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김탄

-저기 꼭대기까지 사람이 올라갈 수는 있을까? 두 발은커녕 네 발로 기어서도 올라가기 힘들어 보여.-

김탄은 다시 고개를 돌려 다른 산으로 시선을 옮긴 다음 다시 험준한 산을 쳐다보았다. 

-저기가 제일 높은 곳이야. 제일 척박한 곳이고. 하지만 저기 꼭대기로 올라면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어. 정말 높이 날아야 멀리 날 수 있는 것처럼 높이 올라가야 멀리 볼 수 있는 건지도 몰라.  어쩌면 내가 바탈이 된 것도 그런 것인지 몰라.  그러니까 험산 산을 오르라고 또 높이 도약하라고 능력을 주게 된 것일 테니까 말이야.

어쩌면 그래서 내가 태어난 것인지도 몰라.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르라고. 저 산으로 정하겠어.  두 발은커녕 네 발로 기어가도 올라가기 힘든 산이지만 나는 저 산으로 올라갈 거야. 아무리 가기 힘든 곳이라도 또 아무리 갈 수 없는 곳이라는 건 없어.

어쩌면 그 길을 가라 신이 네게 주신 능력인지도 몰라. 증명할 테야. 나는 이제 더 이상 약하지도 않고 또 무섭지도 않고 절대 포기하지도 않을 거라는 걸.-

나비의 날갯짓이 바꾼 김탄의 마음.

행복하고 기쁘며 즐거웠다. 

김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쳐다보았다. 

그가 가진 것은 두 주먹과 두 발뿐이었다.

말 그대로 맨 손과 맨 발 밖에 없는 그에게 우연처럼 다가온 초능력은 어쩌면 필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진 게 하나도 없어. 하지만 저들은 세상을 다 가지고 있지.  그러거나 말거나 내 알 바 아니었어.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나는 소중한 것을 잃었고 또 죽을 만큼 아팠어. 내가 여기서 그대로 눈을 감아버린다면 또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겪게 되겠지. 나는 그것을 외면하고 싶지 않아.  버겁고 힘든 길인 거 알아. 하지만 가 볼 거야. 달걀로 바위 치는 거라고 비웃어도 좋아. 

그래도 괜찮아. 나는 이대로 주저앉지 않아. 그리고 다시는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게 만들 거야. 가장 높은 곳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의 탈을 쓴 악마들. 너희들이 아무리 숨어 있어도 아무리 찾기 힘들어도 난 반드시 모두 다 찾아서 내가 전부 없애버릴 거야.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말이야.-

김탄의 다짐은 그의 마음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왔다. 

쓸모없어 또 사랑하지 않아 버려졌다는 그의 무의식 속 깊은 마음의 병은 반장이 주고 간 큰 사랑을 지키겠다는 생각과 함께 사라졌다. 

또 스스로 가두느라 나약해진 마음과 항상 힘들면 도망치던 두려움은 앞으로 자신과 같은 아픔을 다른 이들이 겪지 않겠다는 맹세로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그는 배달석의 우연이 아닌 선택인지도 모른다. 바탈 스톤이 선택한 자.

김탄!

키 작고 그리 잘 생기지 않고 가진 거 하나 없는 버려졌던 자. 

그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 바탈로서의 운명.

그 운명은 지금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고치에서 힘들게 나와 예쁜 나비가 되어 날아가듯 새롭게 태어난 김탄.

이제 아픔과 슬픔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라.

김탄은 두 눈을 감았다. 

마치 그의 다짐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 마음에 새기는 듯 보였다. 

그러자 신기하게 가슴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 온기는 마치 전류가 되어 온몸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손끝과 발끝까지 짜릿한 자극이 전해졌다. 

-그래. 나는 사랑 받지 못 한 게 아니야. 이미 충분히 사랑 받았고 또 앞으로도 사랑 받게 될 거야.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을 위해 다시 시작하자. 김탄.-

쿵 쿵 쿵 쿵.

숨죽이며 조용히 뛰던 심장이 갓 태어난 아기의 첫 호흡처럼 거침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심장을 통해 전해지는 피는 김탄의 온몸을 돌며 막힌 혈맥을 뚫어주었고 죽어 있던 신경까지 다시 살아나게 했다. 

전율이 몸을 휘감았고 뇌 속의 세포들이 진동하는 느낌에 김탄이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신비한 그의 변화에 그가 두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뭐지? 이건 온몸의 세포들이 진동하며 요동치는 것 같아.’

분명 그는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그의 마음의 변화가 몸의 변화를 불러왔던 것.

그러자 김탄의 얼굴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는 지금 미소 짓고 있었다. 

밝은 에너지, 그리고 무언가 힘찬 에너지의 느낌 때문이었다. 

그가 펼쳐 든 두 손을 꽉 움켜쥐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두려워하지 않아. 겁내지도 않고. 난.. 바탈이니까.”

그가 나비가 사라져 간 곳을 다시 쳐다보았다.

“믿어도 돼요. 반장님.”

순간 바람이 훅 불어와 박토의 집 앞에 있는 나무의 나뭇잎을 건드렸다. 

마치 반장의 대답인 것 같이 바스스 거리며 나뭇잎이 흔들리자 김탄이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아자!!!!”

****************

거실에 모여 박월이 그림을 그린 벽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던 아이신과 아수하, 박토는 김탄의 내지른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김탄이 있는 닫힌 방문을 쳐다보았다.

“비명 소리인가?”

아이신의 말에 아수하가 답했다.

“아자라고 들렸는데?”

“아자? 아 씨가 아니고?”

박토가 묻자 아수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 C가 맞는 것 같다. 뒤에 발은 작게 말했겠지? 진짜 힘든가 보네. 김탄.”

