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 속담을 희롱하듯 진눈깨비가 흩날렸으나, 모처럼 날이 푸근해 쌓이기도 전에 금방 녹아버렸다.

새해 일출은 바쁘다는 핑계로 생각지도 못하다가 군산 바닷가에 서서 일몰이라도 볼 겸, 마음이 딱 맞는 친구를 불러냈다. 그 친구도 어영부영 새해를 맞이하고도 특별하게 신년 계획을 세웠던 적이 없다고 했다.

‘이참에 군산에서 늦은 신년회를 하자.’

친구와 나는 급작스럽게 의기투합이 됐다. 길은 생각했던 것보다 몹시 한산했고, 들뜬 기분은 애당초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쓰고 있는 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에 새로운 기운이 들어차는 느낌을 받았다.

군산에 도착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경암동 철길마을이었다. 아파트 길 모롱이에 자리하고 있는 그 철길은 어렸을 적에 보고 자란 문화들로 애잔하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불량식품들과 잊고 있었던 놀잇감들이 상가마다 첩첩이 쌓여 있었다.

우리나라의 60~80년대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있는 상가를 둘러보며 오징어 게임에 나와 전 세계적인 놀잇감으로 변신한 달고나 과자를 만들어 먹었다. 쥐포도 구워 먹고 쫀디기도 구워 먹었다.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조형물이 여기저기 있어 복고풍 감성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 다음으로 초원사진관에 들렀다. 1998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였던 초원사진관에서 멋쩍게 서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배우 한석규와 심은하 주연의 영화였고, 군산시청이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영화 촬영 이후 체험관 형태로 초원사진관을 복원해 여전히 인기몰이하고 있었다.

초원사진관 근처에 있는 동국사를 둘러보고 장항송림산림욕장에서 일몰을 보며 신년 다짐을 하기로 했다.

동국사는 1913년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인 승려인 우치다에 의해 설립된 사찰이었다. 처음에는 동국사라는 명칭이 아닌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안내문을 먼저 읽고 경내를 천천히 살펴봤다.

내부에는 요사채와 종각, 대웅전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찰의 지붕이 팔작지붕으로 몹시 웅장했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의 일제 건축 양식으로 알려져 있었다.

동국사 대웅전에 봉안된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을 바라보며 합장했다. 불상 내부에서 다량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복장물은 조성발원문을 비롯하여 천여 명에 이르는 시주자 명단, 후령통 직물에 싸인 오곡, 오약, 오보 그리고 전적류와 다라니 등 333점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사찰 뒤뜰에 핀 동백꽃과 울창한 대나무숲을 바라보며 서둘러 일몰을 보기 위해 장항송림산림욕장으로 향했다.

장항송림산림욕장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바닷바람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 방풍림은 1954년 장항농고 학생들이 2년생 해송을 처음 심었다고 하며, 현재 1만2천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었다.

온통,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갔다. 일몰 시각을 딱 맞춰 도착했다. 바닷바람이 소나무 사이를 휘젓고 날아다녔다. 시린 바람을 맞으며 바닷가 명당자리로 다가섰다. 아뿔싸 해가 가라앉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두 손을 모으고 바다를 향해 섰다. 칼바람이 온몸으로 날아들었다. 역시 소한다운 겨울바람이었다.

‘내가 길들인 모든 일에 책임질 것이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과 같아서,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기에 지나간 인연과 다가올 인연들을 귀하게 생각하자.’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묵은 찌꺼기를 날려 보내며 새 기운을 가슴에 담았다.

붉은 서쪽 하늘에 푸른 어둠이 짙게 내려앉기 시작하자, 군산에서 유명하다는 뜨끈한 짬뽕을 한 그릇씩 먹기 위해 원도심으로 향해 서둘러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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