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남편의 행방을 알아 냄. 집 나간 게 아니었네..

박토의 표정은 분명히 구린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무언가 진실되지 못하는 또 무언가 확실히 숨기고 있는.. 마치 어린아이가 거짓말을 들킨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도 그런 그의 마음을 읽었는데 이미 다 알고 있는 김탄은 어이가 없었다. 김탄이 박토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형. 부엉이 잡았다며?”

김탄의 질문에 박토는 정말 깜짝 놀라기부터 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너.. 방에만 있었잖아?”

김탄이 가소롭다는 듯 픽 한번 웃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부엉이 잡은 날. 그날 월이 방문 앞에서 내게 말해줬어. 자기 키만 한 부엉이가 덫에 걸렸다고 잡으면 나중에 보여준다고 그랬었거든.”

“그.. 그랬어?”

“그런데 두 마리라 그러더라고.. 사람 목소리를 내는 부엉이도 걸렸는데 삼촌이 아이신 아저씨라며 칼을 들고나갔다면서, 아이신 아저씨는 그런 덫에 걸릴 사람이 아닌데 삼촌이 참 바보 같다고 말했었거든.”

“그.. 그렇지. 아이신은 덫에 걸릴 사람이 아니지..”

말끝을 흐린 박토가 슬쩍 아이신을 쳐다봤다. 그는 지금 이 둘의 대화를 들은 듯 얼굴이 상당히 굳어져 있었다. 마치 참기 힘든 걸 억지로 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아이신이 폭발하며 화를 냈다.

“뭐? 나 인줄 알면서 칼을 들고나갔다고?”

박토대신 김탄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갑자기 아이신 옆에 있던 아수하가 중얼거렸다.

“빨리도 반응하네.”

솔직히 말하면 아이신의 반응은 아수하 말대로 바보같이 느린 대응이었다. 하지만 아이신은 바보가 아니다.

단지 그는 그의 친구라고 생각한 박토에 대한 믿음이 깨졌기에, 그러니까 믿고 싶지 않은 마음과 힘겨운 사투를 벌였기에 반응이 느렸던 것이다.

덫에 사람이 걸렸는데 나인 줄 알고..

“칼을 들고 나갔다고?”

아이신이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한 번 물었다. 분명 박토에 물었지만 박토는 대답하지 않고, 대신 김탄이 대답했다.

“어, 날이 아주 잘 선 장검 있잖아. 엄청 엄청 길고 큰 칼. 그거 들고나갔다고 그러던데? 사실이야? 토 형?”

굳이 장검까지 설명할 필요 없는데 김탄의 오지랖 특성상 내뱉은 말에 박토는 난처했다. 지금 이 시점에는 무조건 이 상황을 회피하는 게 옳다.

하지만 김탄이 그럴 기회조차 차단하는 모습에 박토는 아이신을 보고 있었지만 먼산을 바라보는 중..

-참으로 난처하군..-

한편 아이신의 마음엔 폭풍이 일고 있었다.

-장검이라니.. 장검이라니.. 나인줄 알고 장검을 들고 나갔다니..-

아이신이 다시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 박토에게 되물었다.

“진짜.. 자.. 장검을 들고 나갔다고?”

“응.”

이건 박토의 대답이 아닌 김탄의 대답이다.

두 번 물어 같은 답을 얻은 아이신의 얼굴은 이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실망감으로 가득 찬 그의 눈빛은 혼탁해지고 있었다.

아이신은 지금 눈 앞에 자신이 부엉이 덫에 걸린 상태로 박토가 시퍼렇게 날이 선 장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물론 상상이지만..

나름 박토와 다시 친해지고 싶었던 아이신은 그래서 지금 무척 실망하고 있는 중.

-도저히 마음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장검을 들고 나갈 수 없지 않은가? 박토!-

아이신이 속상한 듯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박토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에 어색하고 민망해진 박토.

딴청을 피우며 눈알을 굴리다 무언가 생각난 듯 손으로 머리를 탁 치고는 말을 뱉었다.

