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나 비의 전언(傳言)

*************

‘내 잘못이 맞을지도 몰라. 아니, 내 잘못이야. 난.. 내가 능력이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벽에 기대 있던 김탄이 생각에 괴로웠던지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듯 잡았다.

한동안 그 자세로 있던 그가 체념한 듯 머리칼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벽에 머리를 기댔다.

멍한 듯 초점 없는 눈동자는 대체 어딜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순간 창문을 통해 들어 온 바람이 김탄의 머리 위로 툭 불어왔다.

바람은 얇은 마사 천으로 만든 커튼을 펄럭였고 김탄의 머리칼도 흩날렸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 온 김탄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박토가 열었나 보네.”

그는 언제 박토가 들어 와 창문을 열었는지 몰랐다.

바람이 불어 창문이 열려 있었다는 걸 지금 알아버렸던 것 뿐이었다.

제법 더워진 6월의 방 공기를 식히려 아마도 박토가 김탄이 잠들었을 때 몰래 들어와 열어 놓고 간 것 같았다.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몰랐을 박토의 배려에 김탄은 쓴웃음을 지었다.

순간 김탄의 머릿속에 그가 이 집에 처음 끌려 와 박토와 그의 조카 박월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하기 싫다고 했잖아요! 바탈인지 뭔지 안 한다고요!’

‘저는 이대로가 좋아요. 여친은 없지만 나름 돈도 잘 벌고 있고요. 정말 만족해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김탄은 바룬족에게 자신이 뱉었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치자 자책하듯 중얼거렸다.

“맞아. 박토 말대로 겁이 났었어. 알고 있었지만 그냥 두려웠어. 그냥 그대로 사는 게 좋았으니까.. 일.. 친구들.. 여자 친구.. 꿈꾸던 미래.. 제길..”

표정 없이 멍한 김탄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또다시 눈물부터 솟구쳤다.

그렇게 울던 그가 화가 났는지 원망을 쏟아냈다.

“미친 새X들.. 사람도 아니야. 내 아버지가 될 사람이었어. 내 형제들과 마찬가지였고.. 내 친구들이었다고. 그렇게 쉽게 죽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어.. 쓰레기 같이 새X들이 나 하나 잡겠다고 못된 짓을 한 거야.”

김탄은 아무리 원망해도 전혀 마음이 달래지지 않았다.

그는 그의 마음을 달랠 길은 그렇게 만든 파이온이라는 세력을 박살내야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도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 알아버리자 무력감이 찾아 왔다.

또 그런 자신이 싫어졌다.

그가 세상을 단절하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또 자책하는 거야? 원. 녀석도. 툭툭 털고 일어서!”

갑자기 들린 반장의 목소리에 김탄은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반장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어느 틈에 들어온 건지 모를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방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나비?”

김탄이 나비를 보고 중얼거리자, 나비가 숨어 있는 걸 들켰다는 듯 공중으로 포르르 날아올랐다.

그런데 그 나비가 이상하게도 김탄에게 팔랑거리며 날아오기 시작했다.

보통 곤충은 사람을 피하는데 외려 사람에게 날아오는 나비를 본 김탄은 비이성적인 생각들로 가득차 버렸다.

-혹시..

-수퍼 내추럴 급 마법은 아닌 건지..

김탄이 그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반장님?”

남이 들으면 정신 나간 모양이라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김탄은 묘하게도 나비가 반장님 같았다.

아님, 나비가 반장님이길 바랬거나..

그런 마음 때문인지 정말 이상하게도 나비는 곧장 김탄에게 다가 온 후 그가 웅크리고 앉느라 세워 앉은 무릎 위로 살포시 내려 앉았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

그 순간 김탄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김탄에겐 나비가 마치 반장의 영혼을 담은 존재 같았다.

또 정말 그런 것인지 그의 무릎에 앉아 있는 나비는 김탄이 흐느끼는 데도 도망가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지만 왠지 정말 그런 판타지가 현실 같아 김탄은 목이 매었다.

이렇게라도 다시 반장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더 이상 눈에 눈물을 머금지 못하고 결국 울어 버렸다.

-왜 슬플 땐 둑 터진 강줄기처럼 눈물이 샘 솟는 건지.. 빌어먹을 이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

나비가 반장의 영혼을 담은 거라 굳게 믿기 시작한 김탄이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반장님. 다시 찾아와 줘서.. 계속 지켜봐 주실 거죠?”

정말 그럴 일을 없겠지만 그가 원한 소망의 판타지이길 바랐던 나비가 김탄의 말을 알아 들었다는 듯 날개를 천천히 접었다 펴기 시작했다.

사람의 입김, 목소리, 흐느낌에도 날아가지 않는 나비는 김탄의 마음을 더욱더 헤집어 놓았다.

하얀 나비는 죽은 자의 영혼을 잠시 머금고 있다가 저승길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산 자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온다는 전설.

김탄도 그 전설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 전설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탄의 비현실적인 생각은 더욱더 사실처럼 다가왔다.

어는 순간, 그가 나비가 반장이 맞다고 확신을 한 순간, 김탄은 스스로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정말 반장님이세요?"

큰 소리에 당황했다는 듯 나비가 포르르 날아올랐다.

-그럼 그렇지. 나비가 어떻게 반장일 수가..-

잠시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김탄은 스스로 바보같아 피식 웃고는 입을 샐쭉거며 나비를 눈으로 쫓았다.

