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은비칼

*****************

“싫습니다. 팀장님.”

오강심의 단호박 같은 단호한 거절때문에 나채국은 정말 난처했다.

도대체 몇 번을 설득해도 그녀는 무조건 싫다고 했다.

이런 식이라면 그녀는 죽어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건 지나가는 개도 알 상황.

나채국이 투덜거렸다.

“너 진짜 고집 세구나?”

“네. 한 고집하죠. 싫으면 싫은 겁니다. 오성 알엔디 센터로 가라면 차라리 저보고 죽으라고 하십시오.”

“야, 바탈 스톤을 여는 주파수 해독 특별 프로젝트야. 아무한테나 주는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단기 프로젝트니까 해도 되지 않을까?”

“싫습니다. 정말 싫어요. 전 여기가 좋아요. 그러니 그만 말씀하십시오.”

“이야~ 강심아. 이건 엄청 난 기회일지도 몰라. 이 기회가 미래의 네 운명을 바꿀 기회일지도 모르잖아. 하자. 나랑 같이. 어? 강심아아아아아~”

나채국의 애절한 아양소리가 오성 아이디시 룸을 가득 메웠지만, 오강심은 여전히 그를 외면하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한편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은비칼은 화가 났다.

정말 이기적이고 지 밖에 모르는 오강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열이 오른 은비칼이 오강심에게 입을 열었다.

“오강심 씨. 한번만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나라를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싶은데.. 희생자의 마음이랄까? 뭐 모성애 같은 그러 거 있지 않습니까?”

오강심이 순간 도끼눈을 뜨고 은비칼을 노려봤다.

그렇게 심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저러는 그녀를 은비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그는 말을 잘못 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아무튼 그의 말로 인해 지금까지 나채국이 설득할 때보다 더 강한 방어막이 그녀에게 형성 됐기 때문이다.

오강심이 팔짱 낀 팔은 더욱더 조여져 있었고 표정도 그 이전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분명 은비칼의 말 때문이었다.

그런 오강심을 은비칼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체념하고 나채국을 쳐다보았다.

어떨 때는 정말 천생연분 혹은 쌍둥이라 생각할 정도로 일심(一心)을 이루는 그들이기에 혹시 나채국은 그녀의 심경 변화에 대해 어느정도 아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랬던 것.

역시나 그녀의 마음을 잘 안다는 듯 나채국이 말을 뱉었다.

“이 상황에 실장님이 말을 좀 어울리지 않게 해서 그래요.”

그럼 실수다.

그런데 은비칼은 도대체 그 실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나채국이 다시 말했다.

“그게.. 기회라고 꼬시는 상황에 모성애 같은 마음으로 희생하라면 강심이가 말을 듣겠어요?”

그제야 핵심을 깨달은 은비칼.

그도 모르게 깨달음 얻었다는 듯 짧은 단말마를 내뱉어 본다.

“아!”

역시 속물을 좋아하는 사람한텐 속물로써 답하는 게 맞다.

은비칼은 속세에 찌든 사람이 아닌 천상에서 살 것 같은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

그런 그에게 세상을 지키는 건 당연한 아가페(agapē)적 희생이지만 여기 돈이면 영혼도 팔 것 같은 오강심과 나채국에게는 세상을 지키는 건 무조건 대가였다.

그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은비칼은 속세에 찌든 마음으로 오강심을 다시 설득하기 시작했다.

“오강심 씨. 나채국 씨 말대로 이번 프로젝트는 기회입니다. 인사고과에서 상당한 점수를 받을 수 있어요. 말 그대로 승승장구의 기회인데 왜 안 하신다고 하는 거죠? 먼 미래에 임원으로 앉아 있는 오강심 씨를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그런 큰 야망을 가지고 이번 일을 한 번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정말로 속물 근성이 가득한 은비칼의 제안에 오강심은 관심을 살짝 보였다.

그러나 그 관심은 호감이 아니었다.

역시 그녀의 입에서 거절의 말이 쏟아지는데..

“싫습니다. 임원이 되는 상상은 팀장님이나 실장님이 하십시오.”

