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갔어? 우리 남편!

김탄이 박토의 집 현관문을 열고 서 있는 걸 본 박토는 화가 났다. 벌떡 일어서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지! 김탄!”

그런데 박토의 입에서 김탄이란 소리를 들은 고순정은 깜짝 놀랐다.

-김탄이라니.. 죽은게 아니라고?-

설마 그녀가 생각하는 김탄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관 쪽을 쳐다본 고순정은 더 깜짝 놀랐다. 진짜 김탄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반가운 마음이 들어 고순정이 소리쳤다.

“탄아! 나야! 순정이 누나야!”

-순정인 누나?-

예상 못한 인물의 등장에 김탄도 깜짝 놀랐다.

“진짜 순정이 누나야?”

“그래. 나야.”

생각지도 못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반가운 마음부터 든다. 김탄도 그랬기에 고순정 쪽으로 허겁지겁 달려가며 소리쳤다.

“어쩐지 순정이 누나 목소리 같더라니! 그런데 누나가 여긴 어떻게 온 거지?”

김탄은 반가운 마음에 그렇게 본능적으로 고순정 쪽으로 향했지만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이상함을 느꼈다.

일단 가기는 했으나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고순정과 그 위로 겹쳐서 넘어져 있는 킹왕짱 바이크 회원들이 참으로 이질적이었지만 그걸 인지한 건 한참 지나서였기 때문이다.

김탄의 달려가는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분명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국 순정이 앞에 선 김탄은 그들의 모양새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미노처럼 엎어져 있는 그들. 김탄이 고순정에게 물었다.

“그.. 그.. 그런데 누나. 왜.. 왜 이러고 있어?”

절실하게 궁금해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시크하기 그지없는 답이었다.

“설명하자면 길어. 나중에 얘기 해.”

더욱더 궁금해진 김탄은 다시 질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러는 걸 멈추었다. 어차피 물어도 답을 안 해줄 게 뻔한 고순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순정이 아닌 회원들에게 물었다.

“일단 일어나. 그런데 왜 다들 엎드려 있는 거지?”

김탄이 의아해 묻자 킹왕짱 바이크 동호회 회원들이 대답대신 일제히 동시에 박토를 쳐다보았다.

분명 이들이 이렇게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듯 엎어져 있는 원인이 박토임을 안 김탄.

그대로 ‘왜 이렇게 만들었어? 빨리 답을 해’라는 듯 고개를 돌려 박토를 쳐다보았다.그런데 박토는 정말 뻔뻔했다. 손님을 푸대접하고도 거만한 표정으로 김탄을 바라보기만 했다.

화가 살짝 난 김탄이 노려보자 그제야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박토가 천연덕스럽게 웅얼거렸다.

“김탄. 네가 아는 사람인가 보네..”

이게 아니다. 일단 지금 김탄의 지인임을 알았으면 사과부터 하는 게 옳다. 그러나 박토는 이상한 답을 해 회피부터 하고 있다. 그 사실에 살짝 열이 오른 김탄이 목소리에 화가 났다며 힘을 주어 다시 물었다.

“형이.. 정말.. 이렇게! 한 거야?”

지금 박토는 애매하다.

-왜 모두들 킹왕짱 바이크 회원들이 내팽개쳐지게 된 게 내 잘못이라 말하고 있는가? 이건 모두 저 원수 같은 오운족 때문인데..-

박토도 살짝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니야. 오운족과 여기 바이크족들이 서로 붙으려고 했는데 내가 싸우지 말라고 소릴 질렀더니 스스로 넘어진 거야!”

이렇게 말하면 오해를 했으니 사과를 해야 하는 게 옳다. 박토가 내심 김탄에게서 사과를 기다렸지만 그는 그를 무시하고 아이신과 아수하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랬어? 정말이야?”

지금 박토는 실망중이다.

-오운족이 잘못했으니 바로 화를 내야지 왜 확인 사살하듯 물어보는가? 이것은 김탄이 나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이로써 박토는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뿐..

“진짜야? 토 형 말대로 우리 순정이 누나랑 킹왕짱 형들이랑 붙으려고 했던 게 사실이야?”

김탄이 재차 묻자 오운족 아수하와 아이신은 입을 꾹 다물고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들은 지금 김탄이 다시 화가 나 다 뒤집어버릴까 겁을 먹고 있다.

-그럼 또 폭주할지도 모르는데.. 이를 어쩌나.. -

그런데 이들의 생각대로 김탄은 화를 내지 않고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중얼댔다.

“아이고. 진짜 내가 못 살아.”

그러고는 엎어져 있는 순정의 팔을 잡아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 다들. 이게 무슨 꼴이야? 대체..”

김탄의 성화같지 않은 성화에 회원들이 땅바닥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런데 지금 김탄의 눈에 색다른 게 보이기 시작했다.

먼지를 터는 그들의 손에 이상한 무기들이 들려 있는 걸 본 김탄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이게 뭐야? 누나. 뭐야? 왜 이런 걸 들고 왔어? 작정하고 싸우러 온 거야? 진짜? 왜?”

김탄의 말에 회원들이 잘못한 아이처럼 손에 들린 무기를 뒤로 감추었다.

딱 한 사람 빼고..

고순정이었다. 고순정은 손에 들린 바이크 체인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무언가 분에 못 이긴 듯한 모습이었다.

“왜 그래? 누나. 무.. 무섭게..”

김탄의 물음에 고순정은 이렇게 답했다.

“영식이 오빠 어디 있어? 탄아?”

그 순간 김탄은 당황한 듯 얼어버렸다.

