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를 구할 방법.

아무튼 나채국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는 듯 표정이 심각하게 어두워지자 오강심이 마치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 심각하게 입을 열었다.

“제 말이 맞죠? 팀장님.”

나채국은 오강심의 말에 심히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정말 우리를 무시하고 있어.”

“여기 연구자들이 마치 우리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 지 테스트를 하는 것 같습니다.”

“맞아. 그런 거 같다. 그렇다고 엿 먹고 주눅 들 우리가 아니야. 그렇지. 강심아?”

역시 그의 말에 깊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심하게 끄덕이는 그녀. 기분이 나빴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채국은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썼다. 그의 심경이 집요하게 변한 듯 안경 너머 눈빛이 번뜩였다.

“강심아. 컴 샅샅이 뒤져서 주파수에 대한 데이터를 찾아. 보여주자.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옛 썰~”

가볍게 거수경례를 한 오강심.

나채국의 부사수로서 즉시 데이터를 찾기 위해 힘차게 자판을 두드렸다. 지금 투지와 전투력이 급 상승한 오강심과 나채국.

이런 그들을 멀찍이 바라보고 있던 은비칼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렸다. 드디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그들. 일을 시키는 관리자로서 은비칼의 고된 시작도 마무리가 되었다.

-자, 그럼 일이 끝난 은비칼은 무엇을 해야 하나?-

솔직히 은비칼은 컴퓨터 언어에 까막눈이다. 또한 이 암호 해독한 한 알고리듬이니 뭐니 그딴 거 하나도 모른다.

일단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의자 하나를 발견하곤 그곳으로 가 앉았다. 그리고는 부하들이 고생하니 그도 같이 고생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심심함에 그가 몸을 베베 꼬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예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그러면 좀 덜 지겨울 것 같아서였다. 그 상태로 그의 부하들이 일하는 걸 지켜보았다.

5분도 지나지 않아 그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생각해보니 지금 그가 하는 일은 부하들을 감시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감시하다니.. 이 빌어 처먹을 인성. 그건 안될 말이다. -

그래서 은비칼은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냈다. 본능적을 그가 자주 하는 롤 플레잉 게임 앱을 켜고 난 후 곧바로 껐다. 지금 그는 자책중이다.

-이런 나란 자식.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냐? 저들은 세상을 구하겠다며 손가락 관절염을 불사하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는데.. 너란 자식은 뭐가 그렇게 심심하다고 게임을 켜고 있는 것이냐? 한심하다. 은비칼.-

스스로 자아성찰을 마친 은비칼은 비장한 표정으로 스마트 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오강심과 나채국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은비칼은 지금 고통스럽다. 그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겨우 10분이 흘렀을 뿐이다.

-아오, 1초가 천년 같다. 지옥으로 들어간다면 이런 느낌인 걸까? 이제 겨우 오후 8시 30분. 저들은 밤을 새울 것 같은데 대체 난 이 밤을 무엇으로 지새워야 하나. 난 대체 뭘 해야 하는 걸까?-

깊은 생각을 하는 은비칼의 모습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란 조각상보다 더 심오하고 심각해 보였다. 아마도 그냥 꿔다 논 보릿자루는 되기 싫었던 모양.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그가 드디어 제 할 일이 생각난 듯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는지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 그래. 커피하고 야식을 사 와야겠다.”

***************

Pcx, 조이맥스, scr110, 벤리110, 슈퍼커브, n-max.

이것은 바로 배달의 핵심 도구, 내놓아라 하는 기종의 스쿠터의 인기 기종이다.

이 기종으로 이루어진 총 9대의 딜리버리 바이크가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군계일학인 듯 선두에 스포츠 바이크 한대가 선두에 있었다.

그 바이크는 마치 9대의 스쿠터들을 인도하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 이순신이나 쓰던 학익진을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달리던 스포츠 바이크가 멀리 산비탈을 굽이치는 도로가 보이자 속도를 높였다. 그대로 코너링을 하는 스포츠 바이크.

마치 엄마 오리를 따라하듯 뒤 따르던 배달 스쿠터도 그 바이를 따라 코너링을 했다.그러나 폼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무사히 코너를 돌며 행 오프를 마친 스포츠 바이크 라이더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그러자 뒤 따르던 배달 스쿠더들도 멈추어 섰다.

스쿠터 바이크 주인들이 모두 헬멧 쉴드를 올렸다. 그리고는 바이크의 헤드 라이트에 비친 도로 한복판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고.. 고라니잖아?”

그러자 선두에 있던 스포츠 바이크 주인이 헬멧 쉴드를 올렸다. 그는 마영식의 여자친구 고순정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비키질 않아서 선 거야.”

“갑자기 멈추길래 놀랬어. 누나.”

헬멧에 넘버 6가 써져 있는 라이더가 말하자 고순정이 답했다.

“저 고라니 새끼. 불빛을 보고 바이크 엔진 소리까지 들렸을 텐데 왜 도망가질 않지?”

“귀가 멀고 앞이 안 보이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도로 한 복판에 있지.”

