서 통념적으로 묶어버리려는 인위적인 장치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자꾸만 그 장치 안에 나를 가두어 두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와 합법적인 관계로 묶이고 싶은 욕구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비록, 내일 그와의 이별이 올지라도 말이다.

세상이 온통 는개로 자욱했다. 자동차 불빛조차 피어오른 는개에 갇혀 코앞의 가시거리를 가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말 지독한 농무(濃霧)였다. 불길한 기운까지 감돌았다. 마치 어둠을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는 하늘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서도 슬픔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림자조차 삼킨 밤인 탓에 저녁 8시인데도 퍽 깊은 밤처럼 느껴졌다.

며칠째, 요셉 신부의 건강 상태가 몹시 나빠 주치의가 왕진을 다녀갔다. 주치의는 잘 버텨주고는 있지만,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했다. 요셉 신부가 곧 하늘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밤새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말문도 닫고 거칠게 호흡했다.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 살아보지 못했던 아쉬움과 나를 홀로 두고 세상을 떠난다는 것에 힘들어했다.

“신부님, 비아 괜찮으니까, 편안하게 떠나세요. 비록 신부님의 아내는 될 수 없었어도 너무나 큰사랑을 받았어요. 전혀 외롭지 않을 거예요. 함부로 살지도 않을게요. 평범하게 살아갈게요.”

“비아…….”

요셉 신부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가 커다란 산처럼 느껴졌다. 힘없이 누워있어도 나를 위해 무엇이든 다 해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신부님이 항상 비아 곁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저 열심히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 수 있어요. 듣기만 하세요. 사랑합니다. 신부님! 신부님은 항상 제 영혼 속에 살아 있으며, 제 그림 속에서 되살아날 겁니다.”

“비아, 날 일으켜 줘.”

그는 바로 앉고 싶어 했다. 말하기도 힘든 몸으로 일어나는 건 쉽지 않았다. 요셉 신부를 일으켜 세워 겨우 벽에 기대 앉혔다. 링거가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다.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수염이 제법 길었다.

“우리 신부님 면도해야겠어요.”

“면도와 세수를 해주고 양복을 입혀 줘.”

덜컥 겁이 났다. 때가 왔단 생각에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어지럼증까지 일어났다.

‘헤어질 시간이 온 것인가.’

요셉 신부의 수염을 자르고 따뜻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양복을 입혔다.

“비아, 고마워. 이젠 묵주와 기도서를 가져다 줘.”

그가 기도할 때마다 쓰던 묵주와 기도서를 가져다주었다.

“비아, 이리와 앉아. 마지막으로 내가 비아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비록 육체적으론 하나가 될 수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어달라고 천주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려보는 것이야.”

“신부님!”

“어서 이리로 와서 앉아 봐요.”

요셉 신부와 나는 나란히 앉아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천주여, 저를 벌하소서. 계율을 깨트린 저를 하늘의 심판에 따라 벌하소서. 비록 사제의 길을 다하지 못했지만, 한 여자의 깊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 여인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 그녀와 깊은 사랑을 나누고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어찌나 슬픈지, 제발 신부님 그만두세요. 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가 팔을 벌려 내 어깨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묵주를 그의 손과 내 손에 감았다. 그와 나는 말 없이 사랑의 로사리오를 내려다봤다. 그의 체온이 번져왔다. 그의 체취가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 요셉은 비아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비아를 영원한 동반자로 생각하며 사랑할 것입니다. 그녀의 영혼과 나의 영혼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

“나, 비아는 요셉을 남편으로 맞이합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당신을 사랑할 것이며.”

나는 말을 잊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전능하신 천주여, 저희가 하나가 되었음을 알려주십시오. 몸은 비록 떨어져 있어도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그가 나를 끌어당겨 입맞춤했다. 바싹 타들어 간 그의 입술에서 피가 났다. 그의 피가 내 입안에 고였다. 나는 침을 삼켰다. 비릿한 그의 피가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이제 이 사람은 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감격스러워 입술이 파르르 떨었다. 여느 연인처럼 진한 키스는 아니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키스했다. 파란 그의 눈동자가 어느새 바닷물보다 더 깊은 색을 띠었다. 신부라는 신분으로 바라보았을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비록 남들 앞에 드러내놓고 한 서약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와 나는 부부의 연을 맺은 건 분명했다. 그는 조금 전과는 달리 피곤해 보이지도 않았다. 잠시 착각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예전의 그 모습으로 보였다.

