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괴물은 죽어야 함.

“오빠가? 우와. 너무 멋있었겠다. 역시 내 남자. 호호호호호.”

한서리의 말에 은비칼은 못마땅하다는 듯 가자미 눈을 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지금 은비칼의 위험했던 순간을 전혀 공감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제 남자친구 은비사의 무용에 감탄하는 중.

게다가 두 손을 맞잡은 체, 짱구 눈을 하고 은비사의 활약을 상상하는 듯 눈을 치켜 뜨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은비칼은 지금 배앓이 꼴려왔다.

은비칼은 그도 모르게 비꼬기 시작했다.

“비사 형이랑 빨리 결혼해야겠네. 아주 그냥 좋아 죽네. 좋아 죽어.”

“야. 하고 싶어도 너 때문에 못 해. 너 때문에.”

“아니. 그게 왜 나 때문이야?”

형과 서리누나의 결혼 방해자로 지목된 은비칼.

그가 그것에 너무 의아해 물어 본 질문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살짝 표정이 굳은 체 책상 서랍을 열어 약병 하나를 꺼냈다.

그녀가 그 약병을 무언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 은비칼에게 건넸다.

“자. 이거..”

일단 받아 든 은비칼이 약병을 자세히 살폈다. 라벨이 붙어 있고 그곳에 그의 이름인 은비칼이 적혀 있었다.

-먹고 있는 약이 있는데 또 약을 주다니..-

은비칼은 의아해 그녀를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자 눈치를 챈 그녀가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온 김에 이거 받아. 지금 먹고 있는 거는 버리고 이걸로 바꿔. 기존에 먹던 대로 하루에 두 알씩 시간 맞춰 먹고. 한 번이라도 거르면 안 돼. 네가 빨리 나아야 내가 비사 오빠랑 결혼이라는 걸 해 볼 거 아냐?”

“아니, 약을 바꾼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바뀐 거야?”

“그냥 주는 대로 먹어. 독 안 탔으니까.”

순간 은비칼은 무언가 심각하다는 듯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어두워진 얼굴로 서리에게 덜덜 떨며 물었다.

“누나. 혹시.. 나… 심각해진 거야?”

“뭐래? 아니거든. 완전히 낫게 하려고 하는 거야. 희망이 보이니까.”

“진짜로 괜찮은 거지? 아까 B 구역에서 있었을 때 갑자기 심장이 조여와서 놀랐거든.빈도가 더 잦아진 것 같아.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검사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 혹시 누나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혹시 약을 미리 이렇게 준비한 건 아니겠지?”

은비칼의 말이 길어질수록 한서리 또한 표정이 굳어졌다.

은비칼의 말은 그녀가 예상 못한 말이었다.

은비칼의 비밀을 알고 있는 또 다른 사람 한서리.

운석이 떨어지고 바탈이 나타나면서부터 은비칼의 증상이 더 심해졌다.

이 사실에 그녀는 살짝 두려움도 앞섰다.

한편 그녀의 표정을 본 은비칼은 더욱더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런 그를 눈치 챈 한서리가 갑자기 빙긋이 웃으며 은비칼에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약 잘 챙겨 먹으시라고요. 미래의 도련님. 미래의 형수님이 다 낫게 해 줄게요. 금방 나을 거예요.”

그녀의 희망적인 말에 은비칼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다시 약병을 쳐다보았다.

-기존에 먹던 것 보다 용량이 늘어났다. 그렇다면 증상이 악화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원래 하지 않았던 검사를 하고 있다라? 게다가 약이 다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새 약으로 바꾸겠다고? 그렇다면 얼마 못 살 거 같다. 아, 이런 어쩐지 몸이 이상하더라니..-

자신에게 곧 죽음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은비칼은 가슴이 아려왔다.

이제 겨우 26.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가 진짜 원하는 진실한 사랑도 만나 보고 싶었다.

뭐, 평소 그가 꿈꾸던 그런 작은 소망들.

이제는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든 그가 한서리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무일 없었던 듯 또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노트북을 보며 인상을 잔뜩 구긴 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굴어도 그녀가 느끼는 미세한 불안을 은비칼은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은비칼을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풀이 죽은 얼굴로 다시 약병을 바라보았다.

유독 라벨에 적힌 그의 이름이 도드라져 보였다.

-나 정말 죽는 건가? 진짜 죽게 되는 거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답은 알 수가 없었다.

***************************

 

“안 죽어! 개X꺄! 난. 죽지 않아!”

퍽!

악!

은비사의 주먹에 그대로 미캐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는 살아오면서 이렇게 강한 타격감은 처음 느껴봤다.

볼은 얼얼하다 못해 터질 듯 아려왔다.

죽음의 공포도 알 것 같았다.

암흑 속에 잠시 자아를 잃어버린 듯한 공허함이 순간 느껴졌다 사라졌다.

제발 현실이 아니길..

그러나 도망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미캐는 계속 되는 은비사의 폭력에 정신이 붕괴되는 느낌도 들었다.

이유 없는 폭력, 혹은 이유 있는 폭력이라해도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한다는 건 소멸하는 것 같은 느낌 그 자체다.

내가 사라지는 느낌..

또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지옥 같은 느낌.

