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겁게 끝나버린 혈투

한편 이들의 호들갑스러운 꼴값 떠는 걸 얼이 빠지게 지켜보고 있던 배달 오토바이 무리 중 넘버 3가 고순정에게 입을 열었다.

“야. 순정아. 쟤네들 좀 이상해. 또라이들 아냐?”

고순정도 같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신과 아수하를 노려보았다.

“내 남편 잡아간 정신병자들이야. 다들 존X 조심해야 해.”

고순정의 말에 넘버 3가 결의에 찬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병자 또라이들에게서 정신 바짝 차리자. 뭐, 이런 생각인 듯.

고순정이 손에 들린 바이크 체인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얘들아! 다 덤빌 준비해! 아무리 잘 싸워도 다구리는 못 당해!”

라이더들은 각자의 무기를 높이 치켜들며 소리를 질렀다.

“와!”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 쇠사슬이 치렁거리는 소리와 함성이 뒤섞여 고요한 산골에 울려 퍼졌다.

소리들은 다시 메아리 쳐 울렸고 드디어 싸움 시작을 알리듯 이내 함성이 멈추고나자 다시 고요해졌다.

전투 의지를 다진 배달 라이더들.

그들은 한데 뭉쳐 각자의 개인 특화 무기를 잡고 몸을 움츠리며 전투 자세를 잡았다.

드디어 시작된 전투.

아이신은 그들의 도발을 받아 들이겠다는 듯 아수하 뒤에 서서 그녀를 백업하기 위해 수리검을 든 손에 힘을 주고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렸다.

이에 질세라 아수하는 호랑이 발톱 끝이 앞으로 향하게 한 후 두 팔을 가슴 쪽으로 들어올린 복싱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 무릎을 구부리며 온몸의 에너지를 응축시켰다.

그들의 모습을 본 고순정은 들어 올린 바이크 체인을 돌리기 시작했다. 붕붕 거리며 체인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휘몰아쳤다.

두 진영의 살기가 극에 달하자 순간 고순정이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뛰어 나갔다.

“다 덤벼! 으으으으아! 이 나쁜 놈들아! 내 남편 빨리 내놔!”

그녀가 선두에 서자 뒤에 있던 라이더들도 합세했다.

그런 라이더들을 본 아수하는 마치 한 번에 다 잡아버리겠다는 듯 몸을 더욱 움츠렸다. 그리고 그 임계점에 다다르자 그녀가 그대로 공중으로 도약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호랑이 발톱을 휘두르기 위해 두 팔을 뒤로 확 젖혔다. 이대로 팔을 한 번 휘두르면 적어도 1타 5피 이상이다.

그 생각에 아수하의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박토가 소리쳤다.

“잠깐! 다들 멈춰어어어어어어!!!!!!”

지금 당장 팔을 휘두르면 모두를 쓸어버릴 수 있다. 바로 지금 조금만 더 가면..

하지만 박토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한 아수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녀는 온몸의 힘을 빼고 아래로 떨어졌다. 동시에 그녀의 마음은 허탈해졌다.

한편 앞으로 나아가던 고순정은 박토의 우렁찬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모두 그녀의 무의식적인 행동.

그녀는 멈추면 안 되는 거였지만 지금 그녀도 모르게 멈춘 것에 당황 할 뿐이다. 그 바람에 그녀는 다리가 꼬여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는 왜 그녀가 멈추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땅과 접촉한 그녀가 원망하듯 소리를 지른 박토를 쳐다보자 그녀의 등 뒤로 그녀를 따르던 라이더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모두 그녀의 발에 걸려 넘어진 것. 그로 인해 배달 라이더들은 모두 박토의 마당에 엎어져 있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한편 떨어지는 타이밍을 놓친 아수하. 그냥 공중에서 박토의 명령에 온몸에 힘을 빼버려 속절없이 바닥으로 떨어진 그녀는 지금 면이 서지 않는다.

모두 착지 자세가 어쩡쩡해서 그랬다. 자신의 추레한 모습에 화가 난 아수하가 그녀의 본분인 바룬족의 임시 노비의 신분을 망각하고 박토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진짜. 폼 안 나잖아! 갑자기 왜 그래? 한 방이면 끝나는 거였는데. 이 씨.”

“궁금한 게 있어서.”

