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에서 나갈 거야.

“그건 불가한 거야.”

“어차피 나는 죽잖아? 살려달라는 게 아니야. 목이 타서 그래. 목말라 뒤지겠다고.”

미캐의 말에 잠시 머뭇거린 남자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뮤턴트의 능력이 다시 활성화 되려면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이 정도 시간이면 물을 줘도 괜찮을 것 같다.-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다 한쪽 구석 책상 위에 생수 병 여러 개가 있는 걸 발견했다.

“잠깐 기다려.”

말을 마친 남자가 생수 병을 가지러 몸을 돌리자 미캐는 결박 장치에 묶인 손목을 좌우로 세게 돌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팔 안쪽에 박아뒀던 안경테 다리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그러는 동안 생수 가지러 가는 남자가 뒤 돌아볼까 등에 식은땀도 흘렀다.

상처를 내자 안경테 다리 끝이 드러났다.

결박장치 안쪽으로 팔을 밀착시키고는 마찰을 이용해 안경테 다리를 꺼내기 시작했다.

생수 병을 가지러 간 남자는 책상 위에 놓인 생수 병 중 새 것을 골랐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미캐에게로 향했다.

그런 그가 초조한 듯 시계를 봤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의 걸음은 빨라졌다.

그 성큼 거리는 걸음으로 미캐에게 재빠르게 다가온 남자는 병의 뚜껑을 딴 후 미캐의 입에 댔다.

“빨리 마셔. 시간이 되면 못 마시니까 마실 수 있을 때 많이 마셔두는 게 좋을 거야.”

“훗. 고마워. 다른 새X랑은 다르네.”

갑자기 들어 온 칭찬에 남자는 멋쩍었는지 시선을 돌리고는 헛기침을 했다.

미캐는 그가 입에 대준 생수를 마셨다.

“됐어. 다 마셨어.”

남자는 생수 병을 바닥에 내려 놓고 다시 미캐의 약물 장치를 조절하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그때 갑자기 미캐가

“난 안 죽어.”

확신에 찬 발언을 내뱉자 남자는 순간 멈칫하곤 그녀를 돌아봤다.

그런 그에게 생글생글 웃고 있는 이미캐의 얼굴을 본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뱉었다.

“넌 죽어. 네가 죽고 싶지 않다고 해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니까 말이야. 넌 괴물이잖아.”

“아니, 난 절대 안 죽어. 왜냐고? 난 죽으면 안 되는 사.람. 이거든. 괴물이 아니라.”

남자가 우습다는 듯 히죽 웃었다.

그러던 남자가 경동맥 주사에 연결된 장치의 센서 버튼을 눌렀다.

이제 곧 그녀는 기절을 하게 된다.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뮤턴트 A-0. 시냅스 스케일링 다운 시작 3. 2. 1.>

“조금 있으면 잠이 들 거야. 아무튼 잘 가.”

“그런데 어쩌지?”

“뭘?”

“난 무조건 살아야 하거든. 개새X야.”

남자는 미캐의 말에 또다시 히죽히죽 웃으며 시계를 보았다.

3

2

1

3초가 흐른 후 남자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분명 잠이 들어야 하지만 뮤턴트는 잠에 들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남자가 미캐의 경동맥에 설치된 장치를 다시 살필 때 그 순간 미캐의 주먹이 그의 안면을 강타했다.

뻑!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바닥으로 나가떨어진 남자는 코뼈가 부러졌는지 얕은 신음을 내며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미캐는 자유로워진 한 손으로 목에 꽂힌 주사기를 거칠게 뽑아 집어던졌다.

그리고 다른 손과 발의 결박 장치를 재빠르게 풀고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순간 휘청거린 그녀.

약물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잠깐 좌우로 털고는 집중을 했다.

그 때문인지 정신이 약간 맑아진 그녀가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흘러내리는 피를 연신 제 손으로 훔치며 주저앉은 체 뒤로 기고 있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모습이었다.

미캐가 그를 향해 걸어가며 가슴 깊이 올라온 증오를 담고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사.. 살려 줘."

"아니, 난 반드시 살아서 엄마를 만나야 해. 그래서 난 절대 죽지 않아."

"시키는대로 다 할테니 사.. 살려 줘."

"아니, 난 죽으면 안 된다고. 알았어?"

말을 마친 미캐가 두 주먹을 움켜쥐고 남자에게로 달리자 남자도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포심 때문인지 몸이 허우적거리며 비틀거렸다.

살고자 하는 절박한 몸짓이 만들어 낸 우스꽝스러움도 묻어 있었다.

미캐는 그런 그를 즐기며 쳐다봤다.

이제 역으로 자신이 당한 걸 되갚아 줄 차례.

그녀가 눈을 돌리자 접이식 쇠 의자 하나가 보였다.

곧바로 그걸 집어 든 미캐는 그대로 도망치는 남자를 향해 있는 힘껏 내 던졌다.

빡!

의자가 남자의 뒤통수로 날아가 부딪혔다.

그는 뇌진탕인 듯 찍 소리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쓰러진 남자를 보고 미캐는 통쾌하다는 듯 웃어댔다.

“하하하하하하하.”

걸리적 거리는 목에 장치가 사라지고 또 그것을 통해 주입되던 약물이 끊겨서 그런 것인지 그녀의 몸에 힘도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완전하진 않았지만 조금은 가뿐하고 상쾌했다.

미캐가 쓰러져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그를 살폈다.

기절한 것 같지만 죽지는 않았는지 맥과 호흡이 살아 있었다.