“아, 맞아. 그 검은 우리 8대 조부께서 정조 대왕에게 하사받은 검이야. 우리 집안 보배 중 하나지. 우리 가문 정말 대단하지? 아이신?”

박토의 말은 아이신의 화를 더욱더 돋우었다.

“야! 박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친구가 어떻게 장검을 들고 나갈 수 있지?”

그런데..

박토는 아이신의 화에 되려 어이없다는 듯 비웃었다.

“풉~ 친구? 누가? 우리가? 언제부터?”

아이신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분을 못 이긴다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보다 못한 아수하가 그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바탈을 돕고 배달석을 찾는 걸 같이 하기로 했잖아. 그럼 친구 아니야?”

냉정한 박토.

“아니. 시키는 대로 하기로 한 거 잊었나? 우린 친구 아니야. 종속 관계지. 너희들은 지금 임시 바룬족 노비일 뿐이다. 그게 싫으면 이 집에서 당장 나가던가?”

“정말. 너무 해!”

아수하가 속상한 듯 소리치자 박토도 되받아 소리쳤다.

“20년 전 너무한 건 너희들이었어!”

“그으으으 마아아아안!!!!”

김탄의 사자후 같은 외침에 오운족과 바룬족의 싸움은 바로 멈추었다. 하지만 서로 노려보는 건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김탄이 한심하게 말을 뱉었다.

“그만 싸워. 다들. 진짜. 지금 이 상황에 싸우고 싶어? 토 형!”

박토가 김탄을 쳐다보았다. 지금 이 상황보다 더 급한 게 뭐가 있냐는 눈빛이었다. 그러자 김탄이 그에게 분노하듯 물었다.

“됐고! 그만 싸워. 토 형. 그런데 영식이 형 어디 있지?”

박토는 대답 대신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코로 한숨을 쉬었다. 말 하기 싫다는 뜻. 화가 난 김탄이 다시 채근했다.

“말해. 영식이 형 어디 있는지. 날 화나게 하지 말아 줘. 나 화나면 폭주하는 것 알지?”

김탄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른 묵직한 저음이었다. 즉 여기서 한 끗 더 나가면 진짜로 폭발하겠다는 의미.

-폭주는 절대 안 된다.-

잔뜩 긴장한 박토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짧은 한숨을 쉬며 중얼댔다.

“하아~ 지하실에 가둬 놨어.”

순간 박토의 멱살을 확 잡아 챈 김탄. 정말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와 동시에 고순정은 땅에 떨어진 바이크 체인을 조용히 다시 집어 들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KKJ회원들도 몸 뒤로 감춘 무기를 앞으로 꺼냈다. 다시 전운이 감돌자 그걸 본 김탄이 순정이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모두들 진정해. 여기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은 아니야. 내가 해결할 테니까 모두 가만히 있어.”

하지만 고순정은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탄아. 영식이 오빠를 가둬 논 사람이야. 덫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지 않고 지하실에 가둬놨다고. 저 사람. 정상이 아니야. 미친 사람 아니니?”

지금 이 많은 사람들 중 가장 난처한 건 김탄이었다.

고순정의 말대로 덫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지 않고 지하실에 가둬 논 사람을 어떻게 믿으라고 설득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한 그가 박토를 원망하며 쳐다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형이 정상이 아닌 건 사실이야. 형. 내가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도 딱 우리 순정이 누나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사회성이 이렇게 떨어지는 거지?”

새파랗게 어린 놈한테 지적질을 당한 박토는 그저 눈을 내리깔고 있을 뿐이다. 그는 지금 머릿속으로 김탄이 한 말을 곱씹고 있었다.

-정상이 아니다. 내가? 정상이 아니다. 내가? 왜? 왜?-

이럴 때는 무조건 사과를 해야 하지만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하는 박토의 모습에 김탄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지금 그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일단 고순정과 KKJ 회원들을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김탄이 이를 갈며 고순정에게 말을 뱉었다. 물론 박토의 멱살을 움켜쥔 체..