이 정도의 말이면 더 이상 설득은 불가하단 소리였다.

그로 인해 나채국과 은비칼은 실망으로 가득 찼다.

나채국은 그가 임원이 되는 꿈이 사라져서 그랬고 은비칼은 세상을 구할 수 없게 되어서 그랬다.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상부에 거절 의사를 밝혀야겠습니다.”

은비칼이 스마트 폰을 들어 화면을 열자 나채국이 갑자기 손으로 폰 화면을 가렸다.

아직 보고하지 말라는 뜻.

은비칼이 스마트 폰을 거두자 나채국이 오강심에게 다그쳤다.

“잠시만. 강심아. 네 말대로 네가 안 하는 걸로 알겠어. 그런데 왜 싫은지 이유라도 말해 줘. 나는 알아야 해. 너와 난 운명 공동체라고 생각하거든. 네가 가지 않으면 나도 못 가. 우린 한 팀이니까 말이야. 다른 말로 내 미래의 임원 자리는 너 때문에 사라지는 거란 뜻이야. 그러니 애석하지만 그 이유라도 알아야 내가 덜 억울할 것 같아.”

남의 미래까지 발목 잡아 끌어내렸다는 나채국의 말에 오강심은 죄책감을 살짝 느꼈는지 얕은 한숨을 쉬었다.

-무슨 말 못할 사정이길래 저러는 것일까?-

나채국과 은비칼 또한 그녀와 같이 근심에 사로잡혔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불편한 공기를 느꼈는지, 오강심이 마지못해 말한다는 듯 입을 여는데..

“전 단지 과학자들하고 일하기가 싫습니다.”

말도 안 되는 핑계였다.

그런데 이 말에 곧바로 나채국이 이상하게도 수긍을 했다.

“그거였구나.”

지금 이 상황에 은비칼만 혼자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아니 대체 서로 텔레파시로 소통하는 사이라도 그렇지,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아무튼 이 대화법에 살짝 화가 난 은비칼이 흥분하며 그들에게 물었다.

“아니, 왜죠? 왜? 도대체 어째서죠?”

그러나 나채국과 오강심은 그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해는 할까?

그런 표정으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던 그들 중 나채국이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그래. 강심이 네 말이 맞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려서 미안해. 미래의 임원 자리에 눈이 멀었어. 사람은 행복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말이야”

지금 은비칼은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대체 이 대화법은 어느 세상 대화법이란 말인가?

여기가 지구에 있는 대한민국 맞소?!!

솔직이 은비칼이 이런 걸 경험한 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들의 대화는 은비칼이 알아들었지만 단지 한국말을 하는구나 하는 정도로 느낄 때도 많았다.

정말 그들은 중간 중간 텔레파시로 대화하듯 중간에 몇 마디를 자르면서 대화를 했었다.

그러니까 밥 먹었어. (육개장 먹었는데 맛이 없었어.) 그랬구나.

이런 식으로 괄호 안을 생략하는 대화 법.

그러니 은비칼은 이 세 명의 관계에서 항상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었고 또 깍두기도 된 것 같았다.

-서로 마음을 읽는 것일 것이다. 아님 서로 생각으로 소통을 하는 것이던가..-

이들에게 매의 눈을 가진 초능력도 있었지만 이렇게 텔레파시로 소통하는 능력도 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한 은비칼은 놀라기만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마도 오랜 시간 밤을 새우며 부부처럼 일해 얻은 능력일지도..-

어쨌거나 지금 은비칼은 이들에게 샘도 났다.

항상 동 떨어진 기분에 외로운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속이 살짝 비틀린 은비칼이 빈정거렸다.

“나채국 씨는 혹시 사람의 생각을 읽을 줄도 아는 겁니까?”

뜬금없는 말이라는 듯 나채국은 어이없어했다.

“아니요? 무슨 제가 귀신도 아니고 사람의 생각을 읽어요? 실장님. 돌았어요?”

“아니요. 돌지 않았습니다. 나채국 씨. 그런데 어떻게 오강심 씨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대화를 하는 것이죠?”

“뭘요?”

