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설마 성차별이 아닐까?

경비 둘이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재빠르게 주변을 살핀 경비들이 의식을 잃은 체 의자에 앉아 있는 미캐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언가 미심쩍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1203은 어디 갔나? 호출 명령을 내려놓고 사라져 버렸네.”

경비 2의 말에 경비 1이 대답했다.

“그냥 저대로 이동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마취가 된 상태이니 1203이 사라졌나 보죠. 어디 화장실이라도 급하게 갔나?”

-뭐 어차피 없어도 상관 없다. 마취가 된 뮤턴트를 옮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경비 2는 경비 1의 말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미캐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 앞에 다다른 경비 1이 미캐의 뒤쪽으로 책상 하나가 세워져 있는 걸 보고 의아해하며 중얼거렸다.

“책상을 왜 저렇게 놨을까?”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뮤턴트를 이동시킨다.”

“누구 맘대로.”

갑자기 들린 여자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경비 둘은 그대로 몸이 얼어 붙었다.

둘은 동시에 미캐를 살펴보았다.

혹시 그녀가 말을 한 거라 생각해서 그런 것.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체 기절해 있었다.

이 이상한 현상에 경비 둘은 서로 얼굴을 마주치며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대체 그 목소리는 누가 낸 것일까?-

그렇게 의아해하다 순간 경비 1의 눈에 미캐의 몸에서 분리 돼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약물 투입기가 눈에 들어왔다.

“저길 보십시오!”

경비 1이 깜짝 놀라 소리치자 경비 2가 그가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약물 투입기를 본 경비 2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제야 경비 1203이 사라진 이유를 알아버린 경비 둘.

그대로 동시에 이미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니들 다 뒤졌어. 이 개새X들아.”

당황한 경비 1의 손이 그의 인이어로 향했다.

그가 교신을 시도하려는 순간 미캐가 손에 들고 있던 안경 다리를 그의 사타구니로 푹 찔러 넣으며 소리쳤다.

“니들 다 뒤졌다고! 정신병자 새X들아!”

경비 1이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지자 경비 2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순간 그걸 눈치 챈 미캐가 뒤돌려 차기로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대로 넉 다운 된 경비 2.

바닥에 쓰러져 있던 경비 1은 그것 보고 겁에 질렸지만 다시 교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귀에서 인이어가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보자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안도를 한 그가 인이어를 향해 손을 뻗자 순간 발이 다가와 그의 손을 짓이겼다.

“으아아아아아아!”

경비 1의 신음소리에 미캐의 목소리가 겹쳐 울려 퍼졌다.

“내가 너희들 전 부 다 조져 버릴 거야! 이 악마 새X들아! 니들 다 뒤졌다고!”

***

“팀장님! 팀장님!”

오강심이 황급히 부르는 소리에 나채국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손가락으로 상황판을 보라며 가리켰다.

그가 고개를 빼꼼이 들어 전면에 설치되어 있는 상황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뭘 보라는 거지? 모르겠네..-

그렇게 나채국이 모니터만 보며 말이 없자 오강심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신호가 잡힌다고요.”

“뭐? 다시 신호가 잡힌다고? 어디?”

자발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선 나채국은 다시 상황 모니터들을 살피다 한 모니터에서 빨간 점이 깜박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정말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

그 사실에 나채국은 흥분을 했다.

정말 흥분에 흥분을 더해 주체할 수 없다는 듯 그가 주먹을 쥔 팔을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뵤!”

-왜 저러나? 지나치다. -

나채국의 과장된 호들갑에 오강심은 못 볼 걸 봤다는 듯 인상 쓰며 물었다.

“왜 그러시는 거예요? 팀장님. 단지 신호가 잡혔다고 그렇게 좋아하실 일이 아니잖습니까?”

“어. 맞아.”

“그런데 왜 오두방정을 떠신 거죠?”

오강심의 질문에 나채국은 바로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순간 오강심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지기 싫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채국이 진지하게 입을 여는데

“강심아. 이게 무슨 뜻이냐면 내가 만든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는 게 증명이 된다는 뜻이야. 이거야말로 모든 오해를 종식시킬 일이란 말이지. 바로 시스템에 오류가 있다는 오해.”

화를 내고 있는 나채국의 부드러운 말이었다.

그런 그의 부드러움에 이상하게 오강심 또한 기분이 나빴다.

그녀도 화가 났다는 듯 인상을 확 쓰며 입을 여는데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만 마치 제가 그런 말을 한 것처럼 감정을 쏟아내고 계시군요. 전 팀장님의 감정 배설용이 아닙니다.”

오해로 인해 쓸데 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오강심의 나긋한 말이었다.

순간 나채국은 잘못했다는 걸 인지했지만 지기 싫어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아. 미안. 너를 지칭했던 게 아니었어. 오해하지 말아 줘. 그런데 신호가 잡히는 장소가 어디지?”

“삼성역 부근 1Km 내 입니다만.”

오강심의 말에 나채국의 얼굴은 호기심으로 가득하다는 듯 변하기 시작했다.

작디작은 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지만 티는 나지 않았다.

대신 앙 다문 입 때문에 볼이 더욱더 불룩해졌다.