-이런, 누나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영식이 형이 죽었다는 것을.. 이럴 땐 어떻게 사실을 말을 해줘야 하나. -

김탄은 답을하지 못하고 그저 떨리는 눈동자로 고순정을 바라보기만 했다. 분명 알고 있는데 답하지 않는 것을 눈치 챈 고순정이 다그쳤다.

“탄아. 우리 오빠 어디 있냐고?”

김탄이 마지못해 눈물을 글썽이며 서글픈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미안해. 누나. 내가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순간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은 고순정이 김탄의 멱살부터 잡았다. 그 와중에 그녀의 손에 들린 바이크 체인 부딪히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졌다.

“뭐? 왜 미안하지? 대체 뭐야? 그 의미는..”

“전부 내 잘못이야. 정말 미안해.”

“영식이 오빠 어떻게 된 거야? 왜 미안하다고 하는 거지? 말해!”

순정의 닦달에 김탄은 그저 눈에서 닭 똥 같은 눈물만 흘렸다.

한편 김탄의 모습에 섬뜩한 불안함을 느낀 고순정은 ‘설마..’ 하는 부정의 생각으로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아버렸다.

그녀는 너무 가슴이 아파 손으로 부여잡았다. 그녀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모든 걸 주어도 다 아깝지 않은, 대신 죽어도 좋은 사랑하는 그의 남자친구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가 김탄에게 다시 물었다.

“말해. 당장. 우리 영식이 오빠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영식이 형은 죽었어.”

김탄이 힘없이 중얼거린 말에 고순정은 지금 패닉이다.

“으아아아아악! 말도 안 돼! 헉.”

정신줄을 놓은 듯 그대로 땅에 털썩 주저앉아버린 그녀. 정말 넋을 잃은 체 허공을 보다 더 이상 믿기 힘들다는 듯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 잃은 과부의 서럽고도 구슬픈 울음소리가 마당에 휘몰아치자 그녀를 따르던 킹왕짱 바이크 동호회 회원들도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통곡의 바다가 된 박토의 집 앞마당. 김탄도 그들의 슬픔에 젖었는지 그의 얼굴도 눈물로 젖어 있었다.

박토는 그런 그의 어깨를 손으로 토닥이며 위로했다. 그때 처량하게 울기만 하던 고순정이 무언가 악에 받친 듯 이를 악물며 김탄에게 물었다.

“누구야?”

대뜸 누구냐고 물어보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김탄이 되물었다.

“응?”

“누가 우리 오빠 죽였냐고?”

“응? 누가?”

“영식이 오빠 죽었다며?”

“응. 죽었어.”

“못 알아들어? 그럼 누가 죽인 거냐고?”

-파이온이 죽였다는 소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건 오직 김탄과 예언을 지키는 자들만 아는 비밀인데..-

난처했던 김탄이 말해도 되냐는 듯 박토를 쳐다보았다. 박토는 그래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온이 죽였어.”

“파이온?”

“응. 파이온이란 세력이 있는데 그들이 신우 프로텍을 폭파시켰어. 그때 영식이 형이 죽은 거야. 나쁜 놈들이야.”

김탄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당에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일제히 뚝 끊겼다. 조금 전까지 구슬피 울던 고순정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곤 무릎에 뭍은 흙먼지를 탁탁 털었다. 전혀 슬퍼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변한 고순정과 바이크 동호회 회원들의 태도를 김탄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흙먼지를 다 턴 고순정이 김탄을 보며 씩 웃었다.

-진짜 정신이 처 돌았나? 갑자기 왜 저럴까?-

김탄이 이 생각들로 머리가 혼탁해지자 고순정이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야? 그때 우리 오빠 죽지 않았어.”

김탄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뭐? 뭐라고? 영식이 형이 그때 안 죽었다고?”

“그래. 살아 있어.”

“진짜야?”

“그럼 내가 여길 왜 왔겠어?”

김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순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신우 프로텍 화재가 나고 나서 탄이 네가 납치를 당했다고 영식이 오빠한테서 전화가 왔었어. 오빠가 미행을 해서 나중에 연락을 할 테니 KKJ회원들을 소집하고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었거든.. 그런데 그게 마지막 연락이었어.”

“그럼 영식이 형이 여기 와 있다는 거야?”

“그래. 탄아. 영식이 오빠 핸드폰 GPS 기능을 내가 활성화시켜놨거든. 위치 기록을 보고 찾아온 거야. 여기가 마지막 방문지였고 와보니 불 켜진 집이라곤 여기 하나밖에 없어 이곳으로 온 거야. 그래서 여기로 온 게 맞아. 탄아. 영식이 오빠 여기 이 집에 있어.”

“하지만 이 근처에 영식이 형이 있으면 누나를 알아보고 찾아왔을 거야. 그런데 왜 안 오지?”

“네 말이 맞아. 누가 가둬놓지 않았으면 우리 바이크 소리만 듣고도 찾아왔을 거야. 하지만 오지 않았어.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탄아.”

순간 김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김탄의 표정에 고순정의 표정도 따라 어두워졌다.

고순정은 다시 든 부정의 생각 때문인지 들고 있던 바이크 체인을 땅에 툭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자 덩달아 KKJ 회원들도 고개를 숙인 체 침울해했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머릿속이 선명해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김탄.

그는 굳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다 짧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박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토 형.”

김탄이 무미건조하게 부르자 박토가 짧게 대답했다.

“응?”

“영식이 형 어디다 가둬 놨어?”

김탄의 물음에 박토가 갑자기 팔짱부터 꼈다. 그가 상당히 방어적일 때 나오는 행동.

그런 그가 불안한 시선으로 KKJ 회원들과 고순정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펴보다 웅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그게? 대체 어디다 뭘 어디다 가둬 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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