내가 처음 그를 보았을 때의 그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노란 머리카락에 파란 눈동자 그리고 어깨가 넓었던 그 모습이 말이다.

“비아, 우린 이제 하나야. 하느님 앞에서 약속했으니까. 날 요셉이라고 불러. 신부님이란 호칭은 더는 아니야. 그리고 이건 어린 내 신부에게 주는 선물이야.”

그가 침대 속에서 반지를 꺼냈다. 오래된 반지였다.

“내 어머니의 반지야. 나의 어린 신부야. 정말 예쁘다. 난 곧 떠날 테고. 가엾은 내 어린 신부는 오래된 이 반지를 바라보고 울고 있을 테지.”

나는 요셉의 품에 안겨 흐느껴 울었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너무나 행복해서 울어요. 나의 남편 요셉, 태어나서 지금까지 제 마음에 드는 것은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어요.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신이 앗아간다고 생각하며 살았거든요. 너무나 감사해요. 이렇게 당신의 아내로 맞이해주어서요. 요셉, 당신을 정말로 사랑합니다.”

흐르는 눈물 속에 그가 갇혀 있었다. 그동안 가슴 가득 차 있던 슬픔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미친 듯이 휘청거리며 살았던 나였다. 짙은 화장을 하고, 명품을 골라 치장을 해서 내 본연의 색을 모조리 감추어버린 채였다.

고평오에게 성폭행당했을 때부터, 어쩌면 아버지가 는개 속으로 사라진 그 날부터였다. 나의 불행은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요셉이 내 등을 토닥였다.

“비아, 가슴이 몹시 아프다. 나에게 얼마 동안의 시간이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평범한 남편으로서 비아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 내 어린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고작 키스와 포옹뿐이지만 말이야. 비아가 캐나다에 한 번 들렀으면 좋겠는데. 집안에 내 아내를 소개해주겠다고 며칠 전에 형한테 이야기는 해뒀어. 내가 같이할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들을 만나보도록 해. 캐나다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곧 수단을 벗을 일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어. 처음엔 깜짝 놀라더군. 하지만 형이 이야기를 다 듣더니 오히려 내 용기가 부럽다고 말했어.”

“요셉, 장난기가 발동한 행동이었다고 말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요셉의 진심을 알았으니까요. 교단을 떠날 필요는 없잖아요. 어떻게 지켜온 삶인데요. 정말 전 괜찮아요.”

요셉이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 그가 너무 미더웠다. 나는 고독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황량한 들판에 홀로 내몰려진 느낌도 들지 않을 듯했다. 물론 요셉과의 이별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커다란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함 때문인지 요셉의 통증이 잠시 멋은 듯했다.

그 날은 요셉은 내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절대로 잠이 들지 않겠다고 했는데 피곤이 몰려왔고, 곧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그의 손은 내 손을 놓지 않은 채였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랬다. 요셉이 외국인이었는데도 그는 뭔가 달랐다. 이방인이라는 이질감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여자가 되고 싶어서 오만하게 굴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왜 그토록 그를 아프게 했을까. 그의 얼굴에 내 볼을 갖다 댔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가만히 열었다. 희끗희끗한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 다듬었다. 이렇게 함께 누워있는 것으로도, 조용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가슴이 벅찼다.

‘신이여, 그를 조금만 더 제 곁에 두세요. 그를 벌하지 마시고, 사제를 사랑한 저를 용서하지 마소서.’

나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의 얼굴 위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의 목선을 타고 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전히 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너무도 평화스러운 얼굴이었다. 그이 입술에 입맞춤했다. 바삭한 입술 위에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그의 가슴 위로 손을 얹었다. 여위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의 가슴은 넓었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힘없이 뛰고 있는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비아가 힘들 때마다 항상 제 곁에 있어 줘요. 요셉! 하고 부르면 당신은 영혼으로 오세요.’