그 때문인지 동그란 그의 얼굴은 말린 오징어처럼 너부데데해졌다.

그런 얼굴을 본 오강심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스마트 폰 배경 화면에 띄어 논 그녀의 최애인 박망개 군을 보며 눈을 정화시켰다.

그녀가 마음이 편해진 듯 깊은 한숨을 내 쉬자 그녀의 귀로 나채국의 말이 들렸다.

“혹시 김탄이 다시 나타난 게 아닐까?”

어이없는 황당한 질문에 오강심은 나채국을 전혀 쳐다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 질문 때문에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됩니다. 전국에 수배령이 떨어졌는데 나타났을 리가요. 김탄으로서는 숨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요?”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아무튼 빨리 실장님에게 연락해서 오라고 해.”

“실장님은 못 오십니다.”

나채국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왜?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30분 전에 외근 가신다고 문자가 왔었습니다.”

“뭐? 왜 그걸.. 그런데 왜 나한텐 오지 않았지?”

나채국의 질문에 오강심은 그저 모르겠다는 듯 두 손을 들고 어깨를 들썩였다.

둘 다 같은 부하 직원인데 여직원에겐 문자를 보내고 남직원에게는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이건 명백히 성차별이다.

화가 난 나채국은 자신의 스마트 폰을 들고는 화면을 열었다.

문자가 와 있었다.

당황한 그가 문자를 탭하자

<나채국 씨. 저는 잠시 외근을 나가는 겁니다. 제가 없다고 일을 소홀히 하시면 안 됩니다.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커피 사드릴게요. 파이팅!>

이런 자상한 은비칼의 문자였다.

섣부른 오해해 부끄러워진 나채국이 옹알거렸다.

“나한테도 보냈었네. 난 또 오강심 너한테만 보낸 줄 알았거든.”

“편애하신 거라 생각했군요. 팀장님.”

“아니. 그게..”

“실장님이 설마 저만 편애하실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저보다 팀장님을 더 신뢰하는 것 같은데요? 마지막 문장은 저한테 오지 않았던 겁니다. 제게는 '열심히 일하십시오.'라고만 보내셨습니다.”

오강심의 말에 나채국은 다시 스마트 폰 문자를 읽었다.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커피 사드릴게요. 파이팅!>

이 마지막 문장이 계속 눈에 거슬렸다.

그렇게 문자를 한참 쳐다보던 나채국이 책상 한편으로 전화기를 툭 던지더니 퉁명스러운 말투로 오강심에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실장님은 이런 중요한 시점에 어딜 간 거야?”

그게 뭐가 중요하냐는 듯 오강심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자 나채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설계한 시스템이 오류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기회인데.. 대체 어디로 가신 거냐고?”

“오성 R&D 센터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뭐? 너한테는 목적지를 말했다는 거야? 이럴 수가..”

은비칼이 오강심에게만 목적지를 말했다는 사실에 나채국은 상심했다.

표정이 침울해지자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오강심이 무표정하게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문자에 쓰여 있었습니다.”

당황한 나채국.

다시 그의 스마트 폰을 집어 들었다.

오강심에게 보낸 텍스트가 자신에게도 온 건지 확인하려 했던 것.

화면을 켜고 다시 문자를 확인하자 방금 전 확인한 문자 위로 또 하나의 문자가 와 있었다.

<R&D 센터로 잠시 다녀오려고요. 나채국 씨.>

<나채국 씨. 저는 잠시 외근을 나가는 겁니다. 제가 없다고 일을 소홀히 하시면 안 됩니다.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커피 사드릴게요. 파이팅!>

그는 지금 성급한 오해로 인해 무색하다.

모두 은비칼이 자신보다는 오강심을 더 신뢰하고 있다는 오해.

“나한테도 어디로 가는지 보냈었구나. 난 또 너한테만 보낸 줄 알았지.”

나채국이 옹알거리자 오강심이 받아 쳤다.

“또 저만 편애하신다고 생각하셨군요.”

“아니.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드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실장님은 저보다 팀장님을 더 신뢰한다고 생각됩니다만..”

오강심이 눈을 게슴츠레하고 뜨고 쳐다보자 그녀의 시선에 겸연쩍은 나채국이 전화기를 책상 한 구석으로 다시 툭 던졌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식적이면서 가식적인 제스처.

오강심도 그런 그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채국은 그대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시스템 오류가 아니라면 빨리 이 사실을 은 실장에게 말해야 하는데. 그래야 완벽한 시스템을 폄하 받아 다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 텐데..-

그는 지금 빨리 은비칼이 돌아 오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저 신호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다 문득 그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

“잠깐. 오성 R&D도 삼성역 부근이잖아?”

“네. 그렇습니다.”

“설마.. 거기서 김탄과 실장님이 마주치는 일은 없겠지?”

순간 오강심의 표정은 한심함을 넘어선 경멸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표정에 나채국은 질겁했다.

“뭘 그렇게까지 질색할 필욘 없잖아? 그냥 상상해 본 건데..”

“삼성역 부근 신호는 아마도 시스템 오류일 것 같습니다. 김탄이 그곳에 나타날 리가 없으니까요.”

오강심의 확언에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은 나채국 얼굴이 벌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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