“여기 이사람 성격은 이상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야. 단지 조심성이 많아서 그랬을 거야. 그리고 내 말 듣고 모두 무기를 내려놓는 게 좋을 거야.”

“아니. 싫어. 저 한 사람쯤이야 우리가 상대할 수 있어. 더구나 다구리엔 장사 없는 거 알잖아!”

고순정의 말에 김탄이 다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아휴~ 누나. KKJ가 모두 다 달라붙어도 여기 이 토 형을 못 이겨. 혼자서 특수부대 같은 킬러 6명을 해치운 사람이야. 그것도 총격전에서.. 성격은 지랄이지만 실력이 완전 끝내준다고..”

김탄의 말을 들은 고순정은 손에 들고 있던 바이크 체인을 그냥 떨어뜨렸다.

바로 항복의 의미. 그러자 그녀를 따르던 KKJ회원들도 무기들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어쩌면 설득보단 협박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설득돼서 다행이다.-

김탄은 그 사실에 안도를 했고, 그가 하지 못한 일을 다시 마저 하기 시작했다.

그가 박토의 멱살을 더욱더 세게 움켜쥐며 나긋하게 협박했다.

“영식이 형은 내 친구야. 빨리 풀어 줘. 안 그러면 진짜 화 낼 거야.”

“알아. 친구인 거..”

순간 김탄이 깜짝 놀라 되받아쳤다.

“뭐? 내 친구인 걸 안다고? 그런데도 가둬 놨다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김탄은 이해할 수 없어 되물었다.

“뭐? 왜? 이유가 뭔데?”

박토는 대답하지 않고 살며시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던 오운족을 노려보았다.

그가 그렇게 한참을 원망과 분노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김탄에게 조용히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오늘은 친구일지 모르지만 내일은 배신자가 될 수도 있거든. 절대 친구를 믿지 마. 김탄.”

또 20년 전 원한을 들먹이는 박토 때문에 오운족은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고, 김탄은 화가 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으이그. 진짜. 빨리 안 풀어 줘! 영식이 형은 내 진짜 절친이라고!”

김탄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박토는 화들짝 놀라 끼고 있었던 팔짱을 풀었다. 즉, 고집을 꺾겠다는 뜻.

“알았어. 네가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절친도 배신을 해. 명심해라. 김탄.”

말을 마친 박토가 서둘러 주머니를 뒤져 작은 열쇠 하나를 꺼냈다.

그걸 본 김탄과 고순정의 얼굴이 더욱더 일그러졌고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박토는 그들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아이신에게 열쇠를 던졌다.

“너희들이 갔다 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으니까.”

열쇠를 받아 든 아이신이 고개를 끄덕이곤 쏜살같이 박토의 집 지하실로 향했다. 그의 뒤를 쌍둥이 여동생 아수하도 따랐다.

곧이어 고순정이 그들의 뒤를 따르려 걸음을 옮기자 갑자기 김탄이 그녀를 잡아 끌며 막아 세웠다.

“기다려. 그냥. 영식이 형은 누나가 기다리길 원할 거야. 누나가 KKJ 넘버 2잖아.”

순간 사사로운 감정에 조직을 등한시할 뻔한 사실에 부끄러웠던 고순정이 미안한 마음으로 회원들을 둘러보다 탄에게 고마워했다.

“응. 네 말이 맞아. 나보다 오빠를 잘 아네.”

“그건 아니고. 그냥 절친이니까..”

김탄의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고순정이 빙긋이 웃었다. 그녀는 지금 모든 문제가 해결 된 듯 상쾌해 보였다. 김탄 또한 답답한 체증이 뚫리는 느낌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이고~ 이제 다 끝났다."

그리고는 그녀를 따라 빙긋이 웃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마영식. 그가 살아 있음을 확인한 김탄은 마음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자신의 실수로 인한 죽음이라 생각했던 그에게는 지금 이순간은 한줄기 밝은 햇살이 비취는 기분.

“탄아!”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 목소리는 분명 코피 형의 목소리다.-

순간 김탄은 귀신을 본 것처럼 머리털이 쭈뼛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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