나비는 사람에게 약을 올리듯 이리저리 팔랑거리며 날아다녔다.

아마도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는 듯 보였다.

그런 나비가 다시 김탄에게도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나비구나.-

그런 나비 때문에 헛생각을 했다는 생각에 김탄은 나비마저 미워졌다.

다가오는 나비를 쫓아내려 손을 들어올리자 나비가 알아버렸다는 듯 높이 올라갔다.

애꿎은 나비에게 신경질 내려했던 김탄은 스스로 한심해 체념을 한 후 다시 손을 내렸다.

그때 김탄의 머리 높이 있던 나비가 김탄의 머리 위로 내려 앉았다.

화가 간 김탄이 손으로 머리를 휘휘 저으며 나비를 쫓아냈다.

놀란 나비가 훅 날아오르더니 다시 김탄의 머리에 앉았다.

순간 김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지금 정말 전설을 사실로 받아 들이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비가 이렇게 이상한 짓을 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정말 전설이 사실인가 보다.-

김탄은 소스라치게 놀라 그도 모르게 소리쳤다.

“반장님!”

그 바람에 깜짝 놀란 나비가 다시 포르르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김 탄의 눈 앞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김탄의 머리 너며 열린 창문 밖으로 날아가버렸다.

그제야 웅크려있기만 했던 김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오랜 시간 쭈그려 앉아 있었던 탓인지 어지러움에 몸을 휘청였다.

창문에 기대고선 피식 웃었다.

그가 이 방에 들어온 이후로 그가 두 다리로 서서 몸을 지탱한 건 지금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병신.. 같은..’

서 있다는 게 어색한 느낌까지 들 정도로 웅크려 있기만 했었던 자신에게 한심했던 김탄의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병신.. 같은..”

다 털어 버리는 듯 짧게 자책을 한 김탄이 몸을 돌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처럼 그곳은 항상 그가 보아왔던 모습들이었다.

6월의 햇살은 푸르게 무성한 초목들의 잎사귀에 부딪혀 더욱더 반짝거리게 만들었다.

본래 아름다움을 더욱더 빛내주는 햇빛이었다.

김탄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깨끗하고 청명한 하늘에 구름이 떠 있었고 마치 어둠 속에서 어서 나오라는 듯 포근한 에너지까지 내뿜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갇혀 있느라 이렇게 자연이 아름답게 변한지도 모르고 있었다.

나비가 아니었다면 보지 못한 아름다움들.

정신이 번쩍 든 김탄이 나비를 다시 찾아 봤다.

나비는 마당 한 쪽에서 팔랑거리며 꽃을 찾아 날아다니고 있었다.

태연한 나비의 모습에 김탄은 얕은 미소가 떠올랐다.

순간 바람이 일어 나비를 건드렸다.

사람에겐 살랑 바람이겠지만 나비에겐 거센 바람이었는지 날갯짓이 힘들어 보였다.

‘힘 내.. 나비야.’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러질 것 같은 두 날개로 제법 바람에 잘 저항을 하는 모습에 김탄의 입가엔 그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와 동시에 김탄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답답한 방 공기 대신 자연이 만들어 낸 신선한 공기가 그의 폐부 깊숙이 들이차자 이상하게도 김탄은 머리도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

김탄은 그대로 숨을 참았다.

마치 그의 몸에 어둠을 만들어냈던 묶은 찌꺼기가 다 달라붙으라는 듯.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숨을 참고 있었던 김탄이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조금 전 보다 더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김탄은 또 몸 속의 나쁜 것들이란 나쁜 것들은 모두 다 달라붙으라는 듯 숨을 참았다

그리고 내쉬고 또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래서 그런 것인지 기분도 살짝 좋아진 김탄.

모두 반장의 영혼을 담았던 나비 때문인 것 같아 그가 다시 나비를 찾았다.

나비는 저 멀리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마치 제 할 일을 다해 쉬고 싶다는 듯 보였다.

김탄이 그 나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잘 가요. 반장님. 그리고 저를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김탄의 마음이 전해진 건인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나비가 그대로 날아올라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그런 나비를 지켜보던 김탄은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고 마음도 조금 편해졌다.

며칠 전 그의 꿈속에서 반장이 해 준 말.

‘언제나 지켜보고 있겠다.’라는 그 말의 약속을 나비를 통해 보여 준 거라 생각한 김탄은 정말 이상하게도 더 이상 그렇게 마음이 힘들지가 않았다.

그 순간 김탄의 머릿속에서 반장의 목소리가 메아리졌다.

‘왜 그러고 있어? 툭툭 털고 일어 서.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 줄 아니? 사랑한다. 아들.’

“네. 일어 설 게요. 항상 지켜봐 주세요. 태어나길 잘 한 것 같아요. 실수가 아니었나 봐요.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반장 님.”

상념에 답하듯 중얼거린 김탄이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았다.

눈물을 머금은 눈 때문에 흐릿했지만 첩첩산중 깊은 산골이어서 그런지 산봉우리들이 겹쳐 장관을 만들어냈다.

살짝 스민 눈물을 손 끝으로 훔친 김탄의 눈에 이상한 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잘못 태어난 돌연변이처럼 다른 산들과 다르게 유난히 높고 가파른 산이었다.

사람이 도저히 걸어서는 올라가기 힘든 경사를 가진 그 산은 그 험준함만큼 그 곳에 터를 잡은 나무들도 별로 없었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