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 두 번째 바탈!

박토는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그는 더 이상 '이 또라이들과 한 자리에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털레털레 흔들더니 손으로 현관문을 가리키며 오운족에게 입을 열었다.

“야. 아이신. 아수하. 지금 당장 오운족이 가진 특기를 써. 그리고 소리 없이 사라져.”

박토의 말에 시무룩해진 오운족이 고개를 떨구자 갑자기 박월이 소리를 쳤다.

“찾았어!”

모두가 그를 돌아보자 동공이 사라진 체 접신 중인 월이 보였다.

아이코, 이런.

지금까지 월이 접신 상태였다는 걸 까맣게 있고 있던 박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렇게 된 것은 다 저 또라이 같은 두 인간 때문이다!-

화가 난 박토가 아이신과 아수하에게 불만스럽게 씨부렁거렸다.

“도움이 안 돼. 저 인간들..”

이 소리를 주워들은 오운족 아이신과 아수하는 더욱더 주눅이 들어 죽을 것만 같다는 듯 안색이 초라해졌다.

방해꾼 같은 그들에게 화풀이를 한 박토는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던 박월에게 부리나케 향했다.

그러자 박월의 입에서 다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찾았어.”

“찾았어? 두 번째 바탈?”

박토의 물음에 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월의 비전에 다시 나타난 두 번째 바탈에 박토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드디어 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그의 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

<비상. 비상. 뮤턴트 A-0 탈출했다. 5분 뒤 전 구역 게이트 폐쇄 예정. 각 기관 연구원들 신속히 대피하기 바란다.>

은비칼의 귀로 또다시 경보 음성이 들려왔다.

갑자기 힘없이 축 져진 그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안 그래도 형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뮤턴트까지 탈출을 했기에 더욱더 초조해진 은비칼은 도저히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분명 은비사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은비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쿠쿵!

순간 걸음을 우뚝 멈추어 선 은비칼.

느닷없이 심장이 내려앉고 조이는 느낌에 손으로 가슴부터 움켜쥐었다.

평소 약하게 이 증상을 앓았기에 약을 먹고 증상을 완화시켜 왔었지만,

지금 이건 평상시 느끼는 그런 증상을 넘어선 강도에 조금 더 이상한 느낌이었다.

-갑자기 왜 이러지? 약을 안 먹어서 그런가?-

이렇게 결론을 내린 은비칼은 그가 항시 상비하고 있는 약병을 꺼내 한 알을 입에 털어 넣고 꿀꺽 삼켰다.

“쾅!”

거칠게 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은비칼은 반가운 마음에 문을 쳐다보았다.

형 은비사인 줄 알고 그랬던 그가 그대로 얼어붙은 체 손에 들린 약병을 떨어뜨렸다.

촤라락 약병 속의 알약들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그가 이렇게 놀란 데에는 문을 열고 서 있는 사람이 형이 아닌 다른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

앳돼 보이는 아이 하나가 서 있었고 얼굴은 괴물처럼 흉측하게 뭉개져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피와 오물로 더러웠고 증오로 가득한 눈을 봐선 경보에서 말한 뮤턴트 A-0임을 은비칼은 즉시 알아챘다.

지구를 멸망시킬 괴물.

그와 마주하게 된 지금 은비칼은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고 온몸에서 피가 빠지는 듯 했다.

이러다가 저 세상으로 갈 것만 같았던 은비칼은 살고자 본능적으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는데..

그의 다리가 너무 심히 후들거려 위태로워 보였다.

한편 미캐는 지금 정상이 아니다.

눈은 풀려 있었고 침과 콧물까지 질질 흘리고 있었다.

이게 전부 그녀가 탈출하다 경비에게 찔린 주사 때문이다.

이 약은 정말 어떤 성분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약간으로도 미캐에겐 그야말로 쥐약 그 이상이었다.

겨우 몇 밀리의 약효가 지금 그녀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

누가 봐도 미캐의 모습은 괴물의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모습으로 눈에는 광기와 살기가 어린 체 모든 걸 다 부숴버리겠다는 듯 두 주먹을 움켜쥐고 은비칼을 노려보고 있으니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은비칼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 괴물이라 한 게 이런 모습 때문이었구나. 김탄만 보고 속을 뻔했어.-

그 괴물이 몸을 한 번 휘청이자 은비칼은 심장이 한 번 더 덜컹 내려앉았다.

숨은 가빠지고 심장 박동도 빨라졌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죽음에 대한 공포.

자신의 죽음이 자동차 사고나 혹은 지금 가지고 있는 지병이 아닌 괴물에게 찢겨 죽는다는 생각에 은비칼은 무척 색다른 죽음이라고도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괴물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은비칼을 향해 오고 있는 것.

은비칼은 자동적으로 그녀의 속도에 맞춰 뒤로 걸음을 옮겼다.

-이 놈의 다리는 왜 이렇게 후들거리는지.-

발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자 은비칼이 자신의 다리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는데 그건 그가 뇌로 인지하던 후들거림의 강도와 달랐다.

그 이상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를 본 은비칼은 다리를 그렇게 떨고 있는 모습에, 다리가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무튼 지금 그는 눈 앞의 괴물을 피해야 한다.

그가 손으로 두 허벅지를 부여 잡고 혼신의 힘을 다해 뒤로 걸음을 옮겼다.