요셉은 움찔하더니 이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눈을 감았다. 피곤이 몰려왔다.

총총히 쏟아지는 별들이 내 얼굴 위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가슴 위로 요셉의 손이 다가왔다. 마치 어린아이가 파고들 듯 자꾸만 내 품속으로 들어왔다. 점점 나도 그의 체취 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 동안이었을까, 너무도 깊이 잠들었던 것 같았다. 마치 긴 시간을 잔 것처럼 몸이 가뿐하게 느껴졌다. 벌써 날이 밝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요셉은 잠들어 있었다. 옆으로 몸을 웅크린 자세였다. 나는 덮고 있던 담요를 걷어 그의 몸을 감싸주었다. 너무나 평온한 얼굴이라서 잠 깨우기가 싫었다.

곤히 잠든 모습을 보니까,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들여다보았다. 요셉의 어머니가 생전에 끼었다는 반지지만, 디자인이 단순해서 좋았다. 약지에 끼우니까 꼭 맞았다. 요셉과 나란히 누워 함께 잠을 자고, 밥을 같이 먹고, 그리고 그에게 책을 읽어주고 정말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웠다.

요셉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런데 너무 차가웠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요셉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얼굴도 차가웠다. 아니 얼음장 같았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말 한마디 없이 어떻게 갈 수 없단 말이야.”

하지만 요셉은 숨을 쉬고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약하게 맥박이 뛰고 있었다.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낯빛이 너무도 창백하다 못해 노란빛이었다. 그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따뜻한 내 체온을 그에게 주고 싶어서였다. 그제야 그는 눈을 떴다. 빙긋 웃는 그의 밝은 얼굴이 너무도 상큼하게 보였다.

“왜 그리도 잠을 깊이 자는지……. 깜짝 놀랐잖아요.”

“걱정하지 마. 갈 땐 꼭 말할 테니까.”

“식사 준비해올까요?”

“그냥 내 곁에 있어. 비아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거야. 지난밤에는 참 오랜만에 잠을 잤어. 통증도 없었어.”

“저도 그랬어요.”

“좀 정신이 맑아지면, 정원이라도 나가자.”

“저, 어젯밤에 벌어진 그 일은 모두 기억하시지요?”

“무슨 일? 내가 기억하는 것은 요셉이 천주 앞에서 비아를 아내로 맞이한 것밖에는 없는 것 같은데…….”

“벌써 오늘 저를 두 번이나 놀라게 하네요.”

“비아, 시간이 많이 남지는 않았어. 그 시간만큼은 우리 둘을 위한 시간이야. 10년을 같이 있어도 하루를 산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고, 하루를 살아도 10년을 산 것처럼 사랑할 수도 있는 거야.”

요셉은 산책하러 가고 싶어 했다. 장거리는 무리였다. 그래서 가까운 하도리 백사장을 다녀오기로 했다. 하도리는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했다. 사실 그곳이 아버지의 고향이라는 것도 얼마 전에 요셉으로부터 들었다.

요셉이 몰던 차는 차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마냥 서 있었다. 마치 컴컴하고 습한 지하 주차장에 서 있는 그 모습이 골동품 같았다. 다행히 시동을 걸자, 차는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큰 도로로 나가기 위해 핸들을 꺾었다. 오랜만에 핸들을 잡아서 그런지 브레이크를 밟는 감각이 떨어졌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요셉이 불안한지 얼굴이 차츰 상기되어 갔다.

“천천히 갈게요. 십 년 전에 하도리 백사장에 갔었던 거 기억나죠?”

“맞아, 토끼섬에도 갔었지. 그때 비아가 그렇게도 나를 원했었는데, 거절해서 속상했지? 사실 나는 더 두려웠어. 비아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었어.”

그랬었다. 하도리 그 토끼섬에 갔을 때도 나는 요셉을 힘들게 했다. 막무가내로 수단을 벗어버리라고 소리를 질렀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백사장에 서서 그를 부둥켜안고 울부짖었다.

이경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달루에 걸린 직지』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메일 imk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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