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운족. 이 이기적이고 못 돼 처먹은 놈들.

박토는 이들의 사과에 아니꼬운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모름지기 사과를 받으면 마음이 풀려야 하는 법이지만 이상하게 박토는 화가 더 솟구쳤다.

그가 손가락으로 현관문을 가리키며 아이신과 아수하에게 소리를 쳤다.

“당장 나가! 너희들한텐 무단인 월이 접신하는 게 괴기스럽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무단인 월한테는 상당히 힘든 일이야. 남의 힘든 일을 보고 그렇게 가볍게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야. 아무리 남이라고 해도 말이지.”

“그런데 박토/”

아수하의 말에 박토가 그녀의 말을 끊고 성질을 냈다.

“왜? 할 말이 없을 텐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인 것 같은데 나는 더 이상 너희들과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당장 곧바로 이 집에서 나가. 당장.”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저기 월을 봐.”

“뭐?”

박토가 되묻자 아수하는 손으로 벽을 가리켰다.

박토가 몸을 돌려 그곳을 쳐다보았다.

거기엔 언제 갔는지 모를 박월이 맨 손으로 무언가를 벽에 그리고 있었다.

-저건 계시다!-

화들짝 놀란 박토가 주위를 둘러보다 월이 풀다 만 학습지 옆에 놓인 연필을 주워 들고는 월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그를 자세히 살폈다.

박월은 여전히 접신 상태로 동공이 사라진 눈이었다.

그 눈으로 계속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박토가 그의 손에 쥐어 준 연필에 의해 그가 전에 손으로 벽에 그리던 그림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반복해서 그리던 박월의 그림은 커다란 직사각형이었다.

그 안에 작은 네모를 열과 행을 맞춰 그리고 난 후, 왼쪽 위 구석으로 연필을 옮기더니 아주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는 그 동그라미에 정삼각형을 겹쳐 그린 후 처음부터 그 행위를 다시 반복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 세모를 겹쳐 그린 후 모든 행위를 멈추었다.

연필 선이 겹쳐 선명해진 그림은 일종의 건물 도면 같았다.

그곳은 두 번째 바탈이 있는 그림이었다.

박토는 또 한 번 월의 능력에 탄복을 했다.

“역시 엄청나다. 월아. 위치를 어떻게 정확히 알 수 있는 건지..”

박월은 박토의 말에 접신 상태로 대꾸를 했다.

“이곳에.. 두 번째.. 바탈이 있어.”

말을 마친 박월은 접신을 끝내려는지 흰자위만 남아있던 눈에 동공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박토는 그 모습에 안도를 했고 그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줄 물을 가지러 가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으아아아아. 으으으으응.”

갑자기 들려온 박월의 비명 같은 신음소리에 깜짝 놀란 박토가 뒤를 돌아보자 박월이 온몸을 발작하듯 떨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그러는 것에 당황한 박토가 그 원인을 자세히 살피니 아이신이 박월의 손에 팔주령을 쥐어 준 상태임을 알아차렸다.

그 사실에 불 같이 화가 난 박토가 소리쳤다.

“미쳤어? 아이신. 그만 두지 못해!”

아이신이 박토의 말을 무시하고 아수하에게 소리쳤다.

“아수하! 막아!”

아이신의 명령에 번개처럼 박토의 앞을 막아 선 아수하.

그녀가 박토에게 미안한 듯 슬쩍 눈치를 보다 웅얼거렸다.

“미안해. 박토.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우리도 배달석을 찾아야 하거든.”

-이 빌어먹을 인간들. 마지막 배달석이란 소리와 바탈의 위치를 정확히 짚은 월의 능력에 지금 미친 것 같다.-

불 같이 화가 난 박토가 아수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탓!

두 손으로 그의 주먹을 가볍게 잡아 낸 아수하.

“어릴 때는 내가 대련에서 너한테 항상 졌었지. 하지만 지금은 다를 거야.”

말을 마친 아수하는 박토의 주먹을 잡은 손을 이용해 공중으로 뛰어 돌아 한 다리를 그의 팔에 건 다음 그를 넘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박토의 팔을 비틀어 꺾은 아수하.

“으으으으으으.”

박토가 고통스러운지 입에서 신음을 쏟아내자 그걸 본 아수하는 씨익 한 번 웃고는 아이신을 향해 소리쳤다.

“박토는 내가 잡고 있을 게! 계속 해! 아이신.”

발목 잡는 인간도, 방해 요소도 없다.

날개를 달은 듯 아이신은 배달석을 찾기 위해 월의 손에 쥐어 준 팔주령을 절대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두 손으로 더욱더 세게 감쌌다.

그러자 박월의 발작은 더 심해졌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내는데..

그것을 본 박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당장 멈추지 못 해! 이거 놔! 아수하!”

“못 놔! 네가 만약 배달석 찾기 위해 월의 능력을 쓰는 걸 허락했다면 우리도 이런 방법을 쓰지 않았을 거야.”

“아무리 월이 무단의 능력을 가졌어도 한 번에 두 가지를 찾는 건 무리라고..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아?”

“정말 미안해. 박토. 우리도 우리의 사명을 지켜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한 거니까. 용서해 줘. 이 번 한 번만.”

박토는 지금 미칠 것만 같았다.

-허락을 하지 않는다고 강압을 쓰다니. 이건 명백한 폭력이다. 빌어먹을 인간들. 애초에 이 집에 들이는 게 아니었다! -

박월의 설득과 여린 마음에 오운족의 거주를 허락한 자신을 탓해 본 들 무슨 소용이랴.