헬멧에 넘버 4가 쓰인 남자가 말하자 라이더들은 일제히 도로 한복판을 다시 쳐다보았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바이크 무리를 노려보듯 쳐다보며 서 있기만 한 고라니. 정말 눈이 멀고 귀도 먼 듯 보였다. 그때 한 라이더가 의문을 제기했다.

“인형 아냐?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질 않지?”

“야 이 새꺄. 눈이 번쩍이잖아. 죽었거나 인형이면 광이 나겠냐?”

“아. 씨. 그럼 진짜 앞이 안 보이는 거 아냐?”

“야 이 새꺄.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돌아다녀.”

스쿠터 라이더들이 정체 불명의 예사롭지 않은 고라니에 대해 왈가불가하자 헬멧에 5가 쓰인 남자가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야, 그런데.. 도대체 여긴 어디길래 고라니가 바이크를 보고도 비키질 않지? 저 새끼 바이크를 처음 보는 가 봐. 그러니까 저러지..”

넘버 5의 말에 킹왕짱 바이크 동호회 회원들이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세상에, 이곳은 지옥으로 들어가기 전 관문처럼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길은 있는데 가로등 하나 없었다.

다크 판타지 같은 요상한 세계에 빠진 것 같은 오싹함에 헬멧에 넘버 3가 쓰인 남자가 고순정에게 말했다.

“경적을 울려 봐! 순정아. 좀 수상해.”

그러자 클랙슨을 누르는 고순정.

“빠빠 룰로 빠빠빠.”

요상한 경적이 울리고 나자 고라니가 깜짝 놀랐다며 허공에 뒷발질을 한 번 하곤 숲으로 점프하며 사라졌다. 그걸 본 고순정이 소리쳤다.

“됐어. 얘들아. 귀는 들리나 봐!”

이제 가로 막는 장애물이 사라진 라이더들. 선두에 선 고순정이 헬멧 쉴드를 내리자 뒤에 있던 라이더들도 따라 내렸다. 그러자 고순정이 소리쳤다.

“거의 다 온 거 같아! 가자! KKJ!”

고순정이 바이크 액셀 그립을 잡아당기며 가장 먼저 선두를 치고 나가자 나머지 바이크 라이더들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 지옥으로 가는 관문 같은 새카만 산골 오지의 길을 10대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소리가 요란하기만 하다.

************

“아이신 나랑 이것 좀 옮기자.”

박토가 좌식 책상을 가리키자 아이신이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걸 본 김탄은 차력 쇼라도 본 듯 감동한 체 물개 박수를 쳤다.

그러자 그걸 보고 아수하가 제 오빠를 따라 하듯 식탁을 한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나도 그런 건 식은 죽 먹기야!”

그런 그녀를 본 김탄은 또 한 번의 차력 쇼에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여자라서 약할 줄 알았는데 대단하다. 누나.”

아수하는 김탄의 칭찬에 기분이 좋다는 듯 생긋 웃었다. 하지만 곧바로 박토의 핀잔이 쏟아졌다.

“아수하! 쓸데없는 짓 그만 하고 내려놔. 내가 필요한 건 이 책상이니까.”

박토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한 아수하는 탁자를 내려놓으며 입을 삐죽거렸다. 아마도 상심한 듯. 그런 아수하에게 김탄이 촐랑거리며 뛰어갔다.

그런 그가 손가락 하나로 식탁을 들어올리며 아수하를 쳐다봤다.

“누나. 나도 할 수 있어. 잘하지?”

왠지 진 것 같아 기분이 나빴던 아수하가 그를 나무랐다.

“쓸데없는 짓 한다고 한 소리 듣지 말고 내려놔. 박토가 지랄하기 전에..”

순간 박토가 받아쳤다.

“쓸데없지 않아. 김탄이 하는 건..”

명백한 박토의 편애 성 발언. 아수하는 지금 기분이 나쁘다 못해 비참하다. 그래서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는 중. 그러나 그뿐이었다.

한편 박토가 시키는 대로 책상을 옮기고 있던 아이신이 시간이 지나가 그의 근육이 초과할 수 있는 중량의 한계치를 넘었는지 이마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자 박토에게 원망하듯 물었다.

“어디로 옮길까? 계속 들고 있으려니까 무겁네.”

박토가 손가락으로 월이 그림을 그린 벽을 가리켰다.

그래서 아이신은 그 벽 쪽으로 책상을 들고 간 후 내려 놓았다. 그러자 박토가 노비가 참 일 잘한다는 듯 만족스럽다며 천천히 박수를 쳤다.

그런 그의 태도가 고까웠던 아수하의 얼굴은 더욱더 일그러졌다. 마치 똥이라도 진짜 씹은 듯 뭔가 구린 얼굴로 서 있던 아수하에게 박토가 말을 걸었다.

“자. 아수하. 이제 쓸데 없는 일 말고 쓸데 있을 해 줘야겠어.”

주인님의 명령에 눈을 반짝이며 자발적 바룬족 임시 노비를 자처하는 아수하.

“어떤 거?”

이렇게 묻자 박토는 거실에 있는 티브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걸 들어. 식탁 들지 말고.”

