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본심

아수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왕종철에게 물었다. 

“아니. 왜요?”

“넘기기 싫으니까요.”

“아니. 왜죠?”

왕종철은 아수라의 반응에 재미있다는 듯 허허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이런 자꾸 놀라시기만 하니까 제가 다 무안합니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다 제 예상을 비껴가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계속 놀랄 만한 말씀을 하시니까요.”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아수라님. 한데 더 놀란 만한 일은 말씀드려야겠네요.  앞으로 열리게 될 바탈스톤 안의 무기는 제가 가질 생각입니다.”

아수라는 그 순간 잡고 있던 찻잔에서 손을 뗐다.  그의 손에 난 식은땀 때문이었다.

그가 그 땀을 바지춤에 닦았다. 얼마나 흥건히 배어 있었던지 그가 입고 있던 옷에 색이 선명하게 변해 버릴 정도였다. 

“그 무기를 회장님께서 가지신다고요?”

“아수라 님. 이번에 떨어진 바탈 스톤은 마지막 바탈 스톤입니다.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의 힘을 지닌 무기가 들어 있는데 그걸 고스란히 파이온에게 넘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둘 이상의 바탈이 태어났다 해도 꼭 그게 마지막 바탈 스톤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문의 비사(秘史)로만 전해지는 이야기니까요. 그러면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그러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저희가 데리고 있는 바탈이 여자 바탈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겠지요? 이번에 떨어진 바탈 스톤은 마지막 바탈 스톤이 맞습니다.”

“이런 비사(秘史)에서 말한 특이점이 그거였군요. 이럴 수가.. 정말 마지막 바탈 스톤이 맞군요.”

아수라는 지금 경외와 불안이 공존하는 듯 보였다. 상당히 놀란 얼굴로 안전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왕종철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파이온 본회에는 어떡하시려고? 그들은 이미 운석이 떨어진 걸 알고 있을 테고, 또 바탈 스톤이 들어 있다는 걸 숨긴다 해도 결국에는 다 알게 될 텐데 말입니다. 그럼 회장님이 가진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습니다.”

순간 왕종철은 심기가 불편해졌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무언가 노기도 살짝 어려 있었다. 그런 얼굴로 아수라를 보던 그가 갑자기 픽 웃었다. 일종의 조소와 비슷했다. 

“아수라님은 제가 그 무기를 갖는 게 싫으신 겁니까?”

그의 물음에 아수라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것보다는 전쟁이 일어나는 게 두려울 뿐입니다. 희생이 따를 테니까요.”

“그런 것쯤이야. 희생은 불가피합니다. 세상의 변화와 발전은 희생을 발판으로 이루어진 겁니다. 모든 세계사를 통틀어 보면 어떤 변화와 개혁 이전에는 항상 전쟁이 있었습니다. 즉 패러다임의 변화이며 패권의 변화입니다. 희생 때문에 전쟁을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냥 시류에 편승해 묻어가는 게 안전하지 않습니까? 보장된 미래와 부가 있는데 굳이 그렇게 까지 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수라의 물음이 왕종철의 진취를 꺾은 듯 말이 없었다.

생각을 하는 듯 깊어진 눈으로 찻잔만 바라보던 왕종철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맨 몸으로 이 회사를 일구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힘을 가졌어요. 마음만 먹으면 이 나라를 박살 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세상이 너무 좁습니다. 그래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합니다.”

“올라가시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증명하고 싶습니다. 제가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는 걸 말입니다. 모든 건 우연이 아닙니다. 결국 마지막 바탈 스톤은 제 손에 있게 돼 버린 거니까요. 20년 전 아수라님이 제게 찾아오신 것 그리고 파이온에서 제게 그 제안을 제시한 것.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바로 필연이지요. 징키스 칸,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태양왕 루이 14세 등. 아주 많은 절대 권력자들이 있었지만 세계를 온전히 다 얻은 영웅들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 세계를 다 가질 생각입니다. 하늘이 저를 위해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이건 하늘의 뜻입니다.”

왕종철의 말에 아수라는 숨부터 막혀왔다. 결국 전쟁을 통해 그가 가지려는 야심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파눔의 예언을 떠올린 아수라는 어쩌면 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을 다 파괴할 정도로 강력한 무기가 들어 있는 마지막 바탈 스톤.

그 막강한 힘이 왕종철의 손에 들어가면 세상은 어지러워질 것이다. 

또한 그는 잠시 예언을 등진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1만여 년의 기다림.

예언이 그가 사는 시대에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그의 생각이 불러 온 20년 전 비극.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예언이라면 시류에 편승하는 게 더 낫다는 그의 판단이 불러 온 바룬족의 멸절.

하나 파눔의 예언이 사실로 드러난 이 시점.

또 그 파눔의 마지막 예언이 시작 된 지금, 아수라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 눈앞이 캄캄했다. 

모두 왕종철이 힘을 얻은 게 모두 자신의 탓인 것 같아 아수라는 착잡한 마음까지 들었다. 

바룬과 오운이 꼭 힘을 합쳐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파눔의 예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게 만들어 버린 오운족 수장 아수라는 지금 통탄하는 마음뿐이었다.