“뭐라고?”

아수하의 되물음을 박토는 그냥 무시했다. 말 할 가치도 없다.

나는 너 따위와 한가하게 말씨름할 겨를이 없다는 듯 그는 곧바로 엎어져 있는 배달 라이더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결국 그들 앞에 선 박토. 이들 중 유일하게 홍일점인 고순정이 맨 앞에 엎드려 있는 걸 본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너. 아까 남편이라고 말했었나?”

“그래. 남편이라고 말했어.”

그녀의 대답에 흥미를 보인 듯 박토가 그대로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마치 그녀의 얼굴을 탐색하려는 듯 노려보았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페이스. 밝은 그레이핑크로 염색한 컬이 들어간 헤어. 또한 싸움을 하러 온 여자인데 풀 메이크업한 그녀는 박토가 보기에 상당히 여성스럽고 예쁜 편이었다.

게다가 전혀 거칠어 보이지 않은 하얀 피부에 화려한 외모. 그런데 그녀의 손에는 살벌한 바이크 체인을 들고 있었다.

대체 뭐 하는 인간들이냐?

박토의 시선이 다시 고순정의 손에 들린 바이크 체인으로 향했다.

원래 원형으로 된 바이크 체인은 한쪽을 일부러 끊어 놓은 듯 기다란 형태였다. 그 긴 형태를 반으로 접어 끝 부분에 손으로 잡을 때 미끄러지지 않게 고무 바가 칭칭 감겨 있었고 손잡이 끝 부분엔 핑크색 하트가 새겨져 있었다.

박토가 보기에 그 바이크 체인은 주로 머리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 같았다. 박토 자신이 맞아 본 것도 아니지만 상상하니 아찔했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이 머리로 갔다. 고순정의 바이크 체인은 손가락 마디 같은 금속이 핀으로 짧게 짧게 연결되어 있어 수평으로 휘두르면 강직한 장대의 느낌이 날 것 같았고 수직으로 휘두르면 채찍과 비슷한 효과를 보일 것 같았다.

채찍과 봉의 장점만을 가진 무기였다. 이 이상한 무리들이 가진 이상한 무기에 관심을 가진 박토.

고순정의 무기에서 시선을 떼고 다른 라이더들의 손에 들린 무기를 살폈다. 망치를 들고 있는 남자의 무기는 긴 알루미늄 봉 양 끝에 장도리가 달린 망치였다.

장도리 끝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갈려 있었다. 박토가 시선을 옮겨 또 다른 남자의 무기를 바라보았다.

양날 톱날 2개를 리벳으로 이어 붙인 톱이었다. 양날톱의 손잡이는 여는 톱과 다른 기다랗게 뽑을 수 있는 호신용 삼단봉이었다. 짧게 쓰다 여차 하면 길게 뽑아 쓰는 형태였다. 저 톱에 쓸리면 치명상을 입을 것 같았다. 그리고 모두 마감이 그냥 조악한 게 아닌 밀링 선반 가공을 거친 듯 매끄럽고 깔끔했다.

박토가 여기까지만 봐도 이들은 양아치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그가 얕은 한숨을 내쉬고는 품에서 권총을 꺼내 고순정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너 누구야?”

순간 총을 본 고순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살려 줘. 나 내 남편 찾아야 돼.”

갑자기 뒤에 엎어져 있던 라이더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누나. 겁먹지 마! 그거 가짜 총이야. 우리나라에서 총을 소지하는 건 불법이야!”

“맞아. 페이크야! 저 새끼 저거 구라라고! 짝퉁에 속지 마!”

박토가 총구를 공중으로 향한 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화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고 있던 배달 바이크 라이더들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땅바닥에 다시 코를 처박았다.

그러고 나자 박토가 다시 고순정의 이마에 총구를 겨누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순정이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 그를 노려보았다.

박토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 뒤를 따르던 라이더들은 모두 총이 무서워 고개를 파묻고 있는데 왜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도 않고 있는지.

“진짜 총이야. 지금 네 이마에 총알을 박으면 넌 즉사야.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아? 죽기 밖에 더 하겠어? 난 지금 이판 사판 개판이라고!”

그녀의 기백에 박토는 흠칫 놀랐다. 그가 다시 그녀의 손에 들린 바이크 체인을 흘깃 쳐다보았다.

