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거야. 한다고.. 히어로 바탈.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방금 전까지 방에서 시발이라 소리 지른 놈의 입에서 대체 무슨 말이 나온 거냐?-

김탄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던 박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김탄에게 물었다. 

“뭐라고?”

“바탈이 되겠다고!! 내가 한다고!!”

“뭐? 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얘기야?”

“응. 나 이제 괜찮아!”

김탄의 말을 끝으로 박토의 집 거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어제까지만 해도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었던 김탄. 

또 불과 5분 전에는 욕도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바탈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것.

“무슨 일 있었니? 김탄.”

아이신이 묻자 김탄이 대답했다.

“나비를 보았어. 그 나비가 내게 말해줬어. 사랑한다고.”

김탄이 울다 소리지르다 울다 소리지르다 하다하다 이제는 정신이 처 돌았나보다.

갑자기 나비 타령을 하는 김탄에게 박토가 되물었다. 

“단지 그게 전부야? 나비를 본 게 전부냐고? 나비가 진짜 사랑한다고 말했니? 김탄?”

박토의 질문에 김탄은 곧바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

반장님의 영혼을 담은 것 같은 나비가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받아 자신이 완전히 변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던 김탄은 그저 난감하기만 했다. 

지금 이들이 자신을 정신 이상자로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김탄은 살짝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김탄은 믿었다. 분명 나비는 김탄에게 사랑이라는 걸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반장님의 영혼을 느꼈고 또 그 영혼의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면 진짜 정신병원으로 보내겠지? 그냥 둘러대자.-

“응. 일단 그렇게 알아 둬. 난 다시 태어났어. 그리고 난 예전의 김탄이 아니야.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아. 그리고 도망치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까 난 바탈이 될 거야. 알았어?”

김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토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서 김탄에게로 향했다.

그의 표정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또 김탄도 그걸 읽을 수 있었다. 

결국 김탄 앞에 선 박토는 일단 두 손으로 김탄의 양 어깨를 꽉 움켜 쥐었다. 

그런 그가 김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왜 김탄은 얼굴이 자꾸 붉어지는 걸까?

마치 김탄의 무의식을 꿰뚫어 보겠다는 집요하고 신중한 그의 눈빛에 김탄은 잠시 주눅이 들었지만 이내 지우고 그 눈빛에 맞대응했다.

김탄은 지금 진실했다. 그래서 그런 것.

한편 박토는 ‘보통 매서운 눈의 박토가 이런 식으로 쳐다보면 사람들은 백이면 백 모두 눈을 피한다. 그런데 김탄은 피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에 살짝 놀라고 있었다. 

김탄은 진짜 변해 있었다. 

“정말이야? 김탄? 정말 바탈이 되겠다고?”

“그래. 내가 한다잖아. 바탈이 된다고! 뻥 아니고 진짜야.”

하지만 의심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듯 박토가 되물었다.

“진짜 이제 마음을 잡은 거야? 김탄!”

김탄은 대답 대신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신의 진심을 알아 달라는 듯 확고해 보였다.  

-그럼 진짜다. 이건.-

박토가 생각했던 김탄의 상처 치유가 오래 갈 거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생각보다 빠른 김탄의 치유에 박토는 지금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고 눈에도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기쁠 수가. 드디어 바탈 승인을 받았다!-

지금 박토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바룬족으로서 그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인 바탈의 자발적 승인.

구애에도 설득에도 협박에도 회유에도 절대 승낙하지 않았던 김탄이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와 바탈이 되겠다고 하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흥분한 박토는 코 평수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벅차 올라 뜨거워진 콧김을 한 번 거칠게 뿜어낸 박토가, 그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 김탄의 어깨를 앞 뒤로 흔들며 소리쳤다. 

“잘 생각했어! 어차피 이렇게 결정하는 거였으면 빨리 했으면 좋았잖아!”

박토가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애매한 말을 뱉어내자, 

김탄이 그 말의 의미를 분석을 하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려고 할 때, 

박토가 잡고 있던 김탄의 양 어깨를 두 손으로 팡팡 두드리며 소리쳤다.

“잘했어! 잘했어! 진짜 잘했어!”

기분은 좋았지만 어깨가 아팠던 김탄.

