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드러난 오운족의 꿍꿍이

박토의 물음에 아수하와 아이신은 정말 그렇다는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에게 아주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박토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진짜로 너희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걸 말해 봐. 지금.”

박토의 변화에 신이 난 아이신이 촐싹거리며 답을 하기 시작했다.

“배달석과 바탈은 모두 같은 장소에 있어. 넌 바탈을 구해야 하니까 그때 우리가 배달석을 회수하게 해 줘. 그게 다야.”

아이신의 말에 박토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걸려들었다. 이대로 가면 오운족이 가문의 비리도 다 말해버릴 것 같군. 역시 바룬족 보다 머린 나쁜 오운족 놈들. 그러니 그 긴 시간 동안 항상 이인자였지. 그럼 더 파헤쳐 주마.-

그들의 본심을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던 박토가 다시 그들에게 자상하게 물었다.

“왜? 왜 직접 회수하려고 하는 거지? 내가 회수한 다음 너희들에게 전해주면 되잖아.”

박토의 물음에 이번엔 아수하가 신이 난 듯 재잘거렸다.

“이번에 떨어진 배달석 그거.. 마지막 배달석이잖아?”

박토는 아수하의 말에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더욱더 신이 난 아수하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마지막 배달석에 엄청난 무기가 들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그래.”

“그 무기만 있다면 그리고 그 무기를 바탈들에게 전해준다면 네가 원하는 파이온을 끝장내는 일을 할 수 있고 또 우리는 오운족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아수하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 박토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이신이 흥분한 듯 말을 이었다.

“우리가 진정한 파눔의 예언을 지키는 수호자들이 되는 거라고. 바룬과 오운의 후손들이 말이야.”

아이신의 말이 끝나자 다시 아수하가 들뜬 듯 그의 말에 덧대었다.

“게다가 그 배달석에서 무기를 꺼내는 일도 우리가 하고 싶어. 그 오랜 시간 동안 지켜온 사명을 우리 손으로 이루고 싶다고. 정말 대단한 일이지 않을까? 우리가 배달석을 회수하게 해 줘. 박토. 그게 네가 우리를 용서라는 길이야. 우리가 진정한 예언을 지키는 자들이 되는 거니까.”

오운족은 정말 서로 흥분 해 앞 다퉈 그들의 본심을 얘기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박토는 머릿속으로 그들의 말을 간략하게 요약했다.

-배달석을 지들 손으로 찾고 또 지들 손으로 열겠다라.. 그래서 이렇게 이 집에 삐댄 것이고 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거고만.. 이런 씨.... 역시 오운족 놈들은 믿을 게 못 된다!-

생각을 정리한 박토가 화가 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한 손을 들어 문을 가리켰다.

아이신과 아수하는 갑자기 그가 그러는 데 무척 당황했다.

그들은 물론 박토가 그러는 것에 당장 나가라는 뜻으로 알아 들었다.

그들의 예상에 맞게 박토가 소리쳤다.

“나가!”

이 순간 오운족은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

모두 박토의 유도 심문에 걸려 그들의 마음을 들켰다는 것을..

처음부터 박토는 오운족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실에 마음이 상한 아수하가 투덜댔다.

“치사해. 박토.”

박토가 대꾸했다.

“아니. 20년 전 너희들의 방법을 그대로 쓴 거야. 너희들이 나에게 이렇게 했었거든. 기억나지? 아수하.”

아수하는 기분이 상했다는 듯 입을 삐죽거렸고 아이신은 화가 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박토가 속으로 웃었다.

-이 정도로 자존심이 상하면 집으로 돌아가겠지? 음하하하하하.-

정말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보인 아이신이 부들부들 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에게 박토가 한마디 더 했다.

“어서 나가. 당장.”

아이신은 진짜로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 박토를 원망의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성큼거리며 걸어와 박토 앞에 다가와 섰다.

순간 본능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한 박토.

-네가 원한다면 상대해 주지. 아이신!-

이렇게 생각하고 있던 박토 앞에 선 아이신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것에 살짝 당황한 박토.

“뭐 하는 짓이지?”

“진심이니까.”

-뭐? 진심? 자존심이 강한 아이신이 무릎을 꿇다니..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박토는 그가 정말 진심 같다는 착각마저도 들었다.

-어렸을 적 아이신은 제가 잘못했어도 절대 인정하지 않고 항상 핑계를 대며 합리화를 했던 놈이었다. 그리고 20년 만에 마주친 이 시점에도 이들은 그 태도를 일관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릎을 꿇는다는 건 진실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뜻이지 않을까? 하나 오운족 놈들은 믿을 놈들이 못 된다.-

박토가 물었다.

“만약 너희 할아버지 아수라의 계락이라면?”

“할아버진 모르셔. 전부 우리 멋대로 움직인 거니까.”

아이신이 이렇게 얘기해도 믿을 수 없었던 박토는 무시하듯 냉랭한 표정으로 딴 곳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수하도 그의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당황한 박토가 그도 모르게 소리쳤다.

“너희들 뭐야? 대체 왜 이래?”

아수하가 무언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인 체 입을 열었다.

