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사의 은밀한 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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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비밀리에 소집한 회의를 위해 **호텔 VIP 전용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은비사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회의 시작 시간이 조금 지나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걷는 그의 발걸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 빨라졌다.

그렇게 객실에 마련한 회의실 문 앞으로 다가온 은비사.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다가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는 손으로 머리를 매만졌다.

그리고는 단정하게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렇게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은비사가 긴장을 풀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고 문을 열었다.

회의 장소에는 이미 그가 소집한 파이온 한국지부 회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금 늦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회원들에게 간략하게 말한 은비사는 회의 테이블 정 중앙으로 가 앉았다.

의자에 앉은 은비사가 맞은편에 앉은 서울 경찰청장 김종원이 눈도장을 찍듯 눈인사를 했다.

그도 그에 맞춰 눈인사를 가볍게 했다.

곧바로 은비사는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방송국 보도국장 권순철이 앉아 있었다.

은비사가 그와 눈을 맞추자 권순철 또한 은비사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의 목례를 받은 은비사가 권순철 옆에 앉은 국정원 2 차장인 남순태를 쳐다보자 그도 가볍게 목례를 했고 은비사도 남순태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했다.

그리고 테이블 끝에 깍두기처럼 앉아 있는 한 사람.

케이였다.

은비사는 케이에게 목례대신 한 손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케이는 성의 없게 고개를 옆으로 까딱하는 걸로 인사를 마무리 지었다.

지금 이 자리는 은비사가 필요한 사람만 소잡한 자리였다.

“늦은 시간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비사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 30분.

무의식적인 그들의 행동에 은비사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헛기침을 했다.

그런 그를 의식했는지 갑자기 경찰청장 김종원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이고. 은 비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은비사님이 부르시면 만사 제쳐두고 당연히 와야지요.”

경찰청장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방송국 보도국장 권순철도 두 손을 맞잡으며 덧붙였다.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은 비사님.”

보도국장 권순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국정원 2 차장인 남순태도 질세라 말을 뱉었다.

“늦은 시간이라뇨? 아직 잠자리에 들려면 멀었습니다.”

“풉.”

갑자기 들린 케이의 비웃음에 모두의 시선이 케이에게로 향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분위기가 삭막해지자 케이가 은비사를 쳐다보았다.

역시나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예의 없는 그의 행동에 핀잔을 주는 듯 보였다.

눈치가 보인 케이가 서둘러 입을 열며 분위기를 바꿔봤다.

“아. 잠깐 웃긴 생각을 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하시죠.”

케이의 말에 오해를 풀었다는 듯 회원들은 다시 편안한 표정으로 되돌아 왔다.

그걸 본 케이는 비웃음이 났다. 하지만 티는 내지 않고 속으로 웃었다.

케이는 이 자리가 불편했고 또 우스웠다.

은비사는 이제 겨우 37살이었다.

이 회의의 구성원 중에는 각 분야의 수장들의 나이대가 대략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인 걸 감안하면 새파랗게 어린 나이였다.

그런데 이들은 은비사만 보면 어려워하고 잘 보이려고 애썼다.

모두 은비사의 자리 때문이었다.

은비사의 자리가 보통 자리는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속을 드러내며 아첨하는 모습에 케이는 그들이 솔직히 우습기까지 했다.

그리고 예전에 자신이 가졌던 자리였기에 씁쓸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케이가 심통이 난 듯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은비사를 쳐다보았다.

은비사는 두 손을 모아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고 차분한 표정으로 입가에 우아한 미소를 띠며 김종원 경찰청장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청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김탄의 행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입니까?”

김종원 청장은 은비사의 물음에 잠깐 난색을 표했다.

그가 입을 굳게 다물며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전국에 지명 수배령이 내려졌지만 이렇다 할 제보가 없었습니다. 기껏 나온 제보도 다 엉뚱한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김탄은 독 안에 든 쥐가 확실합니다. 독에서 나와도 죽고 아님 독 안에 갇혀도 죽는 것이지요. 너무 염려 마십시오. 시간 싸움입니다.”

“무엇보다 죽어야만 하는 것은 명심하십시오. 굳이 생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를 찾는 건 확실한 죽음을 목격하기 위한 것입니다. 독 안에 갇혀 죽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은비사의 말에 김종원 경찰청장은 어려운 문제를 받은 듯 인상을 구겼다.

그 모습을 포착한 은비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은비사의 표정 변화에 화들짝 놀라 지레 질겁한 경찰 청장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반드시 죽이겠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 숨은 건지 답답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숨을 수 있는 곳은 없는데 말입니다. 차량 블랙박스 씨씨티비 또 수배령에 대한 제보자까지, 사방팔방에서 감시를 하는데 도무지 나타나질 않습니다.”

“김탄을 도와주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룬족이지요. 그래서 더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여러분을 여기로 모신 겁니다.”

은비사의 말에 깜짝 놀란 경찰청장이 물었다.

“바룬족이 살아 있었습니까?”

은비사는 대답 대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건 아니잖아?” 갑자기 케이가 끼어들었다.

심각한 상황에 농담처럼 내뱉은 그의 말에 기분이 상했던지 은비사가 눈을 치켜뜨고 케이를 노려보았다.

