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배들의 혈투.

하지만 박토의 의심에도 오운족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 태도에 의심의 불길이 더욱더 치솟은 박토가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뜨리며 아이신의 멱살부터 잡았다.

갑자기 당한 수모에 당황한 아이신이 물었다.

“왜 이래? 이거..”

“혹시.. 미행당한 거야?”

“우린 꼬리 밟히는 거 안 하는 거 몰라?”

기분상한 아이신이 성질을 확 내자 그를 아수하가 옹호했다.

“맞아. 우리 오운족은 소리 없이 나타났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게 주특기야. 미행을 절대 당할 리가 없어. 그만 하고 진정해. 박토.”

“그래. 형 진정해.”

김탄까지 만류하자 박토는 아이신의 멱살을 슬며시 풀었다. 그 사이 엔진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체 이 한밤중 여러 대의 차를 끌고 올 사람들은 누구인가? 일단 대책부터 세우자.-

잠시 생각한 박토가 다급하게 명령했다.

“김탄. 넌 월이한테 가서 문을 잠그고 있어. 그리고 아이신, 아수하. 너희는 나 좀 도와줘야겠다.”

김탄은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신과 아수하는 멀뚱히 서서 고개만 끄덕이자 박토가 그들을 한 번 더 째려본 후 말을 뱉었다.

“따라와.”

박토가 부엌 쪽으로 가 옥상에 연결 된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조용히 뒤 따르는 오운족.

옥상과 연결된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오를수록 엔진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 집으로 오는 게 확실하다. 순간 박토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오운족은 죄지은 게 없는데 억울하게 당하는 사형수 같은 얼굴로 박토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 박토가 나직이 읊조렸다.

“만약 저들이 너희들과 관계가 있다면 바로 죽여 버릴 거다.”

아이신이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절대 우리 아니라고.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우리 오운족도 우리가 여기 있는 거 몰라. 믿어 줘.”

박토는 아이신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계단을 다시 올랐다.

그리고 옥상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선 그가 긴장했는지 잠시 한숨을 골랐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차들이 마당 앞쪽에 이미 도착했는지 어둠을 가르는 헤드 라이트들의 불빛이 옥상까지 번져 있었다.

그대로 박토가 몸을 수그렸다.

그리고는 오리걸음으로 난간을 향해 걸어가자 오운족도 박토를 따라 오리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옥상 난간 끝에 다다른 박토.

마당 아래쪽을 살피기 위해 옥상 난간 사이에 난 구멍으로 고개를 슬쩍 들이밀었다.

강렬한 빛을 뿜는 여러 개의 헤드 라이트들이 일렬종대로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치고는 뭔가 이상했다.

규칙적이지도 않았을뿐더러 크기도 제각기, 그리고 들쑥날쑥이었다.

“자동차도 아니고 저건 뭐지?”

어느새 박토처럼 마당 아래를 내려다보던 아이신이 속삭이자 박토가 조용히 하라는 듯 그의 입에 급하게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살짝 당황한 아이신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토가 갑자기 게걸음으로 옆으로 두 번 살짝 옮겼다.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해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하는 오운족.

그러나 박토는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제 할 일만 한다면 된다는 듯 옥상 난간 밑을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가 찾는 걸 찾았는지 무언가를 눌렀다.

스위치였다.

딱 소리와 함께 옥상 양 옆으로 설치되어 있는 서치라이트의 불이 켜졌다. 그 바람에 대낮처럼 밝아진 마당.

갑자기 여기저기서 욕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우. 쌍. 눈 부셔.”

“뭐야? 이건.”

“존X 여기가 맞는 거야?”

“아. 씨X. 앞이 안 보여.”

박토는 지금 어이가 없었다. 마당 바깥쪽으로 스쿠터들이 일렬횡대로 쭉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숫자를 세어보니 총 8대의 스쿠터와 1대의 스포츠 바이크가 있었다.

-그런데 왜 배달 오토바이냐?-

배달통이 달린 스쿠터를 본 박토가 오운족에게 물었다.

“혹시.. 너희들 배달시켰어?”

동시에 고개를 가로 젖는 오운족 아수하와 아이신.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저것들은 뭐야? 대체 배달 오토바이가 왜 우리 집 마당에 있는 거지?”

아이신이 정말 모르겠다는 듯 두 손을 들고 어깨을 들썩였다.