박토는 그저 자신의 실책을 한탄할 뿐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격이고, 물가에 빠진 사람을 구해 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란 격.

역시 작은 아버지가 누누이 말한 ‘오운족 놈들은 믿을 놈들이 아니아’란 말이 박토로서는 격하게 공감되는 이때 갑자기 또다시 월의 비명이 박토의 귀로 들려왔다.

“으아아아아 아!”

아까보다 강도가 더 세진 월의 비명소리.

박토는 애간장이 타다 못해 가슴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월아!”

다급한 마음에 월을 불러보지만 소용없다.

그는 접신 상태이며 지금 과부화 상태였다.

쿵! 쿵! 쿵! 쿵!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불안해진 박토가 고개를 꺾을 수 있을 때까지 꺾은 후 월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박월의 모습

믿기 힘든 모습이었다.

박월이 스스로 벽에 머리를 찧는 모습을 본 박토는 분노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그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아수하의 암바에 걸려 있는 그는 옴짝달싹 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웠던 박토는 계속되는 월의 비명에 미칠 것만 같았다.

가분의 보배 그리고 박토가 젖먹이 때부터 아들처럼 키우고 있는 박월의 고통 소리에 박토의 부성애의 본능이 깨어나 버렸다.

그 본능은 그를 눈에 뵈는 게 없는 인간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독기 오른 박토는 그대로 아수하의 허벅지를 이빨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설마 박토가 이렇게까지 나올까?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당한 아수하는 몸을 비틀 수밖에 없었다.

-나의 아름다운 허벅지를 물다니.-

그녀는 분노한 걸 떠나 지금 정신이 혼미하다.

그녀가 그러는 새 박토는 틈을 타 두 다리를 옆으로 비튼 반동으로 몸을 젖혔다.

그리하여 절대 풀 수 없는 암바에서 풀린 박토.

그대로 발을 들어 올려 아수하의 머리를 내리 찍었다.

하편 위에서 떨어지는 박토의 발에 순간 정신을 번뜩 차린 아수하.

허벅지도 물어 뜯겼는데 얼굴도 죽상이 될 수 없었던 그녀가 본능적으로 번개같이 두 팔로 그의 발을 막은 다음 뒤로 돌아 몸을 피했다.

이제 본격적인 싸움이다.

어렸을 적 항상 대련 상대였던 오운족 아수하와 바룬족 박토.

그들은 20년 만에 다시 만나 그 대련을 다시 하게 되었다.

아수하는 자신 있었다.

-어렸을 땐 항상 졌지만 이제는 아니다!-

자신만만했던 아수하가 그를 향해 내달렸다.

그러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멈춘 아수하.

박토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권총으로 아수하를 조준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다면 이거 시작도 못해보고 끝인데.. 치사하다. 대련에서 총을 사용하다니..-

어쨌거나 죽기 싫었던 아수하는 두 손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죽이지 마세요.

항복할게요.

이런 의미로 그녀가 손을 올리자 회심의 미소를 지은 박토가 아이신에게 소리쳤다.

“아수하를 죽이기 싫으면 아이신 너 월에게서 떨어져! 당장!”

쌍둥이 여동생과 배달석 사이에서 갈등을 하기 시작한 아이신이었다.

그걸 본 아수하는 배신의 감정으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바라(배달석 지킴이)라고 해도 그렇지. 여동생이 죽게 생겼는데 고민하기냐? 지금 눈앞에 배달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정말 실망이야!”

아수하가 아이신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통곡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 울음소리에 그제야 아이신이 모든 걸 내려 놓는다는 듯 월의 손에 잡고 있던 그의 손을 풀었다.

그러자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팔주령.

딸랑거리는 방울소리의 여운이 참으로 길었다.

드디어 발작을 멈춘 박월.

그러나 떨어지는 낙엽처럼 속절없이 바닥으로 쓰러지는데 그 모습을 본 박토는 지금 가슴에 천불이 일어 죽을 지경.

그가 혹시나 모를 사고를 대비해 아수하에게 총을 겨눈 체 쓰러진 박월에게 황급히 다가갔다.

“저리 꺼져!”

그가 꼴도 보기 싫은 아이신에게 한마디 쏘아 붙이고는 곧바로 박월의 상태를 살폈다.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란 박토.

월의 이마는 완전히 짓이겨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내 이것들을 도륙을 내 주마. 바룬족 가문의 보배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걸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서슬퍼런 냉심장이 된 박토는 몸을 홱 돌려 총구를 아이신에게 향한 후 사격자세를 취했다.

누가 봐도 헤드 샷을 날릴 기세.

지금 그는 스스로 살인자가 되어도 좋다는 정도로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이성과 현실 그리고 미래는 지금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그저 오운족 아수하와 아이신은 아무 말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을 뿐이다.

그때 정신을 차린 것인지 박월이 박토를 불렀다.

“삼촌..”

힘없이 부르는 박월의 목소리에 박토는 순간 몸에 힘이 빠졌고 곧바로 사격 자세를 풀어버렸다.

그리고는 쭈그려 앉아 박월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괜찮아? 월아?”

“나는 괜찮아. 삼촌.”

박토의 눈에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는 박토.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게 될까 두려웠던 박토는 박월의 말에 한시름 놓았지만 또다시 그 두려운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에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월을 더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이 자식. 괜찮긴 뭐가 괜찮아.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지. 삼촌도 무단이었던 적이 있어. 그게 얼마나 힘든 지 알아. 그러니까 거짓말 하지 마라.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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