-하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어차피 예언은 물 건너 갔다. 그렇다면 이것 또한 운명일 수도 있을 터. 마지막 바탈 스톤의 주인이 된 왕종철 또한 어떤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진짜 왕종철에게 바탈 스톤이 주어진 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아수라가 왕종철에게 물었다. 

“세상을 다 얻으려는 이유가 무엇이죠?”

“세계 최고가 되어 이름을 얻는 겁니다. 영원히 사는 법이니까요. 후세 만세까지 저는 영원히 살 게 되는 겁니다. 저는 지금 그것을 간절히 원합니다. 이름은 하늘에서 주는 겁니다. 저는 하늘에서 선택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바탈 스톤은 제게 온 것이고 또 제가 열 수 있게 된 겁니다. 모든 게 딱 들어 맞습니다. 과거 10년 전에 마지막 바탈 스톤이 떨어졌다면 그것의 주인은 제가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지금에서야 떨어졌기 때문에 제 것이 된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지요.”

왕종철의 대망에 아수라는 그저 넋을 잃고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머리도 지끈거려왔다. 전쟁은 절대 피할 수 없게 된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오직 오운족의 손에 쥐고 있어야 할 마지막 배달석. 그것이 다른 자의 손에 넘어가 시작 된 비극의 서막. 이 또한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른다. 한반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는 게 필연일지도 모른다.- 

아수라는 이 생각들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입 또한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그가 입을 축이기 위해 찻잔을 잡자 갑자기 왕종철의 두 손이 들어와 그가 찻잔을 들어올리는 걸 막았다. 

무언가 절박하고 공손한 그의 태도에 아수라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니, 왜 이러십니까?”

아수라의 물음에 왕종철은 곧바로 답을 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 뵌 것입니다. 아수라님께서 계속 저를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오운족의 힘과 정보가 제겐 절실히 필요합니다.”

아수라는 왕종철이 잡은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른 한 손으로 그의 손을 힘차게 감쌌다.

“암. 물론이지요! 오운족의 가문이 이렇게 번성한 게 다 회장님 덕이 크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미 우리는 한 배를 탔으니까요. 저는 회장님의 사람입니다. 언제든 미천한 제가 필요하시다면 불러만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아수라 님. 허허허허허허 허.”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당연한 거지요.”

“그럼 저는 이만 올라가겠습니다.”

이 대화를 끝으로 왕종철은 아수라의 말에 밝아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원하는 걸 다 얻었다는 듯 왕종철은 곧바로 사랑채를 나섰다. 

그런 그를 배웅하려 나서는 아수라에게 한사코 나오지 말라며 혼자 아수라의 저택을 나서는 그를 끝까지 배웅한 아수라는 그가 사라지고 난 후 다시 사랑채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눈에 찻 상부터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 왕종철이 머물다 간 사실이 꿈 같이 느껴졌다. 그러던 그가 미닫이 문을 닫고는 그대로 힘없이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상태로 상 위에 올려진 왕종철의 찻잔을 바라보던 그가 마치 세상이 무너진 듯 중얼거렸다. 

“이런. 이런. 망했다. 다 망했어. 이를 어찌할꼬···. 모두 다 내 불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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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짝! 미캐의 뺨이 사정없이 옆으로 돌아갔다. 

곧바로 고개를 다시 돌린 미캐가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는 미캐의 생부 이상철이었다. 

그는 지금 화가 날대로 낫다는 듯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또 술에 잔뜩 취해 벌개진 얼굴에 눈은 풀려 있었다. 

완전 고주망태가 되었다는 듯 빨간 딸기코를 킁킁 거리며 미캐를 노려보던 그가 다시 미캐의 뺨을 때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냥 그 손을 받을 뿐 저항하지 않았다.

그의 생부의 딸기코만큼 빨개진 뺨이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또 얼마나 많이 때렸는지 퉁퉁 부어 있었다. 

짝!

또 미캐의 아버지가 그녀의 뺨을 때렸다. 미캐는 또 맞은 뺨이 얼얼했는지 손으로 문지르며 만져댔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해 봐!”

그녀의 아버지 이상철이 딸기코를 찡그리며 소리치자 미캐는 답했다. 

“학교 안 간다고..”

퉁명스러운 그녀의 대답에 미캐의 아버지는 화가 났는지 또 버럭 역정부터 냈다. 

“대체 왜 안 간다는 거야? 앙!”

“다니기 싫으니까.”

이상철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도 주정뱅이 홀아비지만 학부모는 맞았다. 

미캐가 지금 선언한 등교 거부는 그가 지금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도 그도 부모는 맞는지 미캐의 선언에 화가 나 있었던 것.

그 폭탄 선언은 잠시 그의 주사인 버릇도 놓게 했다.

“뭐? 왜 다니기 싫은데?”

“애들이 괴롭혀서 다니기 싫어.”

“그딴 게 이유야? 그렇게 나약해서 나중에 어떻게 살려고?”

“약해서 그런 게 아니야. 짜증 나서 그래. 짜증나서 학교 못 다니겠다고! 엿 같고 X 같아서 그만 다닌다고!”

빠작!

순간 리모컨이 벽에 부딪혀 박살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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