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종철의 야망

이른 아침. 

큰길과 마을을 이어주는 신작로에 평소 마을 풍경에서 보기 힘든 고급 검은색 대형 세단이 들어섰다. 

세단은 아수라의 저택 앞에 멈춰 섰고 그 차에서 왕종철이 내렸다.

그가 내리자마자 저택을 둘러싼 담 사이로 육중한 솟을 대문이 열리며 머리가 반쯤 벗어진 반백의 노인 아수라가 반가운 걸음으로 그를 맞이했다.

“아이고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그런 그에게 왕종철이 너스레부터 떨었다. 

“차 한잔 얻어 마시러 왔습니다. 실례가 되지는 않겠지요?”

왕종철의 말에 아수라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하하.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자. 가시죠.”

왕종철을 사랑채 안으로 데리고 간 아수라가 방 안쪽에 마련된 보료로 그를 안내했다. 

기다란 전통 방석 보료 위로 팔걸이의 기능을 하는 장침이 있었고, 옆으로 안석이 자리했으며 그 옆으로 사방침이 있었다. 

보료 뒤편으로는 멋들어진 설산에서 포효하는 백호와 흑호 그리고 황호의 그림이 그려진 8폭의 병풍이 드리워져 있었다. 

보료로 간 왕회장이 자리에 앉자 아수라는 왕종철 앞으로 방석 하나를 끌고 와 앉았다. 

“제게 몇 개만 넘기시라니까요.”

사랑채 안에 놓여 있는 고가구를 훑어보던 왕종철이 대뜸 말하자 아수라가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조상님들의 유품입니다. 드리고는 싶지만 조상님 뵐 면목이 없어서..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런 말씀을 하실 거라 예상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꺼내게 되는군요.”

왕종철과 아수라가 담소를 나누는 사이 문이 열리고 다과차를 가지고 사람이 들어왔다. 

“여기 놓고 나가 게.”

아수라의 말에 그 사람은 차를 놓고 나갔다.  단아한 청자 색의 찻잔은 뚜껑이 덮여 있었다. 

그 찻잔을 아수라가 왕종철에게 내밀었다.

“드셔 보십시오.”

호기심을 보인 왕종철이 앞에 놓인 찻잔의 뚜껑을 열자 한약과 달큼한 내음이 그의 콧속으로 들어왔다.

“이런. 쌍화차군요. 아니 여름에 쌍화차라니..”

“나이가 드니 이런 걸 자주 찾게 됩니다. 몸에 좋으니 드셔보십시오.”

왕종철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향과 함께 건강에 대한 기대가 목구멍으로 밀려 넘어갔다. 

그가 만족했는지 입가에 미소가 어리자 아수라가 그에게 운을 떼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먼 곳까지 오신 겁니까? 전화를 하셔도 되는데 말이죠.”

아수라의 말에 왕종철은 이내 표정이 굳어졌고 차를 마시기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그가 쌍화차에 띄운 잣을 세는 듯 말없이 찻잔을 바라보았다.

그의 심기를 읽은 아수라는 조바심이 났는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눈동자를 가만히 두지 못했다.

말없이 찻잔을 바라보던 왕종철이 아수라를 다시 쳐다보았다. 

눈빛에 결렬함도 들어 있었고 또 조심성도 묻어 있었다. 

아수라는 그의 눈을 보고 알았다. 

그의 입에 나올 얘기가 보통 얘기는 아니라는 것을.

그의 예상이 적중하듯 왕종철의 입에서 깜짝 놀랄 말이 나왔다.

“바룬족이..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여지 없이 깜짝 놀란 아수라. 그저 그는 숨이 멎는 듯한 몸짓으로 눈만 크게 뜨고 있었다. 

바룬족이 살아 있다는 소리에 아수라의 심장은 사정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혹시 이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왕종철의 물음에 아수라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이 말 속의 숨은 뜻이 왕종철이 아수라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룬족이 살아 있는 걸 왜 오운족에게 묻는지 그게 마냥 기분 나쁘다는 듯 아수라가 인상을 구기고는 찻 상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도로 내려놓았다. 

그러던 그가 못마땅한 듯 입맛을 쩝 다시고는 왕종철에게 입을 열었다. 

“알았다면 저희가 먼저 죽였을 겁니다. 살아 있으면 안 되는 자들이니까요. 그런ㄴ데 회장님께선 바룬족이 살아 있다는 걸 확신하시는 것 같군요. 그 연유가 궁금해집니다.”

왕종철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의 태도에 아수라는 의아한 듯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왕종철이 그에게 몸을 가까이 다가왔다.

“첫 번째 바탈이 사라졌습니다. 거의 다 잡기 직전에 우리 쪽 사람들을 다 죽이고 홀연히 사라졌지요. 이제 겨우 20살 된 고아 출신 아이가 총까지 든 우리의 정예 일곱을 해치웠습니다. 말이 안 되지요?”

아수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가 불안한 듯 연신 손가락으로 찻 상을 두드리다 무언가 확신이 든 듯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흠, 그렇다면 바룬족이 정말로 살아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죠. 바룬의 개입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아이고. 이런. 이런. 20년 전에 씨를 말렸다고 생각했건만..”

아수라는 지금 바룬족의 생존에 난처해하고 있었다. 이걸 본 왕종철은 그가 정말 바룬족의 생사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왕종철이 아수라의 집에 방문한 것은 바룬족의 생존에 관한 어떤 정황이나 정보를 알기 위한 목적이 컸다. 