시기가 적절하지 않고 자신의 권위를 침범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 뜻을 읽은 케이가 은비사의 시선을 피하며 에둘러댔다.

“아니. 바룬족이 확실히 살아 있다는 걸 본 사람이 없다는 소리지..”

은비사가 한심하다는 듯 그를 향해 살짝 한숨을 쉬었다.

본심을 숨기려고 어처구니없는 핑계를 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비사는 케이를 무시하고 테이블 위에 놓아둔 서류 봉투를 국정원 2차장 남순태에게 다짜고짜 내밀었다.

“여기에 바룬족에 대한 자료가 있습니다. 다 알고 있다시피 바룬족은 20년 전 모두 멸족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부 다 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준 자료를 바탕으로 바룬족을 추적해주십시오.”

서류를 받아 든 국정원 2 차장 남순태가 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국정원 실력을 한 번 믿어보세요.”

은비사가 그의 말에 웃음으로 답했다. 그 답에 국정원 2 차장 남순태도 따라 웃었다.

케이가 산통을 깬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그 틈을 비집고 은비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원장님.”

그동안 관심 받지 못했던 ***방송국 보도국장 권순철이 은비사의 부름에 졸린 눈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네. 말씀하십시오.”

“김탄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해 집중 보도해 주십시오. 무슨 말인지 잘 알거라 생각합니다.”

은비사의 말에 방송국 국장 권순철은 넌지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이죠. 비사 님. 무슨 말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럼 믿겠습니다.”

말을 마친 은비사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는 케이를 슬쩍 보더니 회의에 참석한 회원들에게 다시 말을 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이만 물러 가십시오. 모두들 맡은 분야에서 수고해주십시오.”

은비사의 말을 끝으로 급하게 소집된 회의는 짧게 마무리 되었다.

국정원 2 차장 남순태와 서울 경찰청장 김종원, ***방송국 보도국장 권순철은 은비사에게 간단한 목례를 하곤 객실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케이가 방에 둘만 남게 되자 두 팔을 깍지낀 체 쭉 뻗으며 뻑적지근하게 기지개를 켰다.

“으규규규. 맞은 데가 욱신욱신 하네. 파스 값이 장난이 아니야.”

그의 말에 은비사가 픽 웃었다.

저번에 은비사가 때린 것을 두고 뒤끝이 남았는지 저렇게 넉살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지개를 다 켠 케이가 목을 재빠르게 돌리며 풀었다.

목에서 두둑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손을 목에 가져다 대고 어루만지며 물었다.

“그런데.. 날 왜 부른 거야? 회의에 참석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은비사는 대답 없이 재킷 안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케이가 궁금한 듯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자 은비사가 그 앞으로 봉투를 툭 집어던졌다.

케이가 봉투를 집어 들자마자 은비사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할 일이 있어.”

“뭔데? 말만 해.”

“봉투 안에 장소와 사진이 있어. 제거해. 흔적은 남기지 말고..”

케이는 봉투를 열어 대수롭지 않게 쓱 한번 쳐다보곤 재킷 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케이의 경솔한 행동에 은비사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신중한 은비사로서는 그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지 않았다.

“매사 그런 식이니 네가 그렇게 힘든 거야.”

은비사의 지적에 케이는 기분 나빴지만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걱정 마. 진짜 잘할 거니까. 저번에 한 실수도 만회하고 또 네가 때린 곳이 아직도 욱신거려서 절대 실수하면 안 될 것 같아.”

말을 마친 케이는 은비사에게 맞았던 부분이 아프다며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풀었다.

그런 그게게 은비사가 말을 뱉었다.

“그래. 이번엔 실수하면 죽일 거야.”

은비사의 살벌한 말에 케이가 화들짝 놀랐다.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해?”

“그만큼 신중하란 얘기야.”

무언가 눈치 챈 케이가 재킷 안 주머니에 대충 집어 넣었던 봉투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는 내용물을 살펴 보았다.

타깃 사진과 정보 그리고 비행기 티켓이 들어 있었다.

사진을 훑어 본 케이가 무언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찌푸리자 은비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케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도로 봉투에 집어 넣었다.

표정은 조금 전과 달리 상당히 신중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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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시골 마을.

농가 수집 채가 드문 거리 사이로 으리으리한 한옥집이 한 채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 위용을 자랑하듯 1300평에 달하는 그 집은 안채, 사랑채. 큰 사랑채, 대문간채, 사당 등 전형적인 과거 한국의 사대부가의 형태를 갖춘 곳이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되 보이지는 않았다.

그걸 증명하듯 그 집은 전통한옥의 구조와는 달랐다.

집을 빙 둘러친 높은 돌담 사이로 보이는 한옥의 일부는 2층으로 된 곳도 있었다.

그 2층에 난 문은 나무로 짠 문살에 창호지를 덧댄 전통 문이 아닌 유리로 된 창문이었다.

이것만 봐도 이 한옥은 현대식으로 개량한 주택임이 분명했다.

이 집은 바로 예언을 지키는 자 오운의 직계 후손이자 오운족의 수장 아수라의 저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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