“오강심 씨가 미래의 임원 자리를 내놓는 이유를, 단지 과학자들과 일하기가 싫기 때문이라는 그 말만 가지고 오강심 씨의 마음을 이해 하셨습니다.”

“네. 그런데요? 그게 왜요?”

은비칼은 지금 당황하기만 했다.

순간 자신만 이상한 게 아닐까 착각도 했다.

그러니까 오강심과 나채국의 대화가 정상이고 이 대화를 못 알아들은 은비칼이 비정상이다.

이런 생각이 든 은비칼은 지금 정말 스스로 바보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도 하고 있는 중..

사람들 틈에 섞여 사는 반려동물이 이런 느낌일까?

마치 인간의 언어를 이해 못하는 다른 세계의 사람 같은 느낌에 은비칼이 주눅이 들어 나채국을 바라보자

그는 왜 한숨부터 쉬는 것일까?

더욱더 알 수 없음에 은비칼은 더욱더 의기소침해질 따름이다.

그런 그에게 나채국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당연하니까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은비칼이 당황하기만 할 때 오강심이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편 은비칼은 또 혼자 못 알아들은 것 같아 속이 상한 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당연하다는 거죠? 나채국 씨?”

나채국이 순간 두 팔로 팔짱을 꼈다.

그가 언제나 잘난 체를 하거나 아는 것을 설명할 때 나오는 자세.

“아. 그건 과학자들이 너무 터무니없는 걸 시키니까 그런 겁니다.”

도무지 모르겠다.

과학자들이 터무니 없는 것과 오강심이 알앤디 센터로 가기 싫다는 것에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은비칼.

그저 소처럼 큰 눈을 끔벅 거리기만 하자 나채국이 그를 향해 살짝 비웃음을 날리고는 계속 잘난 체를 했다.

“과학자들은 이론상으론 가능하다면서 공학자나 기술자들에게 무조건 만들어 내라고 하니까요. 그리고 왜 못하냐면서 무시하기까지 해요. 즉, 몽상가적 천재들이라 같이 일하기가 좀 짜증 나죠. 그래서 자존심 강한 강심이는 과학자들이랑 일하기가 싫다는 거였어요.”

오강심이 나채국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천천히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는 알앤디 센터로 가라는 말을 말라는 듯 은비칼을 향해 말을 뱉었다.

“백 퍼센트 동의합니다. 그래서 하기 싫었던 겁니다.”

은비칼은 이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요? 과학자들이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군요. SF영화에서 제일 먼저 희생되는 게 과학자들 아닌가요? 그런 걸 보면 희생자의 이미지가 더 강한데 나채국 씨의 말을 들어 보니 뭔가 나르시시스트를 보는 거 같군요.”

나채국이 은비칼 말의 본의는 무시하고 한 단어에 호기심을 보이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실장님 말대로 나르시시스트가 맞을지도 몰라요. 악성 나르시시스트들은 이 세상에 같이 공존하면 안 되요. 아, 그래서 그런 거군요. 예를 들자면 영화에서는 과학자들이 제일 먼저 살해돼요. 기껏 중요한 역을 맡아 봤자 다 악당이거나 미치광이죠. 아님 주인공을 맡아도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조현병 환자처럼 묘사되잖아요?헐크처럼 말이에요. 이런, 영화에서 그런 이미지로 묘사되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어요.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도 과학자들의 진짜 본모습을 알고 있던 게 아닐까요?”

나채국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강심이 갑자기 몸서리를 쳤다.

“그렇게 묘사되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정말 미치광이가 맞을지도 몰라요.”

“그래. 그러니까 영화에서 그렇게 나오는 거겠지? 영화에서 나오는 건 대부분 이루어졌어. 무선 통신 단말기는 이미 세상을 지배했지. 조만간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나올 거야. 미래의 예언서 같은 영화에서 과학자들을 그렇게 표현한다는 건 정말 강심이 네 말대로 언젠가는 미치광이가 된다는 소리잖아?”

나채국과 오강심이 광분한 듯 침을 튀기며 말했지만 은비칼은 더 이상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줄 수 없었다.

모두 억측이고 편견이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