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하는 이미캐, 실망하는 은비칼.

완벽한 시스템을 또 오류라고 폄하하다니..

이건 모욕이다.

나를 희롱하는 것이다.

화가 난 나채국이 오강심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라니까! 진짜! 저건 진짜 괴물 신호가 맞다고! 내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라고!”

갑작스러운 나채국의 불 같은 화에 오강심은 순간 당황해 딸꾹질을 시작했다.

당황한 그녀가 나채국을 빤히 쳐다보자 나채국은 절대 분노가 가시지 않는다는 듯 벌개진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다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저 신호는 괴물이 맞아. 강심아. 그러니까 오류라고 하지 마.”

***

쾅!

거칠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란 은비사가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그는 환하게 웃음부터 나왔다.

그의 사랑하는 동생 은비칼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락도 없이 왠일이야? 더군다나 낮에 움직이다니. 무슨 일이야?”

반가운 마음에 은비사는 은비칼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그의 앞에 은비칼이 서자 그때까지 음침하게 서 있던 은비칼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형.”

“응?”

“왜 그랬어?”

은비칼의 뜬금없는 말.

은비사는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더울 때는 낮에 절대 움직이지 않는 녀석이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여기에 왔다. 그렇다면 대단히 중요한 일이거나 심각한 일이다.-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이 사실만으로도 은비사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뭘 말하는 거야? 대체..”

은비사의 말이 끝나자 은비칼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은비사의 예상대로 은비칼은 그냥 그를 방문한 게 아니었다.

심각한 상황을 알아 챈 은비사는 그를 먼저 진정시키려 손으로 은비칼의 어깨를 잡았다.

순간 은비칼이 무섭게 은비사를 밀치는데, 엉겁결에 당한 은비사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황당한 은비사는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예의 없는 은비칼의 태도에 불같이 화가 났다.

“왜 이래? 비칼. 이게 무슨 짓이야! 대체!”

그러나 은비칼은 형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소리부터 버럭 질렀다.

“무슨 짓?”

그리고는 은비사에게 다가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말해! 지금 당장! 왜 그랬는지 또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은비사는 이런 은비칼의 분노를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도대체 뭐가 그를 이토록 화를 내게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은비사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갑자기 왜 이래? 비칼. 전후 사정 다 빼먹고 내가 뭘 했다는 소리야?”

“사람.. 들을 죽였잖아.”

“뭐?”

“정말로 그걸 형이 한 거냐고!”

순간 은비사는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을 죽였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가 킬러로 살아 왔던 건, 그러니까 왕종철의 어두운 곳을 해결해 왔던 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그런데 은비칼이 찾아와 대뜸 사람을 죽였다고 화를 낸다는 건 그 비밀을 안다는 뜻이다.

은비사는 은비칼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일단 그는 동생의 표정부터 살폈다.

맑고 선한 눈이 분노로 이글거려 매서웠다.

정말 증오의 눈빛이었고 혐오도 들어 있었다.

그런 은비칼의 모습에 은비사는 상당히 어색해 몸 둘 바를 몰랐다.

-대체 내가 사람을 죽이고 다닌 걸 어떻게 알아냈을까? 일단 그것부터 파악해야 한다.-

은비사가 은비칼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침착하게 말해. 사람들을 죽인 걸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지? 대체 내가 누굴 죽였다는 거야?”

“하~”

은비사의 질문에 은비칼은 짧은 한숨부터 쏟아냈다.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 힘들어하던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절망에 빠진 듯 읊조렸다.

“말도 안 돼. 정말. 그걸 왜 나한테 묻지? 형이 더 잘 알고 있는 거 아냐?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대체 왜 그래? 비칼.”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은 내뱉었지만 은비사의 심장은 사정없이 쿵쾅거렸다.

은비칼이 저 정도로 반응하는 걸로 봐선 비밀을 알아버린 것 같았기에 두렵기까지 한 은비사.

아직은 은비칼이 어떤 살인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저 그의 입에서 어떤 살인인지 나오길 기다릴 뿐.

은비칼은 한참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화가 아주 많이 났다는 듯 쌕쌕거리며 숨을 쉬었고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마치 인정할 수 없는 걸 인정해야만 하는 증오 같은 표현이었다.

그러던 그가 얼굴에서 손을 떼고 다시 은비사를 쳐다보며 애절하게 물었다.

“사실이 아니지? 형이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지?”

“일단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 진정부터 하자.”

말을 마친 은비사가 은비칼을 다독이기 위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은비칼은 화들짝 놀라며 거칠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소리쳤다.

“더러운 손 치워!”

-무언가 확실히 알게 되었어. 그러니 이렇게 하는거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회장님의 검은 그림자 역할을 하지 않으면 널 살릴 수 없었으니까 말이야. 비칼. 모두 너를 지키기 위해 그랬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다.-

마음으로 은비칼에게 말해 보는 은비사였지만 허무한 내면의 메아리일 뿐.