미캐는 지금 그대로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태어난 게 잘못이라고! 그걸 왜 네게 결정하는 거지!-

미캐가 다시 은비사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은비사의 표정은 벌레를 보는 듯 혐오로 다시 일그러졌다.

그런 그에게 미캐가 악다구니를 쏟아냈다.

“안 죽어! 나는. 네가 날 죽일 수 없어! 나는 끝까지 살아서 널 죽일 거니까! 그래서 안 죽는다고! 난!”

미캐의 말에 화가 난 은비사가 느슨해진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더니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거칠게 그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네가.. 감히 내 동생을 건드려? 괴물 주제에?”

“난 괴물이 아니야. 사람이야.”

“웃기지 마. 내 동생은 너와는 달라! 거지 같은 너희들과는 다르다고!”

말을 마치고 난 후 은비사는 한 쪽 손을 들어 올려 그대로 미캐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악!

미캐의 비명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은비사의 주먹이 날아왔다.

퍽!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미캐는 그대로 나가 떨어졌다.

그녀는 손 발이 묶인 몸.

게다가 마취 주사 시스템으로 인해 능력도 제거 당했다.

즉 피할 수 없는 폭행.

그 현실에 절망과 자아붕괴 그리고 무력감 밖에 느낄 수 없었던 그녀는 그저 지금 이 현실이 꿈이 아니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저항할 수도 또 피할 수도 없다.

그렇게 그녀는 그의 폭행에 눈을 감는 것으로만 대항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연이어 폭행이 올 거라고 예상했던 그녀의 생각과 달리 다시 비사의 주먹은 곧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눈을 살짝 뜨고는 그를 보았다.

은비사는 말없이 박스 더미에 널브러진 미캐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심경이 달라진 걸까?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원망과 분노, 증오를 담은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이 눈빛.

처음 그녀가 여기 이곳에서 마취가 풀렸을 때부터 전혀 달라져 있지 않았다.

그녀가 정신이 들었을 때 비사는 바닥에 주저앉은 체 그녀를 노려 보고 있었다.

무언가 절망에 빠진 듯한 넋이 나가 있던 표정.

그때 미캐는 평소 보던 그의 모습과 다른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단정하고 깔끔한 그의 옷 매무새와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위스키 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다 마신 빈 병이었다.

그 위스키 병 옆으로 벗어 놓은 재킷이 떨어져 있었다.

가지런히 놓은 모양새가 아닌 집어던진 모양새였다.

그때 순간 미캐와 눈이 마주친 은비사는 갑자기 “죽어!”라고 소리를 지른 후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미캐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주먹질부터 해댔다.

미캐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살인적인 폭력에 시달리고 있던 것이었다.

-이제 지칠 때도 된 모양이야. 더 이상 때리지 않는 걸 보니.-

이렇게 생각한 미캐는 잠시 안도를 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만의 착각.

그가 폭력을 멈춘 건 잠시 숨을 고른 것뿐이었다.

이어 다시 시작 된 은비사의 폭행.

퍽!

“악!”

퍽!

“아악!”

무자비하고 잔인하기까지 했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악마 같았다.

이제 겨우 17살 가냘픈 여고생은 이곳에 없다.

그녀는 17살 이미캐가 아닌 그저 괴물일 뿐이었다.

그렇게 죽여도 된다는 괴물처럼 비사는 사정없이 주먹으로 이미캐의 몸을 때렸다.

그로 인해 미캐는 지금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 그만해! 제발.. 그만! 아파!”

더 이상 폭행을 견딜 수 없었던 미캐가 애걸하자 갑자기 은비사는 때리기를 멈추었다.

그러던 그녀가 그녀를 보고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으흐흐흐흐흐. 하하하하하.”

은비사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텅 빈 공간에 반사되는 되울림.

지옥에 사는 악마의 웃음 소리 같았다.

미캐에게는 이게 더 고역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어대던 은비사가 웃음을 멈추고 미캐에게 말을 뱉었다.

“아프다고? 이게 아프다고 하면 안 되지.. 겨우 이 정도로 말이야.”

“대체..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네 존재 자체 만으로도 화가 나기 때문이야. 난 너희들이 나타난 것 만으로 참을 수가 없거든.”

미캐가 버럭 소리를 쳤다.

“그게 왜? 미친 새x야! 내가 나타난 게 왜?”

“너희는 미래의 재앙의 씨앗이 될 거니까. 너는 바로 파괴와 재앙이 되는 거니까.”

“미친 X끼. 네가 무당이라도 되는 거야? 내가 왜 재앙이 되는 건데?”

“몰라서 물어? 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텐데?”

“겨우 칼에 베이지 않는 능력을 가졌다고 내게 이러는 거야?”

순간 눈빛이 변한 은비사.

그가 얕은 미소를 짓고 난 후 나직이 읊조렸다.

“훗. 이미 알고 있었군.”

“그래.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러는 건데? 난 능력으로 사람들을 이용하지도 괴롭히지도 않았어. 미친 X꺄! 그런데 겨우 그 능력을 가졌다고 이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어?”

“아니. 겨우 그 능력이 아니라 네 안에 들어 있는 괴물 때문이야. 지금 너는 사람의 껍데기를 썼을 뿐이야. 그 안은 괴물이라고.”

미캐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녀가 잘못 들은 듯 되물었다.

“괴..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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