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마음. 무너진 몸. 무너진 생각.

박토는 아무렇지 않게 말은 했지만 상당히 떨리는 목소리였다.

박월은 그런 삼촌에게서 그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지금 삼촌은 위험했다.

박토의 손에는 여전히 총이 쥐어져 있었고 절대 놓을 생각도 없는 듯 힘도 들어가 있었다.

월이 손으로 그 총을 슬며시 치우며 입을 열었다.

“오운족에게.. 너무 화내지 마.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해.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말하지 마.”

순간 박토의 눈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부끄러워서도 그랬고 화가 나서도 그랬다.

피해 당사자인 월은 지금 오운족을 용서하고 있는데 박토는 이상하게 절대 용서가 되질 않았다.

더군다나 그의 품에 안긴 월의 힘겨워 하는 숨소리가 그의 마음을 더욱더 자극시켰다. 다시 분노의 마음이 솟구친 박토의 몸에 힘이 들어가자 월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예언을.. 지키는 자들이야. 오운족도 그걸 지키기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모두가 서로 화 낸다면 예언을 지킬 수 없어. 그리고 삼촌 난 괜찮아. 정말..”

박토가 말을 끊고 역정을 냈다.

“말하지 말래도..”

분명 화를 내는 말이었지만 슬픈 목소리였다.

그러자 박월이 손을 들어 벽을 가리키고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저기.. 그림 그린 곳에.. 두 번째 바탈이.. 있어. 빨리 찾아야 해.. 위험하니까.. 그리고 그곳에 오운족이 찾아야 하는 배달석도 있어. 삼촌.. 싸우지 마. 같이 찾아야지..”

말을 마친 박월은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듯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박토는 그를 품에 안고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울던 그가 손에서 총을 내려놨다.

그리고는 월이 그린 벽의 그림을 쳐다보았다.

끔찍한 살해 현장 같은 핏자국이 벽에 묻어 있었다.

월의 피가 묻어 있는 걸 보자 박토의 눈에서는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편 핏자국 밑에 월이 그린 동그라미 그리고 그 동그라미와 겹친 세모를 자세히 보고 있던 아수하가 무언가 깨달은 듯 낮게 중얼거렸다.

“배달석이 같은 장소에 있었던 거네.. 우리가 이렇게 월을 다치게 하지 않아도 됐던 거였어.”

말을 마친 아수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구었다.

오운족의 사명.

배달석을 찾아 지켜라.

그로 인해 불러 온 참극.

어린아이를 다치게 한 죄책감은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녀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배달석을 찾고 싶은 욕심에 한순간 괴물로 변했었던 오운족.

예언을 지키는 자로써 서로 도와야 한다는 박월의 말이 그들을 부끄럽게 했다.

“미안해. 박토. 순간 우리가 괴물이 된 거 같아.”

아이신의 사과에 아수하도 덧대었다.

“정말 미안해. 우리도 왜 이렇게 한 건지 모르겠어. 잠시 미쳤었나 봐.”

그들의 사과에 박토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방바닥을 쳐다보다 그대로 월을 들쳐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수하와 아이신은 얼굴을 붉힌 체 말 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툭 떨구었다.

***

쾅 거칠게 문이 열렸다.

음산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 있는 은비사는 어깨에 기절한 미캐를 들쳐 업고 있었다.

허름한 창고인 이곳은 미캐가 처음 탈출했던 장소로 되돌아 온 것.

은비사는 그 방의 한 쪽 구석에 빈 종이 박스가 널브러져 있는 곳에 미캐를 떨어뜨렸다.

의식이 없는 미캐는 한 여름 엿가락처럼 축 늘어졌다.

그런 그녀를 은비사는 분노의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갑자기 그가 입고 있던 재킷을 거칠게 벗어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화가 났다는 듯 넥타이를 헐겁게 풀어버렸다.

그리고 허리춤에 두 손을 댄 상태로 천정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금 화가 가득 차 풀리지 않는 상태였다.

화풀이를 하고 싶지만 그 대상인 이미캐는 의식 없는 시체와 비슷한 상태였다.

아무리 한숨을 쉬어봐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은비사는 그녀가 시체 같았지만 그 상태에서라도 마치 화를 풀겠다는 듯 그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감히 괴물 주제에 내 동생을 건드려?”

대답 없는 미캐.

아무리 화를 내도 소용 없는 일.

분노로 이글거리던 은비사의 눈가가 갑자기 촉촉이 젖으며 이내 눈물로 가득 찼다.

오늘 그는 사랑하는 동생을 자칫 잘못하면 잃을 뻔 했다.

그가 부모를 잃어버리고 혼자 제 자식처럼 키운 동생이자 유일한 친구였고 또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에게는 은비칼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이었다.