아수하의 말에 아이신과 박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들은 김탄이 방에서 너무 괴로워 소리를 또다시 지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박토는 김탄이 측은했던지 그가 있는 방을 보며 중얼거렸다. 

“빨리 떨쳐내고 일어나야 할 텐데..”

그가 혼자 중얼거린 말에 아수하가 덧대었다. 

“그러게.. 아픔이 크니 오래 걸리는 거겠지.”

박토가 남의 혼잣말에 왜 간섭을 하냐는 듯 아수하를 쳐다보자 갑자기 아이신이 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러 때일수록 우리가 준비를 해야 해. 박토. 김탄이 밖으로 나올 때를 대비해 빨리 배달석을 찾고 두 번째 바탈을 찾아야지.”

“우리는 아니고 나 혼자야. 착각하지 마. 오운족.”

박토의 싸늘한 말에 아이신은 주눅들어 의기소침해졌다.

분명 그들은 어젯밤 박토에게서 긍정의 신호를 받았었는데.

자고 일어나서 다 까먹었는지 아침부터 쌀쌀맞고 냉랭했다. 

배달석을 혼자 찾겠다는 박토의 선언.

배달석은 오직 오운족만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기에 오운족은 애간장이 탈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무조건 박토가 시키는 대로 하는 조건으로 이 집에 붙어 있는 허락 받은 몸.

배달석을 찾으러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는 처지.

그렇다고 포기할 오운족이 아니다.

이번에는 아수하가 박토에게 아주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토야. 정말 혼자서 가능하겠어?”

대답 없는 박토. 그저 월이 쓰러지기 전 벽에 그림을 볼 뿐이다. 

더 이상 말을 꺼냈다간 그대로 이 집에서 쫓겨날 것 같은 오운족은 그대로 입을 닫았다. 그러자 그제야 박토가 아수하의 물음에 답을 했다. 

“배달석과 바탈은 모두 한 장소에 있어. 나 혼자서도 충분하고 또 혼자가 편해.  그러니까 너희들은 몰래 따라 올 생각 털끝만큼도 하지 마.”

“그럴 생각이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순간 박토가 아이신을 확 째려보았다.  아이신은 지금 난처하다. 

그도 모르게 속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서 그렇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우물쭈물 어정쩡 식은땀만 흘리고 있는 아이신의 옆구리를 아수하가 팔꿈치로 푹 찔렀다.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골로 보내겠다는 신호였다. 

지금 박토에게 그 마음을 절대 들키면 안 되고 또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 

“아효. 농담이야. 농담. 진짜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무안하잖아. 박토. 걱정하지 마.  절대 따라가지 않으니까.”

아이신이 에둘러대자 아수하가 덧붙였다. 

“그래. 절대 그럴 생각 없어. 그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만 궁금해서 그러는데 만약 잠입까진 해도 탈출은 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곳이 만약 진짜 파이온의 소굴이 맞다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닐 거 아냐? 안 그래 박토?”

결국 이들의 핵심은 절대 따라가지 않겠다는 말이었지만 자세히 들어가 보면 같이 가자는 내용이었다. 

이들의 의중을 완전히 파악한 박토는 그저 말없이 그들을 노려보기만 했다. 

속을 꿰뚫어 볼 것 같은 그의 시선에 이상하게 오운족은 기가 죽어버린다. 

제 풀에 꺾인 듯 아수하가 중얼거렸다. 

“알아.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거.. 단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정말이야.”

대꾸할 가치도 없다. 믿을 걸 믿으라 해라.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박토는 그들을 한참 쳐다보다 말없이 다시 고개를 돌려 벽에 그려진 그림을 쳐다보았다. 

지금 오운족은 뻘쭘하다 못해 비참하다. 

박토의 반응을 봐선 절대 배달석을 구하러 같이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오운족으로서 눈물도 앞을 가렸다. 

하지만 절대 포기할 오운족이 아니다. 

아수하가 아이신을 쳐다보며 눈으로 얘기했다.

<당분간은 자극시키지 말자. 최대한 맘에 들게 했다가 다시 얘기를 꺼내 보자. 아이신.>

<그래. 절대 배달석을 다른 자의 손에 넘길 수는 없지. 포기하지 않아!>

쌍둥이들의 눈 대화가 오고가는 사이 박토는 월이 그린 그림을 분석하고 있었다. 

분명 건물이다. 또 그가 찾았던 오성 알앤디 센터의 도면과 똑같았다. 

그가 월의 피가 뭍은 동그라미와 세모가 그려진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 두 번째 바탈이 있다. 반드시 구해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지만 그곳으로 어떻게 들어갈지 골머리가 썩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들어가는 것 그렇다 치더라도 아수하 말대로 나오는 게 문제였다. 

혼자서는 분명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오운족과 함께 하는 건 싫다.

“박토!”

갑자기 들린 우렁참 김탄의 목소리.

오운족과 바룬족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김탄이 방 문을 열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서 있었다. 

불과 방금 전까지 시발이라 욕을 하다 분에 못이겨 방밖으로 뛰쳐나온 것 같은 김탄의 모습에 또 식겁한 아이신이 지레 질겁 소리쳤다. 

“설마 또? 폭주!!”

순간 아수하가 김탄을 향해 공중으로 날아올라 제비를 돌더니 김탄 앞으로 착지하고 난 후 소리쳤다. 

“아이신! 뭐 해! 빨리 와서 잡아!”

아이신이 공중으로 점프를 하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김탄이 갑자기 소리쳤다. 

“박또오오오오오!!! 나 바딸이이이이이이 되겠어어어어어어어!!!”

그 바람에 아이신은 다리가 꼬여 앞으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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