“나도 정말 몰라. 그런데 여기까지 배달이 오긴 하는 거냐?”

“아니. 배달은커녕 택배도 못 오는 곳인데 왜 저것들이 여기 있는 거냐고?”

박토의 물음에 아이신은 대답하지 않고 바로 옥상 난간에 올라섰다.

당황한 박토가 나무랐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가서 물어 보려고.”

“뭐? 야. 하지 마. 이런..”

박토의 만류가 끝나기도 전에 아이신이 도약을 했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그는 마치 한 마리 새처럼 두 팔을 양 옆으로 활짝 펴고는 한 바퀴 회전했다.

그런 그를 보고 박토는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한탄을 하듯 중얼거렸다.

“아이고. 진짜.. 머리 아프게 됐네.”

그러자 아수하가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생각해. 골치 아프게.”

“그거야. 뭐든 신중한 게 좋은데 너희들은/”

갑자기 박토가 말문을 닫았다. 아수하도 옥상 난간에 올라섰기 때문이었다.

박토가 그녀에게 물었다.

“너도 내려가려고?”

“나도 따라가야지. 쌍둥이니까.”

“뭐?”

도대체 그게 쌍둥이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박토가 되묻자 아수하는 그 물음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공중으로 멋지게 도약을 했다.

순간 그녀의 치마가 펄럭였고 안에 있는 속바지를 본의 아니게 보게 된 박토는 순간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건 찰나일 뿐.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아수하를 쳐다보았다.

-단지 아수하가 염려가 되어 본 것일 뿐 속바지를 다시 보기 위해 그런 게 아니다.-

이렇게 속으로 혼자 말했지만 본심은 속바지였다.

이렇게 속이 시커먼 박토의 눈에 아수하가 공중제비를 도는 모습이 선명하게 포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의 멋진 자세보다 자꾸 속바지에 눈이 가는 건 왜일까?

박토가 기분이 나쁜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도 보기 좋지 않은데.. 이럴 때를 대비해 치마는 좀 입지 말지.. 흠..”

본심과 다른 말을 내뱉은 박토는 스스로 부끄럽다는 듯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했다.

한편 안전하게 마당에 착지한 아수하 그리고 아이신. 그리고 그들 앞으로 늘어서 있는 배달 오토바이들. 그걸 옥상에서 내려다 본 박토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실력은 좋은데 너무 수가 얕아 바로 앞만 보는 오운족 때문이었다. 그들이 9살이었을 땐 얼마나 천방지축이었을까?

그러니 생각 없이 할아버지한테 당해 바룬족을 몰살시킨 혁혁한 공을 본의 아니게 세우게 된 것.

지금 그 실수를 만회하겠다고 바룬족에 자발적으로 찾아와 또 자발적으로 임시 노비까지 하겠다는 그들에게 박토는 아주 작은 연민의 마음도 들었다.

마음이 헛헛해진 박토는 그대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가느다란 초승달이 곧 사라질 듯 가냘파보였다.

그가 달을 보며 청승떠는 사이 마당에 먼저 도착한 아이신과 아수하는 배달 오토바이를 향해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마치 적의 동태를 살피며 기선을 제압하려는 모습인냥 살벌하기까지 한 그들의 모습에 박토는 그런 그들을 막기 위해 난간에 올라섰다. 계단으로 내려가기엔 너무 늦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옥상에서 뛰어 내려야만 하는 상황을 만든 오운족 때문에 박토는 속이 살짝 끓어 올랐다.

선견지명을 가진 자는 하수를 부릴 때 속이 썩어 들어가는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해탈이 필요하다.

지금 박토가 딱 그 심정.

정말 눈 앞에 것만 보고 또 바로 앞의 것만 생각하는 오운족을 데리고 앞을 헤쳐나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린 박토가 눈물을 머금고 그대로 공중을 향해 도약했다.

한편 하늘에서 사람들이 떨어지자 마영식의 여자친구이자 배달 오토바이를 끌고 온 고순정은 긴장을 했다. 게다가 보통이 넘어 보이는 포스. 모두 키가 컸고 잘생겼으며 또 한 싸움 하게 생겼다.

고순정은 본능적으로 그들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저들은 셋. 우리는 아홉. 게다가 무기도 있다.-

“나쁜 새끼들이야! 넘버 나인 빨리 연장 꺼내!”