은비사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또 은비칼이 자신을 경멸하는 시선으로 보고 있는 모습에 이 순간만큼은 은비사에게 끔찍한 고역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의 증오와 경멸을 받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건 없다.

은비사의 마음은 처절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음의 동요, 어떤 부서짐 같은 건 아주 오래 전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말고는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 마음을 다시 느끼고 있던 은비사는 이상하게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입 안의 혀를 지그시 깨물고는 참아봤다.

다행히 눈물이 나오는 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한 없이, 끝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더 이상 예전의 관계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내가 살인자인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마음이 어수선해진 은비사가 얕은 한숨을 내쉬자 은비칼이 서슬퍼런 표정으로 그에게 다시 물었다.

“신우 프로텍 화재가 왜 일어난 거야? 형? 어째서 그렇게 잔인한 일을 벌인 거지?”

은비사는 은비칼의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은비칼이 그가 킬러로 어두운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건 모른다는 사실에 내심 조금은 안심을 했다.

-그런데 비칼이 신우 프로텍 화재를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이 모든 건 극비였다. 그가 알아 낼 루트는 전혀 없었다. 이상하다.-

이 사실에 당황한 은비사는 마음을 감추고 표정을 지운 체 은비칼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야? 김탄이 저지른 화재인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어처구니가 없네.”

그런데 이상하게 은비사의 말에 은비칼의 표정이 서릿발처럼 굳어졌다.

그 모습에 은비사는 은비칼이 무언가 더 알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런 은비사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한 체 은비칼만 쳐다보자 은비칼이 조용히 입을 뗐다.

“자이언트 호넷.”

화들짝 놀란 은비사.

지금 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없었다.

-왜 비칼이 자이언트 호넷에 대한 말을 꺼낸 것일까?-

신우 프로텍 화재와의 연관성에 대해 호넷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면 적어도 그가, 신우 프로텍 화재는 자이언트 호넷이 발사한 미사일이 원인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우연히 짐작으로 떠 본 것일까? 아님 진짜 목격을 했다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상공에 은폐를 한 자이언트 호넷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단 말이지? 모든 건 극비였고 인간의 육안으로 도저히 식별할 수 없는 위치에서 미사일을 날렸었다. 그런데 비칼은 그것을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은비사의 머리는 이 생각들로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스스로의 물음에 답은 전혀 구해지지 않았다.

그저 당혹감에 말을 못하고 있는 그에게 은비칼이 또다시 채근했다.

“빨리 말해! 왜 신우 프로텍 상공에 자이언트 호넷이 떠 있었는지..”

“비칼. 그건..”

“개 자식.”

은비칼의 입에서 욕이 나오자 은비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그는 멘탈이 붕괴될 것만 같았다.

언제나 자신을 존경한다던 동생 은비칼은 이제 그를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은비사는 절망에도 휩싸였다.

타계할 대책도 만회할 방법도 없었다.

신우 프로텍 화재는 모두 은비사의 작업.

이 모든 사실을 동생 은비칼이 알아버렸다.

은비사는 그저 떨리는 눈동자로 은비칼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동생 은비칼의 표정은 실망과 증오 그리고 배신의 감정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살아오면서 처음 동생에게 욕을 들은 은비사는 더 이상 이전의 관계처럼 유지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아버렸다.

은비칼에게 은비사는 이제 더 이상 존경하는 형이 아닌 사람을 죽인 살인자인 형일 뿐이다.

기대를 져버린 실망.

그 실망으로 불러 온 증오와 분노.

그것 또한 상처이기에 은비칼의 마음은 산산이 찢긴 듯 얼굴 또한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은비사는 말 없이 바라볼 뿐..

또한 그저 지금 이 사실이 현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

쾅!

미캐가 거칠게 문을 열자 눈 앞으로 기다란 복도가 나타났다.

다행히 사람들은 없었다.

출구를 찾기 위해 복도를 살폈다.

일단 양 쪽 끝으로 출입문이 보였다.

오른쪽?

왼쪽?

어느 쪽으로 가나 험난한 길이다.

미캐는 본능에 이끌리는 대로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마음은 급하지만 생각대로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이 놈의 몸살이 말썽이다.

창고에 갇혀 있을 때보다 몸이 더 뜨거워졌다.

게다가 거의 달리 듯 걷고 있으니 그녀의 전신은 땀으로 범벅 중.

머릿속에서도 흘러내린 땀들이 그녀의 목덜미를 흥건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신경 쓰인 미캐는 손으로 땀을 훔쳐 바닥으로 툭 털어냈다.

그렇게 출입문 앞에 다다른 미캐는 순간 문에 손잡이가 없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미소부터 지었다.

주머니에서 카드 키를 꺼냈다.

아까 전 창고에서 두 경비를 처치하고 탈취한 카드 키였다.

그녀가 그 카드 키를 리더기에 가져다 대자 짧은 부저가 울리고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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