깡따구가 보통이 넘네. 그러니 저런 걸 들고 설치는 거겠지. 그런데 너는 대체 누구냐? 박토가 고순정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내가 묻고 싶은 건 이거야. 여자. 왜 네가 네 남편을 여기서 찾는 거지? ”

“내 남편 여기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다 알고 왔으니까 빨리 내놔! 내 남편!”

“너희들 누구야?”

“뭐?”

“대체 누구냐고? 뭔데 배달 오토바이 타고 여기까지 온 거지?”

박토의 물음에 고순정이 비장한 표정을 짓고는 답했다.

“우리는 KKJ야.”

“뭐? KKJ?”

“그래. KKJ.”

수상한 그녀의 소속. 그녀를 경계하며 박토가 고순정의 이마에 겨눈 총구에 힘을 주자 그녀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그래도 눈 하나 꿈적도 않는 고순정. 정말 깡 하나는 끝내준다.

“KKJ가 뭐지? 혹시 파이온과 연관이 있는 건가?”

박토의 물음에 고순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파이온?”

“그래. 파이온.”

“그딴 건 모르겠고. 우린 킹왕짱 바이크 동호회 회원들이다. 바로 KKJ. 우리가 여기로 온 건 우리 동호회 회장인 넘버 1이자, 바로 나 고순정의 남편을 찾으러 온 거야.”

“배달들도 동호회가 있어?”

갑자기 아수하가 깜짝 놀란 듯 소리치자 엎어져 있던 킹왕짱 바이크 동호회 회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아수하를 째려보았다.

분명히 기분 나쁘다는 눈빛. 아수하는 그들의 시선을 겸연쩍은 표정으로 피하며 아이신을 돌아봤다. 마치 저들이 왜 저러냐는 듯.

그러자 아이신이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동호회는 같은 취미를 가지고 함께 즐기는 사람들 모임이야. 수하야.”

순간 배달이 취미라고 생각했던 아수하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러던 그녀가 엎어져 있는 라이더들에게 사과를 했다.

“아, 그래. 그렇다면 미안해요. 킹왕짱 바이크 동호회 회원 여러분.”

또라이가 확실하다. 하지만 그녀의 자상하고 상냥한 사과에 킹왕짱 바이크 동호회 회원들의 눈빛은 누그러졌다.

그런데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고순정이 갑자기 악에 받친 듯 박토에게 소리를 쳤다.

“빨리 내놔! 내 남편! 죽여 버리기 전에.”

“넌 날 죽일 수 없어. 내 총이 네 체인보다 빠르니까.”

그 즉시, 박토의 말이 완전 맞는 말임을 안 고순정이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분명 남편을 구하러 왔는데 남편을 가둔 자를 죽이고 싶은데 외려 지가 죽을 것 같다는 현실에 부정을 하는 것 같았다.

반면에 이 이상한 여자 때문에 박토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의 손에 들린 바이크 체인을 쳐다보았다.

뭔가 그녀와 매치가 되지 않는 느낌이었는지 고개를 갸웃대던 그가 엎어져 있는 라이더들의 행색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들은 무언가 개성 있게 다르지만 어떤 동류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이 절로 생각나는 행색. 게 중 박토의 눈에 유독 눈에 들어 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위아래가 한 세트인 트레이닝 복에 하얀색 면 티셔츠를 안에 받쳐 입고 있었다.그런데 그의 목에 걸린 체인 금 목걸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하지만 잘 생각이 나지 않는 박토.

그가 다시 라이더들을 살폈다.

모두들 머리 스타일은 투 블록 컷이었지만 스타일은 각자 개성이 있게 달랐다. 그들의 형형색색의 머리 색을 본 박토는 그가 키우는 닭들의 털 색과 비슷하다고도 생각했다.

순간 박토의 머릿속에 하나의 기억이 스쳤다.

‘혹시.. 부엉이 잡혔을 때 그 체인 금 목걸이?’

그 순간 여기 처량하게 흐느껴 우는 여자의 남편이 누구인지 알아버린 박토. 수리 부엉이와 함께 덫에 걸린 닭 도둑임을 알아버린 그의 얼굴은 찌그러지고 있었다.

“순정이 누나?!!”

갑자기 고순정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모두가 소리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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