“우리 오운족은 이십 년 전 파눔의 예언을 지키는 자로서 큰 실수를 했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야. 제발 오랜 세월 바룬족이 오운족에게 쌓인 앙금을 풀 수 있게 도와줘. 우리는 이 모든 걸 바로 잡고 싶어. 그래서 이러는 거야. 부탁이야. 박토.”

그녀의 말이 끝나자 아이신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너희 바룬족도 우리 오운족이 필요해. 바탈에게 무기를 전해줘야 하니까. 아바라인 나는 배달석 디텍터야.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나 혼자 할 수 있지만 만약 바룬족이 도와준다면 그 이전에 사라진 다른 배달석도 다 찾을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러면 모든 배달석을 바탈에게 전해줄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래야 파눔의 마지막 예언을 완벽하게 이룰 수 있는 거라 생각해.”

모두 솔깃한 말이었고 또 모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박토는 마음이 이상했다.

지금 오운족이 말한 대로 협력하면 파눔의 예언은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언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마지막 배달석도 떨어졌다.

즉 예언의 마지막 종착점이 시작된 것이다.

또한 박토가 그토록 증오하는 오랫동안 숨죽여왔던 악의 세력 파이온도 완전히 물리칠 수 있다.

정말 배달석은 바탈에게 꼭 필요한 물건.

그 배달석 속에 든 무기는 바탈들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런 배달석은 모두 오운족의 영역이었다.

그러니 바룬족은 무조건 오운족과 손을 잡는 게 옳다.

지금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배달석 디텍터 아바라인 아이신과 그 아바라의 수호자 아수하도 그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박토의 마음은 잘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이성과 감성이 따로 노는 느낌.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왜 하필 오운족과 힘을 합치게 만든 건지.. 왜 하필 이번에 떨어진 운석이 마지막 배달석인지.. 그냥 평범한 배달석이면 이 꼴을 보지도 않았을뿐더러 정말 죽도록 싫은 오운족과 손 잡아야만 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박토의 마음은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룬족은 20년 전 오운족의 계략으로 파이온에게 모두 멸족을 당했다.

그때 겨우 살아 남은 자가 셋.

그 이후 지금 무단인 박월이 태어났고 지금까지 명맥만 유지한 체 숨어 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이들에게 파눔의 예언은 잊혀졌고 또 파눔과 약속한 신념도 희미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운석이 떨어지고 바탈이 나타남으로 바룬족은 사명을 잇기 위해 다시 움직이게 된 것.

겨우 넷 남은 바룬족에게는 참 버거운 일이다.

게다가 지금은 월은 의식불명, 작은 아버지는 해외 출타 중, 월의 아버지인 사촌 형은 가출을 한 후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다.

지금 그는 바룬족으로서 그냥 혼자였다.

초라하고 볼품없이 몰락한 체 산골에 숨어 사는 예언을 지키는 자 박토.

이것이 그가 처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박토는 이러한 현실에도 오운족의 손을 선뜻 잡을 수 없었다.

분명 이들의 도움이 있다면 사명을 지키는 데 조금은 수월할 것이다.

하나 이상하게도 마음은 열리지 않았다.

이들이 이렇게 진심을 보여도..

한 번 금이 가 버린 우정은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다.

박토는 여전히 오운족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갈등 끝에 박토가 결정을 내렸다.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법.

그걸 위해 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마지막 배달석을 열고 싶나? 아바라와 아바라의 수호자로서?”

아수하와 아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속도로 봐서 절박하기까지 했다.

박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너희들이 오운족으로서 그리고 아바라와 아바라의 수호자로서 예언을 지키는 자들의 사명을 지키고 싶다면..”

말끝을 흐린 박토가 그대로 아이신과 아수하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그 이전까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던 것.

그들을 내려다 본 박토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두 손을 무릎에 얌전히 얹은 체 박토를 올려다보고 있던 아이신과 아수하.

그가 그들을 본 이래로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생일 선물로 원하는 것을 받은 아이의 표정처럼 눈은 반짝였고 입은 웃고 있었으며 코는 벌렁거리고 있었다.

모두 기대에 들떠 행복하다는 뜻.

그들은 그 상태로 박토의 말에 모든 걸 수용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박토는 너무 당황했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그런 좋은 마음을 가진 것에 배앓이 꼴렸다.

-너희들이 행복한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 집안의 철천지원수. 오운족.-

박토는 그들에게서 다시 시선을 거두고 허공을 냉랭하게 쳐다보며 그들에게 원하는 조건을 얘기했다.

“무조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무조건이야. 토 달지 말고 무조건.”

“물론이야.” “알았어. 시키는 대로 무조건 할게. 박토.”

뜸 뜰이지도 않고 바로 나온 아이신과 아수하의 대답.

살짝 당황한 박토는 다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아주 환한 미소를 띠고는 여전히 반짝이는 두 눈으로 박토를 신뢰 가득 쳐다보고 있었다.

박토 그가 오운족이 괴로워할 줄 알고 내뱉은 말이지만 이들은 여전히 행복하다.

그 사실에 마음에 심술보가 생긴 박토가 오운족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너희들 무조건 내가 시키는 대로 한다고 했지?”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