한 때 가족처럼 지내던 두 세력이었기에 혹시 모종의 관계가 계속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 하지만 전혀 모르고 있는 듯 보였다.

왕종철은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

그는 항상 함정을 파고 또 의중을 떠보는 식으로 상대의 마음을 확인한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다시 아수라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수라 님. 제가 아까 첫 번째 바탈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선 궁금하신 게 없습니까?”

아수라는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러던 그가 무언가를 알아챘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또 다른 바탈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왕종철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바탈은 저희가 데리고 있습니다.”

아수라는 지금 놀라움을 넘어 경악하는 표정이었다. 

그저 얼어붙은 체 아무 말 못하고 있는 그에게 왕종철이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아수라님이 그렇게 놀라시는 걸 보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던 모양이군요.”

“아. 예. 그.. 그렇다면 정말 이번에 운석 속에 바탈 스톤이 들어 있던 것이군요. 그리고 그 바탈 스톤이 마지막 바탈 스톤이라는 소리이기도 하고요?”

“네. 그렇습니다.”

순간 아수라는 더 이상 대화를 잇지 않았다. 

그는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맴도는 듯 눈동자를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침묵이 흘렀다. 왕종철 또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아수라의 반응을 살피며 그가 어떤 말을 하게 될 지 머릿속으로 유추해보고 있었다. 그런 오랜 침묵을 아수라가 깼다. 

“이런. 이런. 구전(구舊傳)으로만 전해지던 마지막 바탈 스톤이 진짜 있었군요. 바탈 스톤을 본 적도 없는데.. 전설로만 전해지던 것인데.. 처음부터 나타난 게 마지막 바탈 스톤이라니 놀랍습니다.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데 혹시 사진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잠시 기다리시죠.”

왕종철은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열고 아수라에게 내밀었다.

왕종철의 전화기를 받아 들고 바탈 스톤의 사진을 본 아수라의 표정은 경외감과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엄청 신기하게 생긴 물건입니다. 정말 경이롭군요. 헌데 이걸 어찌 회장님께서 가지고 계신 건가요? 운석을 쪼개신 겁니까?”

왕종철이 그렇다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수라가 깜짝 놀라 다시 되물었다.

“아니. 원래대로라면 파이온 측으로 전해져야 할 물건이 아닙니까?”

“허허허허허 허.”

왕종철이 대답 대신 껄껄 웃기만 하자 아수라는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이 중요한 일을 저렇게 가볍게 대하는 그가 이해도 되질 않았다. 아수라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흠 흠. 아니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왕종철이 서둘러 두 손으로 손사래를 쳐댔다.

“아이고. 아닙니다. 다만 아수라 님께서 놀라시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오질 뭡니까? 놀란 토끼 같은 모습은 처음 보는지라..”

놀리고 있는 게 분명했기에 아수라는 분에 못이겨 입이 바짝 바짝 탔다. 

그가 조바심 나는 동작으로 쌍화차를 홀짝홀짝 마셔댔다. 

그 바람에 차 위에 띄운 잣이 입에 들어갔는지 오물오물 거리며 씹고는 삼켰다. 

누가 봐도 그는 상당히 긴장한 체 불안한 모습.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왕종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더 놀랄 일을 말씀드릴까요?”

아수라가 찻잔을 차 받침대에 내려 놓으며 되물었다.

“더 놀랄 일이라니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탈 스톤이 곧 열리게 됩니다.”

순간 아수라의 시공간만 멈춘 듯 그의 몸이 굳었다. 

찻잔을 슬며시 잡은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자 그가 찻잔을 꽉 움켜쥐었다.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말없이 찻잔을 바라보던 아수라가 왕종철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뗐다.

“어떻게.. 열 수 있는 것입니까?”

아수라의 물음에 왕종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리고는 상에 놓인 자신의 전화기를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서 말을 해 줄 것 같았던 그가 말은 하지 않고 몸을 앞으로 숙여 상에 팔꿈치를 기댔다. 

그는 손깍지를 낀 후 물끄러미 아수라를 바라보기만 했다. 

왕종철의 행동은 아수라를 감질나게 만들었다.

“왜 말씀하시지 않고 저를 보시는 겁니까? 저는 그 바탈 스톤이 열린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바탈 스톤은 절대 열 수 없는 것으로 아니까요.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회장님.”

아수라의 말에 왕종철은 옅은 웃음을 지었다. 

“오성에 속한 과학자들의 노력이지요. 우리나라 현대 과학 기술의 쾌거입니다. 만약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라면 우리가 열 수 없었을 겁니다. 아마도 파이온에서 열었겠지요.”

“허허허허 허.”

갑자기 아수라가 두 손으로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듯 웃었다.

그의 진심이 느껴져 왕종철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대단하지요? 오성의 기술력이?”

“네 그렇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점에 마지막 바탈 스톤이 나타났다는 게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회장님 말대로 10년 전이나 20년 전이었으면 파이온에서 열었겠지요. 어떻게 보면 운명 같습니다. 그럼 파이온 본회에서는 모든 수고를 덜게 해 준 회장님께 큰 보상을 주겠지요?”

“아수라님은 바보 같습니다.”

“아니. 왜 그런 말씀을 하지죠?”

“바탈 스톤을 열고 나면 그 무기를 파이온 본회에 넘기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수라의 표정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것처럼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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