손의 도움을 받아서 그런지 아까 전보단 조금 수월했다.

“다 죽여 버릴 거야! X새끼들아!”

괴물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깜짝 놀란 은비칼은 그대로 허우적거리며 뒤로 넘어졌다.

“다 죽여 버릴 거라고!”

괴물의 목소리는 몽골 전통 음악인 허미, 즉 동시에 두 가지 목소리가 나오는 소리와 비슷했다.

고성의 찢어지는 쇳소리와 갈라진 허스키한 낮은 목소리를 들은 은비칼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런데도 생존 본능인지 그도 모르게 누운 상태로 기고 있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른 괴물은 갑자기 달리기 자세를 취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은비칼의 눈에는 점프하는 거미처럼 자신을 향해 곧 덮칠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더욱더 무서웠던 은비칼은 사력을 다해 누운 체로 뒤로 빠르게 기었다.

달리기 자세를 취했던 괴물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다행히 점프를 해 오려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은비칼은 안심을 했고 또 시간이 지나자 살짝 웃기기까지도 했다.

달려오는 괴물의 몸동작은 상당히 굼떴고 속도도 느렸다.

팔은 무척 빠르게 허우적거리는 것 같은데 다리는 휘청휘청 느릿느릿했다.

마치 상반신과 하반신이 따로 노는 느낌.

그야말로 세기말적 좀비의 흐느적거림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 모습에 살짝 웃겼던 은비칼은 자신이 조금 더 빨리 움직이면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더욱더 몸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어쩌면 신이 돕는지도 모른다. 괴물이 나한테 오기 전, 뒤로 갔다 옆 벽으로 붙은 후 출입 문을 향해 달리면 살 수 있다!-

나름 계획을 세운 은비칼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나름 달린다고 달려오던 괴물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점프 자세를 취했다.

-이런, 괴물이 계획을 바꾼 것 같다. 큰일이다.-

괴물이 도약을 하려는 순간 은비칼은 모든 게 다 끝났다는 생각에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혼신을 다해 소리쳤다.

“살려 주세요!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아무리 목청이 떨어져라 소리쳐도 소용 없다.

이 방엔 나와 괴물 뿐.

이 사실에 눈물까지 나올 것만 같았던 은비칼은 순간 강한 타격감과 함께 눈 속의 별 그리고 가슴에 묵직한 무게와 충격이 느껴졌다.

괴물이 점프하는 거미처럼 자신의 가슴을 덮친 것.

공포에 질려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눈을 뜰 수 밖에 없는 상황.

은비칼이 슬며시 눈을 뜨자 그가 생각한대로 괴물이 자신의 가슴에 올라타고 있었다.

떨어져서 보던 괴물과 눈 앞의 괴물은 그 차이가 너무 컸다.

가까이서 보는 괴물의 얼굴은 끔찍함 그 자체.

은비칼은 괴물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정신을 잃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대로 죽는다면 기절한 상태에서 죽겠다.

뭐, 이런 것인지도..

그가 거의 의식을 잃을 때쯤 인간의 감각기관 중 가장 늦게 닫힌다는 청각을 통해 다시 괴물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워! 으갸갸! 죽일 거야! 전부 다!”

허스키하게 갈라지는 허미 같은 괴물의 목소리는 그가 정신을 잃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반사 작용처럼 눈을 뜨게 된 은비칼.

정말 보고 싶진 않지만 괴물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괴물의 살갗은 다 떨어져 너덜거렸고 그 얼굴에 커다랗게 박힌 붉게 핏발 선 눈에는 살기가 그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척 화가 났다는 듯 뒤집어 깐 윗입술.

그 위로 콧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침까지 흐르고 있는 상태.

그 모습을 본 은비칼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 밀가루 반죽보다 하얘질 때 갑자기 괴물이 두 주먹을 쥐고 위로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은비칼은 숨이 멎었다.

-저 주먹에 맞으면 즉사다. 나는 이제 황천행이다. 끝이야. 이제. 지구 종말은 막을 수 없어어어어어~어.-

이렇게 죽음을 예견한 은비칼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찢겨 죽을 줄 알았는데 맞아 죽는구나. 으하~.-

턱!

소리가 들리자 은비칼은 순간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말 그대로 본능적인 움직임.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이상함에 그가 다시 눈을 뜨자 그의 귀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렸다.

“꽥!”

-이게 무슨 일인가?-

은비칼이 고개를 돌려 괴물을 쳐다보았다.

괴물은 두 손으로 자기 목을 조르고 있었다.

-스스로 죽겠다는 건가? 대체 왜?-

절망 그러는 것인지 괴물의 얼굴은 새파래져 있었고 두 눈은 숨을 참기 힘들다는 듯 툭 튀어나와 불거져 있었다.

은비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죽이려 했던 괴물이 왜 저러는 지에 대해.

-그렇다면 왜 괴물은 두 주먹을 높이 들어올렸을까? 그렇게 들어올리고 난 후 자기 목을 조르고 있다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영문에 그가 괴물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모든 원인이 밝혀졌다.

괴물의 목에 얇은 와이어 끈이 걸려 있었다.

그 순간 이 방에 괴물과 자신 말고 또 다른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곧이어 그 존재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비칼 괜찮아!”

형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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