고순정의 명령에 넘버 9이 스쿠터에서 잽싸게 내린 후 배달통을 열었다. 안 쪽을 뒤지고 난 후 바이크 체인을 꺼내 고순정에게 던졌다. 그걸 가볍게 받아 든 고순정.

그대로 위로 들어올린 후 돌리자 체인이 공기를 가르는 살벌한 소리가 휘몰아쳤다. 그걸 본 아이신과 아수하의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1 미터 넘어 보이는 돌기가 달린 바이크 체인이 너무 살벌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기세를 눈치 챈 고순정의 입가엔 미소가 어렸다.

“빨리 연장 다 배급 해!”

고순정의 명령에 다시 넘버 9이 배달통을 뒤져 커다란 망치 같은 걸 꺼내 넘버 7에게 던졌다.

회전하며 날아오는 망치를 가볍게 받아 든 넘버 9이 두 손을 위로 들어올려 돌려댔다. 살벌한 망치 형태에 오운족의 걸음이 더욱더 느려졌다.

그 기세를 몰아 넘버 9이 다시 배달통을 뒤적이더니 접이식 톱을 꺼내 넘버 4에게 던지자 그걸 가볍게 받아 든 그가 미소를 짓고는 접혀 있는 양쪽의 톱날을 펼쳤다.

그걸 본 오운족은 결국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뭐지? 쟤네들? 무기가 살벌한 데?”

아수하의 물음에 아이신이 답했다.

“양아치들인가?”

아수하는 다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아한 점이 아주 많다는 뜻. 그녀가 아이신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저거는 싸우자는 거지?”

“그런 거겠지? 무기를 꺼냈으니까.”

이들이 이렇게 배달 라이더들의 정체에 궁금해 할 때 갑자기 고순정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다들 연장 들어어어어어어!!!!!”

그러자 라이더들이 개인 특화 무기를 쥔 듯 손에 들린 무기를 앞세우며 고순정 옆으로 모여들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신은 지금 어이가 없었다.

보아하니 싸움 좀 해 본 양아치들 같은데 감히 오운족과 바룬족을 상대로 도발을 하다니..

1만여 년을 대대로 인간 특수 병기로 길러진 파눔의 예언을 지키는 자들을 대적할 생각을 하다니..

아아신은 어이없다는 듯 아수하에게 중얼거렸다.

“진짜 붙자는 건가?”

“그러니까 저러겠지. 그런데 우리한테 상대가 안될 텐데..”

아수하의 말을 끝으로 아이신은 라이더들 보고 픽! 한번 웃는 걸로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조용히 한 손을 들어올리는데 그의 손가락이란 손가락 사이로 수리검이 끼워져 있었다. 즉 한 방에 넷을 처치할 생각. 그걸 본 아수하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백업도 필요 없어. 나 혼자서도 충분해. 괜히 끼어들지 말고 몸이나 사려.”

“그래도 대비는 해야지. 위급한 상황엔 엄호를 해야 하니까.”

“그럼 거기서 꼼작 말고 서 있어. 겨우 10명 정도야 순식간에 해치우고 올 게.”

말을 마친 아수하가 두 팔을 가슴 위로 들어 올렸다.

그녀가 주먹을 쥐자 순간 손등에서 아주 날카롭게 휘어진 기다란 다섯 개의 칼이 튀어나왔다. 그걸 본 박토가 입을 열었다.

“호랑이 발톱. 오랜만에 보네.”

“어렸을 때 내가 한 번 보여 주고는 처음 보는 거지?”

박토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수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는 호랑이 발톱을 보여주기만 했지. 이걸로 사람의 사지를 찢는 건 보지 못했을 거야. 그거 보여줄 게. 내가 저 놈들을 다 찢어 주겠어. 크릉.”

아수하가 라이더들을 노려보며 말을 뱉어내자 그걸 옆에서 보고 있던 아이신이 난데없이 박수를 쳤다.

“이야. 역시. 걸 크러쉬! 오운족 최고의 쌈장. 아수하 파이팅!”

그의 격려에 화답하듯 갑자기 아수하가 두 손을 엑스자로 교차했다.

마치 영화 엑스맨 울버린의 포스터를 보는 듯한 그녀의 모습.

날카로운 호랑이 발톱은 서치라이트 불빛에 번쩍였고 그 살벌한 칼날 사이로 갑자기 그녀가 귀여운 척 애교를 부렸다.

“예~ 걸 크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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