20년 도 더 돼 보이는 구닥다리 TV. 아수하가 그 TV 앞으로 가 들었지만 상당히 무겁다.

그래도 천하장사 저리 가라 체력인 그녀가 그 TV를 품에 안은 체 멀뚱히 박토를 쳐다보았다. 마치 ‘다음 일을 시켜주십쇼!’라는 듯.

“아이신이 옮겨 논 책상 위로 가져 가.”

박토의 말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그녀. 벽에 놓인 책상에 그녀가 TV를 놓자 왜 이런 짓을 벌이는 지 궁굼했던 아이신이 박토에게 물었다.

“이거, 뭐 하는 건데?”

“두 번째 바탈과 배달석을 찾아야지.”

“그냥 찾아가면 안 되나? 테레비로 뭘 찾겠다는 거지?”

박토는 대답대신 인상을 구겼다.

-마치 노비들이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 거냐?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

이런 마음을 읽은 듯 아이신이 주눅들어 눈을 내리깔자 박토는 TV 화면을 켜곤 스마트 폰을 꺼내 화면을 미러링했다.

그러자 TV 화면에 건물 도면이 띄어졌다. 그때 눈치 없는 아수하가 촐랑거리며 물었다.

“우와. 도면이네? 근데 이걸 왜?”

박토는 대답 대신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물음을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듯 가볍게 씹고는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자 모두들 앉아. 지금부터 월이 그린 그림과 이 도면을 대조하며 알앤디 센터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을 거야. 모두들 머리를 잘 써줘. 집단 지성을 활용하자고!”

박토가 혼자 멋대로 말하고는 마치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듯 박수를 한 번 치고 혼자 TV 앞에 앉자, 아이신, 아수하, 김탄도 말 없이 그의 옆에 나란히 자리했다.

그리고 모두들 말없이 멀뚱히 월이 그린 그림과 TV 속 도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런 침묵 속에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그들 중 처음으로 입을 뗀 건 박토였다.

“바탈이 있는 곳이 20층이라..”

그가 나직이 혼자 읊조리자 옆 자리에서 숫자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 하나, 열둘,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스물.

어? 진짜 20층이네. 몰랐어. 호호호호호.”

지금 박토가 말한 게 맞는 지 층 수를 세어 본 아수하. 맞았기에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다.

박토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심해서 그런 것. 그런데 갑자기 아이신이 벽에 그린 그림을 가리키며 무언가 알아내 듯 소리쳤다.

“저것 봐. 아수하. 월이 그린 그림 형태를 보니 건물 정면 같아 보여!”

곧바로 확인하는 아수하. 그의 오빠 말대로 벽에 그린 그림과 TV 화면에 띄어진 도면은 일치했다.

-이야~ 대단한 눈썰미다.-

아수하가 그의 능력에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어? 그러네? 정말 대단해. 아이신. 난 도면을 봐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호호호.”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박토의 미간의 주름이 순간 깊어졌다. 월이 그린 그림은 누가 봐도, 뭐 과장을 하자면 5살짜리 아이가 봐도 정면도였다.

박토는 지금 이 두 바보들을 데리고 앞으로 헤쳐나갈 길이 막막했다.

역시 그는 이들은 자발적 바룬족 노비로 만들 것이 아주 잘한 일이라 스스로 칭찬하고 있는 중.

“이야, 대단해. 대단해. 어떻게 도면만 보고 알 수 있지? 그리고 어떻게 층수를 세어보지 않고 20층인지 알고? 정말 대단하다.”

아수하가 다시 재잘거리자 박토는 못 볼 건 본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고개를 돌려 김탄을 말없이 바라보자 그가 박토에게 눈으로 말했다.

<여자들은 다 그래. 토 형. 전기로 불이 나면 물을 부어서 끈다잖아. 사이드 브레이크 내리고 악셀 밟는 것도 여자들 특기래.>

김탄의 말을 알아들은 박토는 깊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김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알아. 하지만 처음 보기 때문에 짜증이 난 거야.”

순간 화들짝 놀란 김탄.

“형. 혹시 사람 마음도 읽어? 바룬족은 전부 다 그런 거야?”

“아니, 네 눈빛을 읽었을 뿐이야. 너 아니어도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까.”

“그럼 보편적인 생각이었구나.”

“물론 뇌 구조가 다르니까.”

지금까지의 알 수 없는 그들의 대화에 아수하가 호기심을 보였다.

“뭐가 다르다는 건데?”

하지만 그녀의 물음에 답을 해줄 수 없는 박토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둘러댔다.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쓸 거 없어.”

그래도 빤히 쳐다보는 아수하. 무언가 냄새를 맡은 눈빛이었다.

김탄과 박토가 그녀의 뒷담화를 했지만 정확히 지목하면서 하지는 않았다.

그런 데 어떻게 안 걸까? 박토는 그저 이 순간을 피하고만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자. 모두들 잘 들어. 알앤디 센터는 보안이 너무 철두철미하고 모든 입구가 내부에서만 열 수 있게 설계되어 있어. 그래서 내부로 잠입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탄이 물었다.

“어떤 건데? 토 형.”

“위에서 내려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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