미간을 찌푸리고 박토의 얼굴을 쳐다보며 무언가 불만을 표출하려 할 때 그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는 오운족에게 소리쳤다.

“너희들은 뭐해? 박수 안 치고!”

박토가 시키는대로 하기로 약속했던 임시 바룬족 노비인 오운족이 열심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박수 소리가 들리자 김탄은 삐딱했던 고개를 제자리에 돌리고는 환하게 웃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말이 맞다.

박토도 김탄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연신 그를 보며 아주 잘했다는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얼굴이 환한 미소로 가득했다. 

그의 미소에 김탄의 미소도 더욱 더 커졌다. 

드디어 바탈이 되기로 결정한 김탄 때문에 거실엔 밝은 기운과 긍정의 에너지가 넘쳤다. 

이 기세를 틈 타 오운족이 김탄 곁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들의 얼굴에도 기쁨이 넘친다는 듯 밝은 미소로 가득했다. 

모두가 인정하는 분위기.

또 모두가 좋아하는 이때 김탄은 그제야 오운족인 아이신과 아수하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파이온과 연관이 있기에 한때는 죽도록 미워했던 오운족.

이제 김탄에게 그런 마음은 없다.

그가 오운족인 아이신과 아수하를 번갈아 보며 해맑게 치아를 드러내고 웃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박토가 시킨 대로 박수를 치고 있던 아이신이 갑자기 멈추고선 김탄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건 악수를 하자는 소리 같은데? 왜?-

의아했던 김탄이 얼빵한 표정으로 아이신을 쳐다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바탈이 되기로 한 거 축하해. 김탄. 그리고 네가 바탈이 되는 데 우리도 도울 거야.  우리도 예언을 지키는 자들이니까. 그리고 많은 걸 잃어버리게 된 건 정말 유감이야.  물론 우리가 한 건 아니지만.. 나와 아수하가 오운족이기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정중하게 사과할 게. 정말 미안하다. 김탄.”

용서를 바라는 화해의 제스처였다. 

순간 김탄은 아이신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얼마 전 그를 두둘겨 패는 바람에 시퍼렇게 멍이 든 눈, 그리고 광대가 이젠 조금 아물었는지 피딱지도 살짝 앉아 있었다. 

아이신을 저런 몰골로 만들 정도로 괴물이 되었었던 김탄은 그 사실에 조금 부끄러웠다.

그가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아이신이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때려서 미안해. 그때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많이 아팠겠다.”

아이신은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손으로 상처로 얼룩진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살짝 만지기만 해도 상당히 아픈지 눈 주변이 움찔 움찔거렸다. 

“얼굴에 난 상처는 아물면 끝이야. 마음의 상처보다야 아무것도 아니지.”

아이신이 김탄에게 맞은 게 별거 아니라는 듯 말을 툭 내뱉자 갑자기 박토가 그를 확 째려봤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벙긋거리려고 하는데..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 거 같다. 분명 20년 일을 꺼내며 마음의 상처를 준 오운족을 원망하려는 말일 것이다.- 

그걸 눈치 챈 아수하가 갑자기 물개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화해를 하니까 너무 좋다. 얘들아. 호호호호호.”

아수하의 웃음에 김탄도 따라 웃고 아이신도 따라 웃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다.

박토는 오운족의 예상대로 20년 전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이야기를 꺼내려다 그냥 포기했다. 

지금 분위기가 그냥 좋았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를 갑자기 김탄이 깼다. 

“이제 됐어. 당장 바탈로 만들어 줘. 파이온을 부숴버리게.”

“그건 안돼.”

김탄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닌 밤 중에 말 그대로 홍두깨였다. 

“뭐?”

“안 된다고.”

뜻대로 되지 않아 갑자기 화가 난 김탄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박토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언제는 나보고 바탈이 빨리 안돼서 내가 다 죽인 거라더니 이젠 왜 안 된다는 건데? 왜?”

박토는 억울하다는 표정부터 지었다. 그리고 화도 내고 있었다. 

그가 분노의 콧김을 뿜으며 손가락을 아이신과 아수하를 가리켰다. 

“이것들 때문에 안된다고! 이것들이 의식을 행할 무단인 월을 다치게 해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어! 그래서 안 돼!”

박토의 말을 들은 김탄은 오운족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 상태로 분노의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불똥이 또다시 튈까 두려웠던 아수하는 아이신의 뒤로 숨었다. 그러면 보이지 않을까 해서 그랬던 것.