그는 두 번째 상실을 당할 뻔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냉혈한 킬러.

그도 스스로 눈물이 솟구치는 것에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그가 맥이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더 이상 감정을 절제할 수 없었는지 그가 두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던 그가 미캐를 보며 원망하듯 중얼거렸다.

“왜 나타난 거야. 왜.. 하필 이때 나타난 거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었는데 왜 나타나서 모든 걸 망가뜨리려고 하는 거지?”

물어봤지만 역시 대답 없는 미캐였다.

그런 그녀를 원망 어린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던 은비사는 무언가 상당히 슬픈 듯 눈물방울이 계속 떨어졌다.

아이처럼 울던 그가 눈물을 삼키고 또 눈물을 훔치고는 품에서 로켓을 꺼냈다.

뚜껑을 여니 사진이 들어 있었다.

17살 비사의 무등을 타고 있는 해맑은 5살짜리 어린 비칼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은비사의 눈에 슬픔이 가시기 시작했다.

이내 본래의 냉정한 모습으로 돌아온 은비사.

그가 사진 속의 어린 비칼에게 나직이 중얼거렸다.

“너를 위해 나는 악마가 될 거야. 미안해. 비칼. 하지만 나는 이럴 수밖에 없어. 너를 지켜야 하니까.”

은비사는 로켓 뚜껑을 닫고 다시 품에 넣었다.

그리고는 미캐를 노려보는데 그 이전의 그가 보였던 눈빛이 아니었다.

“다시는 태어나지 마. 그리고 너희들이 이 세상에 나왔었다는 사실조차 없애 주겠어. 반드시..”

말을 마친 비사의 눈은 증오와 원망으로 가득 차 버렸다.

***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벽에 기대어 마음속으로 되 뇌이던 김탄.

지쳤는지 그대로 옆으로 털썩 고꾸라졌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정신을 잃은 듯 그의 눈빛은 죽은 자의 것과 비슷했다.

초점 없는 눈.

영혼이 사라진 눈.

낯빛은 창백했고 얼마나 울어댔는지 눈에는 핏발이 어려 있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는 듯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내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었겠지?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말이야.-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몸을 더욱 웅크렸다.

그러자 또다시 울음이 북받쳤다.

-이 빌어먹을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그가 입술을 깨물어 봤지만 소용 없었다.

눈물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차 올랐다.

-싫어. 싫어. 전부 다 싫어. 난 정말 이해가 안 가.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그러면 아프지는 않을 테니까. 정말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럼 모든 게 끝나게 되는 거니까.-

김탄은 힘없이 두 눈을 감았다.

정말 살고 싶지 않다는 가냘픈 몸짓.

감은 눈 사이로도 눈물이 새어 나왔다.

-이 빌어먹을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

운석 연구실.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은비칼.

“저 쪽입니다. 저쪽에 바탈 스톤이 있습니다. 가서 보시지요.”

책임 연구원의 말에 은비칼은 바탈 스톤이 들어 있는 부스로 다가갔다.

신비한 외계의 물체 바탈 스톤.

그것은 공중에서 빛을 내며 떠 있었다.

그 말로만 듣던 바탈 스톤의 모습에 은비칼은 이내 그것에 매료돼 넋을 잃기 시작했다.

순간 그의 가슴에 찌릿한 통증이 일어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또다시 발작한 심장병.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알약을 꺼낸 후 입에 털어 넣었다.

뚜껑을 닫기 위해 약병을 쳐다보자 순간 은비사의 사무실에서 마주친 괴물 A-0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말 끔찍했던 일이었다.

그는 그때 목숨을 잃을 뻔 했었다.

그 생각에 소름이 끼친 은비칼은 생각을 지우기 위해 고개를 털레털레 흔들어봤다.

-어쩌면 형이 옳은 건지도 몰라. 그렇게 끔직하고 잔인한 괴물이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찾아내 처치하는 게 맞는 건지도 몰라. 괴물은 이 세상에 공존할 수 없어.-

은비칼은 약병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바탈 스톤을 바라보았다.

오묘한 색을 내고 있는 바탈 스톤.

외계에서 온 위험한 물건.

바탈스톤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사람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면.. 그 괴물은 반드시 사라지는 게 맞아. 어쩌면 형이 옳은지도.. 그 정도로 절박했으니 그랬을 거야. 하지만 살인은 용서하지 않아. 형.-

은비칼의 눈에 눈물이 맺혀 흘러내렸다.

그의 눈물에 아른거리는 바탈 스톤.

그것이 떨어지고 모든 게 시작 되었다.

이내 그의 눈은 집념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반드시 괴물을 잡겠어. 세상을 위해.. 형을 위해..-

 

------2막이 끝났습니다. 다음엔 새로운 막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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