“다행이네. 죽지 않아서. 잠깐 화가 나서 세게 던졌는데 걱정했음.. 크.”

혼잣말로 중얼거린 그녀가 남자의 겉옷을 벗어 손과 발을 한데 뒤로 모아 묶었다.

-이러면 깨어나도 절대 쫓아오지 못할 거다. -

이 생각에 잠깐 까르르 웃던 미캐가 순간 팔목의 통증이 느껴져 웃음을 멈추었다.

안경테를 집어 넣었던 팔이었다.

이상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회복되지 않는 팔에 미캐는 화가 났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상처가 아물지 않는 거야. C팔.”

그녀가 다른 손으로 다친 팔목을 문지르며 출입문을 노려보았다.

그러던 그녀가 일그러진 얼굴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X같은 개새X들. 다 죽었어. 특히 은비사 너.. 너는 내가 팔다리를 찢어 버릴 거야. 악마 새X.”

.

.

.

.

왕종철이 오성 알앤디 센터 출입문을 나서자 검은색 대형 세단이 때에 맞춰 그의 앞에 섰다.

은비사가 곧바로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럼 들어가십시오.”

왕종철은 은비사의 배려에 그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곤 차에 올라탔다.

은비사가 문을 닫자 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그 차를 바라보던 은비사의 눈에 갑자기 차가 멈추는 걸 보자 그는 의아함이 앞섰다.

그러던 중 차의 뒷좌석 창문이 내려지고는 왕종철이 고개를 빼꼼이 내밀어 은비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은비사를 향해 손짓을 했다.

은비사가 서둘러 차로 도착하자마자 왕종철 그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비사야.”

“네. 회장님.”

“바탈 스톤이 열리게 되면 비사 네가 직접 죽여라.”

왕종철의 말이 무슨 뜻인지 간파하지 못한 은비사가 눈을 크게 뜨며 쳐다보았다.

그러자 왕종철이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

“여자 바탈을 말하는 거야.“

아까 전, 은비사가 미캐를 때리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왕종철의 마음이었다.

작은 것을 참으면 큰 것을 가지게 된다.

이런 걸 가르치려는 듯한 왕종철에게 은비사는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 왕종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그런 그에게 왕종철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그대로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를 태운 차는 다시 출발했다.

왕종철에게 인사를 하느라 허리를 숙인 체 차가 떠나는 걸 듣고 있던 은비사는 지금 웃고 있었다.

모두 이미캐를 직접 죽일 수 있게 된 것으로부터 온 환희였다.

.

.

.

6월 초순의 햇살은 따갑고 뜨거웠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

그것으로 촉발된 기후 이변들.

빙하는 녹고 태풍은 잦아졌으며 세계 곳곳에 문제를 불러왔다.

여기 대한민국도 다를 바 없었다.

초여름은 삼복더위에나 되야 느낄 정도의 온도로 올려 놔 버렸다.

이런 더위와 따가운 햇살을 유독 싫어하는 은비칼.

그는 여름에는 평소 외출할 때 해가 뜨지 않는 밤에나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지금 이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숨막히는 길가를 걷고 있었다.

그가 손으로 태양을 가리며 걷는 모양새가 흡사 파김치 같기만 하다.

유독 더위를 타는 체질 탓에 지금도 이마며 얼굴 겨드랑이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던 그는 그게 짜증이 난다는 듯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어휴. 더워. 여름이 사라졌으면 좋겠어.”

손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쓸어 훔치고는 옷에 닦았다.

그리고 이 험난한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누가 보면 쓰러지기 직전이라 생각할 만큼 비틀거리는 모양새가 위태해 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그 길을 공유하는 그 어떤 사람도 그의 걸음걸이를 눈 여겨 보는 이는 없었다.

모두 각자의 길을 갈 뿐..

간혹 가다 스치듯 그를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힘겹게 인도를 걷던 은비칼이 지쳤는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그나마 그늘이 조금 있는 건물 벽으로 가 잠시 햇빛을 피했다.

작은 그늘이라 요상하게 그가 벽을 바라보는 형국이 되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벽을 보고 대화를 하기 시작하는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이렇게 물어봤지만 대답 없는 벽이다.

당연히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은비칼은 그 벽에게서 대답을 기다렸다 돌아오지 않아 실망했다는 듯 풀 죽은 강아지 눈으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벽을 원망하듯 쳐다보던 그가 갑자기 그 벽에 머리를 콩 박았다.

그리고 다시 벽과 대화를 하는데

“아니야. 그렇지? 형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지?”

역시 대답 없는 벽.

은비칼은 그런 그 벽을 보고 마치 더 이상 너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듯 체념을 한 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나채국의 얼굴은 해 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

.

.

“자이언트 호넷이라고요?”

은비칼이 물어보자 나채국이 대답했다.

“네. 맞아요. 자이언트 호넷. 일명 장수말벌이라고 하죠. 테러범을 정밀 타격하기 위해 개발된 고도의 살상능력을 구비한 소형 공격용 드론이에요. 바로 킬링 봇이죠.”

은비칼은 나채국의 말을 듣자마자 사색이 되었다.

또한 너무 놀란 듯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본 나채국은 자신의 지식에 감동받아 놀랐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

잘난 체가 통하자 나채국은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은비칼에게 잘난 체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텔스 기능은 아직 미흡하지만 안티 재밍이 탑재되어 있고 또 유도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어 정확한 목표물을 조준 공격하기에 탁월하다고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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