김탄의 분노를 혼자 온몸으로 받 던 아이신은 김탄에게 맞았던 상처가 다시 쑤셔왔다.

김탄이 박토 멱살을 풀고 아이신에게 다가가려 할 찰나 박토가 김탄을 막아 세웠다. 

“의식을 행하는 것보다 급한 일이 있어.”

그 소리에 김탄은 버럭 성질부터 냈다.

“뭐? 내가 바탈이 되는 것보다 급한 일이 있다고? 그게 뭔데?”

“또 다른 바탈을 데리고 오는 일.”

김탄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 나 말고 바탈이 또 있다고?”

“그래. 너 말고 한 명이 더 나타났으니까. 바로 두 번째 바탈이지.”

“아니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하지?”

박토는 지금 어이가 없다. 그래서 말문도 막혀 말도 나오지 않는다. 

이건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처음에 바탈이 되기 싫다고 도망만 다니던 김탄.

그리고 지금까지 지가 왜 바탈이냐고 소리만 지르고 원망만 했던 그가 왜 두 번째 바탈을 말해주지 않았냐며 타박하는 소리에 박토는 마음마저 착잡했다. 

-화가 나지만 그냥 참자. 마음이 많이 아팠었으니까.-

박토는 스스로 분을 삭이느라 얕은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말했었잖아. 늑대를 찾아야 한다고.”

순간 김탄은 박토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총격전이 있었던 그때 그 밤.

김탄은 분명 늑대가 사라졌으니 다시 찾아보라고 박토가 박월과 전화를 하던 내용을 분명히 들었다. 

그리고 박토의 집에 납치당했을 때 박월과 박토가 늑대를 빨리 찾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도 생생하게 떠올렸다. 

“아. 맞다. 그랬었지. 그런데..”

말끝을 흐린 김탄. 모든 게 선명해졌지만 그것과 정비례 해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늑대가 두 번째 바탈이라는 말.

김탄은 바탈이다. 그리고 김탄은 사람이다. 

그런데 또 다른 바탈은 늑대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바탈은 사람이 아닌 짐승이라는 소리.

그리고 그 늑대가 김탄처럼 초능력도 가졌을 게 분명하다. 

이 사실에 김탄은 지금 머릿속으로 판타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럼 내가 초능력을 가진 늑대를 부리게 되는 건가? 이거 대박인데? 완전 판타지 게임 실사판이잖?’

자기 마음대로 결론을 내린 김탄.

지금 그의 표정은 초능력을 가진 커다란 늑대의 등에 올라 타 스켈레톤 몬스터 떼거지를 처치하기 직전의 풀 유니크 아머 세팅을 한 게임 속 직업이 드루이드인 절대지존 아바타를 가진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김탄은 자신감이 상승한 듯 두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가 박토에게 확인사살 차 다시 물었다. 

“늑대가 바탈이면 동물인 거지?”

“그래. 아쉽게도 두 번째 바탈은 동물 같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지만 월은 분명 두 번째 바탈이 늑대라고 했어.”

“그렇게 아쉬울 것까지야 없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사람인 너도 바탈이 되겠다고 승낙 받기가 힘들었는데 늑대에게서 그걸 어떻게 받을지 난감하기만 한데?”

“승낙을 받아야 한다고?” 김탄이 묻자 아이신이 박토를 대신해 대답했다. 

“바탈은 타의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어. 바탈이 되는 사람이 승낙해야 진정한 바탈로 진화할 수 있는 거야.”

“진화라고?”

“그래. 그래서 의식을 행해야 한다고 했잖아. 지금 넌 바탈의 자질을 가진 사람일 뿐이야. 네가 스스로 바탈이 되겠다는 다짐이 생기면 그게 수락하는 거야. 그래야 진짜 각성을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박토가 지금 걱정하는 거야. 동물이 바탈이면 스스로 바탈이 되겠다는 다짐을 어떻게 받아내냐는 거다. 머리가 아플 만 해.”

순간 둘 사이의 대화에 아수하가 끼어들었다. 

“월이 잘못 찾은 게 아닐까? 어떻게 짐승이 바탈일 수 있지?”

아수하의 말에 바룬족 박토는 화부터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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